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드러난 비밀 5
* * *
“……!”
장공주 궁으로 다급히 달려온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대낮부터 안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낯뜨거운 신음 때문이었다.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는지 할딱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여기까지 왔건만. 다시 돌아가야 하나?
끄응. 난처해진 사내가, 홀로 문을 지키고 있는 나이 든 궁녀에게 물었다.
“형부 상서께서 여기 계신다 들었네만. 안에 드신 지 얼마나 되셨나?”
궁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사흘째 이곳에서 침식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뭐? 사, 사흘씩이나? 내내 저 상태였나?”
사내의 말에 궁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아시잖습니까? 요희님께서 기탄으로 떠나실 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거. 누구보다 상서 어른의 아쉬움이 크실 테지요. 하여 두 분이 마지막으로 회포를 푸시고자…….”
말끝을 흐린 궁녀가 사내에게 말했다.
“급한 일이면 안에 말을 넣어볼까요?”
“그, 그러다 불벼락이 떨어지지 않겠나?”
“두 분이 스스로 일을 마치시길 기다리는 거라면…… 하루 이틀로는 부족할 겁니다. 끼니때마다 정력에 으뜸이라는 곰 발바닥과 해구신은 물론 미약까지 드시고 계시거든요.”
“미약이라면…… 앵속(양귀비) 말인가?”
성적 절정감을 느끼게 하는데 최고라는 앵속까지 먹어 가며 일을 치르다니. 이곳이 떠내려갈 듯 시끄러운 이유가 족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자네 말마따나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겠군.”
맹유천의 측근인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를 나누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원래 성락 장공주가 사용하던 처소였다. 지금은 성락을 대신하는 요희가 머물고 있었다.
사내는 함부로 들 수 없는 이곳을 맹유천은 마치 제집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그가 여기서 무얼 하는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러나 그걸 트집 잡는 사람도, 이야깃거리로 삼는 사람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고 침소에 미소년들을 들이는 태후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부탁 좀 하지.”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궁녀가 겁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깊은 안쪽의 침소에서는 맹유천이 요희에게서 막 몸을 떼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기껏해야 우리에게 남은 날이 고작 며칠뿐이라니. 아무리 널 가져도 성이 차질 않는데 말이다.”
땀범벅이 된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껏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상서 어른도 참…….”
흑단 같은 머리를 길게 흐트러뜨린 요희가 한 손으로 몸을 가리며 일어나 앉았다.
맹유천이 차마 다 가려지지 않은, 터질 듯 농익은 그녀의 가슴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 일만 아니었으면 널 절대 그딴 야만족 놈에게 보내진 않았을 게다.”
요희는 십여 명에 달하는 첩 중에서도 맹유천이 가장 아끼는 애첩이었다. 기탄 말에 능한 것은 물론 말타기며 무예에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탄 인근의 소부족 출신이었던 그녀는, 어린 시절 서역을 오가는 대상(隊商)들에 의해 안야국에 팔렸다.
「외모며 눈에 든 독기며…… 고것 참 물건이로군.」
요희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맹유천의 아비에 의해 기녀이자 살수로 길러졌다.
이후 그녀는 맹유천의 총애를 받으며 그의 적을 앞장서 해치워 왔다.
“저 역시 상서 어른의 품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말이다.”
맹유천이 곁의 탁자에 놓인 잔에 손을 뻗었다. 물을 마셔 갈증을 삭인 그가 말을 이었다.
“누님과 내가 오래오래 영화를 누리려면 우선은 대칸, 그 늙은이부터 없애는 게 순서지.”
요희가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늙은인 제가 틀림없이 해치울 테니까요.”
“그래. 그 늙은이만 없다면 발리안 그놈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닐 게다. 하지만…….”
맹유천이 못마땅한 얼굴로 요희를 향해 돌아앉았다.
“대칸 그 늙은이뿐 아니라 발타고까지 널 품을 걸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도 더럽구나.”
훗. 요희가 요염하게 미소 지었다.
“그자를 제 뜻대로 조종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대칸이 죽으면 후궁을 그 아들에게 물리는 것이 야만족의 법이라 하니,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라 생각하십시오.”
“그야 그렇지만……. 그러니 놈들이 역겹다는 게다. 아비와 아들이 같은 여인을 품다니. 짐승 같은 놈들!”
“어차피 적당히 이용하다 버릴 자들입니다. 그런 놈들 때문에 길게 마음 상하실 것 없습니다. 일을 마치는 대로 기회를 보아 그곳을 빠져나올 것이니 이별의 시간이 생각처럼 길진 않을 것입니다.”
요희가 나릿한 손길로 맹유천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가 뭐래도…… 제게 최고의 사내는 상서 어른이십니다. 전 오히려 제가 떠나 있는 사이, 상서 어른이 절 잊으실까 봐 겁이 납니다.”
그녀의 교태에 맹유천의 입매가 실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어찌 너를 잊는단 말이냐? 너처럼 앙큼하고 요망한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그가 요희의 어깨를 밀쳐 그녀를 다시금 침상에 쓰러뜨렸다.
“아이, 상서 어른도 참. 이러다 저 죽습니다, 상서 어……!”
