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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0)화 (1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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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이름을 부른 거지? 아니, 이름을 알고는 있었네? 역시 말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고.

지난 새벽, 갑작스레 입을 튼 용사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출근 준비를 하겠다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던 제냐는 거울 너머 용사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흠칫 몸을 굳혔다.

몰래 훔쳐보던 게 들켜 당혹스러운 제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마주친 용사가 눈을 접어 사르르 웃었다.

헤, 입이 벌어질 뻔한 걸 간신히 막은 제냐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미 빗은 머리를 빗고 또 빗었다.

‘왜 저렇게 웃어?’

제냐는 잠에서 깨어난 후 그녀와 눈만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는 용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새벽의 그건, 잠결이 아니었던 걸까?

‘표정 없이 숨만 쉬던 사람이 갑자기 사람처럼 구니까…….’

솔직히 저게 사람처럼 구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고 있으니까 분위기가 싹 바뀌면서 얼핏 보면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눈은 여전히 힘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용사는 저렇게 햇살처럼 웃는 사람은 맞는데.’

지금의 미소는 새벽에 봤던 웃음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예쁘게 만들어진 인공적인 정원을 보는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거짓이라기에는 저 미소에서 새벽의 편린이 종종 보였다.

거짓 미소 속에 아주 작은 진심이 섞여 있는 것 같달…, 뭐라는 거야.

한숨을 삼킨 제냐는 새벽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천진한 미소를 짓는 용사를 보고 당황한 제냐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큰 생각 없이 반짝이는 금발을 다시 매만지는데, 그에게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을 울려 웃는, 듣는 이의 귀가 간지러운 웃음소리였다.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든다는 듯 소리 내서 웃던 용사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사락사락, 반복적으로 머리카락을 넘겨 주자 용사가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제냐는 용사가 다시 잠들 때까지 한참을 그의 머리를 매만졌고, 손목을 붙잡은 손을 떼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잠에서 깨어난 용사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얼굴로 새벽녘 그랬던 것처럼 화사한 미소를 사방에 뿌려 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에 있었던 일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는데.’

전날, 혼자 방에 남아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꿈이 뭔가 잘못됐나?

하루아침에 그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한참 고민을 거듭하던 제냐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사위에 상념에서 벗어난 제냐는 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와 있는 용사를 발견했다.

“왜요?”

시선이 마주치자 용사가 예쁘게 웃으며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톡톡 건드리는 것이다. 출근 시간이 다 되었다는 소리 같았다.

제냐는 너무 빗어 축 가라앉은 것 같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용사의 태도가 바뀐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냐는 직장인이었고 그녀의 상사, 마왕은 지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제냐는 제대로 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말갛게 웃는 용사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했다.

* * *

늦은 오후, 제냐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용사의 얼굴을 빠르게 지워 내며 마왕을 쳐다봤다.

“뭐라고 하셨어요?”

마왕이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레라지에 후작이 올 거라고.”

레라지에 후작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피곤했다. 일하면서도 틈만 나면 딴생각을 했던 것 때문에 벌을 받는 걸까?

제냐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레라지에 님이요? 그분이 왜요?”

“이번 배틀 때문에.”

배틀? 아, 그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데 그사이 용사라는 인물이 그녀의 삶에 끼어들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마왕이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기에 일이 잘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마왕의 표정은 담담했다.

“공작이 이겼고 문제는 없어. 그런데 그레모리 공작이 베리스 백작과 비네 자작의 처벌을 레라지에에게 맡겼거든.”

“어째서요?”

제냐는 레라지에와 그레모리의 관계를 떠올렸다.

키우는 애완 마물인 말을 지독하게 아끼고 마법에 능통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족치고 온화한 편인 그레모리 공작. 그리고 외모를 지독하게 밝히고 충동적인 성향이 짙은 레라지에 후작.

둘은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관계도 아니다. 같은 고위 귀족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분모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제냐의 의문은 이어진 마왕의 설명에 금방 해결됐다.

“베리스 백작이 레라지에 후작과 사이가 안 좋다더군. 그래서인가 레라지에가 배틀을 구경하러 왔던데.”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라는 아주 간단한 공식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제냐는 마왕이 건네는 붉은 봉투를 받아 들며 질문을 이었다.

“처벌이 뭔데요?”

“마왕성의 지하 창고 정리.”

“창고요?”

봉투를 뜯던 제냐가 마왕성의 창고를 떠올리며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갑자기 거길 왜……?”

제냐의 반응에 마왕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너도 아는가 보군.”

“그렇죠?”

정식 사용인이 되고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가 바로 그 창고에 관한 것이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지하의 창고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야. 마력이 약한 이들은 마법에 홀려서 잡아먹히거든.”

어린 나이에 사용인이 된 제냐가 걱정됐는지 바쁜 와중에도 직접 마왕성의 구조를 설명해 주던 비프가 했던 말이었다.

