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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바람에 흩날리고-78화 (78/116)

78화. 파란 1

* * *

발타고의 수하들에 이어 발리안을 공격한 자들. 그들은 다름 아닌 절도 칸의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험한 돌산의 절벽 아래서 목표물인 발리안을 발견했다.

발리안은 동료들이 달아날 시간을 벌기 위해 전속력으로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벌떼 같은 절도 칸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화살이 바닥난 발리안의 뒤로 따라붙었다.

「대도위를 산 채로 생포하라. 그 말고 말을 노려라.」

타닥타닥, 이내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발리안을 향해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발리안이 재빨리 채찍을 집어 들었다. 휙휙. 포효하는 채찍의 끝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화살이 쉼 없이 그를 겨눴다. 발리안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휘익. 채찍의 빈틈을 뚫고 들어온 화살이 그예 도도의 다리에 박혔다.

히이이이잉.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도도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충격으로 발리안은 말에게서 튕겨 나갔다.

「……!」

도도와 같이 모래 위를 뒹군 그가 자세를 바로잡았을 땐 이미 여러 개의 올가미가 발리안의 몸에 씌워진 상태였다.

「이랴!」

「하!」

두 사람의 군사가 발리안이 달아날세라 급히 말을 달렸다.

「빌어먹을!」

발리안의 몸이 휘청이며 이내 바닥으로 넘어졌다. 순식간에 올가미가 조이면서 근육이 터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와 함께 질질, 발리안이 짐짝처럼 끌려가기 시작했다. 주우욱. 순식간에 사막의 모래 위에 긴 줄이 그려졌다.

「으윽.」

엄청난 속도로 딸려가던 발리안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툭, 투툭. 사막 곳곳에 튀어나온 뾰족한 암석이 사정없이 그의 몸과 머리를 그었다. 여기저기 옷이 찢겨나가면서 그 틈을 파고든 밧줄에 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탁. 큰 돌에 부딪힌 발리안의 머리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어느새 정신이 아득해졌다. 뿌옇게 흐려지는 눈앞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효령이 아른거렸다.

「효, 효령…….」

그녀를 향해 힘겹게 뻗던 발리안의 팔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자비를 모르는 말들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사막을 휘저었다.

축 늘어진 발리안의 몸이 돌에 부딪히며 투둑투둑 제멋대로 차였다. 그 상태가 지속되기를 일각 여.

「됐다, 그만 말을 멈춰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발리안을 끌고 달리던 군사들이 말을 멈췄다. 순식간에 수많은 절도 칸의 수하들이 그를 에워쌌다.

발리안은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그 모습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이제껏 내내 발리안을 끌고 다닌 군사가 말에서 뛰어내려 그의 상태를 살폈다. 겉보기는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이구나. 당장 대도위를 생포했음을 알리는 전서구를 띄우고, 어서 그를 말에 실어라. 여기서 더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랬다간 크게 역정을 내실 게다.」

「알겠습니다.」

두 명의 군사가 커다란 발리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를 끌다시피 하여 간신히 말 위에 얹었다.

[대도위를 무사히 생포했습니다. 큰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속히 데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수하들의 보고를 떠올린 절도 칸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도위는 우리 수중에 들어왔으니 되었고. 서역 상단에서 최대한 빨리 앵속의 해독제를 구해 준다고 했으니 그것도 한시름 덜었군. 이제 남은 것은 7황비…….’

그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대칸이 절도 칸의 옆에 앉은 발타고를 향해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일에 대해 태자는 아무 의견이 없느냐?”

“……예? 예?”

순간, 당황한 발타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미처 못 들어서…….”

절도 칸도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주변 분위기가 싸하니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

발타고를 바라보는 대칸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국경 근처 물길이 모조리 말라 백성들이 큰 곤란을 겪고 있다는 차뉴 칸의 말에 다들 걱정하는 참이었다.

한데 태자가 되어 흐리멍덩하니 넋이나 놓고 있으니.

“중요한 회의 중에 한눈을 팔다니. 태자란 놈이 생각이 있는 게냐?”

“대, 대칸.”

“게다가 몸 관리를 어찌했기에 안색이 그 모양이냐? 술을 마셔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졸린 눈으로 마지못해 앉아 있으면 여기 있는 칸들에게 실례라는 것을 모르느냐?”

“소, 송구합니다.”