맹유천의 얼굴이 요염한 요희의 입술을 덮쳤다. 그의 미끈한 몸이 풍만한 요희의 것과 막 하나로 겹쳐진 순간.
“잠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상서 어른.”
나이 든 궁녀의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유천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젠장! 무슨 일이냐? 당분간 방해하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위주에서 연락이 온 모양입니다.”
“뭐라? 방곽에게서? 알았다!”
맹유천이 언제 성을 냈냐는 듯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효령의 일이라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바빠졌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궁녀에게 말한 맹유천이 급히 바지에 발을 꿰었다.
“요희 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곧 보내놓고 올 테니…….”
윗도리를 시늉으로만 걸치다시피 한 그가 서둘러 침소를 빠져나갔다.
그의 뒤에서 요희가 바스스 몸을 일으켰다.
“뭐야, 김새게……. 한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은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쾅.
위주 도독이 보낸 서신을 읽은 맹유천이 분노에 차 탁자를 내리쳤다. 다 풀어 헤쳐진 윗옷 사이로 윤기 나는 몸뚱이가 번들거렸다.
“뭐라? 살아 돌아온 놈이 겨우 하나뿐이라니? 것도 반병신이 됐단 말이냐?”
“송구합니다.”
“이런 무능한 것들을 봤나? 그러고도 제 놈들이 안야국 제일의 무사라 떠들어댔단 말이냐? 연약한 여인 하나를 못 빼내서 뭐가 어쩌고 어째?”
수하가 난감한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발리안이란 자. 어찌 된 일인지 이 일의 배후에 위주 도독께서 계시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상서 어른의 정체는 들키지 않았답…….”
“뭐가 불행 중 다행이란 것이냐? 효령을 데려오지 못했는데 대체 뭐가 다행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맹유천이 죄 없는 수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효령이 돌아오기만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건만. 절대 실패할 리 없다는 생각에 마음 느긋이 요희와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조금 전까지 천상을 나는 것 같던 기분이 일순간에 땅바닥으로 동댕이쳐졌다.
“그럼 효령은? 효령 장공주가 어떤 상황인지는 들었느냐?”
“장공주님 역시 정체를 들키신 것 같지는 않답니다.”
“내가 그걸 묻는 게 아니질 않으냐?”
맹유천이 또 참지 못하고 성마르게 언성을 높였다.
“효령이…… 발리안 그놈과 이미 붙어먹었다더냐? 그래서 데려오는 데 실패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수하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살아 돌아온 자에 의하면…… 아직, 남장 차림이시더랍니다. 놈들도 모두 사내인 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놈들은 더러운 야만족이 아니냐?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 남녀를 따져가며 덮친다더냐?”
“아뇨. 염려하시는 일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탈해 보이셨다 합니다. 다만…….”
“다만……?”
“함께 돌아오시길 권했더니 거절하셨다 합니다.”
“뭐라?”
맹유천의 얼굴이 더는 할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 했느냐? 효령이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럼 나보다 그 야만족 놈이 더 좋다는 뜻이란 말이냐?”
“아니, 그건 저도 잘…….”
“그게 아니라면 효령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절 더러운 야만족 손에서 구해 주겠다는데 거절을 해, 대체 왜?”
대로한 맹유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지난번, 효령이 자청하여 발리안을 따라갔다는 위주 도독의 연락을 받고도 맹유천은 여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수하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진땀을 흘리는 사이.
“진정하시지요.”
그들의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옷을 입고 나오는 요희였다.
“장공주님께도 사정이 있을지 모르지요.”
그녀가 요염한 자태로 맹유천에게 다가왔다.
“혹 자객들이 처리 못 한 명국공의 일가가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장공주님께서 다른 곳을 놔두고 굳이 그 위험한 삭주에 들어가신 것은 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
“틀림없이 제 말이 맞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마시고 장공주님께 시간을 좀 주십시오.”
요희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수하에게 나가라, 고갯짓했다. 그가 죽다 살아난 얼굴로 재빨리 자리를 떴다.
맹유천이 요희에게 물었다.
“시간을 주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명국공은 장공주님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한데 상서 어른께서 그분을 죽이셨으니……. 저라도 진저리가 나게 싫을 겁니다. 오히려 야만족보다 더요.”
그녀가 탁자 곁으로 다가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런 상태에서 상서 어른이 쉴 새 없이 장공주님을 밀어붙이시면 있던 정도 달아난다니까요.”
“빌어먹을! 내가 바라는 건 그깟 정 따위가 아니다. 그냥 효령이란 말이다.”
요희도 잘 알고 있었다.
맹유천은 여인의 감정을 살필 만한 섬세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그저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정복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상서 어른. 늑대나 범도 사냥감을 잡을 땐 몸을 낮추는 법입니다. 한데 야만족이나 장공주님의 경계심이 최고조일 때 무리하게 일을 벌이셨으니…….”
“…….”
“위주 도독이 이 일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들킨 이상,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셔야 합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상서 어른은 물론이고 황실에까지 큰 화가 미칠 수 있으니까요.”
“젠장!”
맹유천이 마땅찮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