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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36)화 (36/134)

36화

그가 어깨에 화살이 꽂힌 채로 말을 몰았다.

남자의 거센 발길질에 말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속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말의 속력이 빨라진 만큼, 속도를 유지하며 나무로 빽빽한 숲속을 빠져나가기란 마치 묘기와도 같았다.

나는 빠르게 달리는 말에서 떨어질까, 황자의 등에 딱 붙은 채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쫓아오고 있어.’

아직 눈에 보이는 거리까지 따라붙은 건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착실히 거리를 좁혀오는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살을 날려 맞힐 만큼 가까이 있었다는 건데 왜 여태까지 몰랐지?

아니 그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리인데 화살을 맞히다니.

2황자가 보낸 추격자들인가?

“내 자켓 안쪽에 손 넣어 봐요.”

이런 상황에서 하는 말이 쓸데없는 말일 리 없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남자가 시키는 대로 남자의 자켓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꽂힌 화살촉 주위로 피가 번져나가고 있었고 그것이 염려되었지만, 지금의 내게 그것을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빠르게 해야만 했다.

“단검 있죠?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당신 목에 대고 위협했던 칼, 기억하죠?”

“기억해요! 따끔했거든요!”

자켓 안쪽을 더듬자 손에 집히는 날붙이가 있었다.

꺼내 드니 그의 말대로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튤립 무늬가 새겨진 단검이었다.

“찾았어요!”

“잘했어요. 자 이제 칼집에서 칼을 빼내요. 그 후에 칼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칼집 안쪽으로 손을 넣어볼래요?”

더듬더듬 칼집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에 볼록하게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뭔가 만져져요!”

“네 그거 눌러요.”

살짝 누르면 혹 잘못될까 나는 손가락에 만져지는 그것을 있는 힘껏 눌렀다.

“눌렀는데 아무 일도 없는데요?? 내가 잘못 한 걸 까요!?”

“아직 인가….”

“뭐가 아직 인데요?!”

그게 뭐든 아직이면 안 되는 거 아냐? 지금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당황스러움과 낙담으로 칼집만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때였다.

튤립 부분의 보석이 밝게 빛나며 하늘 위로 일직선의 빛줄기를 쏘아 올렸다.

빛으로 휘감긴 붉은 기둥은 마치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명탄 같았다.

“왔네.”

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뭐가 온 건지 나도 알자!

“맞은편 하늘 보여요?”

내 속마음을 읽었나 보다.

그가 말한 대로 저 앞에 있는 하늘을 보자 우리가 쏘아 올린 것과 똑같은 빛기둥이 한 줄기 빛나고 있었다.

“이대로 달려서 저 빛기둥이 있는 호수 건너편까지 갈 거예요.”

이대로 달린다고요? 호수를 말을 타고요?

지난밤에 손에서 전기를 내뿜는 건 봤는데 공중부양도 가능하신가 봐요?

“지금 이 타이밍에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뭘요!? 지금 난다고요?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나는 그의 말에 놀라 겁을 집어먹고 두 허벅지를 말의 몸통에 단단히 붙였다.

황자님, 나 고소공포증 있다구요.

놀이공원 가면 애들이 타는 거 밑에서 지켜만 보다가 ‘재밌었어?’라고 묻는 쭈구리가 나란 말이에요.

그런 나한테 갑자기 공중부양은!!

“내 이름 나일 리베르라구요.”

*

로건은 제 손바닥 위에 놓인 붉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손바닥 안의 루비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일에게서 생존 신호가 잡힌 지 몇 주가 지났다.

여전히 그의 위치는 알 수 없었고, 몇 주 전 생존 신호를 보낸 그가 아직도 살아있는지 역시 미지수였다.

하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이쪽으로 건너오는 루트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이곳 라울 호수를 통해 오겠지.

“각하!”

그가 있는 공간으로 제 수하가 뛰어들었다.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감돌았다.

로건은 대번에 제 친구가 살아 돌아왔음을 직감했다.

“빛기둥이 솟았습니다! 리베르 황자님께서!!”

“어디냐.”

“호수 건너편입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둑, 우두둑.

그가 오른손 검지부터 손가락 관절을 하나하나 꺾어내려 가며 몸을 일으켰다.

나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초췌한 모습일지, 그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려줄 생각에 무표정한 로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거칠게 내달리는 말을 두 남자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은 2황자가 추가로 보낸 추격 2팀이었다.

앞에 남자는 말을 몰고 뒤에 앉은 남자는 활시위를 당기는 중이었다.

앞에 앉은 남자가 거칠게 소리쳤다.

“이 거리에서 미쳤어? 여자를 다치게 해선 안 된다고!”

그러나 뒤에 앉은 남자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제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방금 봤잖아. 뒤에 앉은 여자를 피해 남자를 맞추는걸. 아직도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그는 우쭐거리며 화살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화살을 제 의지대로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무리하지 말라고. 선발대가 실패했으니 우리가 실패해도 크게 혼나지는 않을 거라고. 하지만 여자를 다치게 하면 안 돼!”

