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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134)화 (134/134)

[외전3.]

“나 만들러 가요?”

저게 무슨 소리야.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에게서 나일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라니… 길을 잃었니?”

“…흠.”

남자 아이는 대답 없이 조용히 복도 벽에 어깨를 기댔다.

11살? 12살 쯤 되었으려나?

아이는 대답 없이 벽에 기대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 내가 더 이상의 설명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엄마 아빠.”

“너 왜 자꾸….”

말을 더 이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아이의 눈, 코, 입 그 모든 것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나일과 같은 유전자라는 것을.

“나일 설마….”

“없어요 그런 거.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그거, 아.니.라.고.”

“….”

아니라고?

저 얼굴 봐, 너잖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꼬마가 픽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제 귓가로 손을 올렸다.

“어, 삼촌. 나 만났어 엄마 아빠.”

“….”

“둘? 몰라 지금 되게 바보 같은 표정이야. 엄마 아빠 어렸을 땐 저런 바보 같은 표정도 지었구나. 어 삼촌, 알겠어. 지금 가능해. 전송해줘.”

꼭 무선 이어폰이라도 끼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던 아이가 연락을 끊고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아빠.”

나는 옆에 선 나일을 홱 돌아보았다.

“나일? 얘가 지금 아빠래잖아요.”

“아니라니까, 너 누구….”

“엄마.”

엄마?

나?

“너 도대체 누구야, 왜 그렇게 생겼어.”

왜 그렇게 생겼냐니.

왜 자기를 그렇게 빼다박았느냐는 나일의 질문이었다.

싱긋 웃으며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어휴, 두 분 아들이요.”

*

“….”

“….”

나일과 나는 신혼방 침대 위에 있었다.

오늘 결혼한 신랑 신부라면 침대 위에서 마땅한 일을 해야 마땅했지만, 우리는 그저 조용히 앉아 우리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씀하세요.”

남자 아이는 분주하게 무언갈 준비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우리의 아들이라고?”

“엄마, 제 얼굴 봐 봐요.”

“….”

옆에 앉은 나일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에 앉은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확실했다.

“근데 난 하나도 안 닮았는데.”

“큭큭, 엄마가 그 말 할 줄 알았어요.”

“….”

“근데 걱정 마요. 셋째는 엄마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나랑 아빠가 닮은 것처럼.”

우리 셋이나 낳았어?

이번엔 나일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오래오래 사이가 좋은가보네.

아이는 자신을 11년 후 미래에서 온 나일 2세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금 미래 적국의 테러를 받아 이 시간 안에 갇힌 상태고, 그 덕분에 미래의 나일과 나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

“그래서 제가 두 분을 구해드리기 위해 온 거죠. 다됐다.”

테이블 위엔 어느새 아이가 소환해 낸 물건이 놓여 있었다.

이미 우리가 황제의 개인 서고에서 꺼내 시도해봤던 마법 아이템 탐지기였다.

“이미 시도 해 봤어.”

나일의 말에 아이는 무심히 대답했다.

“그건 구버전 탐지기 잖아요. 이건 10년 후 버전이에요.”

“….”

“10년 후 마법 아이템을 10년 전 탐지기로 찾으려 하니까 못 찾죠. 10년 동안 동제국의 마법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모르죠? 움직인다. 가요 아빠.”

웅웅거리며 빛이 도는 탐지기를 들고 아이가 방을 나섰다.

앞장서서 걷는 아이의 뒤통수가 머리숱이 얼마나 많은지 걸을 때마다 펄쩍거렸다.

나는 힐끔 나일의 뒤통수를 훔쳐봤다.

세상에 뒤통수도 똑같아….

“너….”

“네, 엄마.”

“….”

엄마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 말을 멈칫하자, 아이가 뒤돌아 나를 보곤 씩 웃음 지었다.

“말씀하세요.”

“이름이 뭐야?”

“말 못 해요.”

“왜? 네 이름 우리가 지어줬을 거 아냐. 너 우리 아들이라며.”

“어… 그건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누가.”

“엄마가요.”

