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저예요. 문 열게요”
들어가면 일단.
‘주의부터 줘야겠지.’
님 나와서 돌아다니는 거 내가 밖에서 다 봤다고요.
여기가 님네 안방이냐구요. 어딜 함부로 돌아다녀요.
걸리면 너만 끔살이냐, 나도 끔살인데.
아주 호되게 주의를 줘야겠어, 라고 다짐하며 방문을 밀었다.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방문을 밀자, 서서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검은 덩어리가 뭔가 싶어 눈을 부릅떴다.
침대 위에 곱게 누워있어야 할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협탁을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요??”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자,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이 오묘했다.
웃음인지 일그러진 건지, 은근히 원망이 섞인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안 괜찮아요.”
그래, 안 괜찮은 표정 같아요.
애벌레처럼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대답하는 남자를 보며, 나는 대충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누워요. 누웁시다.”
그런 굼벵이 같은 자세로 있는 당신과는 얘기할 기분이 안 나겠어요.
나는 남자의 손을 덥석 잡아, 내 목에 둘렀다.
조심조심 부축해 그를 침대 위에 눕히자, 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구부렸다.
아니 증말, 내가 침대에 누워서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 협탁에다가 밥도 올려놓고 진통제도 올려놓고 심지어는 쪽지도 남기고 왔구만.
“하아… 상처 부위가 좀 찢어진 거 같아요.”
“어디 봐봐요.”
내 쪽으로 돌아누워 있는 남자의 스웨터를 들어 올리자, 아침에 새로 갈아주고 나간 흰 붕대가 진득하게 피에 절어있었다.
깨끗이 손을 씻고 돌아와 피에 절은 붕대를 걷어내고 상처를 살폈다.
“더 찢어지거나 그런 건 없어요.”
찢어진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안 붙어 있던 거거든.
그러니까 얌전히 좀 누워있을 것이지 누가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싸돌아다니래.
나는 화딱지가 올라와 남자의 팔뚝을 퍽 치고 싶은 마음을 짓눌렀다.
“상처가 붙질 않았는데 움직여서 그런 거잖아요. 움직이면 배에 힘 들어가는데 왜 쳐, 아니 나와서 돌아다니고 그래요.”
“별로 움직인 건 없어요.”
뭘 잘했다고 지금 말대꾸예요.
“밖에서 다 봤거든요.”
“움직여서 그런 건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니에요! 그럼 왜 그래요!”
남자는 뭔갈 말하려다 말고 입만 뻐끔거리다가 살짝 도전적인 눈빛이 되어 날 쳐다보았다.
“됐습니다.”
“….”
이 자식 불리하면 입 닫는 스타일이구만.
에효. 입을 다문 남자를 두고 나는 새 붕대와 그를 씻길 물을 준비해 돌아왔다.
조용한 방, 그가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누워있었다.
나 같으면 누가 들어올 때마다 흠칫흠칫 놀랄 거 같은데,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당연히 나인 줄 아는 건가…?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닦아내기 위해, 수건을 적시며 그에게 물었다.
“왜 돌아누워 있어요? 소독하게 이쪽 봐요.”
“….”
“이봐요. 병사씨?”
“얼굴 보면….”
얼굴 보면 뭐요.
그는 여전히 벽과 대화 중이었다.
사람은 이쪽에 있습니다만.
“얼굴이 뭐요.”
“아니에요.”
황자의 저 빡치는 화법은 동제국 황실에서 배운 걸까.
아니라는데 내가 어쩌겠는가.
말하기 싫다면 마는 거지.
그래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미룰 수 없었다.
“뭐 그래요. 근데 진통제는 먹었어요? 이제 소독할까 하는데 아직 안 먹었으면 먹고 하면 어떨까 하는데.”
“먹었어요.”
“그래요. 그럼 이제 그만 돌아누울래요? 소독해야 할 상처는 앞에 있잖아요. 아님 내가 등에도 하나 만들어줘요?”
내 말에 그의 뒤통수가 잘게 도리질을 쳤다.
자 그래 오이구 옳지, 천천히 몸을 돌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쪽으로 다 돌아누운 것을 확인하고 피가 묻은 스웨터부터 벗겨 내기 위해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는데.
“하ㅎ, 흐핳ㅎ… 흫ㅎ….”
???
“가, 간지… 흐핳… 간지럽다고… 흐핫….”
황자가 맛이 간 상태라는 걸 확인한 나는 협탁 위 두었던 진통제를 살폈다.
아니… 야, 너 진통제 몇 숟가락 먹었어. 말해.
*
내가 쪽지에 적기까지 했는데 무시한 거냐고.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양이 확 줄어버린 진통제 봉투를 보며 도대체 그가 얼마나 먹은 건지 양을 가늠하고 있는데 나를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눈동자를 돌리자, 맛이 가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한껏 휘어진 눈이 풀릴 대로 풀려있었다.
안 아플 정도로만 먹으랬더니, 아주 천국 갈 정도로 드셨구나.
안 그래도 곧 천국으로 보내줄 생각인데 벌써 가셨어.
그래요. 좋게 생각합시다.
환자가 고통 없이 웃고 있으면 된 거지.
“그래요, 병사씨. 됐고, 내가 만지는 게 간지러워서 그렇게 웃는 거면 직접 벗어요. 소독하게.”
