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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37)화 (37/134)

37화

우리가 탄 검은 말은 거침없이 호수 위를 질주했다.

근육질로 된 말의 다리가 강한 힘으로 호수 위를 박차고 나갈 때마다, 말발굽에 달린 쇠로 된 편자가 얼어붙은 수면과 충돌하며 쩌억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미리부터 너무 겁먹지 말자.’

지금 내가 가는 호수 건너편에 로건 후페이가 있다고 해도, 나는 지금 치료제의 문양도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황자의 목숨을 구해낸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딱히 공작에게 미움을 살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황자가 자꾸 동제국에 같이 가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긴 했지만, 이미 거절했으니 그도 알아들었겠지.

남자와 함께 호수 건너편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내 갈 길 가면 되는 것이다.

대충 마음의 정리를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따돌린 건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잡아먹을 듯이 따라붙던 인기척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질 않고 있었다.

우리가 숲을 빠져나와 호수에 들어섰기 때문에 더 추격하지 않는 건가?

이제부터는 동제국 군의 영역이 시작되니까?

한참이나 뒤를 살펴보았지만 숲속에서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때.

- 쉬익 

아까와 같은 소리였다.

날아와 꽂히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이번에도 날아온 화살은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화살촉이 대상을 꿰뚫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화살이 우리를 맞히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얼어버린 수면 위에 꽂힌 화살대가 진동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후아….”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긴장과 공포로 목덜미가 굳었다.

추격대의 화살이 우리를 빗나갔다는 안심과, 아직도 추격대가 우리를 쫓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교차했다.

남자의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꽉 잡아요!!”

- 쉭 쉬익 쉬익

소리와 함께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자, 불타는 듯이 일렁이는 모습의 화살들이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몇 개의 화살이 연달아 우리 근처로 떨어졌고, 황자는 마치 화살이 어디로 떨어질 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의 방향을 바꿔나갔다.

고개를 돌려 화살촉이 꽂힌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 근처로 떨어진 것도 있었지만 외곽으로 떨어져 호수 안으로 사라진 화살들도 보였다.

눈을 찌푸려 그곳을 자세히 보니, 호수는 전체가 다 얼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호수 중앙 부분은 얼어있지만 호수 외곽은 얼지 않아, 화살이 호수에 빠지며 수면이 출렁거렸다.

“괜찮아요.”

남자가 그의 허리를 감싼 내 손 위로 제 손을 덮었다.

내 손 위를 덮은 그의 손이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내가 수많은 화살에 겁을 집어먹고 그의 허리를 꽉 껴안은 탓일 것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내가 다 피할 테니까... 한 대도 맞지 않을 거예요.”

너 이미 맞아서 오른쪽 어깨에 피가 흥건한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래?

날 안심시키는 그의 목소리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이런 순간에도 날 신경 쓰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저기요.”

“….”

“고마워요.”

그에게 내 고마움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맞닿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손을 움켜쥐자, 살짝 머뭇거리던 그의 손이 내 손을 더 힘 있게 쥐었다 놓아주었다.

“다 왔어요. 빠르게 갑시다.”

그가 내 손을 풀고 다시 말 고삐로 손을 가져갔다.

나는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등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황자가 다시 속력을 높이려는 모양이었다.

- 쉬익

또다. 또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보지도 못했는데 어디지, 어디에 떨어진 거지.

나는 그의 등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으윽….”

고개를 드니, 남자가 왼쪽 팔을 내가 있는 뒤쪽으로 뻗고 있었다.

그의 팔을 관통한 화살촉에서 진득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가 팔을 뻗지 않았다면 내 허리에 꽂혔을 법한 위치였다.

어….

어떻게….

- 쉬익

그다음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말이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가누질 못했다.

말이 쓰러지며, 그 위에 타고 있던 남자와 나는 얼어붙은 호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몸이 딱딱한 얼음 바닥 위를 굴렀다.

떨어지며 발이 삔 모양이다.

발이 접질리는 고통에,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나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얼음 바닥을 짚었다.

말 위에서 떨어진 남자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접질린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얼음 위를 기었다.

그렇게 다가간 남자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자, 나를 발견한 그가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화살이 뚫고 나온 그의 팔을 보기가 힘들어 나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 피한다더니… 말한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

“진짜 거짓말 너무 심하네.”

그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거짓말이라니… 한 대도 안 맞았잖아요. 난 말한 거 지켰는데.”

“나만 안 맞으면 돼요? 다 피했어야 할 거 아니에요!”

“하하ㅎ… 미안해요. 그 정도의 능력은 없는 남자라.”

앉은 채로 몸을 끌며 그에게 더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피 냄새가 너무 심하게 풍겨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내 어깨에 머리 기대요.”

남자의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호수의 한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빠져나온 숲 쪽을 보니, 아, 열심히 우리에게 화살을 날렸던 분들이 저분들인가 보다.

말 세 마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말 한 마리 위에는 두 명이 타고 있구나. 그럼 총 네 명인가?

“우리 이제 죽는 걸까요? 네 명이나 오는데.”

“그럴 리가. 반대편 봐요.”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동제국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얼음 위를 달려오고 있었다.

황자를 구하러 오는 동제국 군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아마 저분들의 손을 빌어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다 싶었다.

“큭.”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가 제 팔에서 화살을 부러트렸다.

나는 얼른 가방에서 드레스를 꺼내 북 찢어낸 천을 그의 팔에 둘렀다.

“피가 너무 많이 나요.”

