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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43)화 (43/134)

43화

멘데 공작가의 영지가 있는 곳으로 갈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동제국 황궁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는 동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마차 안에서 저 멀리 동제국의 황성이 보였다.

‘으리으리하네.’

도대체 멀리서 보이는 게 이 정도인데 규모가 얼마나 큰 거야?

저 크고 넓은 황궁 어딘가에 황자궁이 있을 테고, 그곳에 그 남자가 있을 것이다.

마차의 앞 좌석을 보자 파베라는 없고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파베라가 남긴 짐꾸러미만이 남아있었다.

어딘가 들려야 할 곳이 있다면서 중간에 마차에서 내린 파베라는 후에 합류하겠다면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딱 구경 다니기 좋을 시기에 도착했네.”

엄마는 수틀에 끼워진 천을 팽팽히 당기며 얘기했다.

부인은 친구인 멘데 부인에게 선물한다며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손수건에 자수를 놓았다.

쓱 보니 거의 다 완성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하고 많은 것 중에 쇠똥구리예요?”

손수건엔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다 등딱지가 바닥으로 향하게 뒤로 엎어져 있었다.

내 말에 엄마가 픽, 하는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우리 어렸을 때 집 근처에 목장이 있어서 자주 놀았거든. 거기서 같이 곤충 채집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서… 친구가 이거 보고 웃으라고.”

그 말을 하는 엄마는 이미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한없이 소녀 같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5월의 동제국은 정말 아름답단다. 그래서 귀족들이 다 수도에 올라와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

볼 게 너무 많아서 내 딸 얼굴이 휘둥그레질게 엄마 눈에 선하네, 라는 말을 그녀가 덧붙였고.

그중에 제가 보고 싶은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뒷말을 나는 속으로 삼켰다.

*

멘데 공작가의 타운하우스는 귀족들의 타운하우스가 몰려 있는 메인 거리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헤에….”

마차에서 내려 앞을 보니 고풍스러워 보이는 붉은 벽돌집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빌론 왕국에서는 죄다 하얀 건물 일색인지라 내게는 그 벽돌집이 꽤 예뻐 보였는데, 옆에 선 엄마의 표정은 그렇지 못해 보였다.

“후… 들어갈까?”

엄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우리를 안내하는 시종의 뒤를 따랐다.

시종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멘데 부인의 방이었다.

그 앞에 선 시종이 우리의 방문을 알렸다.

“셀린 백작 부인과 프리지아 자작 영애께서 오셨습니다.”

“….”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에서는 들려오는 말이 없었지만 시종은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었다.

엄마를 앞세워 조심스레 방안으로 발을 들였고, 그렇게 들어간 멘데 공작부인의 방은 어둡고 침침했다.

‘쾌쾌해….’

방 어딘가에서 곰팡이가 피었는지 퀴퀴한 냄새가 났고, 창은 죄다 커튼을 쳐 놓아서 대낮인데도 저녁처럼 어두웠다.

그렇다고 마냥 허름하기만 한 느낌을 주는 방은 아니었다.

방에 들여놓은 가구들은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한눈에 비싸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저택처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가구들이라는 것.

그리고 마치 그 고급스럽지만 낡아 버린 가구 중 하나인 것처럼,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의 귀부인이 우리를 향해 몸을 일으켰다.

전 멘데 왕비이자 현 멘데 공작부인이었다.

“유리아….”

부서질 것 같이 힘없는 목소리로 엄마의 이름을 부른 그녀가 걸어와 엄마를 끌어안았다.

“정말 반가워, 나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얼굴 좀 보자 페이.”

“응응, 방이 너무 어둡지. 창문 열까? 어, 일단 여기 앉아.”

멘데 부인이 허둥지둥 테이블 정리하는데 드러난 그 손목은 가녀리다 못해 비쩍 말라 있었다.

“하녀, 하녀를 불러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해? 손님 오신 거 안 보여?”

엄마를 반기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멘데 부인은 짜증이 가득 난 표정이었다.

“제가 열까요?”

멘데 부인의 얼굴빛과 함께 엄마의 낯빛도 어두워져 가는 걸 지켜보던 나는 보다 못해 몸을 일으켰다.

창문이 끝나는 기둥까지 커튼을 쭉 밀자, 기다렸다는 듯 햇빛이 밀려들었다.

“유리아, 이 아가씨는….”

멘데 부인이 내 얼굴을 훑자, 엄마가 준비한 멘트를 했다.

“셀린 백작이랑 친한 자작님의 딸인데, 부탁을 받아서 요즘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는 중이야.”

멘데 부인이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금방 흥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제 친구인 셀린 백작 부인에게 향했다.

“역시 너는 뭐든지 잘해. 딸을 맡긴다는 건 네가 그들에게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잖니? 우리 어렸을 때부터 넌 그랬잖아~”

엄마를 바라보며 아이처럼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멘데 부인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어쩐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멘데 부인의 상태는 그녀를 처음 보는 내가 보기에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엄마와 멘데 부인은 그동안 꾸준히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이처럼 직접 만나는 것은 약 10년 만이라 했다.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로 둘은 이야기꽃을 피웠고,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프리지아 자작 영애라고 했나요?”

“네, 부인.”

“인제 보니 우리 유리아를 닮았네요?”