날카로운 질책에 발타고의 얼굴이 벌게졌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대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에 발타고가 날 선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발타고가 당장 무슨 일이라도 칠까 두려워진 절도 칸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대칸의 아우인 차뉴 칸이 나서 냉랭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대칸. 첫날의 제사 의식부터 쉬지 않고 이어진 강행군에 누군들 지치지 않겠습니까? 저도 마침 목이 타서 그러니 유주나 한 잔 마시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의 고갯짓에, 저만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단사관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의 궁녀가 유주가 가득 담긴 큰 그릇과 여러 개의 잔을 내왔다.

“자, 자.”

차뉴 칸이 직접 국자를 들어 유주를 잔에 부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대칸과 태자, 칸들의 앞으로 밀었다.

“자, 다들 드시지……!”

“그 유주를 드셔서는 안 됩니다!”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황후가 회의장에 들어섰다.

“황후!”

“황후마마!”

“황후마마!”

대칸을 비롯하여 모두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후가 대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허락도 없이 회의장에 난입하여 송구합니다만, 워낙 급한 일이라…….”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 같은 가죽 부대에서 나온 유주를 마신 황자들이 숨을 거뒀습니다. 혹시 독이 들었을지도 모르니 절대 드셔서는 안 됩니다.”

“뭐, 뭐요? 황자들이 죽다니 그게 무슨……!”

뜻밖의 비보에 충격을 받은 대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대칸이며 황후, 태자나 황자의 음식은 철저히 그 측근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만든 사람이 불분명하거나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음식은 절대 상에 올려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손님이 일시에 황궁으로 몰리는 무림제 때는 예외였다. 그 한 달여 전부터 궁녀란 궁녀는 처소를 가리지 않고 총동원되어 연회 음식을 만들었다. 눈앞의 유주도 축제를 위해 그들이 담근 것이었다.

“황자 둘이 담소를 나누던 중…… 유주를 마시다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더니 그리되었다 합니다.”

“……!”

대칸이 망연자실 말을 잇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출산 도중, 전쟁으로, 역모로, 이유 모를 병으로. 그렇게 죽은 자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들이라고 겨우 셋 남았는데 그중 둘이 한꺼번에 급사라니.

충격을 받은 그가 목덜미를 붙들며 휘청였다.

“대, 대칸!”

“대칸!”

황후와 차뉴 칸이 급히 그를 붙들었다.

“괘, 괜찮소.”

간신히 몸을 버틴 대칸이 분노로 몸을 떨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이오? 누가!”

“지금 단사관들을 풀어 일의 정황을 알아보라 했습니다. 천군도 불렀으니 곧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하시고…….”

황후가 대칸을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대칸께서 강건하셔야 범인을 잡고 그 죄를 물을 것이 아닙니까? 다시는 황궁 안에 이런 두렵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주십시오, 대칸.”

하.

발타고가 가늘어진 눈으로 어머니 황후를 쳐다보았다.

멀쩡하던 아우들이 이렇게 느닷없이 죽다니. 보나 마나 이 일은 어머니의 짓일 터. 새삼스레 그녀가 존경스럽고 또 넌더리가 났다. 세상에 누가 여인을 연약하다 했는가. 단순 무식하게 치고받는 사내들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무서운 게 여인들이었다.

‘이 자리에 천군까지 부르시다니. 기어이 7황비를 걸고 넘어가실 작정인가?’

「황후마마는 천군을 이용해 날 죽일 생각이세요. 당신이 말했잖아요. 천군의 말은 대칸께서도 무시하시지 않는다고.」

요희의 말을 떠올린 발타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만약 어머니께서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참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태자비는 버릴 수 있어도 7황비와는 절대 헤어질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제 여자란 말입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며 마음을 다지는 사이. 굳은 얼굴의 천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대칸이, 침통한 얼굴로 그녀를 맞았다.

“어서 오게, 천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천신께 감사를 드리는 무림제 기간에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다니.”

“면목 없습니다, 대칸. 이게 다 저의 불찰입니다. 처음 불길한 예감이 들었을 때 아뢨어야 했는데…….”

천군이 대칸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이라니…….”

“이런 말씀 송구하오나…….”

그녀가 조금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대칸께서 7황비마마를 맞이하신 날. 그날은 분명 날이 맑고 밝은 보름달이 뜬 길일이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자정이 될 무렵 느닷없이 달무리가 나타나 달의 안쪽이 피처럼 붉게 변했습니다.”

기탄에서는 전쟁에 임하거나 큰일이 있을 때 달점을 쳐 그 운세를 가늠하곤 했다.

달의 맑기와 밝기, 그 색상과 크기에 따라 각각이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그중에서도 달무리나 붉은 달이 나타나는 것은 최악이었다.

“7황비와의 혼롓날 달이 붉어지다니……. 그런 중요한 일을 어째서 고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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