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택-왕들의 향연-192화 (192/215)

#192. 일석삼조(一石三鳥)

도성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였다.

파루가 치기 무섭게 사대문 안으로 장사치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바지런한 몇몇 집의 굴뚝에선 일찌감치 연기가 치솟았다.

밥 익는 고소한 내가 골목을 메웠다.

난전엔 오늘 아침상에 올라갈 봄나물이 가득했고, 나루터마다 갓 잡아올린 생선이 몸통을 팔딱거리며 비늘을 반짝거렸다.

여느 때라면 반빗간 찬모와 그네들을 따라 나온 어린 여종이 흥정하는 콧소리와 선심 쓰듯 값을 깎아주는 장사치의 목소리로 번잡하였을 시각.

그러나 오늘 아침의 시전은 평소와는 다른 분주함이 감돌았다.

상인들은 가판에 놓인 물건을 파는 일보다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가는 의금부 도사와 나장들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침 찬거리 준비에 바빠야 할 아낙들의 걸음은 시전이 아닌 북촌에 있는 거대한 고택 앞으로 몰려들었다.

“시상에, 말세여, 말세. 훤한 대낮에 자기 집 앞에서 칼이 찔리는 일이 다 생기다니. 이게 뭔 난리랴?”

피맛골 골목 끝에서 국밥을 파는 금이네가 입을 열었다.

“훤한 대낮은 무슨.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새벽이라던데요.”

봄나물이 가득 담긴 대나무 소쿠리를 든 젊은 여인이 금이네 말에 토를 달았다.

금이네가 금세 뱁새눈으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어린 것이 워따 대고 따박따박 말대꾸나. 그라고, 새벽이든 낮이든, 지금 그게 중요하냐? 사람이 칼에 찔린 것이 중요허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뭐든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지요. 괜히 없는 말로 엄한 소문이라도 돌면 어쩐대요.”

“아이구야, 넘들이 보면 의금부 나장인 줄 알것네.”

배배 비꼬는 금이네에게 젊은 여인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왕지사 감투 주실 거면, 의금부 도사나 판윤 정도는 주시지. 나장이 뭐여요, 나장이. 하여간 뭐든 아낀다니까.”

“요고, 요고.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금이네가 종주먹을 쥐고 휘휘 허공에 헛주먹질을 했다.

“아주머니도 참.”

어린 여인은 넉살 좋게 웃으며 금이네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그녀가 정색하고 묻자 금이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알면 내가 여즉 여기 있간디. 장사 준비하러 가도 골백번은 갔지. 그나저나 워쩌까나. 우리 정 대감님, 곱디고운 몸뚱이에 시퍼런 칼날이 푹 쑤시고 들어갔다는데. 우리 대감님, 별일 없을라나 모르겠네.”

“아이고, 언제부터 이 댁 대감이 우리 아주머니네 대감님이 되었을까요?”

“니가 진짜 죽고 잡냐? 워째? 저승사자 면상 한번 구경하고 올텨?”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자니, 창을 세운 나장이 다가왔다.

“거참, 시끄럽소. 여기가 어디라고 수다질인가?”

“똘이 아범 아니오.”

금이네가 서둘러 알은체를 했다.

힐끗, 국밥집 아낙을 곁눈질하던 나장에게 어린 여인이 턱짓했다.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고개를 끄덕인 나장이 조용히 한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후.

어린 여인 역시 금이네와 이별하고 나장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진짭니까?”

여인의 물음에 나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가?”

“진짜 이댁 대감을 찌른 분이 동궁…….”

“쉿!”

나장은 서둘러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대며 미간을 찡그렸다.

“죽고 싶어 환장했소?”

“궁금해서 환장했습니다. 그러니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세요. 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이오?”

괜스레 뜸을 들이는 나장에게 여인은 소맷자락에서 작은 은덩이 하나를 건넸다.

먼 허공을 응시한 채 나장은 은덩이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네, 거기만 알고 있어야 하오.”

“그럼요.”

궁금증에 눈을 반짝거리는 여인에게 나장이 낮게 속삭였다.

“……기여.”

“네?”

“기여.”

“기라면…….”

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궁께서 정후겸을 찌른 것이 사실이란 말이었다.

“참말 그렇단 말입니까?”

저도 모르게 여인의 목청이 높아졌다.

“거참, 사람들 듣겠소.”

“아니, 그분이 뭐가 아쉽다고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합니까?”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인이 물었다.

“뭐이 아쉬워서 그랬겠는가.”

“그럼요?”

“불뚜가지가 섰겠지. 여기 정 대감 하는 짓이 괜스레 사람 비위 살살 올리는 게 있잖소. 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욱하는 김에 냅다 일을 저지른 듯하오.”

“진실로 그랬단 말입니까?”

“진실이든 사실이든,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다만, 하는 이야길 들어보니 오늘 새벽 잠행 나갔다 돌아오는 그분 일행하고 이 댁 대감하고 여기서 딱 마주쳤다 하오.”

