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기의 볼이었다.
복스러운 아기의 볼을 발견했으니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이 그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꺄륵.”
다행히 아기도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나를 따라 방긋 웃음 지었다.
그러나.
‘이건….’
포대기를 완전히 열어젖혔을 때 드러난 것은, 아기의 얼굴 일부분이 갈색과 초록빛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동제국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마물의 피부와 같은.
“꺄아.”
내 얼굴을 향해 뻗은 아기의 손은, 한 손은 토실토실한 원래의 손이었지만 다른 한 손은 그렇지 못했다.
아기의 손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손톱이 길게 자라난 괴물의 손이었다.
“으브.”
내 얼굴을 만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기가 서로 다른 생김새를 가진 양팔을 나를 향해 허우적거렸다.
‘안 돼.’
얼굴을 뒤로 뺐다가, 아기를 다시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애먹을 줄 알았더니 아기를 잘 다루나 봐.”
“로건.”
“…방금 나 부른 거야?”
“아기 좀 봐 봐요.”
“아기? 날 보면 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로건은 고분고분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리고 역시 허리를 굽혀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잠깐 동안 정적에 휩싸였다.
“이래서 마법사를 애타게 찾았던 거네.”
“동제국에서 봤던 현상하고 같은 걸까요?”
“어, 그래 보여. 이렇게 몸의 일부분만 변한 케이스는 없었지만.”
“으브아.”
“아.”
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로건의 얼굴을 신기한 듯 가만히 바라보던 아기가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허리를 펴던 로건이 아기의 손에 머리카락을 잡힌 건 그 다음이었다.
“아, 야 아기. 머리 잡아당기지 마라.”
“읍뿌아.”
“원하는 걸 뺏어 가면 바로 울 테니까 일단 그대로 있어 봐요.”
“하.”
그래, 아가야.
그 자식이 너랑 네 언니인지 누나인지를 해치려 했던 놈이란다. 될 수 있으면 한 움큼 뽑아버리렴.
“서제국 놈들이 자국민을 가지고 실험한 거겠지.”
“….”
잡힌 머리카락을 빼내며 로건이 중얼거렸다.
“그만 가지. 여기서 밤샐 거 아니잖아. 얘 깨워서 못 고치는 일이라고 말하고 가자고.”
그래야겠지.
아, 그런데 이 아이 기절할 때 로건한테 맞은 걸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를 고민하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응아?”
“….”
아기가 제 혈육을 발견한 것이었다.
여자아이를 향해 아기가 팔을 버둥거렸지만, 기절한 아이의 눈이 뜨일 리 없지 않은가.
제 혈육의 이상 사태를 감지한 아기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으, 으브, 으아아앙.”
울면 안 되는데.
안아 올려서 둥개둥개 어르면 좋겠지만, 혹시 그러다 아기의 손이 내 얼굴에 닿을까 염려스러웠다.
우는 아기를 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자, 로건이 차갑게 말을 건넸다.
“내가 얘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한 건, 네가 상황을 잘 마무리했을 때의 얘기야.”
“기, 기다려 봐요. 그치게 하면 되잖아.”
아기의 크고 까만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며 괴상한 포즈를 해 보였다.
좀 웃어주면 안 될까?
그게 너와 네 혈육한테도 이로울 거라고.
“으으, 으아아아앙.”
그러나 아기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더니 더 크게 울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창을 통해 보육원 건물 쪽을 살피던 로건이 몸을 돌렸다.
“안 되겠어, 들리겠어.”
“손대지 말라구요!”
그 큰 손이 이번엔 우는 아기를 향해 뻗쳐왔다.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로건보다 먼저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헛간이 떠나가라 울던 아기가 뚝, 울음을 그쳤다.
‘이건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아기의 작은 손이 내 엄지손가락을 움켜쥐었을 때, 맞닿은 살결을 통해 어떤 기운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동안 흡수했었던 생명력과는 전혀 결이 다른 기운이었다.
생명력의 느낌이 따듯하고 부드러운 황금빛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이었다면 이건 어둡고 거칠었다.
찌릿찌릿한 약간의 통증과 함께 불쾌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생명력이 아니야.’
황금빛 기운이 생명력이었다면 이건 도대체 뭘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이건 내게 좋지 않은 기운이라는 점이었다.
‘어, 아기는? 아기는 괜찮나?’
낯선 느낌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가 아니지.
황급히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본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라지고 있잖아?’
아기의 얼굴에서 갈색빛과 초록빛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몸이 찌릿찌릿 저린 느낌도 점차 커져만 갔다.
‘어쩌면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의 얼굴이 평온으로 물들었다.
나는 괴물의 형태로 변한 아기의 작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끔벅끔벅 졸기 시작하던 아기의 눈이 스르륵 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기가 잠들었을 때, 괴물의 손은 보드랍고 포동포동한 아기의 손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제야 잠든 아이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손을 뗐다.
