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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83)화 (83/134)

83화

- 언니 언니, 사람들 말 진짜야? 이제 언니가 황자 전하의 비가 되어 황궁에서 살아?”

- 아니, 나는 집으로 돌아올 거야. 황자 전하가 거의 건강을 되찾으셨어. 큰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게. 이번에 돌아오면 황궁엔 가지 않을 거야.

언니의 품속에서 동생은 그 말을 꾹 믿으며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언니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는 언니가 가져온 보상금으로 큰 집을 샀다.

새 옷을 잔뜩 사고, 마차를 타고 비싼 디저트 집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계속 행복할 거라 의심치 않았는데.

“집에 사람이 찾아왔어요.”

언니를 너무나 사랑하던 어린 동생으로 돌아가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년 여성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분은 황자 전하였어요.”

신분을 숨기고 찾아온 이는 황제, 그 당시의 황자였다.

그렇게 짙은 흑발과 흑안을 가진 이는 흔치 않았다.

동생은 저택 정원에서 언니가 남자에게 황자 전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황자 전하, 그러니까 지금의 황제 폐하죠. 폐하께서는 언니를 사랑한다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언니도 그런 것 같았어요.”

어린 동생의 눈에는 그 장면이 그저 로맨틱하게만 보였다고 했다.

중년의 여성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지만 언니는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황제 폐하께 돌아가시라 말했는걸요. 자기 자리는 여기고 황제 폐하의 자리는 황궁이 맞다고요.”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누군가가 집을 찾아왔다.

회색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자였다고 했다.

처음엔 그가 황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를 본 언니의 반응을 보고는 그가 황제가 아님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황제 폐하를 만났을 때랑은 다른 반응이었죠. 언니가 매우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그를 유심히 쳐다봤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회색 로브 안에서도 형형이 빛나던 푸른 눈이.”

*

나는 흐트러지려 하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치료제인 언니가 지금 어디 있는데,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는데!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전 치료제와 황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여자가 내게 하는 이야기는 어디 가서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용기 내서 하는 것일 테지.

그러니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언니는 그 회색 로브를 입고 온 자를 따라 나갔어요.”

“….”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난 바보 멍청이.

그걸 꼭 되물어야 아니.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끝으로 더 말이 없으면 뭐겠냐구.

“예?”

멍청한 표정으로 되묻자, 중년 여자가 정확한 단어로 답을 돌려주었다.

“죽은 거예요, 언니는.”

나는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하, 하지만… 아까 아, 아버지께서는 치료제의 피를 판다고.”

중년의 여자는 죄스러운 마음에 목이 메는 듯했다.

“거짓말이에요! 돼지 피를 가져와서 언니의 피라고 속여 파는 거라구요! 흑… 하지만 저도 말리지는 않았어요. 그 돈이 생기면 저를 들볶지 않으니까요.”

황제를 치료한 치료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치료제니까 다른 병도 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언니를 데려가기 전, 언니는 돈을 받고 아픈 몇 명을 만났다고 했다.

실제로 치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치료제에게 다른 병도 낫게 하는 힘이 있다는 소문은 퍼져나갔고.

언니가 죽고서도 찾아오는 이들에게 아버지는 돼지 피를 언니의 피로 속여 팔았다고 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황제의 치료제가 죽었다.’

원작에서 피비도 죽었는데, 그 전 치료제도 죽었다니.

운명의 장난인가?

두 치료제의 죽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하나?

“하….”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저주와 치료제에 관한 단순한 정보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치료가 잘 되는지, 얼마 만에 치료됐었는지… 디테일한 정보들.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 와서 만나보자고 가볍게 이곳에 온 것인데.

그런데 그 끝에서 발견한 게 전 치료제의 죽음이라니.

정말 죽음일까?

그냥 실종일 수도 있잖아.

하긴, 실종이라고 해도 이상한 일이란 건 변치 않지.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걸 알지만, 혹시 언니분의 시신은 확인하셨나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자는 힘없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알 수 있어요. 언니는 황실에서 죽인 겁니다. 전 그게 황후라고 생각해요.”

황후라는 단어에 놀라 펄쩍 엉덩이를 들었다 앉았다.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쉬고 있는 마차꾼이 보였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황후라는 예상치 못한 단어가 나만 놀래킨 건 아닌 듯했다.

알레나의 얼굴에도 당황스러운 빛이 스몄다.

“집에 왔을 때 이야기했어요. 황후가 무섭다고요. 그리고 제가 언니가 보고 싶어서 황궁으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황후를 마주쳤다 했다.

자신을, 그리고 자신 옆에 서 있던 언니를 황후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고.

“그 원망 가득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회색 로브를 입은 자를 보내 언니를 죽인 건 황후가 확실해요.”

그 말을 끝으로 중년의 여자는 한참을 오열했다.

황궁의 사용인들이 전 치료제를 아느냐는 물음에 하나같이 정색을 하고 모른다 잡아뗀 것은 이 때문일까.

죽인 사실까지는 몰라도, 동생이 느꼈던 황후의 살기를 사용인들도 느꼈을 테니.

“아끼는 사람이 치료제가 되었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황궁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말고 죽은 듯 지내다 오라고 조언하세요. 황궁은 무서운 곳이니까요.

