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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궁의 은밀한 연서 (110)화 (110/123)

110화

몸이 점차 가벼워지며 뜨거워졌고, 곧 그들은 온전한 나신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온은 눈앞의 경이로운 존재를 숭배하는 시선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류하는 사로잡힌 느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온.”

“네, 류하 님.”

“나도 처음이에요.”

그녀가 엄숙하게 속닥였다. 초보 사내는 초보 여인을 내려다보며 슬쩍 웃었다.

“그럼 서로서로 도우면서 배워 나가면 되겠네요.”

바람직한 자세였다. 둘 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처음이라 더욱 소중했다.

처음이라서, 마지막이라서. 오직 그대뿐이고, 당신뿐이라서.

이 세상의 다른 그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온은 덥게 부푼 몸으로 류하를 파고들었다. 그들은 하나로 맞물리며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깍지로 얽힌 두 쌍의 손이 류하의 귓가를 눌렀다.

온은 류하의 목에 입을 맞췄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쇄골을 잘근거렸다. 하얀 살갗에 붉은 자국이 피어났다.

부드러운 신음이 켜켜이 쌓여 화음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몸이 함께 요동쳤다.

“아아, 온…….”

류하는 속도 겉도 온에게 잠식된 것 같았다. 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상대방을 이루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정말이지 그때만큼은 두 사람을 구분하는 의미가 없었다. 류하의 날숨이 온의 들숨이 되었고 온의 들숨이 류하의 날숨을 먹였다.

마치 태초부터 한 쌍으로 창조된 것처럼 두 사람은 빈틈없이 맞춰진 상태로 오랫동안 움직였다. 매 순간이 열기였고, 환희였고, 신세계였다.

연인들은 서로를 새로운 낙원으로 안내했다.

각자의 온몸이 구석구석 젖고 나서야 온은 류하의 밖으로 나와 느슨하게 깍지를 풀었다.

류하는 숨을 헐떡이며 온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연모합니다.”

온이 속삭였다. 류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땀범벅이 된 그녀의 뺨에 새로운 물기를 더했다.

“나도 연모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고백은 한없이 이어졌다. 온은 기쁘게 들었다.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갚아 주었다.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도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조금씩 재회를 완성했다.

두 사람의 봄날은 그토록 뜨거웠다. 봄밤은 더욱 달큼하리라.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앉은 류하는 축축한 몸에 옷을 대충 둘렀다. 온도 가볍게 착복했다. 그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같이 씻으시겠습니까?”

아니, 나는 이제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요. 류하가 난색을 표하자 온은 합리적으로 덧붙였다.

“우리 둘 다 땀투성이 아닙니까. 이 상태로 점잖게 차를 마실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온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도 류하는 제가 그에게 조금 놀아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짜증이 나거나 마음이 급해지지 않았다.

몸을 섞든 대화를 하든 같이 씻든 뭘 하든, 둘이 함께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 씻는 거 좋죠.”

류하는 선선히 수긍했다. 온은 빙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류하도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다리 사이가 생각보다 너무 욱신대서 움직임이 더뎌졌다.

“윽…….”

“많이 아프십니까?”

온은 걱정했다. 그는 곧장 미소를 지우며 초조하게 몸을 낮췄다. 류하는 연인이 조금 얄미워져서 그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 왜 너는 멀쩡하고 나는 이 모양인데?

온은 울상이었다. 류하는 그를 잠시 째려보다가, 끝내 한숨만 폭 내쉬었다.

“많이 아프지는 않습니다. 괜찮아요.”

그가 일부러 아프게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저 처량한 대형견 같은 눈망울을 보며 계속해서 짜증을 내는 건 너무 어려웠다.

“걸어가기 힘드시면 제가 안아 드리겠습니다.”

온은 엄숙하게 말하며 양팔을 벌렸다. 류하는 그를 보며 눈꼬리를 슬며시 접었다.

“뭐, 아예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는 내숭을 떠는 척하며 온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제야 온도 슬쩍 웃었다.

“그대가 먼저 권했으니, 사양하지는 않을게요.”

류하는 온과 몸을 밀착하며 속닥거렸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뺨을 스쳤다.

“그럼 기꺼이 모시겠습니다.”

온은 부드럽게 빙글대며 류하를 안아 올렸다. 견고한 근육과 매끄러운 살갗으로 이루어진 팔이 그녀의 다리와 어깨를 감쌌다.

갑자기 바닥에서 멀어지는 느낌에 류하는 조금 아찔해서 온을 더 꼭 안았다.

온이 류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류하는 얼굴을 붉히며 올려다보았다.

“그대, 내가 처음인 거 맞아요?”

“네?”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고단수인데.”

류하는 꽁하게 중얼거렸다. 온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류하의 시선이 한결 싸늘해졌다.

“웃어요? 웃겨요? 나는 방금 되게 진지한 질문을 했거든요?”

“그럼 저도 진지하게 답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처음입니다. 평생 살면서 당신 외에 다른 여인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온은 조곤조곤 달콤하게 고백했고, 류하는 다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리 꽁했냐는 듯 눈빛은 다시 사르르 녹았다.

“내가 첫사랑이에요?”

“첫사랑입니다.”

