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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53)화 (5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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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식당을 나섰다.

화는 진작에 다 풀렸지만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루미에르가 하는 말에 단답을 하기 일쑤였는데, 루미에르는 불편한 기색도 없이 그녀를 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제냐, 듣고 있어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제냐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오는 루미에르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살피던 루미에르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아, 네. 그냥…….”

말끝을 흐린 제냐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미안해요. 뭐라고 했어요?”

루미에르가 제냐의 어깨를 붙잡은 채, 자연스레 가판대에 놓인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어제 그 마법사가 저희를 따라와요.”

제냐가 놀라며 루미에르를 올려다봤다.

“언제부터요?”

“조금 전, 저희를 발견한 뒤부터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얌전히 여관에 처박혀 있어야 했는데.

“어느 쪽에 있는데요?”

“저기 과일 가게 뒤에요.”

루미에르가 비켜 주는 대로 살짝 과일 가게 쪽을 쳐다보던 제냐는 티 나게 홱 몸을 수그리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헛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뿐이에요?”

“지금은요.”

음, 생각보다 문제가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따돌릴 수 있겠죠?”

“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왜요?”

별 볼 일 없어 보여서? 하지만 그래도 나름 루미에르의 동료고 마법사니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제냐가 미간을 좁히는데, 루미에르가 그녀를 데리고 움직이며 답했다.

“…신전에서 움직인 것 같거든요.”

“신전요?”

그러고는 순식간에 골목 한쪽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왔다.

“이쪽으로 와요.”

“루미에르?”

활기차고 밝은 큰길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햇빛이 간신히 들어오는 좁은 골목 안에는 제냐와 루미에르 두 사람뿐이었다.

“잠시.”

루미에르에게 밀려 벽에 등을 붙인 제냐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가 제냐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

코 밑이 완전히 가려진 제냐가 눈으로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루미에르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뭐가? 머리 위로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는데, 골목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그 마법사.’

무언가가 부딪치고 무너지는 소리와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그리고 귀에 꽂히는 목소리.

“마법사 진 님, 신전의 소환에 불응하셨기에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왔다고? 웃기지 마! 너희는 나를…….”

“너무 소란스럽군요. 저희는 다른 곳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 너희들이 언제부터 평민들의 일에 신경 썼다고?”

날카롭기 짝이 없는 마법사의 말투에도 상대는 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많이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얼른 가시죠. 다른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거 안 놔?”

어느새 제압을 당한 듯 마법사가 몸부림을 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죄송합니다.”

무미건조한 사과와 함께 마법사의 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이내, 약간의 소란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절한 마법사를 데리고 그들이 서 있던 골목을 지나쳐 사라졌다.

‘성기사……?’

하얀 갑옷과 하얀 검. 하얀 망토까지.

제냐가 눈을 들어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그는 성기사들의 뒷모습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냐는 지금 그들의 위치와 성기사들의 위치를 가늠해 봤다.

‘내가 손만 들면 루미에르를 돌려보낼 수 있는 건가?’

전날 잠시 머릿속을 맴돌았던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루미에르를 신전에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하지만 동시에 오늘 루미에르에게서 들었던 신전의 만행도 차례로 머리를 채웠다.

‘그렇지만 뭐가 돼도 마왕과 함께 있는 지금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신전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용사와 마왕이 함께 있는 지금보다는 좋지 않을까?

‘그래,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소리를 내야…….’

그때 그런 제냐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루미에르가 큰 몸으로 제냐를 완전히 가리며 귀에 속삭였다.

“조금만 더 버텨요, 제냐. 곧 갈 거예요. 우리 함께 방으로 돌아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함께 돌아가자고.

‘내가 멋대로 굴어도 되나?’

내 멋대로 이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건 신전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루미에르도 생각을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루미에르는 용사인데…….

제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눈앞의 루미에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입을 가린 손이 떨어져 나갔다.

스르륵, 눈을 뜨자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푸른 눈이 보였다. 눈을 깜빡이면 속눈썹이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였다.

제냐와 루미에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마주 봤다. 낮게 가라앉은 루미에르의 눈 안에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작게 숨을 몰아쉬는데, 루미에르가 천천히 그녀의 뺨을 붙잡았다.

“제냐.”

