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닷새
동쪽을 향해 머리를 뉜 왕의 체온은 여전히 따뜻하였다.
여느 때처럼 깊은 잠을 자는 듯 보였다.
상선이 왕의 코와 입에 솜을 얹었다.
먼지처럼 가벼운 솜털이 미동도 않았다.
“할바마마……!”
임금의 머리맡을 지키던 형운은 어깨를 꺾으며 울음을 삼켰다.
행여 소란한 호곡(號哭)이 망자의 발길을 무겁게 할까 싶어, 그저 속으로 삼키고, 삭혔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은 검은 그을음처럼 그의 폐부를 꺼멓게 뒤덮었다.
방안으로 스며든 잿빛 바람이 촛불을 흔들어 와르르 무너지는 형운의 모습을 감춰주었다.
숨죽인 눈물이 왕의 처소를 가득 메웠다.
눈물을 머금은 상선이 왕의 곤룡포를 들고 대전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상위복(上位復).
넋이여, 돌아오소서.
북망산 가는 길 멀고 멀다지만, 혼백에겐 문밖의 한 걸음일 뿐이니.
상위복(上位復).
혼백이여, 이 방을 떠나지 마옵소서.
정다운 사람, 그리운 마음.
아직 눈에 담지 못한 산하가 예 있으매, 어찌 매정하게 떠나시려 하오니까.
상위복(上位復).
귀한 넋이여, 외로운 혼백이여.
가지 마옵소서.
다시 돌아오소서.
용마루 위로 올라선 상선이 붉은 곤룡포를 흔들며 구슬피 애원했다.
그러나 기어이 떠나겠다 작정한 듯.
왕의 체온은 급격히 식어갔다.
곤하였다.
그래도 일평생 잘 놀다 가노니, 잡지 마라. 부르지 마라.
훌훌 육신을 털어낸 영혼은 붙잡는 손길 뿌리치고 그리 영영 떠나버렸다.
소리 없이 떨어지던 형운의 눈물은 서러운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가시었다.
아바마마 잃고 망연자실한 것이 엊그제 같건만.
이제는 할바마마마저도 그를 떠나 버렸다.
소중한 이를 먼저 보내야 하는 것이 운명이려나.
바닥을 짚은 그의 두 손에 와락 힘이 들어갔다.
툭툭.
설운 눈물이 바닥으로 번져나갔다.
“전하!”
“주상전하!”
문밖을 지키던 대신들의 통곡 소리가 너울이 되어 일렁거렸다.
형운을 비롯한 신하들은 입고 있던 관과 옷을 벗었다.
버선과 신까지 벗은 다음 시리게 하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했던 세상은 다시 겨울을 맞은 듯 새하얗게 변했다.
국장도감이 설치되고, 망자를 떠나보낼 차비가 시작되었다.
창졸간, 나라의 아비를 잃은 백성들은 궁을 향해 눈시울을 붉혔다.
그네들의 울음은 온전히 형운에게로 날아와 그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형운은 명치에 묵직하게 쌓인 눈물을 뱉을 길이 없었다.
참아야 했다, 군주였으므로.
견뎌내야 했다, 그것이 그의 마땅한 도리였으니.
눈물도, 울음도 모두 자신의 안으로 갈무리하는 것이 제왕의 올바른 덕이라 배웠다.
슬픔을 내색하는 방법은 배운 적 없다.
소리 내어 우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런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어떤 서책에서도 그것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지독한 아픔을 억누르려 형운은 어금니를 악물고, 입술을 매섭게 말아 물었다.
단호히 안으로 말아 문 입술 위로 검붉은 피멍이 낙인처럼 찍혔다.
***
궐문이 안으로 단단히 잠겼다.
상(上)께서 승하하시니.
도성의 병사들은 궁을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싸고, 행여나 삿된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경계를 철저히 하였다.
왕께서 꽤 오랫동안 자리보전하였던 터라,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생각했건만.
