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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3)화 (1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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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앓는 소리를 내던 레라지에가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제냐는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그리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그대는 그대의 외모에 자신을 가질 필요가 있어. 그대가 얼마나 아름답냐면…….”

이 뒤로 이어질 낯간지러운 칭찬을 짐작한 제냐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폐하만 할까요? 제일 아름다우신 건 폐하시죠.”

이렇게 말하면, 언제나 그랬듯 마왕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칭찬을 듣느니, 마왕의 칭찬을 듣는 편이 낫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평소와 달랐다.

“물론 폐하께서도 매우 늠름하시고 아름다우시지만 최근 엄청난 외모를 하나 발견했지.”

순간 불안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무언가를 떠올리던 레라지에가 손뼉을 짝 쳤다.

“정말 눈이 멀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대와 같은 인간이었는데 태양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았지. 감히 쳐다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달까?”

길게 늘어트리던 말투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줄줄 말을 이었다. 눈가를 붉게 물들인 레라지에가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용사답다고 해야 하나. 정말이지 그 찬란한 금발과 수려한 외모가 얼마나 대단하던지. 폐하의 적이라는 게 참 아까워. 특히 그 눈이…….”

쿵쿵, 제냐의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기어이 다시 용사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왜 계속 용사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초조함에 입 안이 바짝 마르는데 불쑥 레라지에의 손이 제냐의 앞을 가렸다.

큰 키에서도 짐작 가능했고, 에스코트를 받을 때도 느꼈던 바지만 레라지에는 손이 참 커다랬다.

얼마나 손이 커다란지 쫙 펴진 레라지에의 손에 제냐의 얼굴이 전부 가려질 정도였다. 지금처럼.

미처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얼굴 쪽으로 뭔가가 푹, 튀었다.

“아.”

흐읍, 작게 숨을 들이켠 제냐가 파르르 눈을 떨었다.

얼굴에 튄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앞에 있는 뻥 뚫린 레라지에의 손에서도 제냐의 얼굴에 튄 것과 같은 것이 바닥으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잘게 숨을 몰아쉬는데 옆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그 푸른 사파이어가 아름다워도,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요요한 자수정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이게……. 무슨 일인 건지 모르겠다. 물건을 잘못 건드린 걸까? 아니면 베리스가?

분명 레라지에의 뚫린 손 너머, 꼴좋다는 듯 웃고 있는 베리스가 보였었다.

얼굴을 가리던 손이 사라지고 레라지에가 제냐의 턱을 붙잡으며 눈을 맞췄다.

“다행히 그대는 여전히 아름답구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레라지에의 얼굴 위, 자잘하게 긁힌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레라지에는 그의 상처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엄지로 제냐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물론, 이건 좀 닦아야겠지만.”

제냐의 얼굴에 튄 그의 피를 닦아 내던 레라지에가 눈을 찌푸렸다.

“이런, 손을 잘못 썼군.”

그러니까 아프지도 않은지 제냐를 지키다가 다친 손으로 얼굴을 붙잡은 거였다. 순간 다시 한번 뚫린 손 너머로 봤던 표정이 떠오르고 정지했던 사고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자식.’

아득, 이를 악문 제냐는 턱을 잡힌 순간 멈췄던 숨을 의식적으로 다시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턱에서 떨어져 나가는 레라지에의 손을 붙잡은 채 별다른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장갑을 벗겼다.

피와 살이 덕지덕지 붙은 장갑이 질척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의 생채기는 이미 다 사라졌고, 훤히 구멍을 내보이던 손바닥의 상처 역시 어느새 반쯤은 아물어 있었다.

“아프지 않으세요?”

징그럽기 짝이 없는 상처를 보며 묻자 레라지에가 그림 같은 미소를 흘렸다.

“이 정도로 뭘.”

마족들은 참 대단했다. 성력에 의한 상처만 아니라면 고통에 둔감한 걸까?

제냐는 점점 더 빠르게 아무는 손바닥의 상처 주변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다가 힘을 끌어 올렸다.

어차피 알아서 치유되고 있던 상처였으니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맞닿은 손바닥 사이로 느리게 하얀빛이 퍼져 나갔다.

평소 반짝하고 순식간에 상처를 치료하던 것과는 달리 빛무리는 천천히 레라지에의 손바닥을 전부 감싸고 나서야 주변으로 흩어졌다.

제냐가 매끈하게 변한 레라지에의 손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싸우실 건가요?”

