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사흘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화재로 황량해진 수월의 심처.
이레의 놀람 가득한 목소리가 방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십학사의 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수월을 찾은 그녀에게 한서로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만사여의를 태운 가마는 이미 수월을 떠났노라고.
그리고 그 가마엔 탄 사람이 다름 아닌 사슴이라는 사실을.
“사슴이……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랍니까?”
황당함과 의아함이 이레의 뇌리를 채웠다.
한서로가 입을 열었다.
“십학사를 정화하라는 해의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옵니다.”
“십학사의 정화라면…….”
불길한 예감에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이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앞을 한서로가 막고 섰다.
“못 나가십니다.”
“비키세요. 지금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도…….”
입술에 일렁이는 경련을 애써 삼킨 한서로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도 알고 이 일을 작정한 것이옵니다.”
“알고 있다……했습니까?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갔단 말입니까?”
“네. 그리고 제게 당부도 했습니다.”
“당부라니?”
“행여 마마께서 자신의 뒤를 쫓아 오려 하신다면, 절대 그러지 못하게 붙잡으라며 당부 또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어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순 없습니다.”
이레는 머리를 저었다.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사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차마 입에 담기 무서운 변고라도 생긴다면, 그 죄책감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일평생 가슴에 대못이 박인 채로 살아가야 하리라.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야 했다.
어떻게든 불행을 막아야 하리라.
이레는 앞을 막은 한서로를 힘껏 밀었다.
한서로 역시 밀리지 않으려 앙버티고 섰다.
난데없는 힘겨루기가 벌어졌고, 한서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들 있는가!”
그녀가 방문 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무섭게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실 수 없도록 지키겠나이다.”
천호와 백호가 번갈아 대답했다.
이미 언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문앞을 단단히 지키고 선 두 호위무사의 그림자가 이레의 눈동자에 들어와 박혔다.
한서로를 밀어내던 팔에 힘이 빠졌다.
밑동 잘린 허수아비인 듯 이레는 풀썩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왜……?”
숨소리 같은 혼잣말에 물기가 서렸다.
빈궁전을 찾아왔던 사슴이 떠올랐다.
자신과 손을 잡자는 이레의 제의에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지으며 거절하던 그 얼굴이…….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던 허허로움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왔음을 왜 눈치채지 못한 걸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오? 내가 무엇이라고…….”
***
“뭘 잘못 먹었슈?”
사슴을 바라보며 박진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짝이 왜 여 있는 거유?”
“그러는 너는 예서 뭐 하는 것이냐?”
“뭐여? 워째 말하는 투가 기생이 아니라, 영락없이 양반댁 아가씨네유.”
“한때는 그런 시절도 있었지.”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과거의 어느 날을 회상하며 사슴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거북의 입가에 피식, 조소가 떠올랐다.
“구구절절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더니. 그짝도 그런 모양이네유. 근디 중요한 건 지금이쥬. 지나간 세월 같은 건 말짱 황이란 말 몰라유?”
“그래,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하지만 아느냐?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지나온 과거라는 것을.”
“…….”
“지금의 너와 내가 이런 모습으로 만난 것 역시 망할 놈의 과거 때문이지.”
“됐슈. 나가 지금 한가하게 그짝 신세타령 들어 줄 시간이 없슈.”
“잘 되었구나. 나 역시 네게 긴 이야길 하고 싶진 않았으니.”
“모처럼 마음이 맞았네유. 그럼 말해봐유. 그짝이 왜 저기 타고 있었던 거래유?”
“살리고 싶어서.”
“지금 뭐라 했슈?”
“그분, 살리고 싶구나.”
사슴의 말에 박진봉은 한동안 눈만 끔뻑끔뻑하였다.
그에게 사슴의 진심 담긴 말이 이어졌다.
“네가 원하는 걸 주마. 대신 사람 백정 노릇, 그만두지 않겠느냐?”
“뭔 개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한대유?”
“원하는 거라면 뭐든 주마. 네 계집이 되어달라 한다면…… 그렇게 하마.”
“나참, 살다 살다 이런 꼴은 또 처음이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박진봉은 낫 끝으로 정수리를 긁적거렸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쥬.”
“나를 주마. 대신 사람 죽이는 짓, 그만둬.”
“…….”
박진봉은 한참을 말없이 사슴을 응시했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왜유?”
