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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58)화 (5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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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에르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렸다. 제냐가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이왕이면 잘생긴 게 좋죠.”

그리고 다시 옷을 살피는데, 잠시간 침묵하던 루미에르가 옷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화려한 게 좋아요? 단정한 게 좋아요?”

제냐가 무채색의 옷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단정한 게 좋지 않겠어요? 검소하다면서요.”

“아니요. 제냐의 취향이요.”

응? 아직 끝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요?”

부끄러워하길래 더 안 물을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듯 루미에르를 쳐다보던 제냐는 꽤 진지해 보이는 그 모습에 솔직하게 답했다.

“당신쯤 되면 취향의 문제를 넘어섰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제 됐냐고,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데 루미에르가 지치지도 않고 질문을 던졌다.

“마왕이랑 저, 둘 중에는 누가 취향인데요?”

설마, 이거 아까 마차에서 했던 그 대화의 연속이었던 건가?

도대체 왜 마왕에게 그런 쪽으로 경쟁의식을 느끼는 걸까? 제냐는 루미에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미에르는 전에 없이 심각해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그러니까 얼굴만 보면 사납게 생긴 마왕 쪽이 취향이지만.’

성격과 직업, 배경까지 다 따져 보면 당연히 제냐의 취향은 루미에르였다.

제냐가 처음 생각을 숨기며 담백하게 답했다.

“당신요.”

그러자 루미에르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확연한 기쁨으로 물드는 얼굴이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리자, 루미에르가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자기가 물어 놓고 왜 저런담?’

괜스레 이쪽까지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제냐가 팔꿈치로 루미에르를 쿡쿡 찔렀다.

“알려 줬으니까 이제 도와줘요.”

루미에르 순하게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다니까.

제냐가 피식 웃으며 다시 옷을 살폈다.

* * *

역시나, 밤새 옷을 뒤적거렸지만 두 사람은 적절한 옷을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이 된 오늘 아침까지 모든 짐을 뒤져 봐도 적절한 복장을 찾을 수 없었던 제냐가 마지막 방법을 꺼내 들었다.

“레라지에 님께 부탁해야겠어요.”

저택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직접 옷을 사러 갈 수가 없었다.

루미에르가 제냐에게 사과 한 쪽을 건네주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래야겠네요.”

“미안한데.”

아삭하고 새콤한 사과를 씹으며 중얼거리자 루미에르가 뭐가 문제냐는 듯 답했다.

“마왕이 도와줄 거라고 했잖아요.”

“그랬지만…….”

이래저래 이번 일정에서 레라지에에게 받은 게 많아서 좀 미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제냐가 한숨을 푹 쉬는데, 옆에 편하게 앉아 있던 루미에르가 협탁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가면을 착용하기가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제냐?”

레라지에였다. 제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문을 열어 줬다.

“잘 잤나?”

“네, 레라지에 님은요?”

“난 잘 잤지.”

기분 좋게 미소 지은 레라지에가 손을 들어 보였다.

“폐하께서 그대를 도우라고 하시던데.”

제냐가 그의 손 위에서 달랑거리는 커다란 쇼핑백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마땅한 옷이 없었거든요.”

제냐가 몸을 돌려 바닥에 쌓인 옷을 보여 주자 레라지에가 활짝 웃었다.

“적절한 때에 왔군! 들어가도 되나?”

제냐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활짝 열었다.

“네, 그럼요.”

드레스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쇼핑백을 받아 든 제냐는 얼른 입어 보라는 레라지에에게 떠밀려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둘을 두고 와도 되나 싶었지만 루미에르도 이제 레라지에가 익숙해졌을 테니 괜찮을 것이다.

‘익숙한 걸 넘어서 그때 그건 좀 과했지만.’

작게 웃은 제냐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쇼핑백을 열었다.

“좋아, 이 정도는 참을 만해.”

솔직하게 말하면 기대 이상이었다. 참을 만한 걸 넘어서 꽤 제냐의 취향이었다. 평소 입는 것과 달리 밝은 베이지색이긴 했지만 그렇게 화려하진 않았다.

레라지에의 취향이 듬뿍 들어가 레이스 범벅이거나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분홍분홍한 드레스일 줄 알았는데.

드레스를 이리저리 살피던 제냐는 쇼핑백 안을 다시 살폈다. 레라지에라면 드레스만 사 왔을 리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 안에는 드레스와 어울릴 만한 구두와 장신구, 화장품이 차례로 튀어나왔다.

“여기에 마법 걸었구나.”

참 마법 낭비도 대단하다고 중얼거린 제냐는 우선 드레스를 먼저 입어 보기로 했다.

다른 건 대충 적당히 걸치면 되지만 드레스 사이즈가 어정쩡한 것만큼 볼품사나운 것도 없었다.

혼자서 입기 쉬운 복장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드레스를 입어 보는데, 드레스 룸 밖에서 레라지에와 루미에르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제냐, 좀 도와줄까?”

“무슨 소립니까?”

“응? 드레스는 보통 혼자 입기 힘드니까…….”