“그래서 하는 거라고. 선발대가 못했으니 우리가 해야지?”

다 불어넣자, 그들의 위로 불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을 한 화살 여러 발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보다 거리는 멀어졌지만 제 화살은 이번에도 과녁을 맞힐 것이다.

그가 활시위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앞에 앉은 남자의 외침이 울렸다.

동료의 말대로 오른쪽을 보니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자가 자신들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아!”

그가 놀라 마나의 흐름이 뒤틀리는 순간, 활에서 화살이 튕겨 나갔다.

*

건너편 하늘의 빛기둥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건은 자신의 부츠를 내려다보았다.

몇 걸음 더 다가가 호수의 경계선을 밟자, 부츠 끝이 금세 호수 물에 잠겨 들었다.

검은 밤하늘에 붉은 빛기둥으로 요란을 떨어댔으니, 호수 양옆의 서제국 보초 탑에서 이미 경계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겁 많은 새끼들이 호수를 가로지를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하고 호수를 빙 둘러올 테니, 그들은 제게 도달하기도 전에 동제국 병사의 칼날에 쓸려나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호수의 유명인사인 파베라를 상대하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하면 될 터.

로건은 제 손을 바라보며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밤하늘만큼 호수의 수면은 검고 어두웠다.

그 안에 있다는 식인 식물 파베라가 자신을 얼마나 방해할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오래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켰으니 보통 마수와는 급이 다를 것이다.

‘그래 봤자 식물 따위.’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그가 손을 호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흘러나간 냉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수면을 얼리기 시작했다.

*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다.

나일은 몸에 나 있는 털끝까지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거리에서 날아온 화살이 자신을 맞힌다면 이건 보통 화살이 아니었다.

‘화살촉에 미세한 마나가 남아있다.’

제 어깨에 박혀 있는 화살촉에 화살을 날린 상대의 마나가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소량의 마나를 화살촉에 주입해 날린 것이겠지.

상대의 마나를 느끼기 전이라면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다시 날아오는 화살에도 이것과 동일한 마나가 묻어있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신경을 곤두세우면 날아오는 화살의 마나를 감지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게로 날아오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노리는 대상이 여자가 아닌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그 거리에서 화살을 쏘면서도 맞히기 쉬운 여자가 아닌, 여자의 앞에 있는 자신을 맞혔으니 표적은 분명 자신이었다.

숲은 끝났다.

눈앞에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자신의 것과 같은 붉은 빛기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로건이 이미 조치를 취했겠지?

어둠 때문에 호수의 수면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직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얼어있는 상태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달리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나일은 그대로 말을 몰았다.

*

“아아아악!!”

내가 이렇게나 엄청난 성량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나는 내 뱃속 저 밑에서 끓어 나오는 우렁찬 성량에 스스로 기겁했다.

‘아니네?’

이제 몸이 붕 뜰 것을 예감하고 타이밍에 맞춰 미리 소리를 질렀건만, 내가 탄 말은 여전히 땅 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뻘쭘함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던 그의 허리에서 팔 힘을 풀었다.

‘그럼 뭐야?’

그는 여전히 전속력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그때 길었던 숲이 끝나며 눈앞에 호수가 펼쳐졌다.

어둡고 침침했지만 분명 호수였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말을 모는 일에만 전념 중이었다.

‘속도….’

속도를 줄여야지 이 남자야!

이제 진짜 코앞이라고!

빠지겠어, 빠진다, 빠지잖아!!

이대로 가다간 호수에 빠지든가, 붕 날아가든가 둘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첨벙 하는 소리도 공기 중을 휘휘 나는 소리도 아닌 여전히 땅 위를 박차고 달리는 소리였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우리가 탄 말이 호수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호수는 꽝꽝 언 상태였다.

‘물이 얼었어?’

어떻게 된 일이지.

황자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던가?

소설 속에서 황자가 물을 얼린다든가 하는 이(異)능력을 사용하는 부분은, 단 한 번도 나오질 않았었다.

그럼 누가….

‘로건 후페이.’

공작이 물을 다루는 능력자였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소설에서도 아주 잠깐 언급돼서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대량의 물을 얼려버릴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네.

그도 그럴 게 내가 읽은 소설은 보이들의 로맨스가 주로 다뤄지는 소설이라, 이분들의 사랑 얘기하기 바빴지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나오질 않았다.

공작의 능력을 언급할 때도.

- 로건은 나일의 머리 위에 올려둔 수건을 차게 만들었다. 그러자 고열로 달아올랐던 나일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뭐 그렇게 시시한 곳에나 쓰고 그러지, 이렇게 대량의 호수 물을 얼려버리는 등의 스케일이 큰 묘사는 일절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럼 저 건너편에 공작이 있다는 얘기잖아?’

와, 동제국에만 가지 않으면 그의 얼굴을 보게 될 일 따윈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쩌지.

뒤로 가면 변태의 추격자들이 화살을 날리고 앞으로 가면 저승사자네, 나 어쩌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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