“뭐?”
“그짝이 왜 그런대유?”
거북의 물음에 사슴이 대답했다.
“이제라도 사람처럼 살고 싶다.”
“…….”
“너도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 노릇 하고 싶어서 십학사에 들어왔다고. 이제라도 나와 함께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으냐? 더는 짐승처럼 살지 말고 사람처럼…….”
“싫네유.”
박진봉은 사슴의 말허리를 잘랐다.
“이게 그렇드라구유. 처음에는 분허서 이 짓거리 시작한 건 맞아유. 이래 봬도 나가 단양에선 알아주는 아전 집안이유. 양반만큼은 아니더래도 동리에서는 이름 석자만 대면 알아서들 대접받았슈. 근데 단양 땅 넘어서니께, 나가 암껏도 아니란 말이쥬.”
“…….”
“꼴에 양반이라고 쥐뿔 가진 것 없는 놈이 발길질해도 맞아야 허고, 저 양반놈이 발바닥 핥으라면 핥아야 하는 신세더란 말이쥬. 나가 처음으로 사람 죽인 게 언젠 줄 알아유?”
박진봉은 단양 땅을 떠났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만났던 한 여인의 얼굴도 새록새록 추억처럼 생각났다.
“어느 양반댁 금지옥엽이었슈. 나가 그렇게 마음이 빼앗긴 건 첨이었쥬.”
오가는 길에서 우연히 스치듯 지나친 여인이지만,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그 고운 걸음걸이, 쓰개치마 밖으로 살며시 보였던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날.
하지만 중인인 그의 신분으론 언감생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마음이었다.
끙끙 홀로 마음 앓이 하던 어느 날, 그는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인의 담벼락을 넘고 말았다.
그러나 미처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잡히고 말았다.
그날.
박진봉은 정말 딱 죽지 않을 만큼 매타작을 당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양반댁 규수를 마음에 품은 죄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때린대유? 내가 손이라도 한번 만졌다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거유. 말이라도 한번 섞어봤다면 분통하지나 않쥬.”
석 달 열흘.
주막의 봉놋방에서 끙끙 앓고 일어난 박진봉은 그 길로 낫을 들고 나섰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다시 그 양반댁 담벼락을 넘었다.
그리고 규수의 방으로 숨어들어 그녀를 범했다.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한 여인을 마음껏 유린한 그는 화근을 잘라내듯 여인의 목숨마저 끊어버렸다.
“나가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쥬. 안 그래유?”
양반댁 아가씨가 그런 일을 당하고 어찌 살 수 있을까.
죽음.
그것은 박진봉이 여인에게 베푼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였다.
팔딱거리던 심장이 멈출 때까지 그는 여인의 목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알게 되었다.
생(生)을 애원하는 나약한 존재 위에 군림하는 기쁨을.
남의 생명을 끊는 순간, 그의 손끝에 닿는 아찔하고도 짜릿한 감각을.
그 짜릿한 생경함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여인을 범할 때보다 더 황홀했고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죽일 놈.”
박진봉의 이야기에 사슴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이제야 연유를 알게 되었다.
이 사내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소름이 끼쳤던 이유.
자신을 훑는 저 순박한 눈동자 너머에 숨어 있는 지독한 악랄함.
그녀의 본능은 일찌감치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십학사가 되었다는 네놈의 말은 그저 변명이었구나.”
처음부터 거북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피에 굶주린 사나운 짐승에 불과하였다.
“뭐, 아니라고는 말 못 하네유.”
“이제 어쩔 셈이냐?”
“죽여야쥬.”
“무어라?”
“이렇게 자꾸만 앞길을 막으면 영 거슬린단 말이쥬. 그러니 죽여야쥬.”
박진봉이 한 걸음, 한 걸음 사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온 만큼 사슴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지척에서 마주 서고 말았다.
“나가 이렇게 공과 사가 철저해유.”
씨익, 박진봉의 얼굴에 비린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둠을 가로 지르는 서늘한 소음이 들려왔다.
“나쁜놈…….”
목덜미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사슴은 진득한 액체가 흐르는 목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하지만 울컥대는 핏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거 아느냐? 여인이 한을 품으면…….”
입안에 꽉 찬 핏물로 인해 사슴은 말을 끝낼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졌다.
전신의 힘이 쭈욱 풀리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허물어지는 사슴을 거북이 끌어안았다.
