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택-왕들의 향연-78화 (78/215)

#78. 만사여의 (上)

양덕당에서 벌어진 사건은 궁 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재간택에 참여한 형조판서의 여식이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왕실을 비롯한 조정이 들썩였다.

세자는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 명했다.

주상전하 역시 이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사건의 조사와 후속조치를 논하기 위해 시험은 잠시 중지되었다. 하지만 이미 재간택 시험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문이 궁 안에 자자했다.

형조판서의 여식은 화상으로 흠이 생겼고, 경기관찰사의 여식은 시험에 응할 옷감이 손상되었다.

남은 사람은 대제학의 여식뿐이니, 자연 세손빈의 자리는 그녀의 차지가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일각에서는 내정된 여인을 삼간택에 올리기 위한 자작극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시린 계절에 일어난 음울한 사건인지라.

궁궐은 여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화완옹주의 전각인 용화전만큼은 밝은 활기로 가득했다.

카랑한 웃음소리가 긴 회랑을 따라 들려왔다.

“사필귀정이라더니.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군요.”

문 소원은 목청이 훤히 드러나도록 깔깔 웃었다.

화완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될 줄은 몰랐소.”

“그러게나 말입니다. 설마, 달군 숯으로 골칫거리가 해결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문 소원을 바라보는 화완옹주의 표정이 묘했다.

“이번 일…… 문 소원이 손 쓴 게 아니었소?”

“저는 옹주마마께서 계획한 일인 줄 알았사옵니다.”

“그래요? 우리 둘 다 아니면…….”

화완옹주와 문 소원은 함께 자리한 또 다른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들의 시선을 받은 명선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사건이었습니다.”

“공교로운 사건이라…….”

“하필 그곳에서 그처럼 불행한 사건이 벌어질 줄이야. 기막힌 우연이 아니라면 하늘의 뜻이겠지요.”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던데, 다치지는 않았소?”

“다행히 무탈하였습니다.”

명선은 방석이 불편한지 자세를 고쳐앉았다.

흐트러진 치마를 펼쳐 앉은 모양새를 곱게 다듬는 모습이 명문가의 여식다웠다.

지켜보는 문 소원의 눈빛이 흐뭇했다.

“그런데 금정이라는 궁녀는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화완옹주가 대답했다.

“가벼운 훈계 정도로 넘어갈 것 같더군.”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데도 말이옵니까?”

“본디 내명부의 법도대로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겠지. 어디 그 아이 하나로 끝날 일인가. 그 아이를 가르쳤던 상궁은 물론이고 위로는 최고 상궁에 이르기까지. 한바탕 난리가 났을 터.”

“그런 일을 어찌 이리 조용히 끝낸단 말입니까?”

못내 아쉬운 얼굴로 문 소원이 물었다.

“이번 일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형조판서의 여식과 경기관찰사의 여식이 궁녀 금정을 감싸며 극구 항변하였다 들었소. 민감한 사안인 만큼 피해자들이 원치 않으면 조용히 넘어갈 공산이 클 것이오.”

재간택 시험 중에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이었다.

바깥으로 잘못된 소문이 날까 전전긍긍한 가례도감과 내명부에서는 적당히 수습하고 넘어가길 원했다.

“공식적으로는 재간택인의 실수로 발표될게요.”

그렇게 결론 나는 것이 체면을 중시하는 왕실의 입장에서도 가장 좋았다.

또한, 유경의 집안엔 그에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리라.

화완옹주의 설명에 명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워낙 짧은 순간의 변화였다.

명선의 싸늘한 눈빛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이번 일로 재간택은 문 소원의 바람대로 될 것 같소.”

화완옹주의 은근한 말에 문 소원은 숨김없이 속내를 내비쳤다.

“그렇습니다. 이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조리 해결된 셈이지요.”

“다만, 경기관찰사의 여식이 이번 사건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의문이군.”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나이까?”

“이번 사건으로 마름질 끝낸 현의 일부가 못쓰게 되었다 들었소.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마침 불의한 사고로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된 재간택인이 만들던 옷감도 있으니. 그걸 대신 사용하여 시험을 치른다 하지 않겠소?”

문 소원은 손사래를 쳤다.

“그건 규칙에 어긋나니, 내명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규칙?”

