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택-왕들의 향연-126화 (126/215)

#126. 정안당의 망나니 아들

딸가락, 딸가락.

홍인한은 손안에 있는 두 개의 호두알을 염주 돌리듯 돌렸다.

왕세자 선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그런데도 떫은 감을 씹은 듯 입안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게 무얼까?

대체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 걸까?

“아버님.”

밖에서 들려온 며느리의 목소리가 홍인한의 생각을 방해했다.

버릇처럼 미간을 찡그린 채 그는 낮게 헛기침을 흘렸다.

이내 며느리 이 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요즘 형님 댁에선 별일 없느냐?”

시아버지의 물음에 이 씨가 대답했다.

“별일 없습니다. 폐세자비의 심병이 깊어 안채로 옮겼으나,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홍인한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호두알을 따락, 따락 돌렸다.

이내 그가 눈빛을 번득거렸다.

“임금의 마음을 돌리려 꾀병을 앓는 것일 수 있으니. 네가 잘 살펴봐야겠구나.”

“네, 아버님.”

“새로 들인 사람은 잘 적응하고 있느냐?”

“집안의 가풍을 익히는 중입니다. 큰 할머님이 정안당으로 품앗이를 보냈는데, 얼마 전 아랫것들에게서 이상한 소릴 들었습니다.”

며느리를 홍인한이 유심히 응시했다.

“이상한 소리?”

시아버지의 재촉에 이 씨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별채 새 사람 손이 너무 말짱하다질 뭡니까.”

“손이 말짱한 것이 무어가 이상한 것이냐.”

“바느질을 하다 보면 제아무리 솜씨가 좋은 사람이라도 바늘에 찔리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정안당 장담의 혼수 준비를 하는 일이니. 옷감을 다듬고 마름질하는 과정이 보통 험한 일이 아니다 보니 손이 거칠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데?”

“새 사람의 손은 참으로 곱다고. 어떤 날은 손끝에 먹물이 묻어 있는 걸 보면 꼭 과거 준비하는 막내 서방님 손이랑 흡사하다고 하더이다.”

“그렇구나. 그런데 너는 그 이야길 어찌하여 내게 전하지 않는 것이냐?”

“아랫것들이 무얼 알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떠드는 것이니. 아버님께 말씀 올려 괜히 심사를 어지럽히는 듯 판단하여…….”

딱!

홍인한이 손에 쥐고 있던 호두알을 거칠게 바닥에 집어 던졌다.

놀란 이 씨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버님.”

“누가 너한테 판단하라더냐?”

“송, 송구합니다.”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건 나다. 너는 그저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야.”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쯧, 무얼 잘할꼬.”

한심하다는 듯 며느리에게 낮게 혀를 차던 홍인한이 몸을 돌렸다.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거라. 별채 새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제대로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는지, 혹여 꼬투리 잡을 만한 건 없는지 세세히 살피고 오란 말이다.”

“네, 아버님.”

“내가 네 집안과 너에게 무얼 베풀고 있는지 잊지 마라.”

“제가 어찌 그걸 잊겠습니까.”

홍인한은 바닥에 코가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는 이 씨에게 명을 내렸다.

“조만간 직접 정안당으로 움직여라. 집안에 버티고 앉아 공밥 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만 물러가라.”

홍인한의 축객령에 이 씨는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다.

못마땅한 그의 시선은 며느리가 방을 나간 후에도 여전했다.

집안에 온통 쓸모없는 거머리들뿐이다.

모두가 하는 일 없이 자신에게 둘러붙어 재산만 축내는 것들 뿐이니…….

쯧.

낮게 혀를 차며 홍인한은 서랍 속에서 새로운 호두알을 꺼냈다.

따각, 따각.

그의 손안에서 두 개의 호두알이 서로 몸통을 비비며 굴렀다.

왕세자 선만 죽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일 줄 알았건만.

무언가 개운치 않았다.

그게 무얼까?

대체 무얼까?

홍인한의 사랑채에서는 밤이 늦도록 호두알 굴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

이틀 후.