내 가족이 사라졌는데도 황궁을 대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여자가 내게 힘겹게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아직 진정되지 않은 여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생각에 잠겼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크다.

별 연관도 없는데 동시에 일어나서 마치 인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 세상에 많이 있잖아.

전 치료제도 피비도 그럴 수 있다.

전 치료제는 황후의 질투를 받아서, 피비는 로건의 질투를 받아서.

황자의 치료제란 위치가 누군가의 질투를 사기 좋은 위치 아닌가.

그냥 둘 다 운 나쁘게 사람을 살해하는 것도 가능한 인물들에게 질투를 산 것이 아닐까.

‘게다가 동생의 추측일 뿐인걸.’

단순 실종일 가능성도 농후해.

죽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고, 그 배후가 황후라는 것도 동생의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왜 하필 둘 다 푸른 눈의 남자에게 죽은 거냐고.

슬슬 진정되어가는 여자의 어깨를 짚었다.

잠깐 잊고 있던 피비의 죽음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

실종된 언니의 이야기로 한참을 오열한 여자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며 마차 문을 밀었다.

별 소득 없이 꺼림칙한 이야기만 잔뜩 들은지라, 마차에 남은 셋의 얼굴은 다 진이 빠진 표정들이었다.

빨리 숙소든 황궁이든 돌아가 쉬고 싶었다.

저 멀리서 쉬고 있던 마차꾼을 불렀다.

“아저씨~”

어서 돌아오세요. 집에 갑시다.

그러나 분명 조금 전까지 마차꾼이 쉬고 있던 자리엔 있어야 할 사람은 없고 찬 바람만 불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금방 돌아오겠지, 설마 자기 마차와 손님들이 이곳에 있는데 어디 멀리 갔겠어?

“….”

그러나 마차꾼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설마….

불안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나는 마차 안 좌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없어….

“언니 엉덩이 들어 봐.”

없었다.

“레나야 너 밑에 깔고 앉은 거 없어? 그쪽에 주머니 없어?”

“아무것도 없어, 뭘 찾는 건데.”

그때까지도 사태파악이 안 됐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파베라를 향해 말했다.

“언니 보석 주머니. 어디 있어?”

“어머, 안 보이는데?”

“아까 마차에서 내려서 저 집 갔을 때, 보석 주머니 마차에 놓고 내렸어?”

“당연하지.”

“왜.”

“스타일을 구기잖니.”

그러면서 호호호 웃는다. 하….

제발 스타일을 구기지 않을 만큼 조금만 들고 다니라고.

우리가 마차를 비운 사이, 마차꾼은 좌석에 덩그러니 놓인 두툼한 주머니를 발견했을 것이다.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었다면 열어보지도 않았겠지.

그러나 그는 마차꾼으로서의 직업윤리 실천보다 호기심을 실천하길 택했고, 열어본 주머니엔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그득 들어있었다.

보석의 양은 그가 가진 삯마차 따위는 수십 대를 살 수 있는 양이었고, 그리하여 그는 직업을 마차꾼에서 도둑놈으로 바꾸길 선택하고 만 것이었다.

“얘, 그거 뭐 얼마나 된다고 미간을 구기니?”

파베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또 호호호 웃었다.

그렇지, 나도 보석이 아깝진 않아.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나뭇가지 몇 개 주워다가 금방 만들 수 있는 양이잖아?

하지만 문제는 말이야.

“레나야, 여기 마차가 와?”

“오겠어?”

웃고 있는 사람은 파베라 뿐이었다.

레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썩어 있었다.

마차 안에 앉아, 창밖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지나가는 마차는 보이지 않았다.

이 동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란 말이다.

마차를 소유한 사람들도, 마차를 이용할 사람들도 없는.

“너 마차 몰아봤어?”

왕녀 커리큘럼에 마차 운행의 이론과 활용 같은 과목은 없었니.

왕녀로 살다 공녀로 사는 애한테 마차 운행 경력을 찾는 내 의미 없는 질문에 알레나는 예상했던 뭐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알겠어.

“어려운 일인가? 내가 해볼게.”

파베라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 언니.

좋아했던 남자한테 고백 받고 그다음 날 교통사고로 세상 하직할 생각은 없단 말이야.

“차라리 제가….”

나와 같은 불안함을 느꼈는지 답답한 얼굴로 알레나가 말했지만.

말릴 겨를도 없이 당당한 목소리와 태도로 파베라는 마차 문을 밀고 내렸다.

마부석에 사뿐히 올라탄 그녀가 고삐를 양손에 쥐었고, 급히 그녀를 따라 옆자리에 올라선 내가 고삐를 쥔 그녀의 팔목을 지그시 눌렀다.

“언니, 언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언니가 고생할까 봐 그래. 일단 우리 조금만 더 생각이란 걸 해 보고 결정할까?”

“생각할 시간이 아깝지 않니? 나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악.

나는 안전제일주의란 말여.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놈이 아니라, 반드시 잘할 수 있는 놈한테 맡길 거라고!

당장이라도 고삐를 내려치려는 그녀를 사색이 된 얼굴로 끌어안았는데.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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