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그 기회, 지금 드리겠습니다
아침 햇살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나 덧창이 내려진 은자원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전에선 연일 고성이 오가고 있습니다.”
흐릿한 등잔불이 그림자처럼 일렁거렸다.
홍국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보고를 이었다.
“주상 전하를 대신하여 제례를 이끌 분을 정하기 위함이지요.”
그의 말에 실내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본디 제례를 주관하는 사람은 왕이었다.
하지만 왕의 병세가 위중한 상황인지라.
왕세자가 그 공석을 메워야 했다.
문제는 공석을 메울 왕세자마저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왕세손인 형운조차도 폐서인되어 궁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으니.
“제례에 앞서 세자 책봉이 선행될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 해도 근본도 없는 이에게 제례를 맡길 수는 없다. 그러니 반드시 제례 전에 왕세자 책봉이 거행되어야 했다.
대전에서 매일 신료들 간의 고성이 오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으음.”
최 내관과 홍인모가 답답한 헛기침을 흘렸다.
상황도 답답하였지만, 감히 형운 앞에서 ‘세자’라는 말을 함부로 뱉는 홍국영의 무례함이 거슬렸던 까닭이다.
무신경한 것도 정도가 있지.
홍국영도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는 힐끔 형운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형운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제례에 앞서 예정된 절차는 무엇이 있느냐?”
“이것이옵니다.”
홍국영은 준비해온 두루마리를 펼쳤다.
제례 일까지 궁 안팎의 주요 행사들을 기록한 것이었다.
두루마리를 찬찬히 살피던 형운이 한 곳을 손으로 짚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홍국영을 비롯한 홍인모와 최 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목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방법만이 문제일 뿐.
이제 그 시기와 방법마저 확정되었다.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이 방법만이 유일하다.”
유일한 방법이라는 형운의 말에 홍국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적들은 필사적으로 저하를 막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홍인모가 서늘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적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제가 모두 베어낼 것이옵니다.”
결사항전(決死抗戰).
죽음을 각오한 맹세.
최 내관 또한 눈을 부릅뜨며 동참의 뜻을 표했다.
결의를 다진 홍인모와 최 내관이 홍국영을 쳐다보았다.
네 뜻은 어떠하냐는 물음이었다.
홍국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필사적인 것은 성미에 맞지 않지만, 기왕 한 배를 탔으니 제대로 신명 나게 칼춤을 춰보겠습니다.”
모두의 뜻이 한데 모였다.
그들의 뜨거운 의기에 형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그는 서탁 위 두루마리에 몇 글자를 적었다.
출기불추(出其不趨).
추기불의(趨其不意).
-적이 달려가지 않을 곳으로 나아가고,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병법 가운데 하나.
예측불허의 방법으로 적의 단단한 방비를 흔들어 놓는 용병술이었다.
극히 불리한 상황인 형운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
또한, 그의 각오가 느껴지는 글이기도 했다.
홍국영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고 시간을 배분하겠나이다.”
“그밖에 필요한 것은 없느냐?”
홍국영은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비록 천기는 읽지 못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누굴 원하는지 정도는 읽고 있습니다. 사람의 준비는 충분합니다. 남은 것은 천기(天氣)뿐입니다.”
“그 하늘의 도움마저 우리 것으로 해야 할 것이다.”
형운은 의지와 노력으로 천기마저 돌려놓은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고, 입가에 여유가 흘렀다.
마침 그녀를 찾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하온데…….”
홍국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손빈께선 어디에 계시옵니까?”
중요한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
반드시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김이레.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홍국영은 이레의 비범함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이레를 언급하는 형운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굳어있었다.
“또 다른 적들과 대적하고 있다.”
홍국영을 비롯한 일행의 얼굴에 놀람이 들어찼다.
“적이라 하셨습니까?”
“대체 어느 무도한 자가 감히 세손빈을 습격한단 말입니까.”
“그곳이 어디입니까? 제가 지금 당장 달려가겠나이다.”
수하들의 뜨거운 반응에 형운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다.”
“네?”
“너희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형운은 말을 이었다.
“너희는…… 아니, 나조차도. 그 싸움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시전으로 향하는 골목.
한 무리의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씨를 비롯한 홍씨 집안의 며느리들이었다.
“형님.”
멀찍이 뒤따라오는 이레를 힐끗 살핀 막내며느리가 이 씨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어찌하시려고 그런 약조를 하십니까.”
이 씨가 이레에게 옷을 장만해 주겠다 약조한 일을 뜻하는 것이다.
막내며느리의 우려에 이 씨는 버럭 역정을 냈다.