“일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한서로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였다.

평소처럼 만사여의가 되기 위해 치장을 받던 이레는 평소와 다른 한서로의 모습에 긴장하고 말았다.

비록 어리긴 하였지만, 한서로가 뉘이던가.

시전의 3할을 차지한 여장부, 진짜 만사여의가 아니던가.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 한서로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라 생겼습니까?”

“급하게 온 전갈입니다.”

이레는 한서로가 내민 서찰을 확인하였다.

<정안당 근처의 계곡으로 안국동 홍 대감댁 여인들이 천렵을 나왔습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건?”

“유경 아가씨께서 보낸 전갈입니다.”

이레가 가짜 만사여의를 하는 동안 정안당에서 품앗이 바느질을 하는 유경의 서찰이었다.

한서로의 표정이 고스란히 이레에게로 전이되었다.

이레는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한서로를 응시했다.

“천렵을 핑계이고, 아무래도 절 보러 간 것 같군요.”

아니, 정확하게는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이 없는가 확인하러 걸음 한 것이리라.

안 그래도 최근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금정에게서 전해 듣기로는 최근 본채를 드나드는 집안 마나님들의 입에서 별채 이야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하였다.

곧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하였는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다행히 유경 아가씨께서 정안당에 도착하기 전에 수상한 기색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이레는 서둘러 한서로에게 물었다.

“유경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정안당에 들어가기 전, 가마를 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둘러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전했고요.”

“보통 일이 아니로군요.”

표면적으로 이레는 집안을 대표하여 정안당에 품앗이 바느질을 하러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가의 큰 할머님께서 결정한 일이지만, 사실은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레와 몇 명 사람이 함께 꾸민 일이었다.

덕분에 이레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만사여의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한데, 본채의 마나님들이 정안당으로 몰려들었으니.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발각되기 될 상황이었다.

“오늘은 시전이 아니라 정안당으로 가야겠군요. 정안당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빈궁마마께서 이르신 대로, 품앗이 첫날부터 양해를 구해놓았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본디 사대부의 혼사에는 적지 않은 재물이 들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정안당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일.

집안의 도움을 구해 보았지만, 워낙에 평판이 좋지 못한 장남으로 인해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 정안당을 향해 한서로는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

품앗이하러 온 집안 여인 한 명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깟 것, 무에 어렵다고.

정안당의 안주인은 쉽게 허락했다.

그렇게 은밀한 거래가 성사되었던 것이다.

“다행입니다.”

작게 안도하는 이레에게 한서로가 재촉하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마마. 서두르셔야 합니다.”

***

서대문 밖.

평소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던 허름한 초가로 한 무리의 여인들이 몰려들었다.

초가의 작은 마당은 여인들의 분내와 화려한 비단 치맛자락으로 가득하였다.

낡고 손질되지 않은 집은 앉을 만한 장소도 변변찮았다.

한껏 내려다보는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던 여인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유, 냄새. 집안 꼴이 이게 뭐람?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귀신 사는 폐가야? 작은 형님, 우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오?”

집안의 막내며느리가 이 씨를 돌아보며 투덜댔다.

홍씨 가문의 맏며느리인 한 씨 역시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서 말대로 오긴 했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이 씨는 입을 삐죽대며 한 씨를 잡아당겼다.

“그러지 말고 형님, 여기 앉아요.”

마지못해 한 씨는 이 씨가 권하는 대청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유, 덥다.”

이 씨가 한 씨의 옆에서 부채질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덩달아 마루 끝에 걸터앉은 막내며느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이 집은 손님이 왔는데, 아무도 내다보는 이가 없네.”

“워낙에 못 배워 먹은 집안이라 그렇지.”

이 씨가 한 씨 들으라는 듯 크게 말을 이었다.

“안 그래요, 형님.”

“어허, 이 사람. 어찌 말이 그리 험한가?”