집사인 엘리고스의 허락이 아니면 사용인 중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는 곳. 한번 들어가면 사지 멀쩡하게 나올 수 없고, 운이 나쁘면 죽기도 한다던 설명이 차례로 떠올랐다.

목숨이 소중한 제냐는 설명을 듣자마자 지하 창고에 관한 관심을 껐었다.

“거긴 폐하께 바쳐진 공물을 모아 놓은 곳이잖아요?”

마왕에게 바쳐진 공물 중에서도 쓸모는 없는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처박혀 있는 곳이라던가?

부수기는 아깝고, 또 사용하기에는 위험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를 주기에는 아쉬운 계륵. 거기다가 대대로 마왕들에게 내려오던 고대의 물건들도 있어서 더 위험하다고 했었다.

제냐가 불편한 얼굴로 마왕을 쳐다보는데 그가 태연하게 답했다.

“그래, 거기.”

“…음, 그렇군요.”

뭐, 지하 창고가 위험한 곳이라고는 해도 제냐처럼 약한 이들에게나 그렇지 귀족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 모양이 빠지긴 하겠지만.

“한동안 지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네요.”

원래도 그 주변은 갈 생각이 없었지만, 처벌이 있는 동안에는 절대 눈길도 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마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곤란한데.”

그러고는 얄미운 얼굴로 말했다.

“레라지에가 널 자기 담당 시녀로 붙여 달라고 했거든.”

“당연히 거절하셨겠죠?”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지만 마왕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제냐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직 할 일이 저렇게 많잖아요. 하루를 쉬면 그만큼 일이 더 쌓일 텐데요. 전 지금 알찬 휴일을 보내서 체력이 넘친답니다.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어요.”

제냐가 책상 가득 흐트러진 서류들을 가리키며 활기찬 척 외쳤다.

“제가 더 열심히 일할게요.”

그러자 마왕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답했다.

“엘리고스가 대신 올 거야.”

레라지에를 엘리고스가 돌본다고? 아니면 지금 내 일을 엘리고스가 대신한다고?

제냐가 현실을 부정하는데 마왕이 확인 사살을 했다.

“엘리고스가 네 일을 해 줄 테니, 너는 레라지에를 맡아.”

정말로, 레라지에의 시중을 들라는 건가? 너무했다. 일 잘한다고 붙잡아 둘 때는 언제고?!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제냐가 불만을 가득 담아 마왕을 쳐다보는데 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렇게 레라지에가 불편한가?”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면 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제냐가 억지로 미소를 짓는데 마왕이 비웃듯 말했다.

“그래? 불편하다고 하면 바꿔 주려고 했는데 그럼 됐어.”

자신을 놀리는 게 꽤 재미난 모양이었다. 모든 걸 포기한 제냐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문제가 생기면요?”

“무슨 문제?”

의아하다는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제냐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악명 높은 지하 창고에 들어가야 한다니. 제냐가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했다.

“저는 아픈 건 싫은데요.”

그러자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한참을 침묵하던 마왕이 이내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레라지에가 네 얼굴을 좋아하니 괜찮을 거다.”

얼굴.

뭐, 마왕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레라지에 후작은 제냐의 얼굴을 꽤 많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름다운 진주 같다고 했던가?

제냐는 그녀의 두 손을 움켜쥐고 끝없는 찬양을 이어 가던 레라지에를 떠올리다 다시 마왕을 쳐다봤다.

“너무 무책임하신 것 아닌가요?”

레라지에가 그녀의 얼굴을 좋아하는 것과 그녀를 지켜 주는 건 다른 영역이었다. 하지만 마왕은 뭐가 문제냐는 듯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사라지는 걸 제일 싫어하지 않나? 네가 죽거나 다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길 텐데.”

사람을 물건 취급하니 오히려 그녀의 목숨이 보장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지 않을까?

“제 목만 잘라 가시지 않을까요?”

제냐는 그녀가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그녀를 찾아와 간절히 부탁하던 레라지에의 우수 가득 찬 얼굴을 떠올렸다.

“네가 죽고 난 이후, 네 얼굴을 박제해도 될까?”

이 아름다운 얼굴이 고작 몇십 년밖에 가지 않는다는 게 슬프다며 눈물을 머금던 레라지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쉽게 답하지 못하자 아쉬운 얼굴로 선심을 쓰는 것처럼 덧붙이던 말.

“아니면 네 자수정 같은 눈만이라도?”

제냐가 질색한 얼굴을 하자 마왕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너를 잘 돌보라고 말해 두지.”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 흥미 없는 얼굴을 보건대 더 말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그 손목으로 서류 작업을 제대로 할 수도 없을 테니, 레라지에 옆에 있는 게 네게도 좋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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