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날묵이
본디, 소문이라는 것은 쉬쉬할수록 빠르게 번지는 법이었다.
궁 안에서 벌어진 일이건만.
왕께서 마음을 바꾸셨다는 소문.
권력의 추가 기어이 동궁전으로 확연하게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거쳐 금세 도성 전체로 번져나갔다.
늦은 밤.
정후겸은 화완의 전각을 찾았다.
옹주는 양아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축객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정후겸은 옹주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마주한 모자(母子)는 말이 없었다.
화완은 눈앞의 그가 보이지 않는 듯 평온한 낯빛으로 비단에 수자를 놓을 뿐이다.
전각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우물처럼 고인 정적이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고요 속에 목련을 수자 놓는 바늘 소리만이 울렸다.
비단을 관통한 바늘과 긴 수실이 화완의 손끝에서 밀려갔다, 당겨지길 반복하였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갔다.
설원처럼 하얀 비단 위로 자목련 한 송이가 봉오리를 피웠건만.
무언가 불만족한 듯 옹주는 미간을 한데로 모았다.
그녀는 맞잡았던 수틀을 놓고, 입을 열었다.
“어찌 이리되었을꼬.”
수자를 살피며 하는 말인지.
작금의 상황을 탄식하는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혼잣말이 화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결국, 정후겸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다 나른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 그리하셨습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철저한 무심(無心).
정후겸의 목구멍으로 쓰디쓴 신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기어이 뜨거운 원망이 그의 혀끝에 담겼다.
“……학(鶴), 그를 어찌하여 십학사에 들인 것이옵니까? 그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십학사를 찢어발길, 사나운 목적을 품은 자이옵니다.”
그제야 옹주가 천천히 정후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저 없는 음성으로 답했다.
“알고 있다. 분명 그는 십학사를 찢어 놓으려는 셈속으로 들어왔겠지.”
“…….”
“하나, 나는 십학사라는 불멸의 울타리 안에 그를 가둬버린 것이다. 그는 이 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게다. 영원히…….”
이내 심기를 정리한 듯 화완이 결정을 내렸다.
“사나운 맹수는 울타리 안에 가뒀으니. 이제 범사냥을 준비해야겠다.”
정후겸은 침묵했다.
대답을 종용하는 화완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서릿발 같은 눈빛에 그는 특유의 느른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하나만 더 여쭙겠나이다.”
“…….”
“범이 사라진 숲은 누구의 것이 되옵니까?”
아들의 무람없는 질문에 화완이 고개를 돌렸다.
“글쎄다…….”
그녀의 말끝이 이어졌다.
“범이 사라졌다고, 여우가 숲의 주인이 되게 할 순 없잖으냐. 다른 범을 찾아봐야지.”
또 다른 범.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는 화완의 눈동자에 요요한 집착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
한번 걸려든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거미의 그것과 흡사한 눈빛.
그 눈빛의 주인이 뉘인지, 정후겸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헌부의 집의.
십학사라는 사나운 울타리 안에 가둔 사나운 맹수.
일순, 헛헛한 상실감이 정후겸의 폐부를 깊게 찔렀다.
옹주께서 작심하였다면 기어코 그리되리라.
어머니에겐 십학사란 이제 도구에 불과했다.
그저 조련하지 않은 맹수를 잡아놓기 위한 울타리.
정후겸의 입가에 씁쓸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어미를 향해 허리를 접어 예를 취하고는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
문이 닫혔다.
내내 평온을 유지하던 옹주의 표정이 바스스 부서졌다.
“끝내…… 말을 않는구나.”
분기(憤氣)로 화완의 눈두덩에 경련이 일었다.
어미에게라면 제 속엣것도 거침없이 내보이던 그녀의 양자(養子)는 끝끝내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녹아는 아직이냐?”
카랑카랑, 옹주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내 문 앞으로 그림자가 다가왔다.
“쇤네, 대령하였나이다.”
문이 열리고 상궁 복색을 한 사슴이 들어섰다.
화완은 충혈된 눈으로 사슴을 쏘아보았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얼 하였느냐?”
미처 사슴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옹주는 질책의 화살을 날렸다.
“송구하옵니다.”
사슴이 바닥에 닿도록 얼굴을 조아렸다.
왕의 변심을 미리 알았더라면…….
