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택-왕들의 향연-185화 (185/215)

#185. 벽사의 꽃(辟邪華)

첫새벽(黎明).

“바람이 차요, 어머니.”

이레는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서둘러 닦았다.

차마 문지방을 넘지 못한 채 자신을 부둥켜안은 어머니를 방으로 밀었다.

검푸른 새벽이 등잔 불빛에 밀려 사라졌다.

찬바람을 몰아내고 아랫목으로 어머니 홍 씨를 잡아끌었다.

행여 찬바람이 쇠약한 어머니의 몸을 침범할까 염려되었다.

서둘러 이불로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

“벌써 일어나신 거여요?”

이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홍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입속을 맴돌던 말이 그제야 새어 나왔다.

“네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더냐?”

“…….”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어머니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레가 궁으로 들어가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앉는 곳이 가시방석이었고, 사방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먼 곳에 요양을 왔다 하여도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면 걱정도 덜 하련만.

쉬이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여식의 안부에 어미는 늘 전전긍긍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이레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 일 없습니다.”

믿지 않는 표정이다.

“정말이어요. 아무 일 없어요. 그냥…… 어머니 보고 싶어서요.”

“그렇다고 이리 올 수 있단 말이냐?”

네가 있는 그곳이 어디라고.

그곳의 법도가 얼마나 엄격하고 서릿발 같은 줄 뻔히 아는데.

“저하께서 만든 놀이라고 합니다.”

“놀이?”

“날묵이 놀이라고 하네요.”

“…….”

“왕실의 여인인지라. 다른 여인들 다 하는 달묵이는 못하지만 대신 이리 날묵이 놀이라도 하자 하셨습니다.”

물끄러미 여식을 응시하던 홍 씨의 미간이 반듯해졌다.

자신이 전해 받은 기별이 마냥 장난이 아니구나…….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론 웃음도 새어 나왔다.

‘날묵이 놀이’라니.

살다 살다 이런 놀이는 처음이었다.

이레를 향한 형운의 마음성이 만든 엉뚱하고도 고마운 놀이.

“참으로 귀하고도 별나신 분이 내 사위가 되셨구나.”

“그렇지요?”

“그럼 되었다.”

마음 가뿐해진 홍 씨는 이레가 둘러준 이불을 떨치고 일어섰다.

이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딜 가시려고요?”

“먼 길 오느라, 배고플 터인데. 잠시만 있어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을 보면 우선 뱃구레부터 챙기는 것이 어미의 습성이리라.

여식에게 뭐라도 챙겨 먹이려는 생각이 홍 씨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리는 여식의 목소리에 홍 씨는 도로 자리에 앉고 말았다.

“이대로, 조금만 이대로 있어 주셔요, 어머니.”

빈 위장을 달래는 일보다, 그리움의 자리를 메꾸고 싶었다.

“……오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

이레를 향한 홍 씨의 눈에 안타까움과 먹먹함이 뒤섞였다.

마냥 순하고 착한 것.

그래서 더 쓰리고, 가슴 저릿했다.

홍 씨는 이레의 손등을 쓸고 또 쓸었다.

이레 역시 갓난아이처럼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어느덧 동창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 나뭇가지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았다.

톡톡톡.

나무를 두드리는 부리 끝에서 여린 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침(早天).

“이게 다 무엇이어요?”

어린 쑥을 넣어 버무린 쑥버무리, 진달래꽃으로 치장한 화전, 잣을 넣어 돌돌 만 곶감과 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까지.

어머니의 밥상엔 사계절이 공존하였다.

아직 차고 메마른 계절인지라.

곶감이나 동치미는 그렇다 치지만 어린 쑥이며 진달래꽃은 다 어디서 구하셨을까?

궁금한 이레가 탄성 섞인 물음을 던졌다.

어머니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내 딴엔 한다고 하였는데. 모처럼 하는 것이라 맛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맛있습니다.”

대답과 함께 야무지게 음식을 입에 넣는 여식을 보며 홍 씨는 하얗게 마른 입술을 길게 늘였다.

오랜 병으로 혀의 감각이 둔해졌다.

그로 인해 음식의 맛을 장담할 수 없었다.

맛있다고 하니 맛있으리라 믿을 수밖에.

아니, 맛이 없어도 이레라면 맛있다고 할 아이였다.