제냐가 입술을 깨물며 루미에르를 올려다보는데, 그가 작은 미소를 흘렸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을게요.”

벽에 그녀를 가두듯 상체를 숙이고 있던 루미에르가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럼 이제 갈…….”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뭔데요?”

제냐가 루미에르의 말을 잘라 내며 떨어져 나가던 손을 붙들었다. 그러자 그가 입꼬리를 파르르 떨다가 곱게 말아 올렸다.

“지금 당장 제냐가 들어줄 수 있는 걸 골라 보자면……. 당신이 날 피하지 않는 거요?”

루미에르가 보란 듯 그녀가 붙잡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깍지를 꼈다.

“갈까요?”

제냐가 주춤거리다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말 그거면 돼요?”

“제일 중요한 거예요.”

내가 당신을 피하지 않는 게? 제냐의 표정을 읽었는지 루미에르가 작게 웃어 버렸다.

“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방금 숨은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죠.”

미소가 어린, 진지하지 않은 것 같은 대꾸에 제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냐가 루미에르의 손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함께 있는 거 불편하잖아요.”

그러자 제냐를 따라 자리에 멈춰 선 루미에르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긍정했다.

“거슬리기는 해요.”

“근데 왜 그냥 이렇게 있어요?”

마족들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떠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왕을 건드리지도 않는 걸까.

“우리를 봐주는 마왕도 이상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루미에르도 이상해요.”

루미에르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던 제냐를 끌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어릴 때부터 마족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을 배웠고, 그래서 마족을 싫어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리고 제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신전이, 어머니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거물급 인사를 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렇게 신전의 명령을 우선시하면서 방금은 신전 인사들을 피해 몸을 숨기지 않았던가?

“지금 당신의 행동이 모순되는 건 알아요? 신전은 당신을 찾고 있어요.”

“네, 알아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내뱉지 못한 말이 입 안을 맴돌았다. 이 말을 했다가는 또 그날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주변에는 루미에르가 무기로 삼을 것이 너무 많았다.

결국 제냐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 * *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데 아래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지?”

그 소리에 놀라 밑을 내려다보니 마왕이 고개를 틀어 제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마왕의 눈매와 그녀의 손에서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차례로 확인한 제냐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놓았다.

“아,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제냐는 마왕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성기사들을 피한 두 사람은 곧장 여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제냐는 마왕의 부름을 받았고, 덕분에 루미에르와의 어색한 시간을 피했다.

제냐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빗을 들었다.

짜증스레 그녀를 쳐다보는 마왕의 얼굴을 다시 앞으로 돌려 주며 재빨리 머리를 정돈했다.

“이제 되셨어요.”

“공주님은 일이 하기 싫은가 보지?”

사람이 집중을 좀 못 할 수도 있지, 어이가 없었다.

“그 공주님이 10년 넘게 시중을 들고 있잖아요?”

“영광으로 알아야 하나?”

“삐딱하시네요. 혼자 일하셔서 그런 건가?”

“네 말투가 더 삐딱해.”

“그렇다고 치죠.”

마왕이 짜증 난다는 듯 제냐를 쳐다봤다가 서류를 정리했다. 제냐는 어제와 달리 텅 빈 마왕의 책상을 살폈다.

“일이 더 있으세요?”

“없어. 이제 한동안 안 할 거야.”

“그래도 돼요?”

“꼭 해야 할 일은 끝났어.”

“그래요?”

마왕이 귀찮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니까 이만 가 봐.”

“정말요?”

“그래, 괜히 같이 있다가 복장이나 터지지.”

“제가 언제 그랬다고…….”

평소라면 퇴근이 빨라진 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왜 하필 이럴 때 일이 없는 걸까. 지금 당장은 루미에르와 단둘이 방에 있는 걸 피하고 싶었다.

“다른 건 뭐 시키실 것 없으세요?”

주변을 돌아봤다. 전날 떠나기 전과 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마왕은 딱히 방을 더럽게 쓰는 편은 아니었다.

“방 정리라던가…….”

깔끔한 책상과 테이블을 눈에 담다가 다시 마왕을 쳐다봤다.

그러자 계속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마왕과 딱 시선이 부딪쳤다.

“미적거리는 걸 보니, 방에 돌아가기 싫은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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