그러곤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품어유. 한(恨)이든, 정(情)이든. 워쨌든 마지막엔 나를 품었다는 게 중요한 거쥬.”
거북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를 외면한 그녀의 눈동자는 나뭇가지로 가려진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박진봉은 쯧 혀를 낮게 찼다.
그는 죽어가는 사슴을 바닥에 눕혔다.
그러곤 태연한 얼굴로 돌아서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발짝 옮겼을까?
불현듯 박진봉이 멈춰 섰다.
다시 사슴의 곁으로 돌아온 그는 품에서 면사를 꺼냈다.
거북이 수 놓인 면사.
먼 허공을 응시하는 사슴의 얼굴 위로 거북의 면사가 내려앉았다.
사슴의 아름다운 얼굴이 면사 뒤로 가려졌다.
아직 멈추지 않은 핏물이 면사를 붉게 적셨다.
***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으니 (相思相見只憑夢)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儂訪歡時歡訪儂)
바라거니, 언젠가 다음날 밤 꿈에는 (願使遙遙他夜夢)
함께 길을 떠나 오가는 길 중간에 만나기를 (一時同作路中逢)
-황진이 (相思夢)
*
짧은 시간이 흘렀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제 얼굴을 덮고 있는 거북의 면사를 치우고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밤하늘을 본다면, 그 밤하늘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의 얼굴도 떠오를 텐데…….
평생을 살아오면 한 번도 잊지 않았던 얼굴이었건만.
죽음의 목전에 이르니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제 동창 문 아래로 살금살금 다가오던 소년의 발소리도…….
그의 웃음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새콤달콤한 청귤의 향기만이 희미하게 코끝을 맴돌 뿐이다.
오라버니, 내가 이리 어리석습니다.
밉고 원망할 땐, 눈을 감고도 오라버니 얼굴 그릴 수 있었건만.
지금은 어째 기억조차 못 할까요.
오라버니, 내가 찾지 못하면…… 오라버니가 나를 찾아 주시어요.
그 옛날 내게 보여주었던 그 하얀 웃음…… 내게 다시 보여주시어요.
밭은 숨을 연신 몰아쉬던 사슴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뚝.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들썩거리며 요동치던 가슴이 고요해지고, 그녀를 괴롭히던 밭은 숨결도 평온해졌다.
***
들것에 실린 사슴이 수월로 돌아왔다.
떠날 때 스스로 가마를 탔던 그녀는 이제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버선발로 수월의 마당으로 내려선 이레는 사슴의 얼굴을 덮고 있는 면사를 거둬냈다.
미처 감지 못한 사슴의 눈동자가 그녀의 망막을 아프게 찔러왔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사슴을 품에 안은 이레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러곤 붉은 핏물로 얼룩진 사슴의 손을 맞잡았다.
“고맙습니다.”
언젠가 사슴이 자리를 뜬 이레를 향해 보냈던 인사.
그러나 이레에게 전해지지 못했던 사슴의 마음처럼, 이레의 마음도 사슴에게 닿지 않았다.
사슴을 끌어안은 이레의 어깨가 한없이 떨렸다.
눈물이 파르르 요동치는 턱 끝에 맺혔다.
한서로가 다가와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국장 중이라 요란을 떨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길, 곱디곱게 떠날 수 있도록 저희가 살필 것이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그러니 빈궁마마, 마마께선 날이 밝기 전에 궁으로 돌아가시어요.”
이레의 품에서 사슴을 떼어내며 한서로가 말했다.
마음 같아선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레는 얼굴에 얼룩진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미안합니다. 언제나 뒷갈망만 맡깁니다.”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음성에 서늘한 날카로움이 담겼다.
운다고 하여 사슴이 다시 살아날 순 없었다.
지금은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독한 자들.
저들이 원하는 건 티끌 하나조차도 내어주지 않으리라.
사슴의 핏물로 흠뻑 젖은 거북의 면사를 움켜쥐었다.
“그럼 뒷일을 부탁합니다.”
“걱정 마옵소서.”
“언제고 이 은혜, 꼭 갚을 겁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조용히 허리를 굽히는 한서로를 뒤로하고 이레는 가마에 올랐다.
둥둥둥.
4경(새벽 2시)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신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동궁께서 보위에 오를 날까지 이제 이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