“이번 시험의 규칙은 분명 간택인이 직접 옷을 짓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형조판서의 여식이 가져간 옷감은 마름질은 물론이거니와 바느질까지 시작하였다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작업한 옷감으로 옷을 완성하면, 어찌 그 옷이 그 사람의 순수한 성의라 하겠습니까? 그 일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그쪽에 심어둔 자에게서 귀띔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

화완옹주의 거처를 나온 문 소원은 명선을 돌아보았다.

“만사불여튼튼이라 하였으니, 삼간택까지 특별히 몸가짐을 조심하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곧 왕실의 일원으로 다시 만나겠군요.”

“이 모두가 문 소원께서 저와 제 집안에 힘을 실어 준 덕분입니다.”

고아한 자태로 인사한 명선이 궁녀와 함께 물러갔다.

문 소원은 인자한 웃음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멀어지는 명선을 바라보던 문 소원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도 상궁.”

“네, 마마.”

“양덕당에서의 일. 저 아이의 소행이 확실하더냐?”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

“그리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저리 태연하다니. 참으로 앙큼한 계집이 아니더냐.”

“유순한 성정은 아닌 모양입니다.”

“독하고 뻔뻔하니 다루기가 쉽지 않겠어. 마지막 삼간택이 진행되기 전에 적당히 손을 쓰는 게 좋겠군. 애써 들여놓았는데, 은혜도 모르고 제 맘대로 굴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제아무리 독하다 해도 아직 어리고 미숙합니다. 마마께서 바른길로 지도하심이 마땅하옵니다.”

문 소원의 입가에 가늘고 긴 미소가 돌아왔다.

“아무렴. 은혜가 무엇인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도록 뼈에 새겨줌이 좋을 듯하이.”

***

형조판서의 저택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유경이 재간택에 들었을 때만 해도 대문 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러나 불행한 사건으로 유경은 재간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궁궐은 사람의 세상에 펼쳐진 천상이라.

모두가 우러러보고 받들어야 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세계여야 했다.

작은 흠결과 허점도 용납되지 않았다.

더구나 세손빈을 간택하는 중요한 자리이니.

화상 입은 간택인은 더는 참여할 수 없었다.

소문은 하룻밤 사이 천 리를 갔다.

참으로 매정한 것이 인심이었다.

문턱이 닳도록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그처럼 인적 끊긴 저택에 손님이 들었다.

유경의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운 이레였다.

이부자리에 누운 유경이 그녀를 맞이했다.

“언니.”

유경의 낯빛은 전에 없이 창백했다.

화상은 다행히 크지 않았다.

다만, 재간택 시험을 더는 치를 수 없다는 상실감과 충격이 컸다.

이레는 그녀가 느낄 상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문의 명예와 주위의 기대가 유경의 작은 양어깨에 걸려 있었다.

유경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이해했다.

그러기에 매번 전심전력으로 시험에 임했다.

그 숱한 노력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으니.

나락으로 떨어진 듯 허무했으리라.

“유경아.”

이레는 유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크고 까만 눈동자에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가슴에 격통이 느껴졌다.

이레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언니, 왜 울어요. 울지 마요.”

“하지만 나 때문에…… 네가 나 때문에 이리되었어.”

와르르 쏟아지는 숯 더미 속에서 유경은 기꺼이 자신의 몸으로 이레를 감싸주었다.

덕분에 이레는 작은 불통하나 튀지 않고 멀쩡했다.

유경의 희생이 고마웠다.

또한, 미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이레의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유경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 탓이 아니에요.”

“어째서 내 탓이 아니야?”

그때 내가 한눈을 팔지 않았더라면…….

숯이 오기 전에 널 보냈더라면…….

내가 널 감쌌더라면…….

수없이 떠올리고 후회한 일들이었다.

부유하는 먼지처럼 후회와 자책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언니 잘못이 아니에요. 그때 언니에게 수다를 떨며 혼란케 한 사람이 저인 걸요. 전 절대 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요.”

“유경아…….”

“애초에 그 일은 언니의 탓도, 금정이라는 궁녀의 잘못도 아닌걸요.”

유경의 음성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색.

이레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번 사고, 누구의 실수가 아니에요.”

“그럼……?”

“제가 봤어요. 숯이 담긴 단지를 든 금정이가 대청마루에 올라섰을 때, 그 궁녀의 치맛자락을 누군가 부러 밟는 모습을요.”

