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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50)화 (50/145)

자기가 손을 줘 놓고 금방이라도 욕을 뱉어 낼 것 같은 루미에르와, 반대로 루미에르의 손을 쥐고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는 레라지에.

“손이 참 멋있군!”

“…고맙, 고맙…….”

레라지에의 칭찬에 어떻게든 대꾸하려고 노력하던 루미에르가 결국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둘의 모습에 제냐가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먼저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 * *

레라지에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안면이 있기 때문인지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을 다시 안으로 들여보냈고 소란에 달려온 경비대도 능청을 떨며 돌려보냈다.

처음 소란을 일으켰던 진이라는 마법사와 일행까지 말끔히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제냐는 어느새 그녀의 손을 붙들고 있는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루미에르가 물었다.

“딱히 저 안에서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습니다. 이 상처는… 저자한테 치료해 달라고 할까요?”

손목의 상처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보다는 역시 아까 아는 사이가 맞죠.”

“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대답이 어이가 없었다.

“정말 동료예요?”

“함께 다녔죠.”

그딴 사람이랑? 그런 게 정말 루미에르의 동료라고?

“…마계에 떨어지기 전에 함께 있었어요?”

“네.”

제냐는 남자가 카페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 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떨어진 거예요?”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혔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뭘 나중에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루미에르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들에게 다가오는 레라지에가 보였다.

‘나머지는 방에 가서 물으면 되니까.’

제냐가 조급함을 내리누르고 레라지에를 쳐다봤다.

“자, 말끔히 해결됐네. 이제 돌아가지.”

그래, 그런 것 같았다. 제냐는 모두를 돌려보내고, 어떻게 한 건지 마차까지 빌린 레라지에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덕분에 더 얼굴 팔릴 일은 없겠네.’

조금 딱딱한 마차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레라지에가 제냐의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제냐, 괜찮은가?”

“네, 괜찮아요.”

“손목은… 돌아가서 치료해 주지.”

지금 당장 치료해 준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문은 이어진 레라지에의 말에 풀렸다.

“사방에서 마법사들이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거든. 그런 간단한 마법에 놀라기는.”

형편없는 실력이 놀라울 정도라 평한 레라지에가 다시 그녀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냥, 얼음찜질만 좀 하면 될 것 같아요.”

“미안하네.”

“레라지에 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조금 과하게 행동했다는 걸 제외하고 사실 레라지에나 루미에르는 잘못이 별로 없었다.

제냐가 작게 웃자 레라지에가 눈을 살풋 찌푸렸다.

“아까 그 인간은…, 따로 처리해 줄까? 마법사라 상처도 금방 나을 테고.”

제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히 뒷말 나오게 할 필요는 없죠.”

“그대는 너무 착하다니까.”

방금 그 말 어디가? 하지만 말을 더하기에는 피곤해서 제냐는 레라지에가 챙긴 커다랗고 두툼한 봉투를 눈짓했다.

“원하시는 정보는 얻으셨어요?”

“그래.”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레라지에가 찝찝하다며 말을 이었다.

“음, 사전에 말해 주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사실 여기 그대의 과거에 대한 기록도 적혀 있다네.”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제냐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아보라고 알려 드린 거니까요.”

그러자 레라지에가 한결 편안한 얼굴을 했다.

“고맙네.”

아무래도 오늘 관광은 몰래 뒷조사를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원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제냐는 레라지에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루미에르는 레라지에에게 한 번 손을 내어 준 것으로 오늘 치 노력을 다했는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제냐는 루미에르가 분위기를 깨진 않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셋은 금방 여관 앞에 도착했다. 마차를 운전해 줬던 마부가 레라지에에게 돈을 받고는 싱글벙글해 사라졌다.

그렇게 드디어 쉴 수 있겠다고 지친 발을 이끄는데,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6층을 사용하시는 분께서 일행이 오시면 전부 곧장 올라오시라고…….”

이 여관에서 그들을 부를 이는 한 명뿐이었다. 마왕.

세 인영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레라지에가 수심이 깊은 얼굴을 했다가 말을 전한 직원에게 팁을 쥐여 주었다.

“알려 줘서 고맙네.”

“네.”

서로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마왕이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알아챘다는 걸 눈치챘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했다.

* * *

방에 도착한 사람 둘과 마족 한 명은 마왕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제냐가 타 온 차를 전부 비울 때까지 마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피곤한 사람 붙잡고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질 법도 했지만 도대체 뭐 처리할 서류가 저렇게 많은지, 마왕은 여기까지 와서도 일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잔뜩 쌓인 서류들을 보니 반쯤 놀다 온 그들과 달리 마왕은 오전 내내 일을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제냐는 입을 꾹 다물고 루미에르와 시선이나 교환했다. 루미에르는 방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제냐를 보며 방긋방긋 웃다가, 그녀의 손목을 쳐다보며 눈을 찌푸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기묘한 침묵은 마왕이 마지막 서류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래, 화려하게 시선을 끌었더군.”