“….”

“과거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정보를 발설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단단히 일렀어요. 지금의 엄만 모르는 일이지만.”

나 되게 허술한 사람인데, 미래엔 철저해 지나보네.

“아 저기다. 와인 창고.”

아이가 창고를 향해 도도도 뛰어갔다.

내 아이라니, 내가 낳은 어린이라니.

보고 있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

“이 중에 있어요. 없애야 할 마도구가.”

우리 셋은 산처럼 쌓여 있는 와인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저기 맨 위에 상자 같은데….”

아이의 팔이 닿을만한 높이가 아니었다.

꼬마가 슬쩍 나일을 살폈다.

“아빠… 좀 도와주세요.”

“….”

그 말에 나일이 어색하게 몸을 움직였다.

위에 있는 상자를 향해 팔을 뻗는 모양새가 꼭 로봇 같았다.

아무래도 그도 어색한 거다.

아빠라고 불리는 일이.

“이거다. 이 병 안에 있어요. 부숴주세요.”

나일이 능력을 쓰자 와인병이 가볍게 부셔졌다.

그 안에서 떨어진 푸른 보석이 바닥을 굴렀다.

“저거예요. 이제 하나 남았어요. 나머지 하나는….”

-삐… 삐…

탐지기가 다시 빛을 발했다.

“밖이다.”

창고를 나와 아이를 따라 걸으니 어느덧 피로연장이 가까웠다.

그때 다시 꼬맹이가 귀로 손을 가져갔다.

“어, 오빠? 엄마 아빠 만났지.”

“….”

“오겠다고? 유리는 안 돼. 위험해.”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셋째는 딸이고 이름은 유리구나, 내 셋째 딸아이의 목소리가 저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니.

저도 모르게 동생의 이름을 말해버린 아이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안 돼, 너 나중에 엄마한테 혼나 그럼.”

“….”

“바꿔달라고? 안 된다니까.”

“….”

“엄마 아빠? 아 그냥 거의 똑 같애. 좀 어린 느낌 드는 거 말고는 없다니까.”

꼬맹이한테서 어린 느낌 난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유리야, 오빠가 말했잖아. 과거에 간섭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구… 어휴 알겠어. 짧게 한 마디만 하는 거야.”

이윽고 체념했다는 얼굴로 아이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 아빠 이거 한 개뿐이니까… 가까이 와요.”

그 말에 나일과 내가 아이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한 개 뿐인 작은 통신기를 가운데 두고 그와 내가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됐어! 유리야 말해!”

“….”

“….”

피로연장에서 희미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과실주의 단내, 각종 디저트 냄새들, 피로연장을 가득 장식한 꽃향기가 여름 바람을 타고 넘실거렸다.

그와 나는 긴장으로 숨을 죽였다.

“어… 엄마? 아빠? 저 유리에요.”

“….”

“….”

“엄마, 아빠? 듣고 계세요? 유리가 많이 사랑해요. 빨리 일어나셔야 해요, 알았죠?”

“….”

“….”

“엄마? 아빠?”

“어 유리야….”

나일이 목이 멘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 했다.

미래의 딸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정말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니까 빨리 일어나라니.

얼굴도 본 적 없는 딸아이의 작고 여린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에서 들리는데, 그게 정말이지 내 기분을 휘젓고 또 휘저었다.

그만 울컥해 눈물을 흘리자, 나일이 내 어깨를 감쌌다.

“아빠!? 아빠 엄마는요.”

“어, 엄마는 옆에….”

“아? 아 로건 삼촌 아직 엄마랑 통화 못 했는데…! 아 싫어요!”

통신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일이냐?”

로건의 목소리였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나이 들어도 사람의 목소리는 잘 나이들지 않으니까.

10년이 지난 세월에도 그의 목소리는 지금과 거의 똑같았다.

“어.”

“바로 반말은, 10년이나 더 산 친구한테.”

“….”

“피비는?”

“옆에 있어.”

“아직 별일 없지?”

“같은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것 말고는 없지.”