지금 막 둘둘 감싼 천이 금방 그의 피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의사도 있고 사제도 있고 다 있는 거죠?”

그래서 이깟 상처쯤은 금방 치료받고 쌩쌩해질 수 있죠?

당신은 황자님이니까 난다긴다하는 의사고 마법사고 다 부를 수 있을 거잖아요.

어지러운 생각들이 떠도는 와중에도 피는 계속 흘러, 이제는 방금 싸맨 천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나는 이를 악물며 드레스를 더 찢었다.

이미 피로 절여진 천 위에 다시, 찢긴 천을 동여맸다.

“다 있어요. 걱정 말아요. 나 안 죽어요.” 

내 팔뚝을 두드리며 그가 날 안심시켰다.

망할 거짓말쟁이가 하는 말에 안심이 될 턱이 있겠냐.

진동하는 피 냄새 사이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울어요?”

“….”

“아이참.”

“내가 그냥 당신 따라오지 말 걸 그랬어요. 그러면 이런… 흐어엉.”

“바보네….”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팔을 올렸다.

그걸 보고서 나는 올라오는 그의 손을 확 내쳤다.

아픈 손 올리지 마! 피 더 나잖아!!

“아! 가만히 좀 있어요!!”

“와… 환자를 막 대하네.”

“….”

“울지 마요.”

그는 나보다 고집이 더 센 사람이다.

결국 그가 다친 팔을 들어 올렸다.

그가 피가 뚝뚝 흐르는 손으로 내 볼 위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울지 말고 저기 봐요. 저기 신기한데?”

“뭐요.”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리를 추격하던 그자들이었다.

이상한데?

두 사람이 탄 말 한 마리가 양쪽의 말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거 봐요. 저놈들 내분 일어났나 보다. 꼴좋다. 그죠?”

“….”

“잘 봐 봐요. 지금 저놈들 동제국 영역이니 인제 그만 가자는 쪽이랑 우리가 코앞에 있으니 어떻게든 해보자는 쪽이랑 갈린 것 같은데.”

남자가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내게 히죽 웃어 보였다.

핏방울이 튄 얼굴로 잘도 웃는다.

“울지 말고 저거 봐요. 재밌지 않나?”

“….”

저런 무서운 광경이 재미가 있겠니.

어떻게든 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그의 의도를 무시하고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앉은 자리가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했다.

도대체 피를 얼마나 흘리는 거야.

이렇게 많이 흘려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야?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살피자 동제국 병사들이 열심히 달려오고 있긴 했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보였다.

도대체 훈련받은 병사들이 왜 이렇게 느린 거야 다들.

빠르게 움직이는 말의 다리가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여기 이 사람 죽어 가는데… .

“안 먹히네. 저거 재미없구나.”

“….”

“그럼 우리 다른 얘기하고 있을까요?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하는 거 어때요.”

그가 자꾸 얘깃거리를 던졌지만 그렇다고 내 애타는 마음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두 겹으로 동여맨 천마저 피에 절어가고 있었다.

나는 화살이 관통한 그의 팔을 손으로 잡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그 위로 눈물만 떨굴 뿐이었다.

남자가 손등을 들어 올려 내 눈물을 받아냈다.

“아까 우리 무슨 얘기 하다 화살 맞았죠? 아~ 맞다. 나 싫어서 동제국엔 절대 안 간다는 얘기 하다가 화살 맞았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푸핳… 아 윽….”

“아파요? 미안해요. 소리 질러서.”

그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애써 웃어 보였다.

밤의 얼어붙은 호수는 온도가 매우 낮았다.

흘러내리는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는 남자의 손에는 이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알아요. 동제국엔 당신이 원하는 게 없다고 했죠? 그러니까 더 오라는 말은 안 할게요.”

“흐으으… 흐어어어엉.”

“아, 이 여자 울지 말래도 자꾸 우네….”

누군 울고 싶어서 우는 줄 아냐.

이제는 눈물이 흐르다 못해 쏟아지고 있었다.

눈물뿐인가.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 흘러서 얼굴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배우들은 드라마에서 콧물 따위 흘리는 일 없이 눈물만 예쁘게 흘리던데.

망할, 나는 그게 안 됐다.

중간중간 콧물을 훔치는데도 콧물이 계속 났다.

아마 지금 얼굴이 심하게 못생겨 보일 테지.

눈물이 얼굴을 뒤덮어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대신 내가 올게요.”

“….”

“내가 몸이 좀 나쁜데, 반드시 건강을 회복해서 당신을 만나러 올게요. 그건 괜찮잖아요.”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무슨….”

“괜찮다고 말해요 빨리.”

목이 메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인간아.

그리고 당신이 여기 오면 내가 곤란해진단 말이다.

대답을 못 하고 눈물 콧물만 쏟아내고 있자, 그가 손을 들어 내 코밑을 훔쳤다.

“자꾸 우니까 콧물을 이렇게나 흘렸잖아요. 그만 울고 빨리 말해요. 기다릴 거라고.”

아닌데.

우리 여기서 끝이에요.

당신은 잘 살아나가고 나도 이곳에서 잘 사는 이야기여야 한다구요.

“나는… 그쪽이… 흑.”

목을 가다듬었다.

제대로 말을 하기 위해, 한 번 시원하게 훌쩍거려서 콧물도 왕창 먹었다.

나중에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지금은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입을 연 건 남자였다.

“동제국엔 당신이 원하는 게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나는.”

“….”

“내가 원하는 건 당신한테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나… 기다….”

“나일!!!!”

그때, 동제국 쪽에서 누군가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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