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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5)화 (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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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흘째.

제냐는 세 마족을 바라봤다. 첫날 일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사건 사고는 없었다. 어제도 싸울 것처럼 시비가 걸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좋게 좋게 일이 흘러갔다.

‘비네 자작이 고생이 많지.’

제냐가 레라지에를 말리는 것처럼 비네는 베리스가 울컥할 때마다 그를 잘 다독였다. 멀쩡한 정신머리를 가진 이가 하나 더 있으니 제냐의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얌전하게 일이 끝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장난해? 청소는 대충 마법으로 쓸어 내면 되는 것 아닌가?”

목록을 전부 정리하고 이제 창고를 청소하면 된다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레라지에와 베리스가 부딪쳤다.

분통이 터진다는 베리스의 말에도 레라지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베리스 백, 이건 처벌이지 않아? 마법으로 청소를 하는 건 너무 간단하지.”

“그러니까 손으로 직접 쓸고 닦아라?”

베리스는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어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헛웃음을 흘리는데 레라지에가 여유로운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에 마법 물품이 한두 개인가? 괜히 마력을 잘못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금 억지이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베리스가 그 점을 지적했다.

“그런 물건이 없다는 걸 다 확인했을 텐데?”

베리스와 비네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물건들은 따로 정리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베리스의 지적에도 레라지에는 당당했다.

“그대들이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든 네가 더 고생하는 게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 보였다. 당연하게도 베리스가 참고 있던 분노를 터트렸다.

“…너!”

정확히 말하면 마력을 터트렸다.

“쯧, 힘으로 위협해 봐야 그대가 내 상대가 되겠어?”

레라지에가 위협적으로 그에게 달려드는 마력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는 아름답지 않은 자에게는 손속에 자비가 없네.”

베리스가 이를 드러냈다.

“그래, 그런 상태에서 박살 나면 더 재미있겠지?”

제냐는 지친 얼굴로 비네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역시 제냐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때마침 레라지에가 비네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비네 자작, 잠시 뒤로 물러나 있는 게 좋겠군. 우리 제냐도 부탁하지.”

무언가 말을 할 것처럼 빤히 레라지에를 쳐다보던 비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냐에게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순순한 모습이었다.

제냐가 아는 비네 자작이라면 내가 왜 저 인간을 지켜야 하냐며 한 소리가 나와야 했는데. 그도 사흘간의 일정이 어지간히 질린 모양이었다.

동병상련의 처지인 비네가 마지막까지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직접 손으로 하실 필요는 없어요. 마법이 걸려 있는 물건들을 이용하면 되니까요. 싸움이 끝나면 가져올게요.”

“그래.”

그 답과 함께 베리스가 화를 내면서 시작됐던 오한이 사라졌다.

비네가 착실하게 그녀를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제냐가 비네를 올려다봤다. 그렇게 몇 초간 그를 바라보고 있자 비네가 혀를 차며 그녀를 돌아봤다.

“뭐지?”

제냐는 뾰족한 그의 눈매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많이 도와주신 걸 알아요.”

비네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감사 인사를 받은 것이 부끄러운 것도 같았고, 어이가 없는 것도 같았다. 동시에 인간을 지켜 주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도 같고.

하지만 그는 평소처럼 삐죽하게 말을 하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너 때문에 한 게 아니야. 여기서 더 공작의 화를 사면 곤란해.”

하긴. 제냐도 사용인들도 그레모리 공작이 이렇게 단호하게 처벌을 요구하는 건 처음 봤다.

제냐는 굳이 비네에게 감사 인사를 다시 하는 대신 시끄러운 두 마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간을 보던 건 끝났는지 두 마족은 서로를 향해 무자비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동안은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창고 밖으로 나가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저들보고 창고를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싶었다. 제냐가 점점 더 엉망이 되는 창고를 살폈다.

치울 게 더 많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레라지에는 정말로 그걸 노리는 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그냥 시비를 거는 게 재미있는 것도 같았다.

‘역시 변태.’

휙-! 제냐는 막 그녀의 옆으로 날아가는 마법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거울에 그 공격이 제대로 박히는 걸 발견했다.

제냐는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비네를 불렀다.

“…자작님. 저 거울, 설마 깨지고 있는 건가요?”

“무슨…….”

