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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22)화 (2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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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주변 풍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황급히 다가온 레라지에가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물었다.

“제냐, 그대의 아름다움에 흠집이 난 건 아니겠지?”

“레라지에 님.”

“정말 미안하네. 일이 그렇게 될 거라고는…….”

빈말은 아닌 듯 진심이 듬뿍 담긴 사과였다. 레라지에가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나를 용서해 주겠나?”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일부러 베리스에게 잔뜩 시비를 걸던 레라지에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하지만…….

제냐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길을 의식했다.

‘왜 아직도 붙잡고 있는 거야?’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못해, 숫제 용사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상태였다.

가슴팍에 손을 올려 그를 밀어내자 용사가 버티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다만 허리를 감싼 손은 풀리지 않았다.

제냐가 미간을 좁히며 그의 손가락을 건드렸다. 분명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 텐데, 용사는 순진한 척 고개나 갸웃거렸다.

‘장난해?’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올려다보려는데 순간 앞에서 와학-!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제냐는 레라지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세워 뒀다는 걸 깨달았다.

깜짝 놀라서 레라지에를 쳐다보자 그가 흐뭇하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기 좋군.”

“…네?”

“소문이 자자한 그대의 연인이지?”

“네?”

“그래서 말인데, 나는 본래 다른 이들의 취향을 굉장히 존중하는 편이긴 하지만…….”

레라지에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에 있는 건 아직도 얼굴에 옷을 칭칭 감고 있는 용사였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고 싶은데.”

설마 정체를 의심하는 건가? 제냐가 경계 가득한 눈으로 레라지에를 쳐다봤다. 하지만 레라지에에게서는 늘 그렇듯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만이 가득했다.

왜 눈치를 못 채는 걸까. 정말 저런 옷 따위로 용사의 얼굴이 가려진 건가?

‘눈썰미가 엉망이네.’

혀를 차던 제냐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베리스와 비네를 발견했다.

레라지에가 용사를 알아보지 못할 때, 그리고 베리스와 비네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그를 돌려보내야 했다.

제냐는 꼭 거기가 제자리인 양 아직도 그녀의 등허리를 감싸고 있는 용사의 손을 붙잡아 털어 냈다.

“아.”

제냐가 눈에 힘을 주고 그를 쳐다봤다. 제발 그가 자신의 눈빛을 읽기 바랐다.

그간 제냐가 본 용사는 생활력이 없을 뿐,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가 지금 이렇게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는 건, 아마 세 명의 마족 때문일 것이다.

용사는 이유가 뭐가 됐던 제냐의 안전을 신경 쓰며, 마족을 혐오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했다. 제냐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오려는 듯 움찔거리는 용사의 팔뚝을 툭 쳤다.

제발 가라.

“저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서요. 이제 위험한 일은 없으니 먼저 가세요.”

고민하듯 침묵하던 용사가 아주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레라지에를 힐끗 쳐다보더니, 알아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작게 고개를 까닥였다.

인사를 건넨다기보다는 꼭 윗사람이 인사를 받아 주는 모양새였다. 지적해야 하나 싶은 와중 푸른 눈이 제냐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손을 풀어내고는 몸을 돌렸다.

제냐는 빠르게 멀어지는 용사를 불안하게 살피다 레라지에를 올려다봤다. 그는 말없이 멀어지는 용사를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바쁜 건가?”

쓸데없이 아련한 목소리를 보아하니 그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멀어지는 게 화가 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름다운 것에는 과하게 후한 레라지에가 오늘따라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안심할 틈도 없이 베리스와 비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뭐야, 벌써 간 건가?”

베리스가 용사가 지나간 자리를 훑다가 제냐를 쳐다봤다.

“정말 애인이야?”

제냐는 부끄럽다는 듯 웃기만 했다. 대충 알아서 해석하라는 의미였다.

“제대로 답을 해야 알…….”

“제냐! 소개해 주지 않겠어?”

다행히 베리스의 닦달은 레라지에의 큰 목소리에 사그라들었다.

베리스가 질색한 얼굴로 레라지에를 쳐다보다가 그에게 밀려났다. 베리스를 밀어낸 레라지에가 제냐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름다운 자수정은 보는 눈도 높은 모양이야. 아주 보기 좋은 한 쌍이었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그가 아름답다고 확신하는 걸까?

“몸의 골격이 너무 아름답더군, 어깨와 가슴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는데…….”

그리고 이어진 레라지에의 말에 제냐는 혀를 씹었다.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뒤로 물러났던 베리스가 다시 튀어나왔다.