경연의 자리에 임금께서 경호부대인 상군과 협련군까지 불러들이는 걸 알았더라면, 지금의 사달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발 늦었다.
찰나의 방심으로 궐의 군권과 인사권이 동궁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어디 그뿐일까.
동궁을 핍박하는 노론을 벌해달라는 향유들의 상소문이 임금께 전해졌다 하였다.
어명에 뚜렷한 명분까지 무게를 실었다.
그로 인해 섣불리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그 많은 귀와 입들은 무얼 했느냐?”
지금까지 화완이 정보를 모으고, 거짓 소문을 흘릴 수 있었던 방법.
그것은 기루를 이용한 것이었다.
도성 곳곳의 기루가 화완의 눈과 귀가 되었다.
수백 명의 기녀가 옹주의 입이 되어 원하는 소문을 퍼 날랐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묻는 옹주에게 사슴이 고변하였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기루에 주향이 사라진 것이 여러 날 되었사옵니다.”
금주하라는 어명 지엄하시니.
기루에서 주향이 사라진 건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또한 당연하지 않았다.
금하면 금할수록 더욱 갈망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기루를 찾는 사내 중 기녀의 가무를 즐기러 걸음 하는 사내도 있었지만, 주향과 그 향취가 그리워 은밀하게 걸음 한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다.
술도가의 굴뚝에서 연기 오른 것은 오래전이지만, 밀주(密酒) 빚는 굴뚝은 한 번도 쉰 적 없으리라.
그러니 어찌 기루에서 주향이 사라진단 말인가.
의아한 화완의 귀에 어이없는 사슴의 답이 들려왔다.
“도성에서 사방 30리 안팎에 곡물이 씨가 말랐습니다.”
“그 어인 해괴한 말이더냐?”
“달포 전부터 도성의 한 상인이 곡물을 모두 사들이고 있습니다. 시세보다 곱절을 더 쳐주니. 너 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있던 물량을 내다 팔았다고 하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 차리니, 끼니 치를 곡식조차도 남질 않았다 하옵니다. 그러니 술빚을 곡식은 더더욱 씨가 말랐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
화완은 사납게 사슴의 말허리를 잘랐다.
제 성화에 못 이겨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화완이 소리쳤다.
“어떤 자의 소행…….”
“…….”
“설마, 이번에도 수월이냐?”
화완의 얼굴에 잔물결이 일었다.
뇌리로 한 사람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완벽했던 그녀의 세계를 천천히,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있는 여인.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왕의 침전을 자유로이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청상이 된 여식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던 아비의 마음마저도 매섭게 만든 계집.
동궁빈…… 아니, 만사여의라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십학사의 물(水)……?
***
“은랑.”
형운의 따뜻한 부름이 이레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흔들리는 말의 움직임이 편안하였다.
규칙적인 형운의 심장 소리는 자장가와 같았다.
잠깐 눈만 감고 있자 생각했건만.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그사이를 못 참고 잠이 들고 말았다.
진흙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은 두 사람은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오늘따라 형운의 재촉이 유난하였다.
“은랑, 자는 것이오?”
형운의 목소리에 잠을 깬 이레는 얼마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짐작하건대, 도성에 당도할 만큼의 시간인지라…….
“즐거웠습니다.”
고마운 마음부터 전하였다.
“저하와의 놀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눈가에 붙은 잠을 겨우 떼어내며 이레가 말했다.
이내 형운의 불퉁한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직 시작도 안 한 놀이를 끝낸 듯 말하다니.”
“네?”
“내가 하려던 놀이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오.”
“무슨 놀이를 하시려기에 이리 준비부터 야단스러운 걸까요?”
“미리 알면 재미없질 않소.”
“그래도 알려주십시오.”
“정 궁금하면, 작은 실마리는 하나 주겠소.”
“무엇입니까?”
“혼인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오.”
이레의 두 뺨이 붉어졌다.
혼인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건…….
이미 하지 않았습니까?
입안에 가득한 말을 삼키노라니, 붉어진 이레의 귓불에 그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진짜 놀이는 지금부터 시작이라오.”
***
반 시진 후.
“여긴 어딥니까?”
머리 위를 드리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를 보며 이레가 물었다.
“일어났소?”
형운은 어린 새처럼 자신의 품에서 꼼지락대는 이레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이레는 눈길을 옮겼다.
“예전부터 그대와 함께 오고 싶었던 곳이오.”
