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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7)화 (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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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말했듯, 제냐는 업무적인 능력으로는 마왕에게 꽤 신임을 받는 부하였다. 그 때문인지 제냐는 웬만한 일에서는 마왕이나 엘리고스에게 질책을 받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전혀 상황이 다르지.”

그냥 인간도 아니고, 마왕을 해치운다는 용사를 거둔 것은 웬만한 일을 넘어섰다.

깨어난 용사와 함께 지낸 지 사흘째. 제냐는 용사를 대하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말리고 욕실을 나선 제냐가 시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용사에게 물었다.

“한 시간 안 지났죠?”

제냐의 물음에 용사가 시계를 내려놓고 그녀를 돌아봤다.

고작 몸을 씻고 나오는 일로 시간 약속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건 알지만, 이건 전부 분리 불안에 걸린 것 같은 용사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남자의 순한 얼굴에 속지 않았다. 회중시계를 강탈당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속으로 울분을 삼킨 제냐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용사에게 다시금 강조했다.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약속한 시간은 꼭 지킬 테니까, 절대로 문을 부수거나 방을 뛰쳐나가면 안 돼요.”

그러니까, 며칠 전 일이었다.

용사가 깨어난 그날. 그러니까 한창 그에게 말을 걸던 제냐는 별말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용사에게 방의 구조를 한참이나 설명했다. 또 차를 마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가는 걸 보면 다들 보편적으로는 볼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이해할 테니까.

그것이 제 착각이었음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콰앙!

화장실 문을 닫고 고작 세 발자국을 걸었을 뿐인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터져 나갔다. 구멍이 뚫리거나 문고리가 고장 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박살이 났다.

“무슨…….”

박살 난 문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용사를 보며 제냐는 생각했다. 저 용사 놈이 이제 와서 자신을 죽이려는 걸까? 인간임을 밝히고 성력 소유자임을 밝혔는데?

배신감에 젖어 용사를 바라보는데, 막상 문을 박살 낸 용사는 문가에 서서 멀뚱멀뚱 제냐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라고?

황당함과 억울함, 분노가 뒤섞인 얼굴을 한 제냐가 짜증스레 용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하는 거죠?”

용사는 대꾸 없이 눈만 깜빡였다. 제냐가 답답함에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클이며 말했다.

“볼일을 보러 온 게 문을 부술 이유가 되나요?”

그러자 용사가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싶어 미간을 좁히는데, 용사가 시계를 톡 두드렸다.

그러니까 지금 걸리는 시간을 알려 달라는 건가? 고작 그걸 듣자고 문을 이렇게 만들어 놔?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제냐는 애써 숨을 가다듬으며 답했다.

“5분이요.”

원하는 답이 맞았던 듯, 용사가 몸을 돌렸다.

제냐는 멀어지는 용사와 부서진 문을 번갈아 바라보다 소리를 질렀다.

“귀 막고 있어요!”

제냐는 소리를 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 앞으로 다가가 용사가 귀를 잘 막고 있는지 확인했다.

눈치는 있는지 용사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양손으로 귀를 꼭 막고 있었다.

황당함 사이로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았다. 물론 제냐도 그게 용사라는 이름 때문에 콩깍지가 쓰인 거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아무튼 그 일 이후, 제냐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그에게 시간을 말해 주고 움직였다. 이는 용사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냐는 씻고 나온 그녀를 쳐다보는 용사에게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서 씻고 나와요. 그러니까 15분이에요.”

시간이 너무 짧지 않냐고? 알아서 하라고 놔뒀더니, 나오라 할 때까지 욕실 한구석에서 미동도 없이 대기하는 속 터지는 모습을 보는 건 하루로 충분했다.

당시 물이 끊겼던 시간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니, 그에겐 충분할 터였다.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

원래도 그랬던 건지, 아니면 사고의 후유증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용사는 매우 수동적이고 명령받는 일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제냐는 시간에 딱 맞아떨어지게 씻고 나온 용사를 붙잡아 화장대 앞에 앉혔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용사의 머리를 말려 주며 한탄했다.

‘마왕은 마법을 써서 머리를 말릴 줄은 아는데.’

우리 용사님은 머리도 혼자 말릴 줄 몰랐다.

처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침대로 다가가는 그에게 수건을 건넸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건을 받아 든 용사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몇 번 치더니 다 됐다는 듯 다시 수건을 돌려줬다. 다 말리고 가라는 외침에 손에 든 수건과 제냐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 시선은 또 어떻고?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용사는 마왕보다 더한 놈이었다.

제냐는 물기가 거의 사라진 용사의 화려한 금발을 손으로 매만져 보다가 빗을 꺼내 흐트러진 머리를 빗겨 줬다.

머리가 엉키지 말라고 빗질까지 해 주는 스스로의 모습에 비웃음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용사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도와주겠다고 한 건 그녀인 것을.

그렇게 머리 정돈을 끝낸 제냐는 거울 너머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용사의 눈을 바라봤다. 여전히 건조하다 못해 퍼석퍼석한 용사의 눈.

‘어떻게 해야 저 눈에 빛이 돌아올까?’

곧 그녀의 은인이 될 용사이니 그에게만큼은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제냐는 거울 속 푸른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다가 용사의 맨어깨에 손이 닿자 웃옷을 가져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용사는 웃옷을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이것도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았다.