충격적인 이야기.

이레의 턱밑으로 숨이 턱 달라붙었다.

“그게 사실이야?”

“언니는 등을 돌리고 있어 못 봤지만, 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걸요.”

흐릿한 유경의 눈동자에 작은 분노가 튀어 올랐다.

“언니, 저와 약조해요. 이번 재간택에서 꼭 이기셔야 해요. 제가 느낀 좌절과 실의를 김명선, 그 사람도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유경아…….”

“그런 사람이 세손빈이 되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막아줘요. 언니가 세손빈이 되어주세요.”

유경은 간절했다.

그런 그녀에게 차마 시험을 치를 방도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팽팽하게 날을 세우던 유경이 그제야 부드러워졌다.

“알아요. 언니의 현의가 숯에 타버렸다는 걸요.”

“알고 있구나.”

“얼마나 못 쓰게 된 거예요?”

“뒷길과 소매, 그리고 겉섶 부분에 불똥이 튀어 보기 싫은 구멍이 뚫렸단다.”

“제 비단을 쓰면 되잖아요. 제 비단은 멀쩡해요.”

이레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미 마름질이 끝난 옷감이라 쓸 수 없다는구나.”

“새 옷감을 받는 건요?”

이레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쩐다.”

유경은 하얗게 마른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묘수를 짜내던 유경이 불현듯 눈을 빛냈다.

“만사여의!”

“만사여의?”

“예전에 제가 어떤 여장부에 관해 말한 적이 있었잖아요.”

“여인의 몸으로 시전의 삼 할을 차지하였다는 사람 말이야?”

“네. 그분이라면 필요한 비단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였으니, 분명 가능할 거예요.”

흥분한 유경의 표정이 다음 순간 시무룩하게 변했다.

“아! 그러고 보니 외부에서 물품을 들일 수 없다 하였죠. 그럼, 만사여의를 찾아 옷감을 구해도 소용없겠네요.”

이레는 유경의 실망하는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옷감을 들일 순 없지만, 새로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현의 전체는 무리라도 손상된 부분만 만드는 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유경은 손뼉을 쳤다.

“맞아요. 언니는 실도 새로 만들었잖아요. 옷감이라고 다시 못 만들겠어요? 언니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거예요.”

유경은 이레의 손을 힘껏 그러잡았다.

“언니, 만사여의를 찾으세요.”

***

소란스러운 낮이 고요한 어둠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시린 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유달리 밤안개 짙은 밤.

이레는 서탁 앞에 앉았다.

-계십니까?

누군가를 찾는 이레의 글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분명 달무리 짙은 날인데…….”

맑은 달밤엔 할아버지들께서 나타나고, 오늘같이 흐리고 달무리 짙은 날엔 은백의 대답이 들려오곤 하였다.

근래에 이러한 규칙에 잠시 변화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궁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벌어진 일.

별채로 돌아온 이후엔 언제 그랬냐 싶게 모든 규칙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은백…….”

이레야, 하고 부르는 다정한 부름.

오늘따라 형운이 그리웠다.

그의 반듯하고 빈틈없는 필체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이레는 아무도 보지 않는 서탁 위에 제 감정을 써내려갔다.

-보고 싶습니다, 그 어느 날보다도 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서탁은 여전히 침묵하였다.

견디기 힘든 적막이 공기를 잠식해 들어왔다.

긴 침묵에 이레의 한숨이 쌓여갔다.

겨울밤은 어둡고 외로웠다.

희미하던 창마저 검게 물들었다.

탐욕스레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끝내 달마저 삼켰다.

가슴에 인 슬픔의 파문이 짙어졌다.

이레는 하염없이 서탁의 대답을 기다렸다.

종이를 가득 채운 넋두리.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은백을 만날 수 없나 보다.

흐릿한 달빛마저 먹구름 뒤로 숨어버렸으니.

서탁도 더는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하지 못할 테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레는 붓을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사납구나.

달그락거리는 소음도 뒤를 이었다.

도둑고양이인가?

고양이치곤 소리가 제법 컸다.

이레는 창을 열었다.

창틀과 담벼락이 하얀 기와를 얹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다.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무심코 눈발을 좇던 이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은 그림자가 별채 담벼락을 넘고 있었다.

도둑?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려 하였다.

“이레야.”

그녀의 귓전에 낯익은 목소리가 부서졌다.