타고 있던 말에서 이레가 내리는 걸 도우며 형운이 말했다.
이레는 아름드리나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내…….
“여긴…….”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레는 형운이 서 있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그가 미소 지었다.
“어떻소? 내가 오고 싶었던 만큼, 그대도 오고 싶어 할 거로 생각했는데. 내 짐작이 맞았소?”
형운의 물음에 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그리웠던 곳.
입안으로 뜨거운 물기가 솟구쳐 대답할 수 없었다.
네, 네.
참으로 오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언제나 오고 싶었으나, 꿈에서밖에 찾지 못했던 곳.
요양 중인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초가를 바라보며 이레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눈가를,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뜨거운 기운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여긴 왜……?”
연유를 묻는 말에 물기가 성글게 맺혔다.
“말하지 않았소, 혼인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놀이를 할 것이라고.”
“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날묵이 놀이’라 합시다.”
“날묵이 놀이요?”
“반가의 사내와 혼례를 하였더라면, 달을 묵히고, 해를 넘겨 친정과 천천히 이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왕실 사내와의 혼인인지라, 어머니께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지 않았소.”
형운은 이레의 자그마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이었다.
“처가에서 달을 넘기는 달묵이는 못하겠지만, 날묵이 정도는 어찌어찌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소?”
“괜찮습니다.”
담담히 대답하는 이레를 보며 형운은 작게 웃고 말았다.
당장에라도 와스스 부서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괜찮다 대답하는 모습이 장하면서도 동시에 안쓰러웠다.
“역시…… 괜찮다는 은랑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구려.”
형운은 이레의 이마 위로 내려온 잔머리를 뒤로 쓸어주고, 흐트러진 매무새도 정갈하게 만져주었다.
그리 찬찬히 준비를 끝낸 그는 그녀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그러곤 그녀의 등을 밀었다.
“가 보시오.”
하지만 이레는 선뜻 걸음을 떼지 못했다.
“저, 혼자 말입니까?”
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도 있지 않소. 모처럼의 오붓한 시간이 나로 인해 불편해지는 건 사양이오.”
모녀만의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명색이 날묵이니, 내일 이 시각에 데리러 올 것이오.”
“……네.”
“혹여 놀라실까, 미리 기별드렸소. 기다리실 것이오, 그러니 어서…….”
형운의 재촉에 이레는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맙습니다.
짧게 답을 한 뒤 이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초가의 작은 사립문을 열고 작은 마당을 가로질러 작은 대청마루가 있는 돌계단으로 올랐다.
벌써 잠에서 깬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내 불면의 밤을 새운 것인지.
희미한 불빛이 문풍지를 노랗게 물들였다.
그 위로 일렁이는 그리운 그림자.
입에 담을 때마다 물기가 묻어나는 그리운 이름.
“어머니…….”
작은 부름에 유난히 왜소한 그림자가 문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러나 그림자는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잘못 들었겠지.
지나가는 산짐승의 울음이겠지.
밖에서 들려온 인기척을 애써 외면하며 그림자는 여상한 일상으로 파묻혔다.
문풍지에 그려진 그 모습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이레는 목청을 다듬었다.
“어머니.”
조금 더 크게 어머니를 부른다.
순간, 그림자가 석상처럼 굳어졌다.
얼마간의 시간을 그렇게 멎은 듯 꼼짝도 않던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벌컥.
방문이 열리고 유난히 마른 몸피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
“이레냐?”
눈앞에 있는 여식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아 여인이 다시 물었다.
“네, 어머니. 저…… 이렙니다.”
“정녕 네가, 정말로 네가 왔구나.”
어머니는 여윈 손을 들어 쉴 새 없이 여식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리 기별은 받았으나, 선뜻 믿을 수 없었다.
범상한 반가라 하여도, 출가한 여식을 다시 보기란 만만찮은 일이거늘.
하물며 왕실로 출가한 여식이 아니던가.
그러니 못 믿을 수밖에.
작금의 만남이 행여 꿈은 아닌지.
그리움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니려나.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좀처럼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어 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그러다 마침내 현실임을.
꿈이 아님을.
환상은 더더욱 아님을 깨닫고는 여식을 끌어안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내 새끼, 내 아가…….”
“어머니…….”
따사로운 어미의 품 안에서 이레는 지금껏 꾹꾹 눌러왔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