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쫓겨난 남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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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에 힘입은 말파가 격앙된 얼굴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삶은 고기가 조금 질긴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당신이 해 먹든가’, 이러지 뭡니까? 자기는 애를 보느라 일이 많아 죽겠는데 어디서 한가하게 음식 타박이냐면서……. 세상에 먹는 걸로 사람을 구박하다니, 너무 치사하지 않습니까?”
동료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편을 들었다.
“그러게. 진짜 너무하네.”
“온종일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지.”
“아이고, 이 화상들아!”
시타가 갑갑해서 가슴을 두드렸다.
“야! 일은 너희들만 하냐? 집에서 종일 애들이랑 씨름하는 건 안 어려운 줄 알아? 도와도 안 줄 거면, 뭐하러 그렇게 애는 싸질러서는. 아랫도리 단속이나 하고 그런 소리 해, 인마.”
친위대들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야, 누, 누가 그걸 모르냐? 그렇다고 어떻게 맨날 그냥 자냐? 마누라 안는 맛에 집에 가는 건데.”
“맞아. 돌아앉아 있는 엉덩이만 봐도 후끈 열이 오르는 걸 난들 어떡하라고!”
“그럼 잘하든가.”
“그게 맘대로 되냐, 인마?”
시타와 친위대들이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네 녀석은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우리랑 이러고 있는데?”
정곡을 찌르는 말파의 질문에 시타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하는 꼴을 보니, 네놈도 우리랑 같은 짝 난 거 아니냐?”
호독니가 웬일인지 이번엔 제대로 때려 맞췄다. 거기 말파가 한술 더 뜨고 나섰다.
“아닐걸요, 호독니? 털털하고 대범한 산시가 여간한 일로 화를 냈으려고요. 시타 이놈. 대형으로 사고 친 게 틀림없어요. 내 말이 맞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순순히 털어놓으시지.”
“그래, 인마.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뭐가 있다고.”
내내 잘난 체하던 시타가 궁지에 몰렸다.
“얼른 말해 봐라. 나도 궁금하다.”
발리안까지 나서자, 더는 뒤로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말이에요.”
시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야말로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산시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들놈 밥 먹이고, 트림도 시키고, 응가도 누였다고요. 거기다 ‘오라버니 오늘 나 어때?’ 하고 묻길래 ‘정말 예쁘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다들 한결같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라버니한테 실망이야. 오라버니는 매사 이런 식이더라. 솔직히 말해 봐. 내 어디가 예뻐? 오라버닌 내 어디가 바뀌었는지도 모르지? 모르잖아?’ 이러면서 몰아붙이잖아요.”
시타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울먹였다.
“와, 산시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너무하네.”
“그러게. 시타 저놈이 그렇게 배알도 없이 구는데 좀 봐주지. 난 죽어도 시타 저놈 같은 알랑방귀는 못 뀌겠더구먼.”
“야, 이놈들아. 조용히 좀 해 봐. 그래서 어떻게 됐냐?”
호독니가 단번에 시끄러운 주변을 정리했다.
“흐읍.”
시타가 코를 훔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봐도 도통 모르겠잖아요. 옷도 아니고 화장도 변한 게 없길래 찍어서 머리? 그랬더니 코앞으로 다가와서는 머리 어디가 바뀌었냐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와!”
모두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산시는 뭐 그렇게까지……. 다들 그런 표정이었다.
“머리 길이도 그대로고 땋은 모양도 그대로여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했더니?”
“‘오라버니 변했어, 이럴 거면 우리 헤어져’ 그러는데 속이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시타의 말에 모두가 제 일처럼 열을 받았다.
“와! 산시 정말 못됐다. 어쩜 시타 같이 착한 놈한테 그렇게 모질게 굴 수가 있냐?”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그게 어디 산시뿐이냐? 마누라들은 하나같이 다 이상해서는…….”
“맞아. 쓸데없는 데서 트집이나 잡고 안 그럼 삐지기나 하고.”
“정말 요즘 같아선 내가 이러려고 장가를 갔나, 싶다니까. 안 그러냐?”
“야, 완전 동감이다. 대칸이랑 네놈들이랑 한 궁려에서 뒹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땐 우리에게 자유라도 있었잖냐?”
“그러게나 말이다!”
이전엔 장가를 못가 안달이더니.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의기투합한 사내들이 시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야, 시타.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이번엔 굽히고 들어가지 마라. 사내 자존심이 있지. 산시가 싹싹 빌 때까지 절대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버텨라. 알았냐?”
“맞아. 여기서 고개를 숙이면 쓸개도 없는 놈이라니까. 이번에 밀리면 너 평생 그러고 산다. 그럴 자신 있냐?”
“아, 아니.”
시타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오늘 집에 안 들어갈 테니까 유주나 더 데워라. 우리 이참에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
“그래. 우리가 없어 봐야 마누라들도 우리 귀한 줄 알지. 여기 있는 사람 누구든, 절대 집에 들어가기 없기다. 속없이 집에 돌아가는 놈은 완전 배신자다. 알았냐?”
“누가 할 소리? 네놈이나 마누라 보고 싶다고 징징대지나 마라.”