“형님은 어째 내가 말만 하면 그러시오?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봐요. 손님이 오면 좋든 싫든 내다보는 게 예의이거늘. 누구 하나 왔느냐, 얼굴 내미는 사람이 없질 않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집 아들이 망나니가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집안 교육이 모양이니. 무얼 배웠겠소.”

“…….”

한 씨가 더는 일언반구가 없자 이 씨는 막내동서를 응시했다.

“자네, 말해보게.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제가 뭘 알겠어요. 그런데 듣자하니…….”

갑자기 막내며느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 집 아들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랍디다. 한번 눈이 뒤집어지면 애도 어른도 안 보이고 여인 사내 할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른대요.”

“그 소문은 나도 들었네.”

이 씨가 맞장구치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는 앞서 가던 아낙이 눈에 거슬린다고 발길질을 하였다지.”

“아유, 미치광이가 따로 없네요.”

“그런 미친놈은 아예 상종을 하지 말아야지.”

그때였다.

“우리 도련님 그런 분 아니네요.”

부엌에서 어린 계집종이 나오며 크게 소리쳤다.

이 씨를 비롯한 홍씨 집안 여인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자신에게 쏠린 이목이 부담스러운 듯 계집종은 자라목을 한 채 그들을 곁눈질했다.

이 씨가 그녀에게 다가오라 손짓했다.

“너, 이리 와 봐.”

계집종이 주춤거리며 다가갔다.

“왜 그러신대요?”

“이 댁 안주인은 어딜 가신 것이야?”

“마님은 아침 일찍 시전으로 볼일 보러 가셨네요.”

“언제 돌아오신다느냐?”

“그걸 쇤네가 어찌 안대요?”

계집종의 대답에 이 씨가 눈초리를 사납게 치떴다.

“상전이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배워 먹은 말버릇이냐?”

“……송구하네요.”

계집종이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이 씨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

“시원한 식혜라도 한 사발 내오너라.”

“그런 건 없는데요.”

“그럼 오미자차라도 내오면 될 것이 아니냐.”

“오미자가 어디 있대요.”

“그럼 적당하게 마실 만한 걸 내오면 될 것이지. 어디다 대고 꼬박꼬박 말대답이냐?”

“아무것도 없는데, 뭘 내오라고…… 그러신대요?”

“뭐 이따위 집구석이 다 있어?”

쾅쾅 제 가슴을 치는 이 씨를 멀거니 바라보던 계집종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찬 냉수 한 사발 드릴까요?”

“뭐?”

“오늘 새벽에 새로 길어온 물이 있네요. 한 사발…….”

“이것이 사람을 갖고 노는 것이야?”

“아유, 마님도.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한대요.”

“시끄럽다.”

“그럼…….”

꾸벅 허리를 접었다 편 계집종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렸다.

그때 이 씨가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아참. 잠깐 게 서거라.”

“왜 그러신대요?”

“너, 여기 품앗이 하러 오는 사람 알지?”

“알지요.”

“어디 있느냐?”

캐묻는 이 씨를 계집종이 의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물은신대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할 것이지. 이것이 상전 알기를 우습게 아는구나. 너, 제대로 한번 맞아 볼 테냐?”

이 씨는 기어이 계집종이 정수리에 종주먹을 휘둘렀다.

“왜 때리신대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계집종이 울먹거렸다.

“더 맞기 전에 대답이나 해라. 여기 품앗이 오는 사람, 지금 어딨느냐?”

“오늘은 아직 안 오셨는데요.”

“뭐야?”

버럭 고함을 지르는 이 씨의 곁에서 한 씨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착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저기 도착했네요.”

한 씨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막내며느리가 다 떨어져 나간 사립문을 가리켰다.

때마침 가마에서 내리는 이레의 모습이 이 씨의 눈에 들어왔다.

너, 제대로 잘 걸렸다.

이 씨의 눈에 푸른 불꽃이 튀었다.

잔뜩 기세등등한 그녀가 팔을 걷어 올리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

“왜 이렇게 늦었는가?”

귓가를 파고드는 이 씨의 목소리에 가시가 가득했다.

비록 폐위되었을지언정.