“하, 하하… 아름다운 백작 부인을 닮았다 말해주시니 기쁩니다.”

곁눈질로 어색하게 웃는 엄마와 눈을 맞췄다.

멘데 공작부인이 뭔가를 눈치챈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여기 있기 지루하지 않나요? 다 모르는 이야기들일 텐데….”

“아… 아뇨, 두 분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셔서 모르는 이야기인데도 막 머릿속에 그려져서 재미있는걸요.”

“그래도~ 어린 아가씨가 듣기에는 너무 낡은 이야기들이에요.”

멘데 부인이 설렁줄을 당기자 아까 우리를 부인의 방까지 안내했던 그 시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빗은 어디 있어?”

“소공작님은 친구분들과 나가셨습니다.”

“이런 아쉽게 됐네. 우리 아들이 참 잘생겼는데.”

“….”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그 말을 하는 통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바라는 대답이 있는 건가.

“그럼 알레나는?”

“알레나 아가씨는 방에 계십니다.”

“잘됐네, 알레나를 데려와요. 알레나에게 이 아가씨 저택 안내를 맡기면 되겠어.”

그 말에 시종의 눈빛이 일순 망설임으로 일렁였지만 그 이유를 알 순 없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엄마의 눈빛을 살폈다.

그녀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공작부인.”

인사와 함께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

시종을 따라 응접실로 나온 나는, 멘데 영애를 데려오겠다는 말과 함께 시종이 사라진 후 홀로 응접실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아들을 아끼는 어머니군.’

아들 이름을 꺼낼 때와 딸의 이름을 꺼낼 때의 공작부인의 톤이 너무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지나가던 비둘기도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딸과 아들 사이 애정의 척도가 되게 차이 나는 느낌.

생소한 느낌은 아니었다.

딸보다 후에 가문을 이어받을 아들을 훨씬 아끼는 집이야 흔해 빠졌지 않은가.

‘근데 왜 이렇게 안 와.’

응접실에 앉아 번갈아서 다리를 꼬던 나는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 멋대로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정원이나 구경하고 있을까.

밖으로 나와 정원으로 들어서자, 정원에는 아직도 아침에 잠깐 내린 비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풀냄새가 싱그러웠다.

벽돌집의 외벽은 온통 담쟁이 넝쿨로 덮여 있었다.

3층 높이까지 올라간 담쟁이 넝쿨이 세월을 느끼게 했다.

확실히 이 저택은 낡고 오래된 집 같아 보였다.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현 공작의 저택이라고 보기에는 한없이 볼품없었다.

그건 빌론 왕국의 소르베 공작가의 타운하우스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었다.

작은 왕국의 공작가인 소르베 공작가의 저택이 훨씬 크고 고급스러웠다.

그렇다고 동제국 귀족들의 가풍이 다 이렇게 소박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에는 타운하우스 메인 거리에서 보았던 그 집들은 훨씬 컸고 훨씬 고급스러웠다.

엄마에게 들은 말대로 멘데 가문은 동제국으로 복속되며 정말 탈탈 털려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멘데 공작부인은 그 과거의 부귀영화를 잊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니 그 작은 방에 가구들이 꽉꽉 들어차 있지.

저택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할 공작부인의 방이 저 모양이니 다른 방들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갔다.

과거 왕실에서 썼던 물건들도 추억들도 버리지 못한 채 이 작고 낡은 저택에 욱여넣고 힘겹게 끌어안고 있는 모양, 딱 그랬다.

아마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도, 친구의 그런 상태를 보자마자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프리지아 영애?”

“….”

묘하게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연한 에메랄드색 머리가 살짝 부스스한 모양으로 떠 있는 내 또래의 여자애가 서 있었다.

‘와.’

이 집 첫째 아들이 잘생겼다는 말 진짜일 거 같아.

내 눈앞에 서 있는 멘데 영애를 보니 첫째 아들 미남 설에 신빙성이 실렸다.

저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면 못생기기가 불가능하지.

“여기서 뭐 해요. 볼 것도 없는데.”

“아… 그냥 이것저것… 정원 구경을….”

그녀는 눈, 코, 입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자의 눈은 머리카락 색에 비해 채도가 높은 선명한 민트색이어서 다가가면 알싸하고 시원한 향이 날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 눈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깜박거렸다.

“나가죠. 따라와요.”

“네? 저택 구경시켜주신다고….”

내 말에 이미 몸을 돌려 앞서 나가던 멘데 영애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눈 없어요? 이 작고 허름한 저택에 볼 게 있을 것 같아요? 다 귀신들린 것 같은 물건들뿐인데.”

“….”

왜 냅다 화를 내는 거야, 이 여자.

내가 먼저 구경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너만 짜증 낼 줄 아냐? 그건 내가 더 잘 할걸?

보란 듯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자, 멘데 영애가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동제국 처음이라면서요? 수도는 5월부터 노란꽃축제 기간이에요. 아직 4월이라 시작 전이지만 이미 꽃은 가득 피었어요. 그걸 보는 게 저택 구경보다 100배는 재미있을 거라고 장담할게요. 어떡할래요?”

그렇다면 가야지.

그렇지 않아도 나일의 상태를 내 눈으로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수도를 돌아보는 게 저택 구경이나 하는 것보다 훨씬 바라던 바였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녀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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