“그런데요?”

“그런데 이 댁 대감이 그분을 미처 못 알아보고 가마에 탄 채 멀거니 바라만 봤다지.”

“그렇다고 사람을 찌르신단 말입니까?”

“그 피가 어디 갈까?”

“네?”

“그분 아버지도 툭하면 사람 찌르는 양반 아니었소. 의대증인지 뭔지, 한번 광증이 일면 눈에 보이는 족족 사람을 베고, 찌르고……. 소문이 대단하지 않았소.”

“……..”

“어쨌든 윗선에서는 그렇게 의견을 모으고 보고를 올린다고 하오.”

“그럼 그분은 어찌 되는 겁니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쉬이 넘어가진 못할 것 같소. 피를 몇 항아리나 콸콸 쏟은 후에야 겨우 집안으로 피신했다는데. 아이구야,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네.”

“세상에. 그러는 동안 아무도 안 말렸답니까?”

“귀하디귀한 분께서 하는 일을 누가 말릴 수 있단 말이오?”

“근데 사모관대도 하지 않아 알아보지도 못했다면서. 그분인 줄은 어찌 알게 된 것이오?”

“거참, 별것이 다 궁금하오.”

“이왕 말해주는 거, 속 시원하게 알려주세요.”

“흠흠. 그거야 이 댁 주인이 칼에 찔리는 순간, 눈을 이렇게 허옇게 치뜨면서 ‘동궁저하!’ 하고 소리쳤다질 않소.”

“틀림없이 그리 소리쳤단 말이지요?”

“틀림없소.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소.”

술술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던 나장은 멀리서 자신을 찾는 동료의 모습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여인 역시 정후겸의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

“오셨습니까?”

좀 전까지 나장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 한서로는 구경꾼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쓰개치마를 눌러 쓴 이레가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다.

“알아보았습니까?”

“상황은 대충 파악했습니다.”

“그분께 불리한 상황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한서로의 말에 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렸다.

“다들 뒤로 물러서시오!”

대문 앞을 지키고 섰던 군졸들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구경꾼들을 위협했다.

발끝을 세우고 있던 군중들은 주춤주춤 대문에서 물러섰다.

이윽고.

고아한 차림새의 여인이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연둣빛 초록 치마에 홍화꽃 색의 당의를 입은 화완옹주였다.

아들의 느닷없는 불행에 놀란 탓인지.

옹주의 하얀 얼굴은 툭 건들면 파스스 깨질 듯 위태롭게 느껴졌다.

달아오른 눈가엔 물기가 가득했으며, 울음을 참느라 말아 문 입술에선 금방이라도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 가엾은 옹주마마, 무슨 놈의 팔자가 이리도 사나울까.”

안쓰러움이 담기 한 마디가 군중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어린 나이에 지아비를 잃고, 하나 있던 여식마저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가여운 여인.

그래서일까.

양자, 정후겸에 대한 옹주의 애정이 각별하였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을까.

아들이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얼마나 마음 앓이 하였으면 그 곱던 분의 얼굴이 단박에 저리 해쓱해졌을까.

바람이라도 불면 훅 날아가 버릴 듯 애처로운 옹주를 보며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어쩔까나, 어쩔까나, 우리 옹주마마 어쩔까나.”

“하늘님도 무심하시지. 서방복 없으면 자식복이라도 주시지. 어쩜 이리 우리 옹주마마께만 매정하신지.”

“암만 능수 금라 몸에 걸치고 금침 베고 누우면 뭐하오. 함께 나눌 사람이 없거늘, 쯧쯧.”

화완옹주를 향한 연민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몇몇 아낙들은 찌든 고름 끝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하였다.

자신을 염려하는 사람들을 향해 옹주는 보일 듯 말듯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아름답고도 아련한 미소에 사람들의 가슴은 더욱 미어졌다.

기어이 누군가 와락 울음보를 터트렸고, 마치 들불처럼 울음이 번져나갔다.

뒤늦게 대문 앞에 대령한 가마를 타고 화완이 사라질 때까지 백성들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죄인지자 불위군왕이라.”

누군가 눈물과 울분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되어선 아니 될 것이오.”

이레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마치 유령이라도 되는 듯 목소리의 주인은 사람들 사이사이로 교묘하게 움직이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여긴 흘린 정 대감의 핏물은 시작일 겁니다. 앞으로 수천, 수만 곱절의 피가 조선을 뒤덮을 것이어요. 연산군 시절의 비극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처절한 피의 응징이 일을 겁니다.”

“설마…….”

“예끼,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야. 지금 이 꼴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이제 곧 사대문 안팎에서 사람들이 수다하게 죽어 나갈 것이야.”

일순, 어색한 고요가 주위를 잠식해 들어갔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여있던 구경꾼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이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석삼조(一石三鳥).”