“이 사람아, 그럼 당장 영빈 마마와 노마님께 달려가겠다는 사람을 그냥 놔두란 말인가?”
“그건 그렇지만…….”
“이 정도 일이 고작 옷 한 벌로 무마되었으니. 오히려 싸게 계산된 셈일세. 그리들 알고, 비용은 십시일반 하여 치르는 거 잊지 말게.”
막내며느리를 비롯한 다른 며느리들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일을 벌인 것도 이 씨고,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 사람도 이 씨인데, 정작 수습은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함께하자 하니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죽을상 할 것 없으이.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좋은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이 씨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좀 전엔 저 백여우를 만만하게 보아 이리 어이없이 당했지만, 내가 이대로 무너질 성 싶은가? 조금만 기다려보면 알게 될 것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씨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레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 백여우 옆의 저 시커먼 사내는 대체 누군가?”
별채를 나서자마자 이레의 뒤로 삿갓을 눌러쓴 사내가 따라 붙었다.
막내며느리가 알은 척을 했다.
“얼마 전 무슨 인형 때문에 도성 안팎이 뒤숭숭하지 않았어요. 그 인형의 저주대상이 폐세손이었다지요. 그 사건 이후에 폐세손과 폐세손빈에게 호위가 붙었다 들었어요.”
“그럼, 저 사내가 별채 백여우의 호위란 말인가?”
“그런 모양이어요.”
이 씨의 눈씨가 날카로워졌다.
자신에게도 없는 특별한 호위가 이레에게 붙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투기와 시샘이 솟구쳤다.
“흥, 대단한 사람 나셨구나. 과연 그 도도한 기세가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
같은 시각.
조용히 홍씨 가의 며느리들 뒤를 따르던 이레는 그녀의 호위무사와 나직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절 지키게 되었단 말입니까?”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있을 것이옵니다. 기척을 느끼실 수 없을 만큼 은밀히 지키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이레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기엔 존재감이 참으로 크다는 거, 알고 계시지요?”
“조금 줄여 보겠습니다.”
그간 벌인 말썽이 있는지라, 사내는 다소 의기소침해진 표정이 되었다.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른 순수함이라.
마주하던 이레의 얼굴에 큰 미소가 걸렸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레의 허락에 사내의 얼굴에도 선 굵은 웃음이 걸렸다.
한때 형운의 좌익위였던 최치성.
그가 이레의 호위 무사가 되었다.
‘이분과의 인연도 적지 않구나.’
최치성은 형운과 이레를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세손빈 간택 때엔 이레를 지키기 위해 환관 노릇도 마다치 않았을 정도였다.
“후후.”
“왜 웃으십니까?”
“아닙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환관이 되어 나타난 최치성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일화도 기억났다.
“아무렴, 열흘 만에 나을 리 없지.”
이레의 혼잣말에 최치성이 관심을 보였다.
“네? 열흘 만이라니요?”
“아닙니다. 건강하셔서 정말 다행이란 말이었습니다.”
“하하, 제가 몸 하나는 튼튼합니다.”
이레의 의미심장한 말뜻을 오해한 최치성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유치한 놀음에 어울려 줄 생각이십니까?”
최치성이 이 씨를 턱짓하며 물었다.
이 씨의 의도는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레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
감히 이레를 상대로 수작을 꾸미는 이 씨가 괘씸하고 한심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론 불쌍하였다.
하필이면 이분을 상대로.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귓전에 이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라…….”
잠시 생각한 이레가 대답했다.
“언제라고 정하긴 어렵지만, 이번 기회에 두 번 다시 부질없는 짓을 꾸미지 않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최치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옷을 사 준다고 약조한 일에 달리 무슨 수작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이레는 대답 대신 뜻 모를 미소만을 지을 뿐이다.
그녀의 대답이 궁금했지만, 최치성은 잠자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옷을 사려면 이 길이 아니라 큰길로 나가야 할 텐데…….”
이 씨 일행을 뒤쫓아 걸음을 옮기던 최치성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이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제 말이 맞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순순히 약조를 지킬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최치성은 딱하다는 눈빛으로 이 씨를 응시했다.
“하필 저곳으로 가다니.”
***
“도대체 왜 들어갈 수 없단 말이냐?”
굳게 닫힌 솟을대문 앞.
이 씨는 문 앞을 막아선 문지기들과 실랑이했다.
낮은 담벼락.
각양각색의 공방이 즐비한 골목.
그 골목의 끝자락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솟을대문이 보였다.
한양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특별한 입전.