상실의 슬픔은 쉬이 무뎌지지 않았다.
숨죽인 동궁의 울음은 밤이 되도록 끊이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레의 가슴이 타들어 갔다.
형운은 종일토록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곤,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미음이라도 한 술 젓수게 하고 싶었으나, 앞으로 사흘 동안 궐 안의 누구도 음식에 입을 댈 수 없다는 법도에 발이 묶였다.
“저하…….”
이레의 읊조림에 한숨이 깃들었다.
하얗게 마르고 갈라진 형운의 입술이 그녀의 눈에 아프게 맺혔다.
반나절 사이, 움쑥해진 그의 뺨을 보자 이레의 심장이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쳤다.
혈육을 잃은 슬픔일랑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허나, 저러다 형운마저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그의 어깨가…… 시린 얼음을 들춰 멘 듯 춥고 외롭게 보이는 그의 등이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손잡아주고 싶었다.
연신 흔들리는 어깨를 한껏 끌어안고, 그의 시린 등을 자신의 체온으로 녹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법도, 법도, 법도…….
끝없는 격식과 절차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가엾은 정인을 눈에 담은 채 이레는 힘없는 발길을 빈궁전으로 돌려야 했다.
“빈궁마마…….”
무거운 걸음으로 처소로 들어서자, 그녀를 기다리던 손님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만사여의, 한서로였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힘없이 자리에 앉으며 이레가 물었다.
“걱정이 되었나이다.”
궁 안의 불행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한서로의 마음씀이 진실로 고마웠다.
“나는 괜찮습니다.”
맥없는 미소가 이레의 얼굴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그 쓸쓸한 웃음을 보며 한서로가 용무를 덧붙였다.
“전해드릴 물건도 있나이다.”
“물건이라 했습니까?”
한서로는 대답 대신 제 뒤에 서 있는 금정을 돌아보았다.
금정이 제법 커다란 나무함을 이레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무엇인가요?”
“열어 보십시오.”
말을 아낀 한서로는 나무함을 눈짓했다.
이레는 그녀의 눈길에 따라 나무함을 열었다.
이내 그녀의 눈망울이 놀람으로 화등잔만 해졌다.
“이건…….”
“자명종입니다.”
얼마 전, 수월에서 열린 경매에 나왔던 물품이었다.
사계노인이 가장 공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워낙에 희귀한 것이라, 엄청난 금액으로 팔렸더랬다.
그 귀한 것이 누구의 품에 있을까 궁금하였는데…….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겁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전해드릴 뿐입니다.”
“누가 나에게 이 귀한 물건을 전하라 했단 말입니까?”
이레가 물었다.
한서로의 대답이 들려왔다.
“경매가 끝나고, 어떤 노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뉘시라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신 것을요.”
“설마…….”
“네, 주상전하셨사옵니다.”
“그분이 왜……?”
“곧 세상이 하얗게 변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봄이 지척이니, 사방에 초록빛이 가득할 것인데, 그 어인 말씀이냐 감히 여쭈었나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자연의 섭리로 만들어진 빛깔이 아닌 사람이 만든 색이라 하였습니다.”
“…….”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그때 이것을 빈궁께 전해달라셨습니다.”
“……!”
언제나 대전 안에서만 머무셨던 분이 아니신가.
그런 분께서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계시었을까.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임금이란 앉아서도 천 리 밖을 보는 존재라, 세상의 어떤 비밀도 그분이 모르는 건 없다 하였다.
그녀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한서로가 이야기를 이었다.
“눈치로 보아 그분께서 최근에 마마와 수월에 관련한 비밀을 알아내신 듯합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것도 아시는 눈치였습니까?”
자신이 가짜 만사여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으니, 십학사와 관련한 것도 알고 계셨을까?
걱정하는 그녀를 한서로가 안심시켰다.
“아직 그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듯하셨습니다.”
“…….”