“…하하하, 폐하. 그것이 의도한 일은 아닌지라.”

“조용히 정보나 얻어 오라고 하지 않았나? 인간계에 정보통이 많다고 호언장담한 건 그대인데.”

“제 불찰입니다.”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습니다.”

“주변에 맴도는 저것들은? 질리게도 있다 가는군.”

주변에 맴돌아? 설마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던 마법사들이 아직까지 돌아가지 않았던 건가?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았던 거고?

제냐가 놀라 창밖을 쳐다봤지만 당연히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리하는 게 더 편하지 않겠나?”

마왕의 말에 제냐가 다시 그를 돌아보는데 레라지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으음. 용사의 동료라고 주장하는 이가 끼어 있어서 조금 곤란합니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이목을 더 끌게 되어서.”

“…동료?”

마왕의 눈빛이 루미에르에게 향했다가 금방 돌아섰다.

“자기주장이긴 합니다만, 혹시 모르니까요.”

제냐가 루미에르에게 돌아갈 것 같은 시선을 붙잡으며 얌전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금방 처리될 겁니다. 신전에서 저 마법사를 잡으러 오고 있습니다.”

“신전에서?”

“신전에서 용사의 동료들을 모으고 있다더군요. 이유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잘 처리해.”

“네.”

“맡겼던 일은?”

마왕의 말에 레라지에가 들고 있던 두툼한 서류 봉투를 마왕에게 건넸다.

마왕이 봉투를 뜯자 레라지에가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아비에 왕국의 왕녀였던, 아스트리아 아비에와 그 부모에 대한 정보입니다.”

동시에 레라지에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손 위에 그림 한 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간신히 구한 초상화입니다. 상태가 좋기에 따로 들고 왔습니다.”

레라지에가 곧장 그 초상화를 마왕에게 건넸다.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초상화를 그리는 건 연례행사였으니 그림이 남아 있을 법도 했다.

‘나도 궁금하네.’

초상화를 그리기만 했지, 결과물이 어떤지는 별로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마왕의 손에 들린 그의 상체만 한 초상화의 뒷면을 바라봤다. 마왕이 초상화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제냐를 쳐다봤다.

그리고 꼭 비교하는 것처럼 초상화와 제냐를 재차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다.

“으음. 비슷한가?”

초상화를 그릴 때처럼 적당히 웃음이나 지어 보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왠지 그러면 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던 마왕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정하는 게 재수 없었다. 마왕이 다시 그림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레라지에가 얼른 받아 들더니 제냐에게 건넸다.

“궁금하지?”

얼굴에 티가 난 모양이었다. 배려해 주는 레라지에에게 제냐가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본명을 알게 됐으면서도 계속해서 제냐라고 불러 주는 것도 고마웠고.

루미에르가 대신 초상화를 받아 들었다.

“이건…….”

여덟 살에서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제냐와 그녀의 뒤에 있는 성인 두 명.

제냐처럼 검은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을 지난 사내와 화려한 백금발에 초록 눈을 지닌 여성.

이건 그녀의 개인 초상화가 아니었다.

-아스트리아.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가족의 모습에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레라지에가 말했다.

“그대가 가지게.”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제냐가 레라지에에게 되물었다.

“…그래도 되나요?”

“그대의 가족이잖아?”

차마 얼굴 부분은 만지지 못하고 캔버스 끝자락을 손으로 문질렀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데 레라지에가 눈을 찡긋거렸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의 선물이네.”

그녀의 옆에서 함께 그림을 살피던 루미에르가 작게 속삭였다.

“그대로네요.”

“그런가?”

제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마왕이 레라지에에게 물었다.

“다른 건.”

“따로 특별한 변동은 없습니다. 저희 일에 영향이 갈 만한 일도 아직은 없습니다.”

“잘 살펴보고 바로바로 보고해.”

“네, 폐하.”

그걸로 이야기가 전부 끝났는지, 마왕이 손을 휘둘러 서류를 깔끔하게 치웠다.

“그럼 됐어. 오늘은 이만 쉬게.”

“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드디어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냐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왕이 비딱하게 다리를 꼬며 제냐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심술궂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일 좀 하다 가고.”

서류를 본 순간부터 짐작했던 일이지만 진짜로?

제냐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마왕을 간절하게 쳐다봤지만 마왕은 얄밉게 웃을 뿐이었다.

“놀다 오지 않았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알면서! 제냐가 이를 악물며 마왕을 노려봤지만 마왕은 눈꼬리를 휘며 새로운 서류를 불러내는 것으로 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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