“옳소! 오랜만에 우리 찐하게 뭉쳐 보자. 대칸도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어…… 어?”
얼결에 코가 꿰인 발리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멋모르는 호독니가 대표로 잔을 들었다.
“우리들의 자유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마지못해 잔을 따라 드는 발리안의 콧등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어쩌다 내가 이런 실수를! 괜히 여기 들어와서는…….’
아까부터 내내, 발리안은 자기가 이곳에 잘못 왔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시작은 처음 호독니가 입을 연 순간부터였다.
「여자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 아프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와라, 하면 될 것을. 실컷 괜찮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뒤통수나 때리고.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여자들이 좀 그렇긴 하지…….」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안사람이 왜 그러는지 정말 모르는 거냐,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냐, 호독니?
난처해진 발리안이 애써 표정을 가다듬는 사이. 수하들은 지칠 줄 모르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삶은 고기가 조금 질긴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당신이 해 먹든가’, 이러지 뭡니까?」
「‘나 이뻐?’ 그래서 ‘어, 이뻐’ 하면 ‘거짓말. 대답에 진심이 안 담겼어’……. 그럴 거면 묻긴 왜 묻냐?」
오고 가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라버니에게 실망이야. 오라버니는 매사 이런 식이더라. 솔직히 말해 봐. 오라버닌 내 어디가 바뀌었는지 모르지? 모르잖아?’ 이러면서 몰아붙이잖아요.」
쯧쯧. 시타 저놈도 변했군. 요즘 산시, 평생 네 갈래로만 땋던 머리를 여섯 갈래로 땋았던데 어떻게 그걸 몰라보냐, 이 녀석아. 네놈한테 정말 실망이다!
「애를 보다 보면 애가 울 수도 있지. 그러면 있는 대로 바가지를 긁으면서 ‘당신, 다시는 애 보지 마요’ 이래 놓고는, 얼마 못 가서 애가 울면 또 ‘애도 안 보고 뭐 하냐’고 난리니 원…….」
야, 이 녀석아. 대체 애를 어떻게 보길래……. 그게 남의 애냐? 네놈 자식이잖아. 좀 더 성의 있게 못 봐?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면서 성질을 부리길래 얼른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랬더니 ‘뭘 잘못했는데요?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와 진짜, 귀신보다 끈질기고 무섭다니까.」
아니, 이놈 바보 아냐? 사람이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부터 살펴야지.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면 다야? 다냐고!
「‘저 여자 예쁘지? 솔직히 말해 봐. 화 안 낼 테니까’. 그래놓고는 솔직히 말하면 완전 쥐잡듯 잡는 건 어떻고? 내가 대답 한 번 잘못했다가 등짝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말파 저놈, 미친 거 아니야? 아내가 제일 예쁘고 좋아서 혼인한 거 아니냐고. 근데 어떻게 다른 여자가 더 예뻐 보일 수 있지? 그렇게 안 봤는데 저놈 아주 제대로 미쳤군.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점점 더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마치 못 낄 데 끼기라도 한 것처럼.
사정을 모르는 수하들은 저희들끼리 흥분해서 집에 들어가네, 마네, 난리였다.
이, 이게 아닌데. 난 당장 효령이가 보고 싶단 말이다, 이놈들아!
「체통을 지키세요, 대칸. 아직 해도 지지 않았……!」
이건 해가 지면 마음대로 해도 된단 뜻이라고! 우리 효령이…… 내가 없어서 추운 침상에서 홀로 덜덜 떨다 감기라도 걸리면 네놈들이 책임질 테냐?
안 되겠군.
더는 참다못한 발리안이 벌떡 자리를 떨고 일어섰다.
“……?”
“……?”
“……?”
수하들이 의아한 눈으로 발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물 좀 비우고 오마. 참…….”
넉살 좋게 거짓말을 한 발리안이 힐끗 시타를 쳐다보았다.
“산시…… 땋은 머리의 수가 늘었더구나.”
얄궂게 웃어 보인 발리안이 당당하게 궁려를 걸어 나갔다.
“아, 뭐야? 그, 그거였어?”
시타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발리안이 쌩하니 효령에게로 사라진 줄도 모르고 남은 녀석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 틈에서 호독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교기 놈은 잘 있으려나? 어쩐지 오늘따라 그놈 생각이 나네.”
시타가 대답했다.
“그놈이야 잘 지내겠죠. 벌써 삭주 도독만 몇 년짼데…….”
기탄군이 삭주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후. 교기는 안야국 황제에 의해 다시금 삭주 도독에 임명되어 지금까지 직을 이어 오고 있었다. 안야국의 최장기 도독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사관이었던 요희가 그의 아내가 되었단 사실뿐.
“교기 그놈 예전엔 세상없이 뚝뚝하게 굴더니…… 지금은 마누라라면 깜빡 죽는 모양이라니까요. 자식 없이도 양자를 들여 잘만 산다잖아요. 셋이서 알콩달콩.”
호독니가 쯧쯧 혀를 찼다.
“그놈도 버렸구먼. 하여튼 마누라들은 다 요물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