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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110)화 (110/134)

110화

‘설마 쪽지를 빼앗을 때 손이 닿았나?’

그랬다면 내게 어떤 느낌이 있었을 텐데.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일에 온 정신이 팔려 닿았는지가 잘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렇다기엔 종업원의 눈이 왜 저렇게 커다래져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 그거 주셔야 되는데.”

“아, 미안해요. 너무 궁금해서 그만.”

돌려줄 때 손이 닿을까 염려되어 망설이고 있자, 눈치챈 로건이 내게 들려 있던 쪽지의 끝을 살짝 잡아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방 여기에요.”

쪽지를 돌려받은 어린 종업원이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방을 안내했다.

혹시 몰라 표정을 살폈지만, 아이의 얼굴엔 놀람도 불쾌함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장갑을 빨리 사야겠네.”

“네, 빨리요.”

*

여관 주인이 왜 그런 쪽지까지 적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투숙객이 별로 없는 여관은, 말만 여관이었지 주 수입원이 숙박이 아닌 음식 장사로 보였다.

점심을 팔던 1층이 손님들로 차 있던 것과는 상반되게, 여관방들이 있는 2층부터는 공기가 썰렁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방 천장 구석에 쳐진 거미줄에 눈길이 갔다.

창틀은 언제 닦았는지 먼지가 수북했고.

그런 상술 생각 말고 청소나 잘 하지.

“어디 나가지 말고 얌전히 있어.”

“도망갈까 의심스러우면 같이 간다니까요?”

오늘 아침 숲 입구에 있는 집을 나설 때,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나왔기에 두고 온 짐이 있었다.

로건은 짐을 가져오고 오늘 길에 장갑도 사 올 테니, 방에 잘 처박혀 있으라고 말하며 눈을 부라렸다.

“생각해보니까 넌 나 없으면 안 되더라고. 네가 서제국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겠어. 그래서 도망칠 일은 없을 거 같아.”

“그런 말을 들으면 도망치고 싶어져요.”

그는 자기가 필요한 말만 듣고 필요 없다 생각되는 말은 안 듣고 넘기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라고 하지 않아도 어디 나갈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올 때까지 잘 처박혀 있어.”

로건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방에 홀로 남아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나는 테이블 위에 사 온 지도를 펼쳤다.

‘빅토사 마을이 여기였구나.’

지형지물이 상세하게 표기된 질 좋은 지도는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동제국에서 일어났던 마물 습격 사건의 1차 발생지였던 빅토사 마을도 표기되어 있었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 정말 멀었다.

‘더럽게 머네. 씨.’

과연 동제국까지 들키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혼자 있는 나를 덮쳤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나쁜 생각 사서 하지 말자.

불안을 잠재우고 나니 다른 의문이 따라붙었다.

‘나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환한 빛에 감싸여 이곳으로 떨어졌다.

누가 봐도 도망치는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로건도 계속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네 말았네 의심을 했던 거고.

하지만 정말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누가 그랬느냐, 어떤 이유로 그랬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누가 나를 동제국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이 장소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 마을을 파다 보면 나를 소환한 자와 만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방에 있을 게 아니라 나가서 좀 돌아다녀 볼까.’

- 올 때까지 잘 처박혀 있어.

그래, 돌아올 때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텐데 장갑이나 사 오면 나가지 뭐.

들여다보던 지도를 돌돌 말고 있을 때였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계시죠?”

“네. 무슨 일이세요.”

“아까 주문하신 점심 식사 배달이에요.”

문을 열자, 아까 방을 안내했던 마지라는 소녀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몽글몽글 부푼 노란 오믈렛에서 따끈한 김이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맛있어 보이네요.”

테이블 위에 오믈렛이 든 접시를 올린 마지는 나를 보고선 밝게 웃었다.

나도 소녀를 보며 밝게 웃었다.

배고프니 식사할 수 있도록 어서 나가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아이는 어째선지 우물쭈물거리는 태도로 서 있기만 했다.

어제는 토끼 고기가, 오늘은 아침에 먹은 사과가 이틀 동안 먹은 음식의 다였다. 

아, 내 오믈렛 식는다.

“저….”

“네, 빨리 말씀하세요.”

“어, 저한테 말 편하게 해주시면….”

“알겠어. 그럴게.”

“….”

쟁반을 가슴에 품고 소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아직 할 말이 남았어?”

“그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뭔데, 뭐길래 괜찮으니까 말해 봐.”

밥 좀 먹게.

내 식사가 식고 있잖아.

사실 어제 나는, 생명력을 흡수하는 일을 식사라고 일컬었던 로건의 옆구리를 발로 차고 싶었다.

무슨 보이지도 않는 기운을 빨아들이는 게 식사니 식사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음식을 입에 넣는 게 식사지.

“어 그러니까….”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나 먹으면서 들을게.”

“마법사님! 제발 제 동생을 치료해주세요!”

“….”

아이에게서 들려온 황당한 발언에, 입에 막 넣으려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마법사라니.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오해라면 아니라는 설명을 붙이려 했겠지만.

너무 근거 없고 갑작스러운 오해라서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잘못 알았네, 아니야. 나 배고파서 밥 먹을게.”

