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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111)화 (111/134)

111화

“제정신이 아니군.”

“….”

“상황에 대한 자각이 있긴 해 너? 없는 거지? 왜 없지 근데? 있어야 정상 아냐?”

여관방을 나오는 순간부터 로건은 쉬지 않고 날 비난했다.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 밤거리는 인적이 뜸했다.

비난조의 말들을 참고 참다가 우뚝, 거리에 멈춰섰다.

“정상인 게 있긴 해요? 내 몸, 이 상황. 다 미쳐 돌아가는 비정상인데 뭘 자꾸 정상을 찾아요.”

“아픈 동생을 봐주기로 했다는 건 마법사라고 인정한 거나 다름없어. 네가 진짜 마법사든 아니든 마법사라는 소문이 마을에 싹 퍼질 거라고. 눈에 띄지 말아야 하는 상황인데.”

“봐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여관이 떠나가라 울었을 거라구요. 저 마법사는 동정심도 없다면서! 그럼 여관에 마법사가 묵는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도 남았겠죠!”

격앙되는 나를 만류하며 로건은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알겠어. 그러니까 가잖아 지금. 흥분하지 마. 거리에 소리가 울린다고.”

사람 흥분하게 만든 게 누군데.

마치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흥분했다는 투의 저 말투 진짜 팍 때리고 싶네.

“후… 조용히 가죠, 조용히. 나도 원하던 바니까.”

“….”

그 역시 원하던 바였는지 로건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

거리가 가깝다는 아이의 말은 진실이었다.

약속대로 마지는 보육원 정문 옆 담벼락에 쭈그린 채, 약속을 나눈 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법사님!”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어둑한 밤길에서도 잘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폴짝거리며 뛰어온 아이는 아프다는 동생을 만나기도 전인데 냅다 감사 인사부터 해왔다.

“어디로 가면 되니?”

“아, 네! 안내하겠습니다. 제 동생은 2층 맨 끝방에….”

“설마 보육원 건물로 들어가자는 말은 아니겠지.”

로건의 목소리에, 앞장서려던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의 목소리에 묻어난 부정적인 기운을 느꼈는지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전보다 조금 낮아져 있었다.

“아… 네, 맞아요.”

“우리는 비밀리에 수행 중이야. 다른 이들에게 마법사인 게 들통나면 곤란해. 그런데 사람 많은 저길 들어가자고?”

“전쟁 중엔 보육원 건물이 꽉 찼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적어요. 돌봐주시는 선생님도 적고요. 모두 깊은 잠에 빠져서 아마….”

“아마 괜찮을 거다?”

“….”

로건의 되물음에 아이가 꿀꺽 침을 삼켰다.

“아마잖아. 장담할 수 있어? 밤중에 화장실이 급한 아이가 깨어나 우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뭐라고 할 건데.”

“….”

“우린 보육원 건물에 안 들어가.”

“아, 어어….”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큰 눈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이대로 동생을 봐주는 걸 거절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려는 속셈인 모양인데.

여기서 애가 울음을 터트리면 그게 더 소란스러울 거라는 걸 몰라서 이러나.

애를 몰아붙이는 로건을 말리려 할 때였다.

“저긴 어디야.”

로건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보육원 건물 뒤편에 보이는 작은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아! 저긴 헛간이에요.”

“저긴 사람이 어느 정도 출입하지?”

“안 쓰는 물건을 모아둔 곳이라 평소에 아무도 안 가요. 저도 헛간이 있단 걸 까먹고 있었을 정도인걸요.”

“그래?”

로건의 시선이 잠시 헛간에 머물렀다.

“보육원 건물엔 안 들어가, 대신 헛간에서 기다릴 테니 조용히 동생을 데리고 나와.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고.”

“네!”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보육원 건물에 들어가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빌미로 그냥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물끄러미 쳐다보는 내 시선의 의미를 읽었는지, 로건이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온 거야.”

“….”

“뭐해? 안 와?”

“가요.”

*

안으로 들어선 헛간의 모습은 확실히 오래 방치된 모습이었다.

아무렇게나 대충 쌓아 올린 망가진 가구들과 물건들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비췄고.

아니나 다를까, 먼지를 마신 그가 가볍게 기침을 콜록거렸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돌아가자고 하지 않고 헛간으로 오자고 한 거. 괜찮았어요.”

차마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고.

또 그게 고맙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대단한 아량은 아니었잖아?

로건은 내가 건넨 말에 대답하지 않고 헛간 안을 살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동제국 황궁에서부터 아주 먼 곳인 이곳에 떨어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봐주겠다고 한 것도 있어요.”

“아 족제비 일어났겠다.”

진지한 얘기를 꺼내는데 그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댔다.

“배고프지 않아?”

“….”

고파요, 라고 대답하긴 죽기보다 싫어서 침묵하는 걸 택했다.

그는 은근히, 아니 꽤 눈치가 빠른 편에 속했다.

문제는 눈치를 챘으면서도 알면서 못된 질문을 하고야 마는 모난 인성이라 그렇지.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깨고, 아이가 헛간 문을 두드렸다.

“마법사님, 저예요. 들어갈 테니 놀라지 마세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작은 인영이 헛간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이의 품에는 포대기가 들려 있었다.

“헤헤, 죄송해요. 좀 걸렸죠. 들킬까 봐 천천히 움직이느라고 늦었어요.”