“탐지기로 하나 더 찾아서 부신 다음에 바로 애 보내. 오래 대화 하지 마. 과거에 오래 머무르는 건 위험하니까.”

“그럼 네가 오지 그랬냐.”

“핏줄이 가야 안정성이 높다는데 내 탓이냐? 무튼 내가 말 한대로 해라, 끊는다.”

그렇게 뚝 끊긴 통신기에서 더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통신기를 넘겨받은 아이가 제 귀에 다시 통신기를 꼈다.

“아빠, 이 앞이에요.”

아이가 피로연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나는 급하게 눈물을 훔치고 아이의 뒤를 따랐다.

“저거 같은데.”

아이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피로연장 중앙에 장식된 거대한 5단 케이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중앙으로 몰렸다.

피로연장 잔디밭에서 피크닉 매트를 펴 놓고 누워있던 신랑 신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데다, 그 옆에 신랑을 복제해 놓은 것 마냥 닮은 남자 아이까지 있었으니까.

점점 큰 소리로 수군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밀치고 등장한 이는 현재의 로건이었다.

“야 나일, 얜 뭐냐. 얘 꼭 생긴 게 네….”

“….”

아무 대답 없는 나일의 앞으로 아이가 한걸음 나섰다.

“삼, 아니지. 후페이 공작 각하. 미래의 후페이 공작 각하의 전언을 전하겠습니다.”

“뭐?”

“이미 마음 접고 있는 거 알지만, 역시나 안 되니까 빨리 단념해라. 이상입니다.”

“….”

무슨 의미가 있는 말인지, 표정이 희게 질린 로건이 입을 다물었다.

다만 아이를 더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그런 로건의 어깨를 나일이 두드렸다.

“일단 냅둬, 끝나고 다 설명할게.”

아이가 가장 큰 1단 케이크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빠져나온 손에는 아까와 같은 푸른 장치가 쥐여져 있었다.

“아빠.”

“응.”

아빠? 아니 전하보고 아빠라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일어났다.

나일은 들은 채도 안 하고, 제 아이가 쥐여 준 장치를 부서뜨렸다.

“이제 더 이상의 반복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거.”

“….”

아이가 내게 건넨 물건은 방금 부순 장치와 비슷해 보였다.

“여기서 시간이 흘러 버리면 좀 곤란해질 테니까요. 그건 1회성 회귀 장치예요. 작동시켜 놨으니까 좀 있으면 이 구간이 끝나고 반복이 시작된 첫 시각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

“다 해냈으니까 전 이제 갈게요.”

남자 아이가 지금까지의 기세와 다르게 조금 주뼛거렸다.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모양새였다.

“아 이거 얘기해도 되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 아이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키가 커 닿지 않으니 허리를 숙여달란 의미 같았다.

나는 나일과 함께 아이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남자 아이가 양 팔로 우리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아빠는 아들 둘에 딸 한 명을 낳거든요? 난 내 여동생이 사라지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 헤어지지 말고 잘 살아서 꼭 세 명은 낳아주세요. 알겠죠?”

“….”

“뭐 말 안 해도 그럴 거라고 예상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서 내가 있는 거니까.”

“….”

“난 내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잘 지어주길 바라요 엄마 아빠.”

“….”

“사랑해요 엄마 아빠. 미래에서 봐요.”

“잘 가 우리 아들, 엄마 아빠랑 미래에서 보자?”

나는 아이의 얼굴을 가슴으로 꼭 끌어안았다.

따듯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싶더니 이내 아이와 함께 온기가 사라졌다.

우리 주위가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빛이 사그라진 후에는 다시 하늘색이 옅은 주황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황태자 전하와 황태자비 전하를 가운데로 모시겠습니다.”

수십 번 들었던 사회자의 익숙한 멘트였다.

곁에 선 나일을 바라보았다.

그도 조금은 감정이 벅차오른 듯해 보였다.

“가요. 나가서 제대로 춰줄까요? 꼭 처음 추는 것처럼.”

“얼마든지.”

그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방금 탄생한 새 신랑 신부를 향해 하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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