이레는 황급히 제 입을 막았다.

겁 없이 담을 넘은 사내가 삿갓을 들어 얼굴을 보였다.

눈처럼 희고 투명한 표정이 그곳에 있었다.

겨울밤처럼 검고 그윽한 눈동자가 이레의 놀란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은…… 백.”

서탁의 부름에 응하듯, 이레의 바람에 답하듯.

형운이 눈앞에 나타났다.

놀라고 기뻐할 틈도 없이, 이레는 이미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툇마루 아래로 뛰어내리니 소복하게 쌓인 눈의 시린 감촉이 버선발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나 입안 가득 차오른 그리움을 삼키느라, 발끝을 적시는 냉기까지 챙길 겨를이 없었다.

“여긴, 여긴 어찌 오신 겁니까?”

숨을 몰아쉬며 이레가 물었다.

형운은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바람결에 금세 발갛게 달아오른 이레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치맛자락을 쥐고 있는 작고 하얀 손.

그리고…….

불현듯 그가 몸을 돌렸다.

잠시 후.

형운은 패랭이꽃 곱게 수 놓인 당혜를 이레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왜 이러십니까?”

놀란 이레가 물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발에 묻은 눈을 털고 신을 신겼다.

“발이 차다.”

“은백…….”

양쪽 신을 다 신긴 후에야 형운은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냐?”

“…….”

“너, 괜찮은 것이야?”

묻는 음성이 따뜻하여.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다정하여.

이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그가 말했다.

“양덕당의 일을 들었구나. 다친 곳은 없느냐?”

“……네.”

목이 잠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찬바람만 웅성대던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었는가 보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네.”

나는, 이런 염려가 듣고 싶었는가 보다.

“보고 싶었다.”

“네.”

난, 이런 따뜻함이 그리워 내내 슬펐는가 보다.

이레의 두 눈에 습윤한 물기가 들어찼다.

“어찌 그러느냐? 무에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야?”

“날이 추워 그런 모양입니다. 그보다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찌하려 이러십니까?”

형운의 어깨와 삿갓에 눈이 쌓여 있었다.

거센 바람과 눈을 뚫고 이곳까지 찾아온 그를 생각하니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네가 걱정되어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진심에 참고 참은 눈물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고개를 숙인 이레는 서둘러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곤 금세 말끔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거짓말.”

형운은 이레를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차게 식은 이레의 귓불을 녹였다.

“그런 표정으로 괜찮다 하면 누가 믿겠느냐?”

“참말입니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떨고 있으면서.”

“……은백.”

“예전에 다짐한 일이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네가 괜찮다, 아무 일 없다 하면 절대 믿지 않겠다고 말이다.”

“제가 그리 미덥지 못한 사람이었습니까?”

“그걸 이제 알았느냐?”

형운은 두 손으로 이레의 얼굴을 감쌌다.

차가운 볼에 온기를 전하고 손끝으로 눈가에 남은 슬픔을 지웠다.

“보고 싶었다. 네 얼굴이 아른거려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형운은 이레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참지 않기로 했다.”

이레의 이마 위로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붉고 여린 그의 꽃잎은 미끄러지듯 그녀의 눈두덩을 짓눌렀다.

그다음엔 동그란 콧방울을…….

그리고 마침내 고집스레 다물고 있는 입술 위에 안착했다.

따뜻한 숨결이 사나운 바람을 녹였다.

다정한 손길에 시린 눈꽃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눈 속에 선연히 피어난 붉은 매화인 듯.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하얀 눈밭을 떠나지 않았다.

***

눈발은 거세어졌다.

이레는 초조한 낯빛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내내 차가운 밖에 있었던 탓에 두 사람은 꽁꽁 얼어 있었다.

이레는 작별을 고했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형운은 괜스레 말머리를 돌렸다.

“양덕당의 일 말이다. 네 옷감도 못 쓰게 되었다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근심이 많았겠구나. 걱정하지 마라. 내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안심시키는 그의 말에 가슴이 그득 차올랐다.

그러다 한순간.

유경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레는 형운과 시선을 마주했다.

“혹시 만사여의를 아십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아실 리 없으리라.

궁에서 나고 자란 분이 어찌 시전의 여걸을 알 수 있을까.

이레의 짐작과 달리 되돌아온 형운의 대답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네가 만사여의를 어찌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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