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外3. 우리를 닮은 아이
언제 무엇을 하든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낮에든, 밤에든.
“온, 잠깐만…….”
혼인 5년째, 아직도 신혼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사내에게 여인은 헐떡이는 와중에도 항의했다.
“아니, 잠깐만, 한 번이면 충분한 거 아닌가…….”
류하는 횟수를 들먹이며 온을 밀어내려 했지만, 미는 힘이 영 약해서였는지 온은 꿈쩍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류하의 목을 잘근거렸다.
“누가 두 번 한다고 했습니까? 그냥 잠깐 이러고 있겠다는데.”
온은 뻔뻔하게 중얼거리며 거듭 아내의 맨살에 입을 맞췄다. 치아가 빗장뼈를 스치고 혀끝이 목을 핥는 느낌에 류하는 움찔움찔 떨며 신음을 흘렸다.
“그냥 잠깐, 이 아닌 것 같은데…….”
류하는 남편의 단어 선택에 딴죽을 걸면서도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몸을 붙였다.
상대방을 떼어 내는 건 포기했는지, 그녀는 그의 턱을 쥐고 위로 젖혔다. 그의 입술이 딸려오자 류하는 냉큼 그곳에 제 입술을 포갰다.
“으음.”
이번에는 온이 신음했다. 전신이 촘촘하게 맞물려 온통 끈적끈적했다. 남쪽의 봄날은 북쪽보다 더웠기에 둘 다 부대끼면 부대낄수록 땀에 젖어갔다.
“하아, 부인, 잠깐만…….”
“뭐야, 아까는 내가 멈추자고 하니까 안 멈췄으면서.”
“그러니까, 그건 내가 잘못했습니다. 아니, 잠깐…….”
“흐응, 싫은데.”
류하는 얄밉게 콧소리를 냈고, 온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 차마 큰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잡혀 있는 꼴이었다.
그사이 류하는 사악하게 생글대며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는 그녀의 입술이 자신의 목과 쇄골을 훑자 온은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는 느낌이었다.
“있잖아요, 낭군. 아까는 내가 잘못 말했어.”
온의 어깨에 입술을 댄 채 류하가 중얼거렸다. 입술이 달싹일 때마다 혀가 살을 스치는 느낌에 온은 움찔움찔 떨었다.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절대로. 어떻게 생각해요?”
류하는 앙큼하게 되물었다. 점점 짙어지는 자극에 온은 죽을 맛이었다.
“그대 말이 맞아요. 절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온은 탁한 목소리로 수긍했다. 직후, 굶주린 짐승처럼 류하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이 정도로 자극해 놓곤 충분하다고 말하면 안 되지.”
짐승의 육체는 이미 뜨거웠다. 류하는 희열을 느끼며 온에게 안겼다.
제발 네 허리 상태 좀 생각하라고 류하의 몸이 애원했지만, 류하는 신체의 불평을 깡그리 무시하며 정사를 이어 갔다.
그날 밤도 뜨겁고, 길었다. 부부가 5년간 나눠 온 매일처럼.
다음 날 아침, 류하는 어젯밤 제 신체의 경고를 무시한 자신을 수백 번째로 원망했다.
“아고고, 삭신이야…….”
“노인네 같은 소리 내지 마십시오.”
“노인네까지는 아니지만, 늙었어요. 확실히 늙었다고요. 이제 나도 스물여섯 살이니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악!”
“엄살 부리지 마세요. 그렇게 세게 누르진 않았는데.”
온은 뭉친 근육을 풀어 주겠다며 아내의 욱신대는 몸 이곳저곳을 안마해 주고 있었다. 이불 위에 엎드려 있던 류하는 눈물마저 그렁그렁한 채 성을 냈다.
“낭군의 센 거랑 내 센 거랑 다르거든요? 좀 살살 해 줘요, 살살. 무슨 반죽 으깨듯이 누르지 말고.”
“부인, 내가 정말 으깬다는 생각으로 했으면 지금 부인이 이렇게 멀쩡하지 않았을 겁니다.”
“네, 네. 어쨌든 좀 살살 해 줘요. 그리고 부위는 조금 더 아래로……. 맞아, 딱 거기.”
아내의 상세한 지시에 따라 사내는 섬세한 손길을 놀렸다.
크고 따뜻하고 굳은살이 박여 다소 투박한 손이 제 여린 살을 지그시 만져 주는 느낌에 류하는 만족하며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너무 불공평해요.”
“뭐가요?”
“밤에 그렇게 두세 번씩 하고도 낭군은 아침에 멀쩡한데, 나만 맨날 이 모양이야.”
“왕년에 전장에서 굴러 본 사람의 체력이랑 평생 공주로 크신 분의 체력을 비교하면 안 되죠. 솔직히 말해서, 부인이 신체적으로 그렇게 고생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낭군도 거의 평생 황자였잖아요. 이거 진짜 억울한데?”
“나는 5년간 장수였습니다.”
자신의 과거 직종을 상기시키며 온은 아내의 곳곳을 주물렀다. 류하는 전문가 못지않은 남편의 솜씨에 몸을 맡기며 편안하게 늘어졌다. 그러다가.
“온…….”
류하가 스산하게 불렀다. 온은 시치미를 뚝 떼고 내리 아내를 만졌다. 참다못한 류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그의 손목을 탁 잡았다.
“안마를 해 달라니까, 왜 계속 엉뚱한 데를 만지고 그래요?”
“내가 언제 엉뚱한 데를 만졌습니까?”
“와, 진짜 뻔뻔해. 방금 막, 막, 아래로도 내려가고, 위로도 가고, 거긴 안마랑 아무런 상관없는 곳인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부인. 분명 상관이 아예 없진 않을 겁니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어요. 하여간, 엉큼하긴.”