이 아인 어릴 적부터 그러했다.

산후병으로 앓아누운 어미로 인해 여기서 천대, 저기서 구박당해도 그저 방긋방긋 웃기만 하였다. 행여 울어도 그 울음 끝이 하도 짧은 터라, 귀 밝지 못한 사람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순한 아이라 칭찬하였고, 더러는 둔해 그렇다며 비꼬는 소리도 했다.

둘, 모두 어미에게는 저린 이야기였다.

너무 순해 사람 손 타지 않게 자라는 것도, 더러는 둔하리만큼 제 속내 표현하지 않는 것도 다 아픈 어미 탓인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건강한 어미라면.

내 아이 하나쯤은 번쩍번쩍 안아 올릴 수 있었더라면.

저 입에 들어가는 음식 한 조각이라도 맛깔스럽게 만들어 줄 수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아니, 그런 건 다 차치하고 그냥 곁에 있어줄 수만 있었더라면…….

이레를 바라보는 홍 씨의 눈빛이 아릿해졌다.

“또또 그러신다.”

눈치 빠른 이레가 어머니를 향해 방싯 웃음을 보였다.

“어머니도 함께 드시어요.”

평소 말이 없던 그녀가 어머니와 있을 때면 유난히 말이 많아졌다.

“이 화전, 정말 달콤합니다.”

“그러냐?”

“이 곶감은 어떻게 말린 것이어요? 이리 쫀득쫀득한 곶감은 처음이어요.”

“그래, 그래.”

“기대 오라버니가 참 좋아하실 텐데.”

“그러고 보니 기대는 어찌 지내느냐?”

기대의 안부를 묻는 홍 씨에게 이레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과 변함없습니다.”

그녀는 기대를 떠올렸다.

예고 없이 불쑥불쑥 빈궁전을 찾아와 누이의 안부를 묻곤 돌아갔다.

가끔은 어디 먼 곳을 다녀오는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궁금해할 땐 어김없이 나타나 이레를 안심케 하였다.

“그 아이가 있어 내가 안심하느니.”

홍 씨의 말에 동의하듯 이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생각나느냐?”

“언제요?”

“언젠가 네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때…….”

“아, 그때 오라버니가 절 찾으셨지요.”

“그래, 기대가 아니었더라면 영영 널 찾지 못할 뻔했었단다.”

“기억납니다.”

“언젠가 네가 넘어지는 걸 기대, 그 아이가 급히 팔을 뻗어 받아낸 적도 있었단다. 그때 네 오라비 이마에 꽤 깊은 생채기가 생겼더랬지.”

“그런 일도 있었어요?”

“그때 아무 내색이 없었다가 나중에 상처가 곪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단다. 어디서 다친 것이냐며 할머니께서 물으셔도 그냥 나뭇가지에 긁혔다고만 하고. 이 어미도 나중에 행랑 할멈이 얘기해서 알았단다.”

“저, 이래저래 오라버니 속을 꽤 썩였나 봅니다.”

“그 아이가 못난 어미 대신 이래저래 분주했었지.”

“그랬지요.”

“요즘은 잘 지내지?”

“속 썩이던 누이가 혼인하였으니. 오라버니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요.”

***

정오(正午).

사헌부의 솟을대문으로 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문앞을 지키는 군졸에게 익숙하게 손을 흔들어 보인 사내는 흔들거리는 걸음으로 곧장 집의처로 향했다.

마치 내 집처럼 자연스레 집의처로 들어간 사내는 주인의 의사는 묻지 않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살피던 장무열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김기대를 보며 미간을 한데 모았다.

“또 너냐?”

“나 아니면 달리 올 사람도 없잖은가.”

“너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히 쉴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별수 없잖은가.”

여러 개 붙인 의자에 벌렁 누우며 기대가 중얼거렸다.

대거리할 생각조차 없다는 듯 장무열은 시선을 돌렸다.

이내 그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꼬락서니가 볼만 하구나.”

아닌 게 아니라.

기대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리 엉망진창이었다.

평소에도 단정한 차림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심했다.

어디서 도적 떼라도 만난 사람처럼 머리는 봉두난발이었고 걸친 옷도 사방이 찢어져 너덜너덜했다.

“곤하니, 말 시키지 말게.”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이 기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수다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위인이 아니던가.

그런 자가 말을 시키지 말라니.