이곳이 바로 이 씨의 목적지였다.
찾아가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들어가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입전이었다.
“이곳은 특별한 자격을 지닌 분들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어허! 내가 누구인지 알고 특별한 자격 운운하느냐? 내가 바로 안국동 홍 대감댁의 작은 며느리다.”
이 씨는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지만, 각진 턱의 문지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놈들이! 정녕 뒷일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무어라 말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이 씨의 거듭된 협박에도 문지기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두고 보아라. 내 이번 일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문지기들을 표독스럽게 쏘아본 이 씨는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이레에게 돌아왔다.
얼굴에 아쉬운 표정을 가득 담은 채.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소.”
이레가 순진하게 얼굴로 사정을 물었다.
“여기 입전에 볼일이 있으셨습니까?”
“이곳의 옷이 비범하다 하여 꼭 선물해주고 싶었다오. 허나, 내 마음과 달리 아쉽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이유가 무어라 합니까?”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는 모양이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 씨가 뒤늦게 생각난 듯, 이레에게 권유했다.
“아! 직접 말해보면 어떻겠소?”
“제가요?”
“비록 지금은 황망한 사정으로 궁을 나오긴 했지만, 왕세손빈이라는 지엄한 위치였으니. 저 뻣뻣한 사내들이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줄지 어찌 알겠소?”
“하지만…….”
“자자, 그러지 말고 한 번 부탁해보시오. 부디 내게 호의를 베풀 기회를 주셔야지.”
이 씨는 달갑지 않아 하는 이레의 등을 떠밀었다.
“……알겠습니다. 한번 말은 붙여보겠습니다.”
머뭇거리던 이레는 입전의 문지기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문지기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호한 낯빛으로 고개마저 흔드는 것을 본 이 씨는 비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비참하겠지.’
자괴감마저 들 것이다.
어려운 간택 과정을 통과해 천신만고 끝에 세손빈이 되었으니, 분명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즐거웠으리라.
하지만 천상을 노니는 것만 같은 즐거움도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으니.
지금까지는 주위에서 떠받들어주어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를 터.
‘어떠냐? 한낱 문지기에게 거부당하는 심정이?’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창피하고 비참하여 당장 혀라도 깨물고 싶겠지.
이 씨는 수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매우 특별하게 관리되어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한양, 아니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입전.
손님을 가려 받는 입전임에도 여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유는 그만큼 이곳의 상품이 특별하기 때문이었다.
조선 최고의 장인들과 그들이 만드는 최고의 작품.
그 특별한 것을 만날 수 있는 단 한 곳.
수월.
이 별난 입전은 어느덧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여인이라면 누구나 출입(出入)을 선망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실제로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다.
시아버지의 이름도 들먹여보고, 행패를 부리고, 사람을 풀어 소문을 모으고, 금전으로 해결을 보려고도 해 보았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안국동 홍 대감의 직위도, 그 대단한 권세가의 작은 마님이라는 위엄도 이곳에서만큼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물며 쫓겨난 폐세손빈 따위가 무얼 할 수 있으랴?’
틀림없이 모진 거부의 말을 들으며 쫓겨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별채 새사람의 가슴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겠지.
“안 되는 모양이군. 그래도 세손빈이었으니,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내가 어리석었던 모양이군. 하긴, 생각해보면 세손빈이었던 기간도 고작 두어 달. 권세를 느끼기에도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으니.”
“형님…….”
“참으로 아쉽게 되었군. 이곳의 옷이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하다던데. 꼭 이곳의 옷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형님…….”
“비록 가격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하나, 내 별채의 새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선심을 쓰려 하였거늘. 아쉽고 또 아쉽구나. 그래도 어쩌겠나. 다른 곳의 옷은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섭섭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좋은 기회가…….”
“형님!”
“대체 왜 그리 불러대는가?”
자꾸만 소매를 당기며 성가시게 구는 막내에게 이 씨는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정작 이 씨를 부르던 막내며느리 정 씨는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정 씨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온 다른 이들도 모두 한곳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다들 무얼 그리 보는가?”
이 씨는 사람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긴 수월이 아닌가?”
사람들이 보는 곳은 수월의 대문이었다.
무에 볼 것이 있다고 다들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좀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굳게 닫힌 채 영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수월의 대문이 지금은 활짝 열려있다는 것만 빼고.
그리고 그 앞.
“무얼 하고 계십니까?”
좌우로 열린 수월의 대문 앞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를 확인한 이 씨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저 사람은…….
“호의를 베푸실 기회를 원한다 하셨지요?”
이레였다.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기회, 지금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