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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42)화 (4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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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딱 달라붙어 있는 자기들의 모습을 돌아본 제냐가 찔끔해서 손을 내리고 슬쩍 루미에르를 밀어냈다.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레라지에를 보아하니, 대충 저들이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제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몸을 돌려 마왕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둘을 번갈아 보다가 쯧, 혀를 찼다.

“연애는 나중에 따로 하고.”

신경을 긁는 말에도 보인 꼴이 있어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저희는 어디로 가게 되나요?”

제냐의 물음에 마왕이 비아냥거렸다.

“궁금하긴 하고?”

참자, 여기서 반응을 보여 봤자 그녀만 손해였다. 제냐가 타격이 없는 것처럼 미소만 지어 보이자, 한참 못마땅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던 마왕이 입을 열었다.

“여기 바로 앞에 있는 마을로 간다.”

레라지에가 마왕의 말을 이어 설명했다.

“잠시 들러서 인간계의 소식을 알아보고 다시 이동할 거야.”

“인간계의 소식을 들어요?”

“아무래도 마계는 소식이 한발 느리니까.”

레라지에가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정보를 캐내고 찾는 건 내가 전문이지.”

숨겨진 보물을 찾고 소문을 쫓아다니는 건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거라며 뿌듯해하는 레라지에에 제냐가 관성적으로 손뼉을 쳤다.

대단하시다, 입에 발린 말을 몇 마디 한 제냐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머물까요?”

“원하던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는 머물지 않을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니까 구경할 거리가 있을 거야.”

“그렇군요.”

계속 질문을 이으려는데, 마왕이 그들의 대화를 잘라 냈다.

“설명은 그 정도면 됐고, 이동하지.”

그러고는 답도 듣지 않고 앞장서는 것이다. 제멋대로이고 독선적인 게 참 마왕다웠다. 제냐가 루미에르에게 눈짓하며 걸음을 옮겼다가 몇 발자국 걷자마자 의문을 느꼈다.

“저희 지금 걸어가는 건가요?”

마법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마족이 둘이나 되는데?

“그래, 걸어간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답에 제냐가 다시 물었다.

“거리가 가까운가요?”

“두 시간은 걸어가야 할걸.”

“두 시간이요?”

이 산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간다고? 제냐가 입을 벌리는데, 마왕이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힘들면 업어 준다잖아. 업어 달라고 해.”

거리고 좀 있다고 마왕이 두 사람의 대화를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놓고 미인계를 잊지 말라고 말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듣고 있었다는 걸 확인받자 짜증 났다. 대화를 엿들은 주제에 그걸 이용해서 이쪽의 신경을 잔뜩 긁는 것도!

마왕을 노려보던 제냐가 뒤에서 등을 부드럽게 받쳐 주는 손길에 루미에르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루미에르가 곱게 미소를 지었다.

마왕의 말에도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를 보자 확 치솟았던 감정이 좀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제냐가 루미에르를 따라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특정인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허락도 받았으니, 정말 피곤하면 말할게요.”

“네.”

“하!”

루미에르의 망설임 없는 답과 함께 마왕이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왕이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리는데, 레라지에가 그런 마왕을 붙들고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폐하! 이번 일정에서…….”

제냐는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는 레라지에에게 감사를 담아 고개를 까닥였다. 마왕에게 한 방을 먹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덕분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마계와는 다른 인간 세상 특유의 푸르름과 밝음이 가장 눈에 띄었다.

정말로 인간계에 와 있다니.

주변의 상황을 잊은 제냐가 한껏 밝아진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 * *

제냐가 이제는 퉁퉁 붓는 것 같은 다리를 내려다보는데 루미에르가 옆에서 물었다.

“업어 줄까요, 제냐?”

힘들긴커녕 팔팔해 보이는 루미에르를 보고 있자니 마음 같아서는 냉큼 그에게 팔을 내밀고 싶었다.

제냐가 그의 팔을 바라보며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데, 열 발자국 정도 앞서 있던 레라지에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제냐, 다 왔다네!”

레라지에가 나뭇가지를 옆으로 밀어 주며 한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를 따라가자 정말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성벽이 보였다.

‘성벽이라니, 이 정도면 마을이 아니라 도시 아닌가?’

높은 성벽을 쭉 둘러보고 있는데 마왕이 레라지에에게 명령했다.

“레라지에,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로브를 써라.”

“네?”

“은발이 너무 눈에 띄니 로브를 쓰라고.”

지극히 합리적인 말이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그의 은발은 너무 눈에 띄었으니까.

웬일로 맞는 말을 하는 마왕에 제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레라지에가 벅찬 목소리로 물었다.

