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봄날의 민들레 (上)
구중궁궐.
아홉 개의 궐문 안쪽에 자리한 내밀한 중궁전.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전각을 치장하고 꾸민 가구들은 궁궐 장인들의 손에서 빚어진 새것들이었다.
오직 한 가지.
중전의 침소를 차지 한 낡은 서탁을 제외하고.
세심한 문양이 각인되었나 전체적으로 투박한지라.
서탁은 단아한 우아함과 기품을 자아내는 중궁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서탁 앞에 이레가 앉는 순간.
그 이질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곳에 자리했던 물건처럼…….
서탁은 전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전과 가장 잘 어울렸다.
-다녀왔습니다.
은밀한 회합을 마치고 돌아온 이레는 자리에 눕는 대신 붓을 들었다.
어느덧 왕실 내명부의 수장이 되었건만.
서탁의 백귀들에게 귀가(歸家)를 고하는 이레의 필체엔 다정함과 친밀함이 여전했다.
-왔느냐?
화 할아버지의 대답 역시 어린 손녀를 대하듯 변함없었다.
-고단한데, 그만 자리에 들지 않고.
걱정하는 예 할아버지의 글씨 뒤로 상 할아버지의 필체가 떠올랐다.
-그래, 그 십학사인지, 십장생인지는 잘 만났느냐?
-네, 상 할아버지.
-이제는 편하게 지낼 것이지. 뭣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는 건지. 예전부터 느꼈지만, 고집도 이런 고집불통도 없다. 질긴 게 아주 쇠심줄이다.
상의 지청구에 이레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불퉁한 필체에 서린 마음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상 할아버지 닮아 이리되었습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냐?
-한 번 작심한 것은 끝내 이루시는 상 할아버지가 아니십니까.
-뭐, 그건 그렇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성취하라고 늘 말씀하셨지요.
-그 역시 그랬구나.
-그 말씀을 따라 움직이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중궁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십학사의 학사들조차도 원하는 사람들로 채우기 위해 고집을 부렸으니. 이 모든 게 상 할아버지 덕입니다.
이레의 은근한 칭찬에 상의 필체에 활기가 들어찼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로다. 허허, 지금의 너를 만든 게 나라는 건 부인할 수 없구나. 그 철딱서니를 이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노고가 많았던지…….
감회에 젖은 상에게 악이 찬물을 끼얹었다.
-얼씨구! 누가 보면 상, 네가 아이를 업어 키운 줄 알겠구나.
-내가 업지만 않았지, 아이를 키우는 데 팔 할의 역할을 하였으니. 내가 키운 것이나 진배없지.
이번에는 화가 상의 글씨에 어이없다는 듯 후렴구를 붙였다.
-절씨구! 그럼 여기 있는 예와 나는 놀았단 말이냐?
-그래서 이 할은 남겨두지 있지 않았느냐?
상이 크게 인심 쓰듯 말했다.
내내 침묵하던 예가 끼어들었다.
-상, 말이 심하오. 나와 화에게 고작 이 할이라니. 따지고 본다면, 아이의 심성이 저리 곧고 바르게 큰 것이 어디 상 덕분이겠소. 상에게 아이를 맡겨두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오.
악과 화가 예의 말에 동참했다.
-난감만 했을까. 개차반 안 되면 용했지.
-내 말이 그 말이다.
-이것들이, 툭하면 나한테만 시비를 거는구나.
-네가 시비를 걸게 만들지 않느냐.
-오냐, 한 놈으로 안 되니 이젠 세 놈이 연합하겠다, 이 말이지? 좋다, 내 이런 불의에 굽힐 사람이 아니다. 세 놈이 아니라, 백 놈이라도 상대해 주마. 덤벼라!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상의 글씨가 서탁을 검게 물들였다.
이레가 서둘러 그들을 말렸다.
-할아버지들, 왜 이러십니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십학사와 어울려 어떤 의논과 궁리를 하였는지…….
-아참!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길 들으려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상, 저 작자와 글을 섞는 바람에 깜박 잊었구나.