낮게 읊조리는 그녀를 한서로가 응시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 수라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저들은 이번 일로 더 큰 것을 얻었어요.”

“지금…… 이 일이 저들의 자작극이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서로의 물음에 이레는 자신이 서 있는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다른 곳에 비해 바닥에 반질반질 윤이 났다.

“누군가 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른 듯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이리 단단하게 굳은 걸 보면 새벽이슬이 내리기 전부터 여기서 기다렸겠지요.”

“그럼…….”

“네. 정후겸, 그는 이미 자신이 찔릴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레의 시선은 높디높은 정후겸의 집, 담벼락으로 향했다.

***

“으윽.”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정후겸은 겨드랑이 사이로 전해지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대감!”

청지기가 빠르게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어마마마는?”

“좀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정후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화완이 직접 걸음 하였다.

요즘 들어 자신에게 곁눈질 한번 건네지 않던 옹주께서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아무도 모르게, 오직 정후겸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잘했다, 겸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 입안이 쓴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칼날이 조금만 왼쪽으로 치우쳤어도 다시는 눈을 못 뜰뻔했다고 합니다.”

청지기의 말에 정후겸은 피식 조소했다.

그럴 리가.

그 작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닷새 동안 얼마나 가르치고 또 가르쳤던가.

“그자는…….”

하얗게 마른 입술에 젖은 수건을 대주는 청지기에게 정후겸이 물었다.

“지금쯤이면 도성 밖으로 나갔을 겁니다. 호위를 단단히 붙였으니, 걱정마옵소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네, 대감.”

“수상한 자가 집 안팎을 감시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명하십시오, 대감.”

“보호를 빌미 삼아 수월에 사람을 보내라. 분명 무슨 일을 꾸밀 것이니. 한시도 눈을 떼선 아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감.”

청지기의 단단한 대답이 들려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후겸은 욱신거리는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안은 고요하였다.

궁궐만큼 거대하지 않지만, 치장만큼은 더 화려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했다.

사방, 빈틈없이 소문난 장인들의 솜씨로 빚어낸 가구와 장식품으로 꽉꽉 채워두었건만.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텅 빈 느낌이다.

어째서 이런 기분일까?

헛헛한 감정에 정후겸이 미간을 찡그릴 때였다.

청지기가 그의 앞에 무언가를 슬그머니 전했다.

새로 지은 봄옷.

고운 비단으로 지어지긴 하였으나, 지금 정후겸이 입고 있는 비단에 비해서는 초라했다.

분명 그 여인이 지은 것이리라.

자신을 낳은 생모.

지금까지 그의 어미가 지어 보낸 옷이 얼마였던가.

매번 그것이 버려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한 어미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그에게 옷을 지어 보냈다.

그는 무심한 시선으로 꼼꼼하게 바느질된 옷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무에 원하는 것이 있어 옷을 보낸다 생각했더랬다.

그러나 생모는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가 그가 요구하는 걸 들어줄 처지도 되지 못했다.

“어찌할까요?”

청지기의 물음에 정후겸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내다 버려라.”

생명을 주었다고 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천하고 비루하게……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바에야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니 그를 낳아준 여인은 어미 자격 상실이다.

완벽한 그의 오점이었고, 불행이었다.

같잖은 연민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필요없는 건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제거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완벽한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리라.

***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일을 벌일까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서로가 반박했다.

이레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라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일로 그간 잃었던 것을 모두 찾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한 일도 했을 겁니다.”

이레는 확신했다.

정후겸의 야망.

그의 느른한 눈빛 저 너머에 자리한 뜨거운 욕망을 이레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저들은 분열된 조직을 다시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할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십학사의 사병을 반드시 늘려야 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럼…….”

“십학사의 물, 만사여의는 어떻게든 저들이 원하는 자금을 내줘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서로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이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동궁저하를 향한 불신.”

“…….”

“지금까지 저하께서 공들여 쌓은 탑이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간 가짜가 부린 행패마저도 동궁저하의 허물이 되어 그분을 공격하겠지요.”

상황을 꿰뚫는 이레의 판단에 한서로는 몸을 떨었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이대로 꼼짝없이 당할 순 없지 않습니까?”

“당연하지요.”

이레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솟을대문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서탁의 할아버지들은 늘 말씀하셨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라고.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저들이 일석삼조(一石三鳥)를 취했다면, 이쪽에선 일석사조(一石四鳥)를 취할 방도를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한서로가 그녀의 뒤를 바싹 쫓았다.

“어디로 가십니까?”

“오늘의 일이 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동궁께서 옹주마마의 양자를 피습한 사건입니다. 이런 대단한 사건을 어떤 방도로 덮을 수 있단 말입니까.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숱한 사람들의 입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레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가 말했다.

“그럼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이 생기면 되겠군요.”

총기 가득한 눈동자에 푸른 이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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