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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5)화 (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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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눈을 뜬 제냐는 고작해야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뿐임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들었다는 자각도 없이 잠이 들었다.

“뻐근해.”

이틀 연속을 의자에서 잔 것 같지도 않게 잔 덕에 몸이 딱딱하다 못해 삐그덕거렸다.

제냐가 당기는 어깨를 퉁퉁 두드리며 뻑뻑한 눈을 비볐다.

“휴일을 이렇게 엉망으로 보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용사의 다 죽어 가는 눈을 본 이후,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저런 눈을 한 사람은 반드시 일을 치기 마련이다.

잠투정은커녕 미동도 없이 자는 덕에 그가 살아 있는 건 맞는 건지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상처는 완전히 나았는데 용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녀의 방을 찾아온 손님이 없었지만 용사가 온 이후, 그녀 역시 이틀간 방에서 두문불출했다. 평소 그녀를 곧잘 챙겨 주던 총주방장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남자만 두고 나갔다 오기엔… 일어났을 때 혼자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제냐는 양 뺨을 툭툭 두드리며 이불을 그의 머리끝까지 덮었다. 숨은 쉴 수 있겠지.

우울감을 끌어안고 계속 용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냐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욕실 문을 살짝 열어 둔 채, 빠르게 몸을 씻었다. 뜨거운 물을 맞고 있으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축 가라앉은 짧은 단발을 대충 닦아 내며 거울을 흘깃 바라보자 피곤에 절은 얼굴이 보였다.

살짝 튼 입술과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만큼이나 짙은 다크서클, 평소의 날카로움이 사라진 잔뜩 풀린 눈매까지. 고작 이틀뿐인 병간호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냐가 머리를 털며 욕실을 나섰다.

‘그래도 샤워는 무사히 했네.’

팔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지만 용사도 여전히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녀를 방문한 손님도 없어서 문도 멀쩡…….

콰아앙-!

제냐가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주방 소속의 사용인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며 외쳤다.

“제냐! 아직 자니? 총주방장님이 너 왜 식사하러 안 오냐고…….”

사용인이 누가 봐도 제냐보다 훨씬 커다란 무언가가 누워 있는 것이 보이는 침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냐의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벌렸다.

“어…….”

제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팔 말고는 드러난 부분이 없으니까 어떻게 잘 핑계를 대면 일은 생각보다 손쉽게 해결될 것 같았다.

“이게, 어, 그러니까…….”

제냐는 그녀보다 더 당황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사용인에게로 한 발 다가갔다. 그때 사용인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외쳤다.

“제냐! 드디어 남자 생겼구나?!”

“뭐?”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에 멍하니 되물었지만, 사용인은 환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그래. 암, 이제 때가 됐지.”

“그게 무슨…….”

“왜 연애를 안 하나 궁금했다니까? 너 좋다는 애들이 한둘이었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황당한 심정에 눈썹을 치켜세우는데 사용인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궁금하긴 한데, 나중에 나한테 이야기해 주기다?”

사용인이 침대를 슬쩍 돌아봤다가 세게 열었던 문을 닫으며 말했다.

“총주방장님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그래도 내일은 한번 들러서 몸 멀쩡한 건 보여 드려야 해.”

반쯤 박살이 난 문고리가 눈에 밟히던 와중 사용인이 완전히 문이 닫히기 전 음흉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팔뚝이 대단하네!”

힘이 참 좋을 것 같다며, 좋은 밤 보냈기를 바란다고 꺄아! 거리던 사용인이 그 말을 끝으로 문을 닫고 사라졌다.

제냐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닫혀 버린 문을 바라봤다.

‘잘된 건가?’

굉장히 어이없는 오해를 하긴 했지만 혼자서 알아서 상황을 정리하고 떠났다. 거기다가 총주방장에게 적당히 설명해 주겠다고 하기까지 했다.

‘정말 잘된 게 맞아?’

그렇게 얼마나 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을까? 제냐는 바닥에 뚝뚝 떨어지다 못해 어깨를 잔뜩 적시고 있는 머리카락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챘다.

몸을 떨며 어색하게 들고 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문고리부터 고쳐야겠다.”