“그딴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지 그래?”

“쓸데없다니!”

“됐어. 아무튼 저 남자 엄청 강해 보이던데. 귀족은 아니지?”

레라지에도 그렇지만 베리스 역시 용사의 정체를 눈치채진 못한 모양이었다.

단순히 이곳이 마계라서 인간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제냐를 보자면 마계에 인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해 보여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지도.’

뭐가 됐든 다행이긴 한데, 마족들은 왜 죄다 보는 눈이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제냐는 답을 기다리는 베리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귀족은 아니었다. 아마.

그에 베리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건가?”

그러고는 비네를 보며 다음 작위전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속닥거리는 것이다.

제냐는 베리스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비네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자작님. 갑자기 그…….”

비네가 무심한 얼굴로 제냐의 말을 잘라 냈다.

“다친 곳은.”

눈을 깜빡이던 제냐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없어요.”

“그래.”

그걸로 됐다는 듯 비네가 입을 다물었다. 다른 두 마족과 달리 간결하기 짝이 없는 태도가 만족스러웠다.

제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두 마족에게 휘말렸음에도 그녀를 도와주려고 노력했던 비네에게 미약한 동정과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비네는 그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냐는 굳이 다시 감사 인사를 하진 않았다. 대신 그녀는 세 마족이 다시 용사에 신경을 돌리기 전,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레라지에 님.”

“근육의 밀도가… 응?”

“청소 도구를 가져와도 될까요?”

“아.”

“마법을 사용하는 게 마음에 걸리시면 저희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마법 도구가 있습니다.”

“흠.”

“다른 곳에 영향을 주는 도구는 아닌데… 안 될까요?”

“음,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설마 아직도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걸까, 걱정하는데 레라지에가 베리스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마법을 써도 좋아. 베리스 백.”

짜증 난다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베리스는 뭐라고 반박을 하진 않고 마법을 이용해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제냐가 거울에서 나오기 전 레라지에와 베리스 사이에 말이 오간 모양이었다.

제냐는 빠르게 깨끗해지는 창고의 모습을 둘러보며 오늘 일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했다.

‘제대로 다 보고를 하면 용사 이야기가 튀어나올 텐데.’

증거가 남았으니 조용히 넘어가기는 글렀다.

제냐는 옆에서 레라지에가 종알거리는 ‘거울 복구가 불가능한 이유’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한숨만 내리 삼켰다.

거울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뼈대만 남았다. 저거라도 멀쩡했으면 그냥 아무 일 없는 척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장난스럽게 죽을 뻔했다고 호들갑 떨며 돈이나 잔뜩 뜯어냈겠지.

하지만 저 거울이 깨진 이상, 아예 이 일을 언급하지 않는 게 좋았다.

‘눈치는 더럽게 좋으니까.’

여기 있는 마족들과 달리 마왕이나 엘리고스 모두 눈치 하나는 엄청났다. 괜히 말을 꾸몄다가 이야기의 허점을 눈치채면……. 모든 게 다 까발려질 것이다.

제냐가 베리스의 옆에 있는 비네 자작을 힐끗 쳐다봤다.

‘비네 자작이 싸잡혀 욕먹는 건 좀 그렇지.’

그렇게 보고가 가능한 선을 가늠한 제냐는 레라지에를 불렀다.

“레라지에 님.”

“응?”

“폐하께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 말에 부드럽게 풀려 있던 레라지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도 조금 전 일이 밝혀지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그건 저기 손을 까딱거리며 청소를 하는 베리스와 비네도 마찬가지였다.

여러모로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제냐는 레라지에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걸 살피며 생긋 웃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세 분께서 곤란해지실 테니, 이번 일은…….”

제냐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레라지에와 베리스, 비네를 차례로 쳐다봤다. 그리고 모든 건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태도를 숨기지 않으며 운을 뗐다.

“제가 마법에 휘말린 건 그냥 저희끼리의 비밀로 할까요?”

제냐가 조금 손해를 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일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면 비네가 봤던 그녀의 기억도 함구되지 않을까?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야.’

미안한 건지, 민망한 건지 레라지에가 제냐를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냐는 레라지에에게 긍정의 말이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왕이 그렇게 대놓고 경고를 했으니,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돌아온 건.

“그건 곤란한데.”

기다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뒤를 쳐다보는 레라지에에 입술을 깨물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의 주인이 누군지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짜 망했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큰 한숨이 툭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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