“제 머리카락이 별빛처럼 반짝거린다고 칭찬해 주신 건가요?”

지금 마왕의 말 어디에 그런 뜻이 담겨 있었지? 하지만 레라지에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앞으로 이 머리카락을 절대 자르지 않겠습니다.”

뭐래.

황당함에 입꼬리가 일자로 굳는데,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듯 마왕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마음대로 해.”

레라지에가 한껏 감격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만큼은 아니지만 밝은 은빛의 로브를 입었다.

“이 정도면 되나요? 폐하?”

“그래. 가지.”

좀 많이 화려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얼굴이 드러난 것보다는 나았다.

마왕이 귀찮다는 듯 대충 대꾸하고는 그대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냐가 마왕을 붙들었다.

“폐하. 설마 그러고 가시려고요?”

“뭐?”

제냐가 미간을 좁히며 그가 입은 로브에 달린 모자를 가리켰다.

“폐하도 모자를 쓰세요.”

“나는 검은색인데. 너도 안 썼잖아.”

자기 얼굴을 모르나? 여기서 지금 색이 중요한 것 같아?

제냐가 하고 싶은 말을 꾸역꾸역 삼키고 최대한 온화하게 말했다.

“그 얼굴이 제일 눈에 띄니까 모자 쓰세요.”

마왕이 제냐를 쳐다보며 눈만 끔뻑였다.

뭐, 어쩌라고.

제냐가 멀뚱히 그 시선을 받아 내자 마왕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작게 헛기침을 하는 것이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거야?’

내가 자기 실수를 지적해서? 아니면 얼굴을 칭찬해서?

제냐의 얼굴이 마왕을 따라 어색하게 굳어 가고 있는데, 레라지에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럼요! 폐하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뒤를 돌아볼 테니까요. 아무도 잊을 수 없는 걸작의……!”

그 호들갑은 마왕의 눈빛 한 번에 끝이 났다. 입을 뻐끔거리는 걸로 봐서 마법으로 입이 막힌 것 같았다.

마왕이 한숨과 함께 로브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이제 됐냐며 그녀를 쳐다보는 마왕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루미에르가 손을 붙잡아 왔다.

루미에르는 또 왜 이러는 걸까. 제냐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왜요?”

“…아니에요.”

입술을 삐죽이는 걸 보면 뭔가 불만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입을 열 생각은 없는 것 같았고.

앞서 나가는 마족들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제냐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이러는지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 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도시로 들어서는 중인 제냐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보안 절차에 욕을 짓씹고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셨습니까?”

“관광.”

“그러십니까? 그럼 들어가시죠.”

성문 앞, 제법 질이 좋아 보이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마주했을 때 제냐는 긴장했다.

병사들이 신분을 증명할 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을 조용히 안으로 들여보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왕이 병사들을 죽이면 어쩌나 걱정하던 것이 무색하게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일행을 통과시켰다.

활기차고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 내부를 보자 제냐는 더욱 착잡해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들어올 수 있다고요?”

저 병사들은 알까? 자기가 지금 마왕을 통과시켰다는 걸.

제냐가 익숙한 듯 앞장서는 마왕과 레라지에를 쳐다보다 답답한 얼굴로 루미에르를 올려다봤다.

루미에르가 지나치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걸 막아 주며 답했다.

“수도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나요?”

“…마족들이 정정당당하게 성문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요.”

하긴 마족들이 강제로 쳐들어왔으면 쳐들어왔지, 고분고분 질문에 답하며 절차를 밟아 도시에 입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안일했다.

“얼굴 확인은 왜 안 하는데요?”

우리 꼴을 보라며, 제냐는 루미에르의 가면과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레라지에와 마왕의 뒤통수를 가리켰다.

누가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요’ 하는 꼴인데 그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뿐이야? 다들 덩치까지 커다래선.’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열을 내던 제냐가 그들의 처지를 인지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얼굴을 보여 달라고 했으면 우리고 곤란했겠지만요.”

한숨을 푹 쉬자 루미에르가 가면을 매만지며 답했다.

“입고 있는 옷이 고급스럽잖아요. 귀족 중에 종종 이런 식으로 정체를 숨기고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냐가 다른 이들과는 때깔부터 달라 보이는 일행의 옷을 돌아봤다.

“괜히 꼼꼼하게 확인했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루미에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피해가 어떤 것인지 능히 짐작 가능한 제냐가 질색했다.

“참.”

가지가지 한다.

하긴 제냐가 추억에 젖어서, 과거를 미화해서 그렇지 인간 세상도 그렇게 별세계는 아니었다.

‘인간계나 마계나.’

정말이지, 오랜만에 돌아온 인간 세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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