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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28)화 (28/134)

28화

‘되려나.’

어떻게 해야 내 앞에서 저 변태사이코 자식을 치워버릴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묘수를 떠올렸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했으나, 내가 원하는 대로 저놈이 반응해 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한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

“너는 가만 보면 생각이 너무 많아.”

손을 뻗어 내 목덜미를 쓰다듬던 2황자가 우악스럽게 내 턱을 잡아 쥐었다.

아씨 야, 그거 내 발가락 만지던 손이잖아.

“여길 보라고, 딴생각은 하지 마.”

되든 안 되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변태사이코가 차려낸 밥상에 메인디쉬가 되게 생겼으니까.

“저기 있잖아… 책상 서랍에 안경이 있는데, 가져다 씌워줄 수 있어?”

머릿속으로 계획한 일을 실행하려면 그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턱에서 손을 뗀 그가 내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 이미 포기해서 계획 따윈 없다는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하나.

나는 최대한 덤덤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받았다.

“너 눈 나빠?”

행동을 멈춘 그가,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이 사이코의 신뢰를 사려면 어떤 식으로 대답하는 게 좋을까.

응, 나빠. 그래서 잘생긴 네 얼굴이 잘 안 보이네.

환심을 사기 위한 대답 1을 떠올렸다가 나는 곧 그 선택지를 지워냈다.

2황자가 그렇게까지 만만해 보이진 않았다.

“응, 나빠. 근데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당하게 될 일을 눈에 똑똑히 새겨두고 싶거든.”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뱉은 내 말에, 2황자의 눈이 위아래로 커지는 게 보였다.

홍채보다 좀 더 짙은 보라색을 띠는 그의 동공에 기쁜 기색이 돌았다.

“그런 이유라면 가져다드려야죠.”

변태 X끼.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향했다.

아~ 그래도 당한다는 표현은 너무하잖아~ 라는 말과 함께.

안경은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들어있다.

그가 첫 번째 서랍부터 열어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이왕이면 바로 찾지 못하고 한참 뒤적거렸으면 좋겠는데.

“시력이 안 좋아서 그렇게 딴생각을 많이 하나?”

잠깐의 시간만 벌면 된다.

그가 잠깐 당황하는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2황자는 나를 깔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손목도 이렇게 대충 묶어놨겠지.

등 뒤로 열심히 꼼지락거린 덕에, 내 손목을 묶고 있는 줄은 느슨해져 있었다.

아직, 아직이다.

놈이 책상으로 향하다 갑자기 뒤를 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 드르륵

내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그가 책상 서랍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첫째 칸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바로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원래는 동제국 황자에게 마시게 하려 했던 마비독이 그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가 서랍을 뒤적거리는 통에, 서랍 안 물건들이 서로 부딪히며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내가 내는 소리가 묻히길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약병의 뚜껑을 돌렸다.

“없는데? 있는 거 맞아? 네가 나한테 거짓말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있어. 세 번째 서랍이었던 거 같아. 잘 찾아봐 있으니까.”

“예~ 예~”

그와 말을 주고받으며 약병의 내용물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오? 마비독이라서 되게 쓸 줄 알았는데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이 꽤 달았다.

사람 잡는 데 쓰이는 약이 이렇게나 달다니.

“있네.”

안경을 가지고 돌아온 그가 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귀 위로 차가운 금속 테로 된 안경다리가 씌워졌다.

“어때?”

입에 머금고 있는 마비독 때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는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만족스러운 웃음.

그가 큭큭 거리며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휘감았다.

“뭘 당하게 될 진 알아?”

“….”

“아니면 따로 원하는 게 있나?”

이번에도 긍정의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더니.

“응응. 말해봐.”

그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

“왜 말이 없어. 부끄러워서 말 못 할 내용인가 봐.”

침대 옆 작은 협탁 위에는 엔틱한 느낌의 단스탠드가 놓여 있었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내 위치에서 살짝만 손을 뻗으면 스탠드를 거머쥘 수 있었다.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좀만 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몸을 협탁 쪽으로 움직이자, 그가 뭘 하냐는 눈빛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손을 뻗자 스탠드의 몸통 부분이 닿았다.

“뭐해 너, 손은 언제 풀었어. 설마 그 스탠드로 나 때리게?”

끄덕끄덕.

“큽… 큭큭, 귀엽다 진짜. 내가 그걸 맞아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맞아. 네 말대로 긴장하고 있는 상대를 내가 때리기란 어렵겠지.

그는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계속 웃고 있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채웠다.

그래, 그렇게 날 깔보고 방심해라.

- 도르르르

“자 이제 어쩔래?”

갑작스럽게 내게 상체를 밀착시킨 그가 팔을 한 번 휘젓자, 내 손에 들려있던 스탠드가 바닥을 굴렀다.

됐다, 원하던 거리였다.

내 코앞에서 그가 무기를 잃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내 마지막 반항을 쉽게 제압했다고 여기고 있을 테니, 그렇지 않아도 만만하게 느껴지던 내가 얼마나 더 가소롭게 느껴질까.

무기조차 없는 내 손은 작은 위협도 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나 보다.

그는 풀려있는 내 양팔을 신경 쓰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간다 이 X끼야.

그가 내 턱을 우악스럽게 들어 올린 채 입맞춤을 시도했다.

내가 원하던 바였다.

다만 이 각도에서는 마비약을 삼키게 되는 쪽이 나였다.

입술이 닿는 순간, 있는 힘껏 그를 밀어 넘어트렸다.

“우웁??”