류하는 온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그러자 온이 눈꼬리를 접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부인이 내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류하가 미처 받아치기 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다정하게 막았다. 혀가 혀를 누르고 언어를 차단하며 간신히 숨 쉴 틈만 마련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칼에 엉켰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저기, 온, 나 지금 근육통 때문에 안마받는 중이었거든요?”
류하는 힘없이 항의했다. 항의하는 사람치곤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입술과 볼은 장미처럼 붉었다. 온은 그 아름다운 색깔을 하나씩 음미하듯 뜯어보았다.
“부인 몸에 무리 가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온은 엄숙히 약속했다. 곧이어 다시 입술을 포갰다. 류하는 눈을 내리감고 그에게 상체를 꽉 붙였다.
“그냥, 잠깐 입맞춤만 해요. 입맞춤만.”
그가 중얼거렸다. 류하는 알겠다고 대답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그녀의 말캉말캉한 혀가 그의 입 안을 질척하게 덧그렸다. 그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더는 새롭지도 않은 방식으로 남편을 애무하며, 류하는 속으로 의문 하나를 되씹었다.
왜, 우리한테는 아직 아이가 없지?
그러나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녀가 묻지 않았으므로.
류하는 마을에서 삯바느질하거나 여자애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온은 남자애들에게 글과 검을 가르쳤다.
처음 몇 달간은 무장한 군졸들이 들이닥쳐 자신과 온을 끌어내거나 아예 자객들이 나타나 자신과 온을 죽이는 악몽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불안감도 잦아들었다. 북쪽의 황제가 온을 끝까지 추적해 죽이려는 의도가 없음은 점차 명백해졌다.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휘륜은 어차피 충분히 바빴다.
몇 년째 남쪽 시골에 틀어박혀 제위에 대한 욕심은 눈곱만큼도 드러내지 않은 이복동생을 굳이 찾아내 죽이기에는 휘국이 너무 시끄러웠다.
류하는 휘국이 반으로 나뉜 게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월국 같은 약소국 처지에는 너무 크고 너무 강한 나라가 혼자 떵떵거리며 자기들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크고 적당히 강한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하며 으르렁대는 게 훨씬 안전했다.
물론, 제국 연놈들이야 생각이 다르겠지. 그러나 그들의 생각 따위 류하에겐 정말 알 바가 아니었다.
황궁에 두고 온 월국 출신 궁인들을 때때로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 외에는 류하가 더는 제국의 사정에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예습 복습은 잊지 말고.”
“네, 선생님!”
류하가 수업을 마치고 서책을 덮자 병아리 같은 계집아이들이 재잘대며 일어났다. 류하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수업 끝났어요?”
“네.”
이미 사내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조금 쉬고 있던 온이 문틈으로 빠끔히 얼굴을 드러냈다. 류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류하의 학생들도 온을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한 명은 앙증맞은 속눈썹을 나비처럼 팔랑대며 온에게 바짝 붙었고, 한 명은 자그마한 얼굴을 복숭아처럼 물들이며 수줍은 시선을 회피했다.
어쭈, 이게 뭐지? 류하는 즉시 경계했다. 온은 아내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척 자상하게 웃으며 여아들의 어깨를 톡톡 다독여 주었다.
“오늘도 열심히 배웠니?”
“네, 선생님.”
“그래, 이제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 아버지 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네, 알겠어요.”
다정한 언어가 이어지자 아이들은 작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이제 류하는 대놓고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은 류하를 등진 터라 알지 못했고, 온 혼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자, 이제 어서 가렴.”
“네, 선생님.”
“두 분 다 내일 뵐게요!”
아이들은 참새처럼 떠들며 총총히 멀어졌다. 드디어 집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고, 아내는 남편을 비난했다.
“인기가 아주 많네요, 내 낭군은.”
“하하. 애들이 보는 눈이 있는 걸로 합시다.”
“몇 년만 지나면 나한테 경쟁자가 꽤 생기겠는데요?”
“저기요, 부인. 쟤들이 어른이 될 정도로 크고 나면 나도 중년 아저씨예요, 아저씨.”
시간의 괴리로 인한 관계의 불가능성을 깨우치며 온은 류하를 스르륵 껴안았다. 잠시 토라진 척하던 류하도 곧 연기를 그만두고 남편을 마주 안았다.
“그리고 그대만 삐친 게 아니랍니다, 부인.”
“뭐요?”
“하마터면 오늘 내 학생들에게 매우 치졸하게 굴 뻔했습니다. 그대를 보며 이따금 넋을 놓는 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요.”
온이 류하의 귀에 속닥였고, 류하는 푸흡 웃었다. 그녀는 생기 넘치는 눈빛을 반짝이며 온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걔들이 크고 나면 중년 아줌마일 텐데요?”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 둘이 같이 늙어 갈 수 있어서.”
“그러게요. 그러니까 우리, 쓸데없이 경쟁자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해요.”
“경쟁자 얘기는 그대가 먼저 꺼냈습니다, 부인.”
온은 따끔하게 지적했다. 류하는 반박하지도, 수긍하지도 않았다. 다만 발꿈치를 깜찍하게 들며 온에게 입을 맞췄다.
온의 팔이 류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대문은 제대로 잠기지도 않았건만, 입맞춤은 이어졌다.
“낭군. 우리 이제 슬슬 저녁 준비해야 하지 않아요?”
류하는 본인이 먼저 시작해 놓고 본인이 먼저 밀어냈다. 온은 잔뜩 아쉬워하며 밀려났다.
“그래요, 들어가서 밥부터 먹읍시다.”
밥을 먹고 나서 나중에는 대체 어떤 행위에 힘을 쏟기 원하는지 너무 명백했기에, 류하는 발그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