뒤늦게 서탁 앞을 지켰던 본연의 목적을 떠올리며 화가 한탄했다.
-덤벼라, 덤벼!
도발하는 상의 글씨가 다시 서탁을 채웠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화가 물었다.
-그래, 십학사의 거북이가 뉘라 했던고?
-왜? 이제 와 생각하니 겁이 난 것이냐?
-왕의 팽례입니다.
-다들 꼬리를 내린 걸 보니, 내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군.
-왕의 팽례라면, 네 오라비가 아니더냐.
-맞습니다.
-왜 아무도 대답 없는 것이냐?
-여인과 사내, 양반과 천민,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을 고루 모아 한 자리에 앉히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예가 감탄했다.
악의 악필이 뒤따랐다.
-세월에 따라 각기 호칭은 다르겠으나, 저희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무리를 짓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만났다 하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자들이 나라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니. 정녕코 믿기질 않는구나.
-내 글이 안 보이느냐?
-진심이 진심을 만나는 법이니. 네가 진심으로 그들을 이끈다면 그자들 역시도 백성을 염려하는 그 초심을 잃지 않을 게야.
화의 충고에 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뭐냐? 또 안 보이는 거냐? 분명 글씨는 사라졌는데…….
-참, 그것들은 어찌 되었느냐?
-네?
화의 물음에 이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전에 임산부를 납치하던 어리석은 후궁이 있었지 않았느냐.
-아, 문녀 말이군요.
숙의 문씨와 그의 오라비의 근황을 묻는 화에게 이레가 답했다.
-얼마 전, 숙의 문 씨의 첩지를 삭탈하고 사가로 내보냈습니다.
감히 왕실을 기망한 죄를 물어 형운은 궁에 머물던 문 씨를 궁 밖의 사가로 내보냈다.
마지막까지 포악을 떨며 손톱을 세우던 문녀는 전각의 문고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그러다 오라비의 죽음을 전해 받고 혼절하였다는 소식도.
-그 집안은 어찌 되었느냐? 옹주와 손을 잡고 은백을 궁지에 몰았던 홍가(洪家)가 다시 정승이 되어 대궐로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악의 질문에 이레는 홍인한을 떠올렸다.
정후겸과 결탁하여 영의정이 되었던 그의 운명은 왕께서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급한 마음에 노마님이 계시는 큰댁의 문을 두드렸으나, 굳게 닫힌 솟을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홍인한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이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겼으나, 제 목숨 귀했던 터라.
홍인한은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금괴 상자를 들고 청나라 사신이 머물던 태평관을 찾았다.
조선에 있었다간 꼼짝없이 죽게 생겼으니.
그간 친분을 쌓은 청나라 사신의 도움을 받아 청국으로 달아날 속셈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사신에게 전했던 금괴 상자에서 나온 것은 금괴가 아닌 조약돌뿐이었다.
이 어찌 된 상황인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홍인한은 뒤늦게 며느리 이 씨가 금괴를 진즉 모두 빼돌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뛰는 시부 위에 나는 며느리로구나.
-끼리끼리는 그 집안을 두고 나온 말이로다.
화와 악의 글씨가 연달아 서탁을 채웠다.
권력 앞에선 참으로 헐후해지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요, 약조였다.
끝끝내 홍인한은 다시 유배지로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며느리 이 씨의 마지막도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시부의 금괴를 몰래 빼돌린 그녀는 결국 그 모든 재물을 투전판에서 탕진하고 말았다.
입안이 씁쓸해진 이레는 서탁 옆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 사이, 다시 글씨가 떠올랐다.
-정녕, 내 글씨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냐?
상의 허허로운 필체가 서탁을 메웠다.
내내 무심했던 것이 죄스러워 이레는 서둘러 답을 하려 하였다.
찰나.
-허허, 회자정리라. 본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자연스러운 것을. 여전히 나는 이런 것엔 익숙지 않군.
상의 혼잣말이 서탁을 메웠다.