아무리 재빠른 놈이라도, 닿아 있는 입속에서 흘러들어오는 액체를 피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이코의 상체에 올라선 내가 입속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놈의 입속으로 쏟아내자, 그가 자기도 모르게 마비독을 삼키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악!”

당황한 그가 나를 강한 팔 힘으로 밀어 내치는 바람에 나는 바닥을 굴러 벽에 처박혀야 했다.

“너 뭘 한 거야!?”

“….”

뭐긴, 마비독을 네가 홀라당 삼켜버린 거지.

뒤집힌 눈을 하고서 내게 다가오는 그를 숨죽여 노려보았다.

약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얼마가 걸리는 거지? 될 수 있으면 지금 당장 나타나 줬으면 하는데.

“윽.”

그 순간, 그가 한쪽 다리를 꿇으며 무너져 내렸다.

“흐아….”

벽에 밀쳐진 덕에 부딪힌 부위가 욱신거렸다.

어디 그 부위만 욱신거리나. 잔뜩 긴장하고 겁에 질렸던 탓에 온몸이 다 뻐근한 기분이었다.

일어서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네.”

“….”

사지가 딱딱하게 굳은 2황자가 바닥에 누워 나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입을 움직이긴 하는데, 발음이 잘 안 되는 걸로 보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눈뿐인 듯했다.

어휴 그냥 뇌까지 마비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자 이제 이놈을 어쩐다.

일단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마비약의 지속시간이 짧다고 했으니 빨리 묶어야….

“…??”

그때, 등 뒤에서 우지끈하는 문짝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공범이 있었던 건가, 하는 소름 끼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엔 반으로 쪼개진 문짝을 밟고 동제국의 황자가 서 있었다.

“에?”

저분이 왜 여깄을까.

게다가 그의 손등엔 푸르스름한 번쩍거림이 핏줄을 타고 흘러 다니고 있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그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은 명확했다.

혹시 서제국 병사들한테 걸려서 이리로 도망 온 건가?

그렇다면 아늑한 피난처가 되어주고 싶지만 지금 내 꼴도 말이 아니라서….

“누구냐? 누가 또 있는 거냐! 나한테 뭔 짓을 으읍!”

와, 이 마비독 정말 지속시간이 짧구나.

눈이 가려지고 손과 발이 묶인 2황자가, 어느새 마비가 풀렸는지 제대로 된 발음으로 나불대기 시작했다.

이걸 그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며 천 뭉치를 2황자 입에 쑤셔 넣는데.

“….”

다가온 그가 무릎을 꿇고서 내 몸을 와락 제 품 속에 가뒀다.

그리고는 한 5초 만에 날 안았던 팔을 거두어 갔다.

이럴 거면 왜 껴안은 거야?

잠깐 뜨끈했다가 바로 떨어져서 난 좀 아쉬웠다.

“…뭐해요?”

그가 마치 범인을 몸수색하는 형사처럼 내 몸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오른쪽 팔 한번 위로 올렸다가 내리고, 왼쪽 팔 돌려보고, 어깨 탈골은 없는지 어깨도 주물러 보고.

정신없이 내 신체가 다 정상으로 기능하는지 살펴보던 그가 몸수색을 멈춘 건, 발목을 돌려 본 후 내 드레스 끝자락을 손에 쥐었을 때였다.

자기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올려서 내 다리의 상태를 보려 했던 것 같은데, 다행히 중간에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화들짝 놀라 손을 떼며, 내 곁에서 살짝 떨어져 나갔다.

“나 다리 괜찮은데. 헤헿.”

사람이 내 앞에서 저렇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데, 안심시켜 줘야지.

나는 내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기 위해, 내 옆에서 애벌레처럼 버둥거리는 변태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으브으!”

내 발길질에 변태가 천을 입에 물고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예 소리가 안 나게 천을 더 물려야 할 것 같았다.

“이것 봐요. 나 괜찮아요. 당신이야말로 괜찮은 거예요?”

원래도 하얀 편이지만, 지금 그의 낯빛은 하얗다 못해 파리한 게 꼭 불치병 환자 같은 모습이었다.

“아! 턱이 좀 부은 것 같긴 해요. 근데 왜 여깄는 거예요? 손은 또 왜…?”

“우욱.”

괜찮냐고 물은 지 10초 만에 남자가 입에서 싯멀건 핏물을 토해냈다.

“어!?”

잘 치료해 출가시킨 놈이 대뜸 돌아와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남자는 내 물음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가 제 입가에 흐른 피를 팔뚝으로 쓱 문지르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부여잡고 미간을 좁히기 시작했다.

“턱 봐 봐요.”

거의 박치기할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고 보는데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가 자꾸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안 보이는 건가? 떠날 때만 해도 시력이 이 정도로 나쁘진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그냥 살짝 부은 정도예요.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라 피는 왜 토해요??”

나를 멍하니 보던 그가 내 귀에 걸려있던 안경을 빼갔다.

내 안경을 멋대로 가져다 쓴 그는, 이제야 초점이 잡히는 듯 내 턱을 다시 살피고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다른 데는?”

좀 전엔 팔다리 점검이었고 이번엔 눈코입 점검인 모양이다.

그가 엄지로 내 눈썹도 한 번 쓸어보고, 코도 한 번 잡아보고 얼굴 구석구석을 청소하듯 살폈다.

와, 이러다 모공 개수까지 들키겠어.

민망함이 올라와서 그의 가슴을 팔로 가볍게 밀어냈을 때였다.

별 반항 없이 뒤로 밀려나던 그가 내 팔을 툭 쳐낸 후, 그대로 팔을 잡아 제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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