다행이려나.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분께서 십학사의 존재를 알게 되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물음이 꼬리를 이었다.
한없이 이어지는 궁금증의 제일 마지막을 차지한 건 눈앞에 있는 자명종이었다.
평소 검소와 절약이 신념이셨던 분이 아니신가.
그런 분께서 이리 비싼 것을 사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분께서 이걸 제게 전하라 했습니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서찰도 있습니다.”
의문에 해답하듯 한서로가 한 통의 서찰을 이레에게 건넸다.
서둘러 서찰을 꺼내 펼쳤다.
<아이야.>
첫머리를 장식한 다정한 부름.
다시는 그 다정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생각하니,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입안에 가득 고인 뜨거운 숨결을 삼키며 이레는 한 글자, 한 글자 아끼는 마음으로 서찰을 읽어내려갔다.
*
아이야, 보아라.
이 글을 읽을 네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혹여 이 늙은이의 죽음에 호곡(號哭)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로 인하여 몸이라도 상한 건 아닌지.
동궁 또한 나로 인하여 수심이 깊어진 것은 아닌지.
하나로 시작된 걱정이 만 가지로 갈래를 뻗어 나가는구나.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수다한 잡념과 근심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니.
세월이 흐르면 몸만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마저도 늙는 모양이다.
아이야, 네가 이해해 주려무나.
너로 인해 내 마지막 생이 참으로 즐거웠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 이리 사설이 길어졌느니.
아느냐?
내 어느새 여든의 세월이 넘도록 살았구나.
뒤늦게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니,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더구나.
그저 하루하루 죽어가는 늙은 몸뚱이와 서러운 기억뿐이로다.
그런 단조로운 내 생이 너로 인해 즐거웠느니라.
아이야, 네가 들려준 백귀들의 이야기…… 참으로 재미났었다.
비밀 하나 말해주랴?
내 처음에는 네 이야길 그저 허황하게 꾸며낸 이야기라 생각했단다.
헌데, 나도 네가 들려준 이야기만큼이나 신비한 조화를 경험하였으니.
문득 네가 들려준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만들어 낸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 생각이 미치니, 네가 만났던 인연들이 무척이나 궁금하더구나.
하지만…….
알고 있느니.
내게는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그 재미난 이야길 더는 들을 수 없으니.
그것이 내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믿겠느냐?
진즉 알았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또한, 안타깝구나.
고맙다, 미안하다.
이 쉬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데 인색했던 내 삶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후회란 어찌하여 늘상 이리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고마웠다, 아이야.
그리고 하나만 부탁하자꾸나.
동궁을 지켜다오.
언제나 바르고, 단정하려 애쓰던 어린 동궁이 늘 흐뭇했단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아이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언제인지…… 생각나질 않더구나.
많이 웃게 해다오.
함께 많이 웃길 바라노라.
한껏 울게 해다오.
네 앞에선 이 나라의 군왕이 아닌 그저 한 사내가 되어 아이처럼 울 수 있게 품을 내주지 않겠느냐.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목숨붙이의 생은 변화무쌍하여, 언제, 어떻게 돌변할는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란 것은 늘 정직하고 공평하며, 그리고 어김없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반복할 것이니.
제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도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 기쁜 세월이 기다리고 있을 터.
멀지 않은 훗날…….
나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동궁에게 조금만 더 견뎌내라 전해다오.
또한, 이 할아비가 남기는 마지막 선물을 동궁에게 전해다오.
인즉천.
사람이 하늘이니.
사내의 하늘이 아닌 군주의 하늘을 선물하노라.
이 자명종이 동궁에게 힘이 될 것이다.
세상을 다 가졌노라 자만하였거늘, 떠날 차비를 하자니 이런 부탁을 할 데라곤 아이야, 너밖에 없구나.
그러니 아이야…….
오래도록…….
영원히…….
동궁과 함께 걸어다오.