-화, 내가 말했던가? 내 언제나 그대의 다정함을 부러워하였다. 나는 그리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으니. 애초 그럴 마음이 아니었으나, 왜 그리 겉으로 드러내는 건 불퉁한 속내뿐인지…….
“…….”
-예, 그대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단정하였지. 내 그런 그대의 면모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사람이란 무릇 위급하고 당혹한 순간엔 흐트러지기에 십상이었건만. 그대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그 단정함을 내, 몰래 흠모하였지.
늘 성화를 내는 상 할아버지였다.
그 모습이 그분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이렇듯 깊은 마음이 숨은 줄은 처음 알게 되었다.
“상 할아버지…….”
이레는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을 부르듯 상을 불렀다.
그 부름을 들었을까?
상이 서탁을 통해 이레를 불렀다.
-아이야…….
다정한 부름과 함께 상의 담담한 필체가 떠올랐다.
-가끔은 네가 정말 내 손녀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만큼이나 내게 너는 소중한 존재였으니.
“……!”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로 인해 내가 웃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로 인해 마음 졸인 날도 한두 날이 아니었지. 너는 여기 서탁에 모인 우리가 마음으로 키워낸 존재란 걸 잊지 마라. 그러니 너 자신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단단해져야 한다.
“네, 할아버지. 그리하겠습니다.”
서탁을 향해 이레는 머리를 조아렸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서탁의 글씨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상의 마음을 한껏 들이마신 종이는 시침을 뚝 뗀 채 본연의 하얀빛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서탁을 메웠다.
-그럼 이만 가야…….
상의 외로운 인사가 다시 떠오르는 순간.
-나는……!
악필이 상 할아버지의 글씨를 덮었다.
***
-응?
-왜 나는 아무 말도 없는 것이냐?
-뭐야? 내 글씨가 보이느냐?
항의하는 악에게 상이 물었다.
-보인다. 보였다. 지금까지 줄곧! 내내!
-뭐, 뭐라! 그, 그럼…….
-다 봤다. 그런데 왜 나는 아무 말도 없느냐? 다른 사람한테는 다 뭔가 말하면서 나한텐 왜 아무 말도 없어?
따지는 악을 향해 상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런 잡귀를 보았나.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헛소리냐?
-헛소리는 무슨! 내 다 봤다. 화는 다정하다 했고, 예한테는 단정하다고 했질 않으냐.
-나……난, 절대 그런 적 없다!
상은 시침을 뚝 뗐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썩은 눈으로 보긴 뭘 봤다고 그래?
-썩었다니, 누구 눈이 감히 썩었다고 하는 것이냐?
-너! 네놈!
-무어라?
다시 옥신각신, 설전을 주고받는 상과 악 사이로 화의 글씨가 끼어들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화가 글을 이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니.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히지 않길 바라노니.
이번에 예의 글씨가 떠올랐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잊히는 것이라 했소. 망각이란 것이 이럴 땐 서글프오.
-길고긴 인생. 저마다 걸어온 길을 어찌 다 되짚을 수 있을까. 그래도 혹시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언제나 우리가 함께였다는 건 기억해 주겠는가?
-흠흠, 뭐 그렇게 원한다면……그러던가.
새초롬한 상의 대답이 돌아왔다.
서탁 저편…… 피안의 세상에서 미소 짓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상의 글씨가 사라지기 무섭게 이레가 답을 이었다.
-네, 할아버지.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잊을까요?
아이야,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할아버지들의 부름을…….
한 걸음 뗄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지하고 걸어왔음을 제가 어찌 잊을까요.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들도 잊지 마십시오.
저와 나눴던 이야기.
저게 들려주셨던 세상.
제가 사는 이 세상과 산하,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숨붙이들.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작고 조그마한 계집아이를.
잊지 마십시오.
언제까지고 기억해주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함께 걸어주시어, 외롭지 않았습니다.
울 때마다 달래주시어, 서럽지 않았습니다.
***
“울었소?”
새벽녘.
밤과 어둠이 서로 맞붙어 실랑이를 벌이는 시각.
눈 밑에 지친 그늘을 매단 형운이 이레를 찾아왔다.