남자는 좀 많이 즐거운 상태일 뿐이지 말이 안 통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진통제 효과가 끝내주긴 하는구나.
약의 효과가 돌기 전에는 조금 움직이는 것도 아파서 움찔움찔하더니, 지금 옷을 벗어 재끼는 그의 움직임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옷이 그의 턱에 걸렸다가 위로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걸 보며, 나는 주섬주섬 준비해 온 100% 알코올에 물을 섞었다.
“자 이제, 읍.”
순간 몸이 붕 떴다.
갑자기 내 손을 잡아챈 그가 나를 침대로 안아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 미친놈아, 상처 상처!!
상처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졸지에 침대에 누워,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올려다보는 신세가 된 턱에 그럴 수가 없었다.
“참 친절하군. 모두에게 그러나?”
그가 제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내 금빛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물어왔다.
“….”
“남자의 몸에 손을 대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고.”
“….”
“조잘조잘 잘만 말하더니 왜 묵묵부답이지.”
“….”
“이봐.”
약에 취한 놈이랑 대화해봤자 나중에 기억도 못 할 텐데 내가 열심히 대화에 참여할 것 같니?
나는 이득이 확실한 일에만 에너지를 쏟는다고.
“너 뭐 하는 거지?”
뭐긴 뭐해.
알코올 희석액으로 네 배 문지르지.
어휴, 피가 굳은 건 잘 닦이지도 않았다. 아주 그냥 수십 번을 문질러야 되네.
얼굴에 내리꽂히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적당히 그것을 무시했다.
진통제의 효과가 얼마나 갈지 모르는데 유지될 때 빨리 끝내버려야지, 끝나고 나면 남자는 또 엄청난 아픔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네 말에 대답하는 게 먼저겠니, 이게 먼저겠니.
그리고, 너 여기서 상처 곪아서 죽으면 시체처리 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내가.
여긴 안 돼. 좀 더 적당한 곳이 있을 거야. 기다려, 안 그래도 묫자리 찾고 있다.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계속 무시하려 했지만 그 말이 툭, 걸림돌에 걸리듯 내 머릿속에서 넘어져 버렸다.
응, 알아.
마침 소독을 다 끝낸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찾았다.
“….”
너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널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알면 깜짝 놀랄걸.
안타깝게도 나는 널 알아, 내가 네 정체를 모른다면 넌 이곳에서 아무 일도 당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겠지.
나는 알코올과 피로 범벅된 수건을 방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알면? 사심이라도 있을까 봐?”
“…없나?”
“넌 치료되면 바로 떠날 동제국 사람인데, 곧 떠날 너한테 그런 마음 가질 만큼 내가 멍청해 보여?”
“….”
그는 대답하지 않고 조막만 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도 별말을 하지 않고 기다리자.
“그럴 리가.”
한참 후, 그에게서 들릴 듯 말 듯 한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근데 왜 물어봐. 당신이 누군지 알아야 해?”
“….”
순간, 헤롱헤롱 풀려있던 그의 까만 눈동자가 창에서 흘러들어온 빛에 반짝였던 것 같다.
“아니.”
대답과 함께 그가 머리를 내 얼굴 옆에 파묻었다.
정수리 냄새가 났다.
상처가 덧날까 봐 제대로 씻기지를 못했으니.
내일은 머리랑 팔다리만이라도 씻겨야 할 것 같았다.
죽기 전에 몸이라도 깨끗하게 해주는 게 맞겠지.
내 코 사정도 모르는 그는 내 쇄골이 아늑한지, 묻은 머리를 들어 올릴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해주면 좋겠는데.
숨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그만 머리를 들어달라는 의미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려는데.
“알면 지금처럼 내게 닿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않겠지. 내가 끔찍해질 테니까.”
아….
어쩐지 좀.
안쓰럽네.
저주받은 첫째 황자, 나일 리베르.
가장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가장 천한 것들도 그의 몸에 손이 닿는 것을 꺼려했다.
그건 유모나 어머니라 해도 마찬가지였다는, 소설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부분이 떠올랐다.
나는 허공에서 방황하고 있던 내 손을 그의 어깨 위로 내렸다.
예기치 못한 접촉이었는지 그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져 버리는 연약한 아기의 등을 토닥이듯 그의 등을 살살 토닥였다.
“괜찮다, 괜찮다….”
한동안 그렇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손 두드림과 내 말과, 남자의 숨소리가 하나의 박자로 맞아 돌아가자 묘한 안정감이 내게도 찾아드는 듯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겁만 많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라 그래요.
황자님은 끔찍하지 않아요.
정말 끔찍한 사람은요.
자기 목숨 그거 하나 살려 보겠다고 다른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그러니까 황자님, 괜찮아요.
“….”
빛이 적은 조용한 방, 새액거리는 숨소리만이 방안을 채웠다.
어이 자는 거냐구.
나는 이미 코가 마비되어 버렸다구.
그래, 내가 앞으로 이 남자에게 할 짓을 생각한다면 코 좀 내어주지 뭐.
나는 그의 어깨를 스윽스윽 문질렀다.
“당신이야말로 날 알아요?”
상대가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한 혼잣말이었는데, 놀랍게도 남자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