두 마족의 싸움에 집중하며 날아오는 마법을 손수 쳐 내고 있던 비네가 제냐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거울을 확인했다.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미……!”

비네가 입을 떼기 무섭게 또 다른 마법이 거울로 날아갔다.

쩌저적- 눈에 띄게 금이 가는 거울을 보며 제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데 레라지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피해!”

피하라니, 이걸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제냐는 깨진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연기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 * *

제냐는 그녀를 흔드는 손길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어두운 녹색빛 눈을 마주했다.

“자작님.”

“정신 차려. 마법에 걸렸으니까.”

비네는 딱히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몸을 일으키자 거울로 가득 찬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이 틀어진 건가요?”

“아마도.”

그나마 홀로 휩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출구를 찾으려는 듯한 발 앞서나가는 비네의 뒤를 쫓으며 제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울이 가득한 방이라 그런지, 어디가 뚫려 있고 어디가 막혀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베리스와 비네가 건네줬던 목록이 떠올랐다.

미로의 거울.

정신적인 고문 또는 처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

그 목적에 맞게 밖에서 마법을 해제하거나 직접 미로의 출구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빠져나갈 수 없는 마법이 걸린 거울이었다.

“따로 떨어지게 되면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제냐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네, 알고 있어요.”

“딱 붙어라.”

“네.”

먼저 붙어 다니라고 해 주다니, 이쪽에서도 반길 일이었다. 제냐가 재빨리 비네 자작의 바로 뒤로 붙어 섰다.

순간 비네가 몸을 굳혔다. 혹시라도 그가 방금 전 말을 무를까 싶어 긴장했지만, 다행히 비네는 군말 없이 다시 발을 내디뎠다.

제냐는 그들의 모습을 잔뜩 비추는 거울들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단순히 길을 찾는 미로는 아니겠죠?”

“정신 고문을 위한 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으니 그렇겠지.”

비네의 말대로 친절하게 거울 옆에 놓여 있던 설명서에 적힌 바로는 그랬다.

“뭔가를 보여 주는 걸까요?”

제냐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자리에 멈춰 서는 비네의 등에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너무 말을 많이 걸었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마법에 당했다는 것 때문에 조금 정신이 없긴 했다.

어떻게 해야 비네의 기분을 맞출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가 제냐를 뒤로 물리며 말했다.

“곧 알게 되겠지. 이리로.”

“설마…….”

제냐는 비네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거울을 바라봤다. 이제껏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던 다른 거울과 달리 거울 속 형상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냥 피하면 안 되나요?”

딱 봐도 아주 불길해 보이는 것이 저것이 고문의 시작일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 자리에서 기다리는 대신 저게 모습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돌아온 비네의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다른 길이 없다. 여길 지나가야 해.”

피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쉽지 않네요.”

제냐가 한숨처럼 말을 뱉어 내기가 무섭게 거울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단순히 거울 속에 뭔가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비네가 제냐의 팔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마법 속의 마법이라니, 휩쓸리지 않게 조심해.”

제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네의 팔뚝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그들을 감싼 공간이 완전히 변했다.

꽃들이 만발한 정원의 풍경과 발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잔디의 감촉. 코끝을 맴도는 꽃향기, 그리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까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순간, 저도 모르게 마법이 깨진 건가 착각할 정도였다. 실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너무나 현실 같은 공간.

제냐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물었다.

“이게 정말 마법인 건가요?”

“그래. 시간이 오래 지난 마법인데도 정교하군.”

“심각한가요?”

하나 마나 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네는 생각보다 친절하게 대꾸했다.

“아니, 불안정한 마법보다는 이게 나아. 파훼법이 확실히 있을 테니.”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니면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모르겠다.

제냐는 그녀의 손을 떼어 내지도, 떨어지라고 하지도 않는 비네 자작을 새삼스레 힐끗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비네 자작이 손을 들어 그의 옆에 있는 나무를 만지며 답했다.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간 같군. 내 기억 속에 이런 공간은 없으니 네 것 같은데.”

“제 기억요?”

내 기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눈에 그림 같은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냐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었다. 이곳은……. 제냐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 낸 이름이 들려왔다.

[아스트리아.]

[엄마!]

“아.”

제냐는 비네와 그녀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을 뚫고 달려 나가는 어린아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양 갈래로 곱게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아이는 제냐와 똑 닮은 보랏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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