더디면 더딘 대로, 빠르면 빠른 걸음으로 그 아이와 이 삶을 나란히 살아가길 부탁하노라.
*
“사내의 하늘이 아닌 군주의 하늘……?”
무슨 뜻일까?
서찰의 말미(末尾)에 쓰인 수수께끼 같은 말을 곱씹으며 이레는 자명종을 유심히 살폈다.
커다란 사각의 몸통 위에 그려진 동그란 동판.
그 주위로 십이간지가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황금색의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이 멈춰서 있었다.
“고장이 났는가 봅니다.”
멈춘 자명종을 보며 이레가 말했다.
한서로가 생긋 미소 지으며 자명종의 오른쪽 몸통 아래에 있는 태엽을 한껏 돌렸다.
이윽고,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이레는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니, 황금빛의 긴 바늘 끝이 둥근 동판 북쪽 중앙에 멈췄다.
그리고 댕, 댕, 댕…….
정확한 율려(律呂)와 궁상(宮商)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가락이 유시(酉時: 오후 5시)가 되었음을 알렸다.
임금의 말처럼 그 신묘한 기물 속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고, 또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하였다.
군주의 하늘.
군주의 진정한 힘.
그게 대관절 무엇이관데……?
***
서글픈 흰빛이 조선의 산하를 뒤덮은 첫 번째 날이 저물었다.
눈물로 얼룩진 화완이 처소로 돌아왔다.
정후겸이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화완옹주는 얼굴에 가득한 물기를 지웠다.
조금 전까지 슬픔으로 가득했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낯빛으로 돌아왔다.
아니,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아바마마께서 좀 더 버텨주실 줄 알았건만.”
옹주의 미간에 주름이 깊었다.
맞은편에 앉은 정후겸의 표정도 무거웠다.
“방금 관상감에서 연통을 받았나이다.”
“관상감에서?”
“동궁의 즉위식 날이 정해졌다 하옵니다.”
임금의 자리를 오래도록 비울 수 없으니, 관상감에서 서둘러 날을 잡은 것이렷다.
“언제라더냐?”
“닷새 후라 하였나이다.”
“닷새 후라…….”
화완의 입술 귀가 얄망스레 비틀렸다.
옹주의 표정을 살피며 정후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오판하였사옵니다.”
“무어라?”
“어린 범이 생각보다 영리하고 영악하니. 좀 더 노련하고, 훨씬 더 비열한 사냥꾼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그 말은…….”
화완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붉디붉은 핏빛을 눈동자에 머금었다.
“적당한 자가 있느냐?”
“한 사람 있질 않사옵니까. 원하는 걸 손에 넣기 위해선 기꺼이 손에 피 묻힐 자.”
“홍 대감을 말하는 것이렷다?”
“…….”
정후겸은 침묵했다.
긍정의 의미였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삭탈관직한 자가 아니더냐. 이미 승하하신 분의 명을 어찌 바꿀 수 있을까?”
“소자가 대책을 마련하겠나이다.”
“믿을 것이다.”
화완을 향해 정후겸은 특유의 나른하고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패배의 쓴맛은 충분히 맛보았다.
동궁에게 어떤 책사가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에겐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절대적인 악의.
순수는 그 앞에 무력(無力)하리라.
동궁이 행하는 정도(正道)는 고지식한 자들의 항변일 뿐이다.
진심은 어리석은 자의 관용이었으며, 선행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자들의 오만이었다.
정후겸의 눈동자에 서늘한 이채가 떠올랐다.
한순간.
칼에 찔린 상처에서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다.
언제나 눈앞의 세상이 아닌 아득히 먼 곳을 보는 듯했던 그의 눈동자에 명징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원한다.
갖고 싶다.
가질 것이다.
그의 눈빛을 읽은 화완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그 눈빛, 오랜만이로구나.”
모처럼 흐뭇한 미소가 화완의 입가에 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선 왕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서럽게 호곡하는 대신들의 눈물이 밤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