“그걸 왜 당신, 레라지에가 도와줍니까?”

울컥한 것이 역력한 루미에르의 목소리에 제냐가 서둘러 드레스 룸을 나섰다.

“괜찮아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었어요.”

뭐, 제대로 치장하진 않아서 조금 우스꽝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옷 사이즈는 딱 맞았다.

신기할 정도로.

“딱 맞네요.”

제냐가 레라지에를 보며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그가 손뼉을 쳤다.

“그럼! 내가 제냐의 사이즈는 잘 알지.”

그리고 그 말은 다시 한번 루미에르를 건드렸다.

“당신…, 레라지에가 제냐의 사이즈를 어떻게 압니까?”

그래도 최대한 날카롭지 않게 말을 다듬는 루미에르의 노력이 가상했다. 하지만 레라지에는 그런 루미에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해를 살 만한 말만 이어 갔다.

“응? 그런 건 딱 보면 알지? 그리고 허리도 몇 번 잡아 봤었고…….”

제냐는 루미에르가 화를 내기 전 얼른 레라지에의 말을 잘라 냈다.

“레라지에 님! 감사해요. 딱 제 취향이에요.”

“그래, 그대는 우아한 드레스가 잘 어울리지. 그럼, 마저 해 볼까?”

제냐는 레라지에에게 이끌려 화장대 앞에 앉으면서 거울 너머 싸늘한 눈을 한 루미에르에게 얼른 눈짓을 했다. 루미에르가 날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제냐는 레라지에가 루미에르의 표정을 발견하기 전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뭘 마저 하나요?”

“황녀인 척을 한다며? 눈이랑 머리카락 색은 바꿔야지.”

“아.”

“아름다운 자수정이 사라지는 건 참 아쉽지만. 그대는 무슨 색이든 잘 어울릴 거야.”

레라지에의 말이 이어질수록 딱딱하게 굳는 루미에르의 얼굴을 살피며 제냐가 부드럽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해 볼까?”

탁-!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제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거울 속 양손을 꽉 맞잡고 황홀해하는 레라지에의 모습이었다.

“너무 잘 어울리네!”

참 한결같다고 생각하며, 아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밝은 머리카락에 시선을 줬다.

어머니의 백금발과 달리 살짝 어두운 회색빛이 섞인 금발과, 어머니의 것보다 색이 옅은 초록색 눈을 한 제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제레미야보다는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

그래도 어떻게 우기면 충분히 남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냐는 제레미야의 색을 덮어쓴 스스로를 건조하게 바라봤다.

“황녀인 척이라니 너무 재밌지 않나?”

레라지에가 흥미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그를 따라 작게 웃던 제냐는 거울로 그녀를 보고 있던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어때요?”

“…별로예요.”

이건 좀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제냐가 거울 속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안 어울려요.”

확고한 답에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자 루미에르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옆에서 레라지에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랗게 떴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그 모습이 웃겨서 제냐가 조금 장난을 쳤다.

“어머니도 금발에 초록 눈이셨는데.”

시무룩하게 말하자 루미에르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말했다.

“이것도 예뻐요!”

“그래요, 고마워요.”

잔뜩 놀랐던 루미에르가 웃음기 가득한 제냐의 얼굴을 보더니 그게 장난이라는 걸 알았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모습을 귀엽다는 듯 지켜보고 있던 레라지에가 다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그럼 나머지 물건들도 한번 살펴볼까?”

“아, 액세서리요?”

그것까지 다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거절하면 안 될까 고민하는데, 레라지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것도 그렇고.”

“그것도?”

“그건 이 드레스에 어울리는 거고, 이번 걸 꺼내면 또 새로운 드레스랑 액세서리가 나와.”

“…네?”

제냐가 어리둥절하게 레라지에를 쳐다보자 그가 더 당혹스러워했다.

“설마 내가 드레스를 한 벌만 사 왔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레라지에가 열정적으로 몸을 꼬았다.

“제냐, 난 그렇게 센스가 없지 않아. 폐하께서 내게 고작 하루밖에 주지 않으셨지만 그 안에 그대를 완벽한 레이디로 변신시켜 줄 테니까.”

세상에. 이걸 몇 번이나 하자고?

제냐가 할 말을 잃고 레라지에를 쳐다보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그가 우아한 미소를 흘렸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대가 완벽하지 않다는 건 아니야. 그대는 공주님이니까!”

눈을 찡긋거린 레라지에에 루미에르가 경멸하듯 그를 노려봤다.

“물론 완벽히 그대에게 어울리는 걸 찾은 뒤에는 머리도 해 봐야 하고 화장도 해 봐야 하니까 우리는 매우 바쁘다네!”

그러니까 서두르라고. 레라지에가 제냐를 화장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제냐는 잔뜩 흥분한 것 같은 레라지에를 말릴 수가 없었다.

‘도움받은 게 많기도 하니까 맞춰 주자.’

벌써부터 피곤했지만 제냐는 이번 한 번만 레라지에를 기쁘게 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 생각은 옷을 세 벌쯤 갈아입은 순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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