샤워는 혼자 해서, 바지는 혼자 입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제냐가 거절할 부분이 뭔지 알고 그 선을 지키는 게 얄밉다고 해야 할까?

제냐는 정전기가 올라 부스스해진 용사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주며 옷에 달린 단추를 잠갔다. 그러자 용사가 화장대 앞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꿀이라도 발라 뒀는지 씻거나 옷을 갈아입는 일이 아니면 용사는 침대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침대.’

침대를 바라보자 절로 며칠간의 불편했던 잠자리가 떠올랐다.

일단은 환자인 용사를 바닥에서 재울 수도, 그렇다고 의자에서 계속 자고 싶지도 않았던 제냐가 용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색하게 누워 잠을 청하던…….

제냐는 재빨리 그 불편한 기억을 지워 냈다. 지워 내 봐야, 오늘 밤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침대를 하나 더 들이고 싶겠지만 그렇게 큰 물건을 사고 나면 당연히 그와 관련된 소문이 돌 게 뻔했다.

가볍게는 제냐와 연인의 불화설부터 심각하게는 어쩌다가 침대가 부서졌을까, 하는 듣기 거북한 이야기들까지.

한동안은 지금처럼 침대를 같이 쓰는 것 말고 다른 수는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냐가 시간을 살폈다. 이제 슬슬 식사를 받아 올 때가 됐다.

본래도 용사 때문에 한동안은 방에서 식사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소문의 여파가 셌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부탁하기도 전에 비프가 먼저 한동안은 방에서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꺼낼 정도라면.

덕분에 따로 말을 꺼낼 필요 없어 편하긴 했지만, 소문이 계속 커지는 건 지양해야 했다. 무엇보다.

“슬슬 제대로 경고할 때가 되긴 했지.”

그 전에 사용인들의 한껏 업된 기분을 한번 밟아 줄 필요가 있었다.

* * *

주방은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 어떤 사용인도 도망가지 않고 본인의 일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는데도 비프의 굳은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오늘따라 유독 요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집중은커녕 진정도 되지 않았다.

엘리고스에게 일련의 상황을 설명했던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입단속을 해 준다고 해 놓고 입을 놀린 꼴인데.’

이미 마왕성 내에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있긴 했다. 그러니 비프가 아니더라도 엘리고스가 원한다면 소문은 금방 그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제냐와의 약속을 어긴 셈이 되어 마음이 찝찝했다.

“해결된 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굉장히 과격했다는 것에 있었다.

비프에게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정확히 반나절이 지난 후, 엘리고스는 제냐를 제외한 사용인 전부를 1층 홀에 모았다.

“방자하게 혓바닥을 놀리는 자는 성에 필요치 않다.”

경고하듯 떨어진 차가운 말을 시작으로 일은 척척 진행됐다. 헛소문을 퍼트린 경우는 연봉이 삭감된 정도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살려 둘 가치도 없군.”

제냐를 향한 선정적인 소문을 퍼트리거나 성희롱을 일삼은 사용인들의 목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일자리를 잃었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우수수 목이 잘렸다.

머리가 바닥을 뒹굴자 갑작스러운 연애 소식에 흥분했던 사용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아낀다고 해도, 그냥 일 잘하는 부하 직원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엘리고스가 제냐를 신경 써 주는 건 좋은 일이 맞았다. 그런데 그게 좀 과해 보였다.

집사가 되기 전의 엘리고스를 알아서일까? 비프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물론 제냐가 폐하의 사람인 한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비프?”

갑작스러운 부름에 비프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제냐?”

한쪽 눈썹을 치켜든 제냐가 비프가 끓이고 있던 냄비 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프가 타는데요?”

세상에, 아무리 생각을 깊게 하고 있었다지만 음식을 태워 먹다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비프는 애써 멀쩡한 척 답했다.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비프가요?”

의심 가득한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평소 비프를 아는 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프가 몸으로 냄비를 가리며 대꾸했다.

“하하하. 그냥 요새 조금 피곤해서. 그것보다 점심 가지러 온 거지?”

동시에 손에서 완전히 형태를 잃고 일그러진 국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가 국자를 발로 툭 차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더 수상한 행동을 하기 전, 딱 드러난 사실만을 제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 이제 그 일로 뒷말하는 것들은 없을 거야. 엘리고스 님이 알게 됐거든. 그분이 처리하셨어.”

“엘리고스 님이요?”

이 찜찜한 기분은 그저 비프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었다.

소문은 깔끔하게 정리됐고 제냐가 불편할 일은 없었다.

조금 놀랍긴 하지만 엘리고스가 생각보다 더 제냐를 아끼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비프의 말에 제냐가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엄청 시끄러웠었나 보네요.”

“그렇지 뭐.”

“별말씀 없으시고요?”

“딱히.”

불편한 감상이 입 밖으로 나올까, 그는 얼른 도시락을 제냐에게 넘겼다.

“그건 그렇고, 내일 폐하께서 돌아오실 모양이야.”

도시락을 건네며 전날 전해 들은 마왕의 귀환을 알리자 제냐는 금방 엘리고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생각보다 일찍 오시네요.”

비프는 그 뒤로 몇 번 더 투덜거리는 제냐를 다정하게 달래 줬다. 일하기 싫다고 웅얼거리는 제냐는 딱 그 나이 때의 아이처럼 보였다.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비프는 주방을 떠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등 뒤로 비프가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아무런 일도 없을 거야.”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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