세손빈이었던 이레에게 집안 여인들은 언행을 조심했다.

이 씨 역시 그들처럼 처음에는 조심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레를 대하는 이 씨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하대는 당연하였고, 때로는 얕잡아 내리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레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매일 이런 건 아니겠지? 오호라, 이제보니 품앗이는 핑계고 여태 놀러 다닌 것인가?”

그때, 문밖에서 교꾼으로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너무 힘들지 않았는가? 설마 어깨끈이 끊어질 줄이야.”

교꾼 덕에 이레는 구태여 이 씨의 물음에 변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씨가 다시 물었다.

“고작 가마의 어깨끈이 끊어진 정도로 이렇게 늦었단 소리는 아니겠지?”

또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좀전의 그 사내였다.

“오래되고 낡아서 그런지,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뒤틀어지고 부서지고 난리도 아니었네. 그나마 솜씨 좋은 장인을 만나서 두 시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고쳤으니, 정말 다행일세.”

교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 씨가 이레를 쏘아보았다.

“흥, 가마가 못 쓰게 되었으면, 걸어서라도 와야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사람이 미련해도 적당히 미련해야지.”

이번에도 문밖에서 교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채 아씨께 참으로 미안해지네. 처음엔 금세 끝날 줄 알고 잠시만 참아달라 말씀 올렸는데. 설마,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나.”

“…….”

저놈이……

이 씨는 문밖을 사납게 노려봤다.

이레가 하는 변명이면, 말대답 운운하며 더 혼내겠는데.

교꾼들의 주고받는 목소리에 더 따져 묻기도 곤란했다.

“어디서 낯선 사내들의 잡소리가 끼어드네. 소란스러우니 대문을 닫아라.”

이 씨는 마당 한구석에서 눈치만 보는 계집종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둘러 사립문이 닫혔다.

“사정은 알겠네. 그래도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니. 한마디 안 할 수 없군. 자네가 집안을 대표하여 이곳에 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네. 실수나 흠이 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곧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격이야.”

“그런데 오늘 이곳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평소에는 쥐죽은 듯 조용한 곳인데 말이야. 허어, 모기라도 앵앵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듣기 참 거북하군.”

담을 넘어오는 사내의 목소리.

문을 굳게 닫아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담벼락에 앉아 떠도는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말은 마치 이 씨의 야단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 같았다.

이 씨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대체 어떤 작자인데,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거야?”

참다못한 이 씨가 성큼성큼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울화가 쌓였던 참인데.

잘 되었다.

우선, 말조심 안 하는 교꾼을 엄한 목소리로 꾸짖고 기선을 제압해야지.

그 후에 이레가 하였다는 바느질을 솜씨를 보며 한껏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물론,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는 법이니.

무엇이든 트집을 잡으며 그만.

“어떤 작자인지 몰라도 다시는 이 일을 못 하게 만들어…….”

단단한 결심을 한 이 씨가 대문을 활짝 열려 할 때였다.

별안간 닫힌 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나!”

화들짝 놀란 이 씨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 어떤 망할 종자가 감히!”

웬 사내 하나가 터덜터덜 들어서며 반문했다.

“그 말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대체 넌 누구냐?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말을 그따위로…….”

“나?”

사내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칼처럼 뻗친 눈썹. 부리부리한 눈.

곧고 높은 코.

사내다운 호방함이 느껴지는 잘생긴 사내.

“나…… 이 집에 사는 사람이오만.”

그의 대답에 이 씨는 기겁하며 놀랐다.

“그 마, 망나니 아들?”

그녀의 말에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사내는 오히려 히죽 웃었다.

“하하하, 홍국영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다오.”

“인간말종이라는 그 홍국영?”

“시기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날 그렇게 매도하기도 하더군. 한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망나니 운운하는 예절 바른 그쪽은 대체 누구시오? 아!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지 마음에 꼭 담아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어서. 하하하.”

“……!”

이 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레 역시 놀란 시선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저 사내가 소문난 정안당의 망나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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