“어떻게 된 거야.”
놀란 건 로건도 마찬가지였다.
“추측인데, 아무래도 제가 빨아들인 것 같아요. 이 아기를 마물로 변형시켰던 원인을.”
*
여관으로 돌아왔을 땐 새벽 2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불을 끈 어두운 방 안, 창문이 모두 닫혀있어 방 공기가 답답했다.
“창문 열게요.”
“…마음대로 해.”
건너편 침대에 누운 로건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자 곧바로 창을 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목덜미를 식히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자.”
“….”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로건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누워있었다.
저 자식은 등에도 눈이 달렸나.
“잠이 잘 안 와?”
“이 상황에서 잠이 잘 오면 지나치게 둔감한 거 아닌가.”
“넌 좀 더 둔감해질 필요가 있어.”
“좀 더? 언젠가 날 죽일 사람 옆에서도 베개에 머리 대자마자 쿨쿨 잘 만큼을 말하는 건가.”
“….”
부스럭부스럭.
그가 침대 안에서 몸을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해 봐요. 나일을 구해야 한다는 제약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내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사람이잖아. 오늘 그 어린애들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그만 조용히 하고 자.”
조용히 몸을 돌렸다.
언제 돌아누운 것인지, 어둠 속에서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상관없었거든. 네가 날 죽이려 하든 말든, 어떤 인간이든. 왜냐면….”
왜 내가 갑자기 로건에게 그런 말들을 쏟아낸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와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건 혼잣말에 가까운 대화였다.
그저 소리 내, 안에 있는 말들을 밖으로 꺼내놓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 괜찮았다 할까.
“어차피 몸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사람의 생명력을 빨아먹으며 생을 연명하는 존재라니, 소름 끼치잖아. 그래서 너든, 네가 아닌 누구든, 그 누가 와서 날 해친다 해도 불만이 없었어.”
“그만하고 자라고 했어.”
“왜 이 개자식아, 그만 짖어대. 나 계속 말할 거니까.”
“….”
로건은 대꾸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저 자식 말고 족제비가 있었다면 족제비를 앉혀 두고 말을 했을 텐데.
방에 돌아왔을 때 족제비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개자식한테 개자식이라 하는 게 뭐. 내가 더한 욕을 해도 너 지금 나 못 죽이잖아? 죽이고 싶어? 왜 상처라도 내봐 그럼.
살이 벗겨진 틈으로 생명력이 줄줄 새 나가봐. 나일이 잘못되는 거 아냐?”
욕을 듣는 로건의 표정은 어째선지 하나도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인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짜증나네.
그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상처를 내거나 어디 한 곳을 부러트려도 황자의 저주를 없애는 덴 문제가 없어. 살아있기만 하면.”
“아, 그… 래요? 그런 건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훗날 사지 멀쩡한 시체가 되고 싶다면 이만 닥치고 자야겠구나.
“그래서.”
“뭐가.”
“계속 말할 거니까 그만 짖어대라며. 하려던 말이 뭔데.”
“…오늘의 나는 좀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
이런 끔찍한 몸뚱아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오늘 그 아기를 도울 수 있던 거니까.
나 완전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최악은 아닌 게 아닐까.
적어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좀 설렜어. 그래서.”
“….”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하자면.”
말하는 중간에 말을 끊고 들어와, 시답지 않은 얘기 그만하라며 나무랄 줄 알았는데.
로건은 의외로 진중한 태도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만 짖어대라고 말한 게 좀 효과가 있었나 보네.
“어두운 기운에 섞여서 황금빛 생명력이 조금씩 들어왔는데. 그냥 받아들였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사실 느낌이긴 한데 두 기운을 분리하려 애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근데 그러지 않았어. 일종의 보상이랄까.”
“….”
“그러니까 오늘 내가 이렇게 쓸데없이 말이 많은 건, 도둑질에 대한 고백이야 고백.”
그 말을 끝으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한 15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사위가 워낙 조용해서 그가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넌 나일의 뭐가 좋냐.”
“…?”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다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화 주제라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건 마치 친한 동성 친구끼리 킬킬거리며 할 법한 대화 주제잖아.
“얼굴?”
“….”
“일단 얼굴이 좋고, 목소리도 좋고… 바라보는 눈빛도 좋아.”
“….”
“어, 그리고 또….”
아, 이거 대화 하다 보니까 동성 친구끼리의 대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쩐지 내 대답을 로건이 묘하게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이, 내 아들이 어디가 좋으니? 라고 물어보는 시어머니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웃을 때 세상이 환해지고, 울 때 심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어. 그래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
짤막하게 수긍한 후 또 한동안 로건은 말이 없었지만, 그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뒤엉켰으니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가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