몽롱한 눈으로 제냐를 쳐다보던 레라지에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

조금 전 봤던 베리스의 비릿한 웃음을 떠올렸다. 의도하고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 우연히 발생한 사고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그로 인해 조금 전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베리스를 싫어하는 레라지에가 이런 사건을 놓칠 일은 없었다.

“싸우실 거라면 전 잠시 쉬었다 와도 될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는 좀 싸웠으면 싶었다. 만약 레라지에가 나서지 않았다면 뚫린 건 그의 손바닥이 아니라 제냐의 얼굴이었을 테니.

레라지에가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성력을 쓰는 게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힐끗 보니 베리스와 비네의 표정도 다를 바 없었다. 하긴, 아무리 알고 있었더라고 해도 세 망나니 모두 그녀가 성력을 쓰는 모습을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냐가 본래 가진 힘이 얼마 안 돼서? 아니었다. 엘리고스가 제냐의 힘이 마왕의 것이라 공표했기 때문이었다.

“저 힘은, 폐하를 위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해.”

마왕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제냐의 힘을 사용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제냐는 굳이 레라지에에게 성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냐가 그의 상처를 치유한 건, 일종의 보험이었다.

세 마족의 곁에 머문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벌써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앞으로 사흘 동안 오늘과 같은 위협이 얼마나 반복될지 눈에 훤했다.

그러니 마왕의 명령 외에도 레라지에를 움직일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제냐의 가치를 조금 더 높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를테면 그녀만이 가진 성력을 보여 주는 것 같은.

‘성력은 아름답지.’

성력을 보는 순간 탐욕을 머금고 풀어지던 레라지에의 눈을 똑똑히 봤다.

제냐는 일부러 은은하게 퍼트린 성력의 잔재를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 안 되는 힘이었지만 그렇기에 깔끔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냐는 딱 하나, 아름다움을 위해서 아주 천천히 힘을 닫았다.

겉모습을 위해 얼마 안 되는 힘을 주변에 퍼트리는 게 참 아까웠지만 확실하게 레라지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멍하니 제냐를 쳐다보던 레라지에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매끈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힘을 쓰고 나면 많이 피곤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제냐는 이 순간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허락해 주시겠어요?”

인간이 마계에서 산다는 건 죽음을 곁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그 사고처럼, 아무리 조심을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은 벌어진다.

10년간 기다리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때, 운 나쁘게 죽어 버리면 억울해서 다시 한번 죽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래, 제냐. 잠시 쉬었다 와.”

그녀를 바라보는 레라지에의 눈에는 불과 몇 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기가 가득했다. 제냐는 그 시선을 모른 척하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점심을 먹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제냐는 서둘러 창고를 떠났다. 막 지하를 벗어나자마자 쾅, 하는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용사가 보고 싶었다.

* * *

노크하는 것도 잊고 문을 벌컥 열었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스스로가 적잖이 흥분한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얼른 용사를 두 눈에 담고 싶었다.

제냐는 문을 열자마자 용사를 찾아 침대를 바라봤다.

“응?”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용사는 침대에 없었다. 잠깐 당황했지만 그녀는 금방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냈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고 있었다. 제냐가 화장실로 다가가며 용사를 불렀다.

“거기 있어요?”

그러자 화장실 안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연이어 콰당탕거리는 다급한 소리가 이어졌다.

걱정스레 미간을 좁히는데, 화장실 문이 열리고 물에 젖은 얼굴의 용사가 나타났다. 급하게 튀어나온 듯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튀어나온 것 같았다.

‘왜 옷을…….’

그의 허리에 감긴 하얀 수건을 필사적으로 외면한 제냐가 용사와 눈을 맞췄다.

원래라면 용사에게 바로 옷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무사한지, 정말 그녀의 방에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냐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용사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가 먼저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제냐의 얼굴을 감쌌다.

“…제냐.”

또 이름이 불렸다. 하지만 거기에 반응하기도 전 덜덜 떨리는 용사의 손이 느껴졌다.

웃음이 사라진 용사의 얼굴은 무감각해 보인다기보다는 화가 나 보였다.

뭐지? 선수를 뺏긴 제냐는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상황에 멀뚱멀뚱 그를 쳐다봤다.

무언가를 참듯 작게 숨을 뱉은 용사가 그녀의 얼굴을 문질렀다.

“아.”

그의 손에 반쯤 굳어 있는 피가 묻어났다. 그제야 제냐는 용사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레라지에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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