아이가 대충 닦은 테이블 위로 품에 들린 포대기를 내려놓았다.

어린아이의 동생이니 당연히 어릴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포대기에 싸여올 정도의 아기일 줄이야.

“동생이 많이 어리네.”

“네, 그래서 제가 지켜줘야 해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아이는 능숙하게 초에 불을 붙였다. 

이제 포대기 안을 들여다보고,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말을 해준 후, 여관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어쩌면 마법사님이 고쳐줄지도 몰라.

기대에 부푼 아이의 눈빛이 곧 실망감으로 흐려지는 장면을 예상하며 포대기로 다가섰을 때였다.

“…?”

멀쩡히 서 있던 아이가 쌓여 있던 물건들 쪽으로 픽 쓰러진 것이었다.

와르르 무너진 물건들에서 먼지가 날아올랐다.

그 가운데에서 로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기절시켰어.”

기절해 자루에 담겨있던 족제비와 기절해 쓰러진 여자아이.

로건의 눈빛은 내게 족제비가 담긴 자루를 넘길 때와 똑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흡수할 사람을 어디서 구해올까 고민이었는데 말야,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겠더라고. 보육원이 그런 곳이잖아. 부모 잃은 애들은 너무 많고, 그 중엔 부모가 자신을 버린 걸 인정 못 하고 도망가는 애들도 많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애가 한 명 사라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곳. 딱 알맞잖아?”

“너 정말 개새X구나?”

로건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기절한 아이를 안아 들었다.

테이블 위엔 여자아이와 그녀의 어린 동생이 싸인 포대기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마치 차려놓은 식사를 권하는 사람처럼 로건이 턱짓했다.

“네가 저 아픈 아기를 한 번 살펴본다고 쳐. 당연히 낫지 않겠지, 네겐 그런 능력 따위 없으니까. 그럼 저 애가 얌전히 돌아갈 거란 보장이 있어? 도와달란 말 한마디에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온 어리숙한 마법사를 저 애가 그냥 포기할 거라 생각해? 진짜 마법사들이 어떤지 알아? 도와달라 울부짖어도 저런 가난한 애새X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

“근데 넌 아니잖아. 아무것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와줬지. 말만 잘해서 잘만 꼬드기면, 눈물 좀 짜면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가난한 것들 하는 생각이 다 그렇지. 제 가난과 불행을 무기 삼아 널 휘두르려 하겠지. 근데 네가 한 번으로 끝이라고,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면? 그럼 저런 것들이 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고 떨어져 나갈 줄 아냐고. 도리어 왜 고쳐주지 않는 거냐고, 냉혈한 마법사라고 소문내고 다닐걸? 그땐 어떡할 건데.”

로건의 말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일 뿐이었으나,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게 들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

도와준다더니 왜 아무것도 못 하고 가는 거냐며 태도를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보고 웃고 울음 짓는 얼굴이 가면인지 가면이 아닌지. 그래, 나는 당하기 전까지 모르는 인간이다.

“어떡할 거냐고? 뭘 어떡해. 어쩔 수 없어, 당하고 우는 거지.”

“….”

“이런 어린 애들한테 몹쓸 짓을 하느니 그럴래. 넌 아니겠지만, 너랑 내가 같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럴 줄 알았다.”

담담히 대답하는 로건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보였다.

“근데 네가 흡수하지 않는다 해도 죽일 생각이라.”

양초의 불빛 때문에, 그의 오른손에 만들어진 투명한 얼음 칼날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로건이 주홍빛 칼날을 기절한 여자아이에게로 뻗친 순간이었다.

“하지 말라고!”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날렸다.

눈을 떴을 땐, 내 아래 몸을 내어 준 그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디로 날리는 거야? 이건 내가 받아 준….”

“너부터 죽일 거야.”

“….”

그의 위에서 로건의 멱살을 잡아 쥐고 흔드는 내 손은 하얗게 드러난 맨손이었다.

몸을 날리면서 장갑을 벗어 던졌으니까.

로건은 제 턱에 닿을락 말락 하는 흰 손을 보고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제일 죄책감 없는 건 너야. 그러니까 널 죽이기 전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없을 거야. 알아들어?”

“얼마 남지 않은 네 시간만 더 줄이는 일이야.”

“넌 개자식이지만 때가 될 때까지는 날 물지 않을 테니까. 그때까진 나도 널 살릴 거야. 이용가치가 있을 때까지만.”

내가 그 위에 올라타 있고, 맨손을 드러내고 있다지만.

로건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날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하는 협박 따위, 협박 같지도 않은 협박이겠지.

그러나 로건은 그저 잠자코 내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든지.”

“내가 일어나도 애들한테 손대지 않겠다고 말해.”

“명하신 대로 하죠.”

“응애—.”

아기 울음소리에 로건과 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에서 포대기가 꼼지락거렸다.

‘아, 맞다. 아기!’

포대기 안에 꽁꽁 싸매진 채로 계속 있었으니 숨 쉬는 게 답답했겠지.

나는 얼른 일어나 포대기를 들어 올렸다.

“미안, 미안. 아기야 미안해.”

“사람 조용히 시키는 방법은 하나밖에 모르는데 그건 하지 말라 하니. 빨리 조용히 시켜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알았다구요.”

로건의 채근에, 품에 안아 든 포대기를 조심스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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