장무열의 눈동자에 의구심이 서렸다.

묵묵히 기대를 응시하던 장무열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뚜벅뚜벅, 기대가 누운 자리까지 다가온 그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어딜 다녀오는 것이냐?”

“알 것 없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기대의 이마에 불쑥 장무열의 손이 다가왔다.

움찔 놀란 기대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렸다.

“뭐하는 짓인가?”

놀란 음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장무열은 기대와 제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열이 있는 건 아니군.”

물끄러미 무열을 응시하던 기대가 돌연 눈가를 여몄다.

“자네, 미쳤는가?”

질문에 답하는 대신 장무열은 엉뚱한 말을 뱉었다.

“혈향이 진동한다.”

“뭐?”

장무열이 기대의 상체를 눈짓했다.

“네 몸…….”

그의 눈길이 닿은 기대의 상체 곳곳에 깊게 팬 상처가 가득했다.

마치 사나운 짐승이 발톱으로 할퀸 듯한 상처였다.

“남들이 보면 어디서 늑대 떼라도 만난 줄 알겠군.”

“어떻게 알았는가? 그렇지 않아도 늑대 수십 마리를 잡고 오는 길이지.”

“…….”

“그야말로 생과 사를 오가는 전쟁이었지. 아, 자네도 봤어야 했는데. 이쪽에서 달려드는 늑대를 검으로 베어내고, 저쪽에서 덤비는 늑대는 발로 걷어차는 내 모습. 마치 한편의 그림이었을 걸세.”

기대는 영웅담을 펼치듯 너스레를 떨었다.

못 말리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던 장무열이 씹어뱉듯 한 마디했다.

“미친놈.”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툭 기대에게 던졌다.

“이게 뭔가?”

“약이다.”

“약?”

“상처에 발라라.”

“지금 내게 신경 써 주는 겐가?”

“네놈에게서 나는 피 냄새가 싫을 뿐이다.”

“자네가 이리 신경 써 줄 줄 몰랐으이. 그런데 이 약, 어디서 났는가?”

“…….”

“혹 지난번에 내가 자네한테 준 그 약은 아니겠지?”

“…….”

“표정을 보아하니, 그 약이로군.”

잠시 감동한 눈빛이었던 기대는 열었던 약통을 도로 닫았다.

장무열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냐? 상처에 특효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랬었나?”

“혈이 뭉쳤을 때나, 종기, 독성 강한 벌레에 물렸을 때도 효과가 대단하다고 했었지.”

“그런 말도 했었군.”

“만병통치약이라더니.”

“별말을 다 했구먼.”

“그거, 무슨 약이냐?”

“…….”

“상처가 깊은데, 빨리 발라라.”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네.”

“이래도?”

장무열이 김기대의 상처를 꾸욱 검지로 눌렀다.

“으아아악!”

“이대로 그냥 두면 상처가 곪는다.”

“내 워낙 살성이 좋아 그럴 염려 없으니, 신경 끄게.”

“어서 발라라.”

“그렇다고 각연(脚软:무좀)약을 바르는 건…….”

일순, 장무열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튀었다.

“각연약?”

“저리 치우게.”

“죽여 버리겠다!”

“나가게, 나 혼자 있고 싶네.”

“시끄럽다.”

“어허, 아픈 사람을 왜 이리 귀찮게 하는 겐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은 사헌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

저녁(日夕).

“이레야, 이레야.”

가볍게 흔드는 기분 좋은 감촉.

잠시 잠이 들었던 이레는 저를 흔드는 어머니의 손끝에 볼을 비볐다.

“어머니.”

“출출하지 않으냐? 뭐라도 좀 먹으련?”

“아니요.”

“그럼 뭘 해주랴?”

어머니의 물음에 이레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이렇게 곁에 있어 주세요.”

이레는 어머니를 품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 놓지 않았다.

“동궁빈이라는 그 엄청난 자리에 계신 분이 어찌 이리 어리광이 심할까.”

말과 달리 정작 파고들면 파고드는 대로 홍 씨는 이레를 안아주었다.

“이게 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이리 다 받아주시니, 제가 어리광을 부릴 밖에요.”

“그래, 그래. 그럼 또 무얼 해 주랴?”

“저 여기 있는 동안, 계속 손잡아 주세요.”

“또?”

“어여쁘다, 곱다 해주세요.”