또 다른 마족이 방에 들이닥치기 전 저 문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다행히 제냐는 문고리 정도는 혼자서 갈 수 있는 훌륭한 사용인이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사용인의 오해도, 혼자서 문을 고칠 수 있는 것도 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몸을 돌린 제냐는 눈앞에 보이는 찬란한 금발에 입을 꾹 다물었다.

왜 팔이 튀어나와 있나 했더니.

제냐는 이불을 내리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용사의 푸른 눈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왜 이래?’

용사가 눈을 떴다.

멀뚱멀뚱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용사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저 시선의 의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변명을 하고 싶었고.

하지만 구구절절 방금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일어나셨네요. 어디 아픈 곳은 없으세요?”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용사가 도망갈까 싶어, 제냐는 망가진 문 앞을 지키고 섰다.

그가 마음을 먹는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빠르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마계예요. 물론 저는 인간이고요.”

푸른색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제냐는 바짝 마르는 입 안을 느끼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제 이름은 제냐예요. 마왕성에서 시녀로 일하고 있어요.”

최대한 친절한 척 입꼬리를 둥글게 말았지만 용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 말을 걸기 시작했을 때부터 답을 해 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해 줄 리가 없지.’

예상치 못한 일들에 당황해 빠르게 눈치채지 못했을 뿐, 여전히 용사의 눈은 흐리멍덩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제냐를 따라오는 눈동자를 보면 완전히 최악은 아니었다.

제냐는 튀어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키며 자신의 무해함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조심스레 용사의 앞으로 다가간 제냐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가 놀라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제발 통해라.’

손끝에 맴도는 따뜻한 기운과 함께 새하얀 기운이 반짝 튀어나왔다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만으로도 성력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이제껏 제냐의 눈만을 바라보던 용사의 시선이 그의 앞에 놓인 제냐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따뜻하면서도 거친 용사의 손이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희망이 있는 걸까?

여전히 대화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손을 붙잡아 오는 악력을 보면 그녀를 내칠 것 같지도 않았다.

‘거칠어.’

마왕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손과는 달랐다. 뼈대가 굵고 모양도 예쁜 커다란 손이었지만 고생을 많이 한 듯 용사의 손바닥은 거칠고 딱딱했다. 그가 이제껏 지나온 길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엄지로 그녀의 손바닥을 문질렀다. 까슬한 손끝이 손바닥을 스치자 간지러움이 찾아왔다. 성력의 흔적을 찾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뭉클한 감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제냐는 조금 전 본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며 고개를 들었다.

“어쩌다 보니 당신을 발견했고, 상처를 치료했어요. 옷은 더러워져서 벗겼고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용사는 여전히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냐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여긴 마왕성이고 당신은 여길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되잖아요?”

그녀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당신 옷을 가져올까 싶어요. 지금은 좀 민망해서.”

민망하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침대에 앉아 있는 용사의 상체가 아주 시원하게 드러나 있었으니까.

용사에게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니 자연스레 계속 마주쳐서는 안 되는 엄한 것에 시선이 갔다.

“성력은 다녀와서 다시 보여 드릴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제냐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상황을 피하듯 용사에게 가지고 있던 회중시계 하나를 건네준 뒤 서둘러 방을 나섰다.

물론 방을 나서기 전, 망가진 문고리를 고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또 조금 전과 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옷도 옷이지만, 그들이 먹을 음식도 가져와야 했고, 무엇보다 조금 전 사용인이 총주방장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흘렸는지도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입단속도 좀 부탁하고.’

잔뜩 흥분했던 정도로 보건대 사용인은 분명 마왕성 전체에 자기가 한 오해를 퍼트렸을 것이다.

소문이 조금 퍼졌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귀찮게 방 앞을 얼쩡거리는 건 딱 질색이다. 특히 방 안에 용사가 있는 이때는 더더욱.

그래서 제냐는 마왕성의 총주방장 비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는 이 커다란 마왕성의 모든 식사를 오랜 시간 책임져 왔다. 틈만 나면 도망을 다니는 사용인들을 다독이는 데 도가 터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봐 온 제냐를 아무런 조건 없이 챙겨 주는 고마운 마족이었다. 이곳 마계에서 제냐가 가장 의지하는 이.

“…그 전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는 조금 무섭지만.”

그를 의지하지만 모든 진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제냐는 그에게도 거짓말을 할 예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용인이 낸 소문을 긍정할 생각이었고.

제냐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방 문을 두드렸다.

“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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