“……원래 다른 사람이랑 혼인하려 했잖아요. 예쁘고 똑똑한 명문가 규수들이 많았을 텐데, 그중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 없었어요?”

“어차피 다 정략혼 상대였는걸요. 그들의 아비들과 오라비들만 있었지, 그들의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사랑한 적 없습니다, 류하 님. 당신이 오기 전까지는요.”

내가 만약 예정대로 황태자비를 맞이해 나란히 황제가 황후가 되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아내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글쎄. 그랬다면 당신을 영영 못 만났을지도 모르지.

자신이 황태자 자리에서 쫓겨나고 황권이 교체되면서 피바람에 휘말린 무수한 사람들에겐 정말 죄스러운 말이었으나, 황제 자리에서 영영 멀어진 지금, 온은 차라리 행복했다.

어쩌면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적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가 내 몫이었다고 믿도록 세뇌당하며, 나와 맞지 않는 길을 꾸역꾸역 따르고 있었을지도.

권력도 권위도 전부 잃었으나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자유를 얻어서 기뻤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게는 너무도 죄송했으나, 새로운 관계의 기회가 생긴 것 같아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내가 그대의 첫사랑이에요?”

류하가 자그맣게 물었다. 마음이 간질거려 숨이 막혔다.

어쩌면 이게 모두 꿈은 아닐까. 이토록 소박하고 유치하고 낯간지러운 행복은 도무지 진짜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비현실적일 만큼 황홀해서, 류하는 자신이 지금 잠든 게 아닐까 의심했다.

“네, 류하 님. 첫사랑입니다.”

온은 진지하게 선언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류하는 온의 서글픔을 감지하고 걱정스레 질문했다.

“온, 왜 그래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티가 많이 났나. 온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는 류하의 시선을 피하며 웅얼웅얼 실토했다.

“그냥, 아쉽다고 생각하던 중입니다. 저는 당신의 첫사랑이 아니라는 게.”

과거에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던 지난봄 류하의 고백이 온의 마음에 유치한 질투를 심었다.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한 인간이었나. 현재의 사랑이 중요하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연인의 옛사랑에 연연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원래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조금씩 다 한심해지는 걸까. 온은 자괴감에 빠졌다.

“첫사랑 맞는데요?”

류하는 당황했다. 내 몸도 마음도 전부 그대가 처음 가졌거늘,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러다, 류하는 기억해 냈다. 황제의 후궁이 되기 위해 북쪽으로 끌려가던 때, 자신이 아직 온을 제대로 연모하기 전, 자신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허언을.

<마마께서는 첫사랑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감히 여쭈어도 될까요?>

<뭐, 있기는 있습니다만. 딱히 지금 그대와 얘기하고 싶지는 않군요.>

으아, 바보, 바보, 바보! 뒤늦게 과거를 떠올린 류하는 있는 힘껏 경악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에, 자신이 온을 잘 알지도 못했던 시절 지껄인 우스운 기만은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게 지금은 너무 당연한 진리로 느껴져서, 그 어떤 오해도 더는 남아 있지 않다고 무의식중에 넘겨짚었나 보다.

알고 보니, 아직 거대한 오해가 하나 남아 있었다. 류하는 서둘러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대가 내 첫사랑이에요. 나도 그대가 처음이에요, 온. 내 마음도 몸도 전부 그대가 처음 가졌어요. 그대 이전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대는 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류하는 굳게 확신했다.

그대는 나의 시작이자 끝이고, 나 또한 그대에게 그러하리라.

“어, 하지만.”

이제는 온이 당황할 차례였다. 그는 혼란에 빠진 얼굴로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에, 우리가 산속에서 습격당했을 때, 당신은 분명 첫사랑이 있었다고…….”

“엄밀히 따지자면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에요. 내가 그때 말한 첫사랑은……. 큼. 어, 그게. 소설 속 인물이에요.”

류하는 자백과 동시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온은 류하의 장밋빛 홍조를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조차 잊었다.

“네?”

“소설 속 인물이라고요. 옛날에 내가 즐겨 읽던……. 뭐, 어쨌든! 그대는 확실히 내 첫사랑이니까, 이상한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류하는 민망한 시선을 데굴데굴 굴리며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허구의 인물과 사랑에 빠졌었다고 고백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창피한 일이었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온의 눈매가 돌연 짓궂게 휘었다. 그가 결국 참지 못해 푸흣, 하고 웃자 류하의 혈색은 한결 붉어졌다.

“우, 웃지 마요! 비웃지 마.”

“비웃는 게 아니라 즐거워하는 겁니다만. 정말 귀여우십니다, 류하 님.”

“아니, 그 귀엽다는 말도 좀…….”

귀여우십니다. 귀여우십니다. 귀여우십니다. 온이 달콤하게 속닥거린 한마디가 류하의 심장을 난폭하게 울렸다.

“그럼 그때 황궁에서 단풍잎을 잡으려 하신 것도, 다 저를 생각하며 그러신 건가요?”

온은 류하의 요구대로 히죽거림을 그쳤다. 류하의 반응이 워낙 사랑스러워서 조금만 더 놀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제 진지하게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때 그 단풍잎. 마음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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