“….”

부들부들한 오믈렛을 크게 한 입 떠먹자 불에 지진 달걀이 혀에 감기며 녹아들었다.

아, 이 집 음식 잘하네.

아이는 여전히 낙담한 얼굴로 벌서듯 서 있었다.

- 제발 제 동생을 치료해주세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렇게 부탁할 정도면 분명 안타까운 사정이겠으나.

나는 돕고 싶어도 마법사도 아니었고 웬만하면 이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그러니 더 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 마법사 아니니까 나가줬으면 해.”

그러나 아이는 미동 없이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많이 아파요. 약으로는 고칠 수 없고 신성력을 가진 사제님이나 마법사에게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저 같은 가난한 평민이 수도에 있는 마법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어린아이가 뚝뚝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하기에는 충분했으나.

정말로 나는 마법사가 아닌걸.

나는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정이 참 안타까운데, 그래서 내가 마법사였다면 정말로 도왔을 거 같아. 하지만 난 정말 마법사가 아니라 도울 수가 없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차분하게 설명했으나 돌아온 것은 앙칼진 외침이었다.

“아까 다 느꼈다구요! 마법사님의 마력을요!”

“….”

마력?

마력이 없는데 어떻게 느꼈을까? 아, 설마.

“할머니께 들었는데 대마법사는 몸에서 항상 강대한 마력이 흘러나온다고 했어요. 아까 마법사님께 손이 닿았을 때 전 그 마력을 느꼈다구요!”

처음 느껴보는 낯선 기운을 마력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픈 동생을 위해 늘 마법사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테니, 더더욱 마력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겠지.

“그건 마력이 아니야. 내가 마법사가 아니니까.”

오히려 그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마력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줄을 끊는 기운이란다.

단호한 부정에도 아이가 보인 행동은 무릎을 꿇는 일이었다.

“한 번 만요. 제발 한 번만 제 동생을 봐주세요! 더는 바라지 않을게요. 제발.”

“미안해. 더 할 말은 없어. 나가줘.”

“봐주신다고 말씀해주실 때까지 전 나가지 않을 거예요.”

난감했다.

이곳의 종업원인 아이가 계속 이 방에 머무르면서 떼를 쓰면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는 로건이었다.

‘그가 오면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이 아이를 해치려 들지도 몰라.’

“네 동생은 어디에 있어?”

아이의 얼굴이 금세 밝게 물들었다.

“여기서 가까워요! 멀지 않아요.”

마법사라고 해서 동생의 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한 번 보기만 하고, 이건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둘러대면 포기하겠지 싶었다.

“동생을 봐줄게. 단, 딱 한 번만이야.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해선 안 돼. 알겠니?”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가 방을 나갔다.

이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네.

*

장갑 외에도 로건이 가져다준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족제비였다.

어제와 같은 갈색 자루 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족제비는 기절해 있었다.

“….”

오늘도 찾아든 끔찍한 허기를 느끼면서도 나는 자루 안에 든 족제비를 내려놓았다.

“왜 입맛에 안 맞을 거 같아? 더 작고 귀여운 동물로 구해줄 걸 그랬나.”

가끔 평이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저렇게 저질스러운 말을 할 때면 없던 정이 더 떨어졌다.

“흡수하는 게 좋을 거야. 사람을 흡수해야 되는 시기를 그나마 늦추려면.”

“지금 말고 이따가요.”

“부디 깨어나기 전에 해주길 바라. 죽이는 것보다 기절시키는 게 더 어려워서 말야.”

“….”

자루를 내려놓는 나를 보며 로건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사실 그때 멈추지 않고 한 마디를 보탰다면 그에게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했던 것 같긴 하지만.

“계속 사람을, 흡수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나요. 당신이 나보다 치료제에 대해 더 잘 알잖아요.”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로건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잖아. 잘은 몰라. 다만 못 버틴다고 알고 있어.”

그렇다면 다시 또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손을 대야 한단 소리네.

어쩌지,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걸까.

“죽을 때까지 말고, 그냥 아주 조금만 흡수하는 건요?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뭐 잠깐 닿았다 떨어지는 건 사람의 생명력을 갉아먹지 않을 거야. 다만 네가 죽는 때가 더 일찍 오겠지. 그게 얼마나 단축되는 진 나도 몰라. 어쩌면 나일을 만나기 전에 올지도 모르겠네.”

“….”

로건과 대화하는 일은 너무 자주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고개를 떨구고 쓴 입술을 적시자,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냥 쉽게 생각해. 사람이 죽는 일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사람 참 쉽게 죽어. 범죄를 저질러서 사형당하기도 하고, 질병에도 죽고 전쟁에서는 빗발치듯 죽어. 아주 흔한 일이라고.”

“나일이 죽는 일도 당신에게 쉬운가요?”

“….”

물론 그 역시 나와의 대화에서 자주 입을 다물곤 했다. 지금처럼.

시계를 보니 어느덧 종업원 아이와 약속한 시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혼자 가는 것보다 로건을 달고 가는 게, 일을 더 귀찮게 만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로건의 의심을 살지도 모를 일을 더 추가하고 싶진 않았다.

“그 얘긴 됐구, 함께 갈 곳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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