“곱구나, 우리 이레. 어여쁘다, 내 새끼.”

“머리도 땋아주시어요.”

“그래. 그리고 또?”

“봉선화 물들이기도 하고 싶은데…… 하지만 아직 꽃이 피기엔 이른 계절이니. 꽃물들이기는 나중에 해야겠지요?”

“나중으로 미룰 필요가 무얼까. 지금 하자꾸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자취를 감췄던 그녀는 작은 화분을 들고 돌아왔다.

“그건…… 봉선화가 아닙니까.”

이레의 눈동자에 불현듯 이채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화분에는 선홍빛 봉선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어미가 되어 낳기만 하였지, 제대로 무얼 해 준 것이 있어야지. 마음껏 안아주지도, 그렇다고 곁에서 살뜰하게 챙겨주지도 못하였지 않았느냐.”

이레는 봉선화 화분과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근래 화훼(花卉)에 관심을 둔 사람이 늘어나 진귀한 풀과 꽃, 나무들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덕분에 시전을 지나다 보면 선연하게 꽃을 피운 매화 화분이나 청록의 빛이 쾌청한 소나무 화분은 종종 보았더랬다.

하지만 소박한 봉선화를 저리 화분에 곱게 키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제야 밥상에 가득했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정취가 이해되었다.

언제고 여식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리라.

어머니의 마음이 화분마다 각기 다른 계절의 꽃과 열매를 피웠던 것이다.

이레의 눈빛에 흐릿한 안개가 고였다.

“언제나 그런 마음을 품고 계셨습니까?”

“어떤 어미라고 이런 마음이질 않을까.”

“어머니.”

“이 꽃을 보면 늘 네 생각이 났단다. 가끔 나를 보러 올 때면 어미와 함께 봉선화 꽃물들이던 네 어린 손이 생각나곤 했단다.”

“그거 아시어요? 여름밤마다 어머니와 함께 봉선화 꽃물들이던 날을 일 년 내내 기다리곤 했어요.”

이레는 어린 소녀처럼 쉼 없이 재잘거렸다.

“그랬더냐.”

맞장구를 치며 어머니는 연약한 꽃과 잎을 따 절구에 빻고, 그 안에 백반을 골고루 섞었다.

이내 절구 안에 검붉은 꽃물이 흥건하게 배였다.

어머니는 참으로 귀한 것인 듯.

이레의 양쪽 약지와 새끼손톱에 꽃물을 올리고 무명천으로 곱게 감쌌다.

***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갔다.

시간이 아까운 모녀는 쪽잠조차 아끼며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렇다고 하여 무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왜?”

“어머니.”

“어찌 그리 부르느냐?”

“어머니.”

“왜에?”

“그냥요, 그냥요.”

어머니…….

마냥 좋은 부름.

이레는 어미의 어깨춤에 얼굴을 비비며 매달렸다.

어머니의 향기에 절로 마음이 여릿여릿 나른해졌다.

그래서 꿈만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라는 꿈.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행복한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렸다.

까무룩 잠이 든 것도 같았다.

잠결에도 곁에 있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희붐하게 날이 밝았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레는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눈에 담았다.

행여 어머니의 단잠을 방해할까, 가만가만 조심스레 손을 놓았다.

아니, 부러 어머니의 잠을 깨우지 않는다.

영영 떠나고 싶지 않을까 싶어서…….

살그머니 일어나 매무시를 다듬었다.

간밤에 어머니가 곱게 땋아준 머리카락을 타래 말아 비녀를 꽂았다.

그러곤 잠든 어머니의 목 아래까지 이불깃을 올려 여민다.

“어머니, 단꿈 꾸시어요.”

낮게 속삭인 이레는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섰다.

다시 새벽(黎明).

안개가 낮게 깔린 마당에는 신부를 마중 나온 신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되었소?”

형운을 향해 이레는 하얗게 웃음을 보였다.

“네.”

행여 아릿한 미련에 발길 묶일까, 그녀는 서둘러 말에 올랐다.

더는 여린 모습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그녀의 손끝에 붉은 꽃이 찬연히 피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삿되고 흉험한 것들로부터 그녀를 지켜주길 바라는 벽사의 꽃(辟邪華).

먹먹한 붉은빛에 물든 손톱은 계절을 앞질러 피어났기에 아련하였고, 또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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