할아버지들과의 필담 끝에 이레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더랬다.
딴에 서둘러 물기를 지웠건만.
형운의 예리한 눈씨를 속일 수 없었다.
그의 엄지가 그녀의 눈언저리를 더듬었다.
“어찌 울었소?”
“…….”
“누가 울렸소?”
“…….”
다정한 물음이 연신 이레의 뺨에 와 닿았다.
“행복하여 울었습니다.”
“행복하면 웃어야지.”
“벅차도록 행복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녕 행복하여 운 것이오?”
“네.”
물끄러미 다가오는 시선을 향해 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리며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오늘 하루는 어떠했습니까?”
“좋았소.”
“그리고요?”
“지루하기도 했고…….”
“또요?”
“중전이 그리웠소.”
“……!”
느닷없이 날아든 고백에 이레는 얼굴이 붉어졌다.
홍시처럼 붉어진 그녀를 향한 형운의 입가에 개구진 미소가 떠올랐다.
“어찌 그리 얼굴이 붉소?”
“날이 많이 눅어졌나 봅니다.”
팔랑팔랑, 손 부채질을 하며 이레가 변명했다.
그럼에도 쉬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처음 듣는 고백도 아니건만.
이렇게 무심히, 툭 내뱉는 그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사방으로 날뛰었다.
처음 연모의 정을 느낀 어린 소녀처럼…….
“중전은 오늘 하루 어찌 보냈소?”
수줍어하는 이레를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듯, 형운이 물었다.
그의 은근한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맺혔다.
다가온 형운의 잇새로 뜨거운 숨결이 새어나왔다.
그의 코끝이 이레의 오똑한 콧날을 간질였다.
“그대도…… 내가 그리웠소?”
형운의 물음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간질거리던 그의 코끝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귓불을 어루만졌다.
꼴깍,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바싹, 입술이 하얗게 말랐다.
허둥대던 이레는 기어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은근한 눈길로 짓궂게 그녀를 놀리던 형운은 느닷없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전.”
“잠시 뒤뜰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뒤뜰은 왜?”
“더워서요.”
그 당당한 대답에 형운의 입에서 풀썩 웃음이 터져 나왔다.
쪼르르 날다람쥐처럼 그의 품을 벗어난 이레는 서둘러 중궁전의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형운이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같이 가오.”
조금은 밭은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던 이레가 사뿐, 몸을 돌렸다.
뱅그르르 반원을 그리자 열두 폭 스란치마가 꽃송이 피어나듯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어서 오십시오.”
이레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형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작고 하얀 손 위로 단단한 힘이 맞닿았다.
엄지와 엄지, 검지와 검지, 중지와 중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손이 마치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처럼 하나가 되었다.
삶의 동반자.
같은 보폭으로 걷는 동행인.
이레와 형운의 머리 위로 꼬리별 하나가 떨어졌다.
***
“중전마마, 중전마마.”
새벽녘에 잠이 들었던 터라.
오늘 아침은 어울리지 않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급한 부름에 이레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
묻는 그녀의 턱밑으로 불쑥 하얀 얼굴이 다가왔다.
“저이옵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중궁전을 찾은 한서로의 모습에 이레는 고개를 갸웃했다.
“만사여의가 아닌가.”
“네, 중전마마.”
“그대가 어쩐 일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안녕하네만, 그대는 어찌 눈 밑이 그리 어두운가?”
“여쭙고 싶은 게 있어 한숨도 못 잤습니다.”
“무엔가?”
“어제 새로 십학사가 되신 거북 학사 말입니다.”
한서로의 말끝에 이레 역시 간밤의 일을 떠올렸다.
깜빡 잊고 있었다.
기대를 본 한서로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음을.
그렇지 않아도 나중에 만나면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어제 했던 말, 무슨 뜻인가?”
한서로, 그녀를 한양으로 부른 사내.
그 사내가 다름 아닌 기대라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이레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대신 한서로는 한시가 급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았다.
“그분, 어디 있습니까? 어딜 가야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