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서관을 빠져나와 빠르게 본관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묻어버리려면 뭐부터 해야 하지.’
일단 묫자리부터 봐둬야겠지?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을 꼽자면 역시 무엇보다도 놈을 ‘어디에다 어떻게’ 묻을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왜냐.
지금같이 모두가, 동제국 황자는 이미 죽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시체만 나오지 않는다면 수사가 시작되기도 어려울 테니까.
백작에게 들은 것처럼 다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디에 있을지도 추측하지 못하고 있으니.
죽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전쟁 중에 서제국 군에게 당했거나 그 비슷한 것을 떠올릴 테지, 웬 약소국의 백작 영애가 황자를 쓱싹 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자자 생각해보자.
양지바르고 통풍 잘되고 아무도 찾지 못할만한 쾌적한 묫자리가 어디에 있을까….
“아가씨?”
“응?”
머리카락 휘날리며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는데 등 뒤에서 날 부르는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내게 진통제를 구해다 준 그 하녀였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셨어요?”
“어, 큰일….”
방주인은 자길 죽일 생각을 하는데,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도 모르고 내 방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있으니 큰일은 큰일이지.
“나한테 큰일이 뭐가 있겠니.”
그렇다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는 나는 쓰게 웃음 지었다.
부러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하자, 눈이 동그래졌던 하녀의 표정이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얼굴이었다.
“생리통은 좀 어떠세요? 마침 아가씨 좋아하시는 산딸기 브라우니를 좀 구워서 드리러 가는 중이었어요.”
이 집 언니야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이다.
하녀의 트레이 위에는 붉고 앙증맞은 산딸기로 데코레이션 한 브라우니가 놓여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내 눈꼬리가 저절로 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마워. 이건 내가 가져갈게.”
“앗, 제가….”
“아냐 아냐.”
피 흘리는 남자를 언니에게 들키고 싶진 않은걸.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공범 만들 순 없지.
하녀에게서 트레이를 건네받자, 새콤한 산딸기 냄새가 확 풍겼다.
“저택 뒷숲에 산딸기가 엄청 열렸더라구요.”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홍조를 띤 그녀의 볼이 꼭 산딸기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
“저택 뒷숲이라고?”
내가 황자를 발견한 그 뒷숲?
“네.”
자연스럽게, 숲을 산책하다 마주쳤던 그와의 첫 만남이 머리에 떠올랐다.
‘맞다 세상에. 내가 죽일 필요가 없겠어.’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죽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
나는 방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을 벌컥 여는 순간, 내 방에 있던 황자와 내가 맞닥뜨리는 모습을 들킬 순 없었으니까.
다행히 방 앞 복도는 조용하기만 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없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은 공기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어슬렁거리는 황자를 보자마자 너 뭐하냐고, 들켜서 끌려가고 싶냐고 성난 소리를 해주려던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다시 작은 방으로 들어갔나?
테이블 위에 브라우니를 내려놓고, 침대 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살폈지만, 방이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도대체 뭘 하다 들어간 건지 모르겠네.
브라우니 위에 장식된 산딸기 한 개를 집어 먹자, 과육이 터지며 입안이 상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녀의 말대로 숲엔 산딸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산딸기 가득한 숲속에 저놈이 있었지.
나는 브라우니도 한 입 베어 물며, 작은 방문을 노려보았다.
처음에 뭐라고 했더라.
- 희롱하지 말고 그냥 죽여요.
- 죽으면 뭘 안 해도 되니까.
그가 내뱉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제 목숨을 쉽게 포기하는 말을 하는 남자의 얼굴은 그저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고는 한 톨도 찾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별로 살 마음이 없는 건가?’
황자의 저주는 이미 예전에 시작되어 천천히 그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을 터였다.
처음 저주가 발병하면 당사자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매일 밤 계속되는 악몽에 정신이 피폐해지고, 그다음은 시력을 빼앗기고, 시름시름 앓다 죽음에 이른다는 게 저주에 관해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의 눈 상태로 보아 시력을 잃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을 테지만,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생활을 한 지는 꽤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황자와 공작의 관계가 시작되는 초반에 황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침대 위 쓰러져 죽어가던 그를 구했던 게 공작인 로건이었다.
‘내가 직접 죽이는 건 안 그래도 무섭단 말이지….’
그 순간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텐데, 가능하면 나도 안 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만약 그 자살시도를 좀 일찍 하게 만들 수 있다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거 아니냐!’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생각이 속에 들어있다면 내가 그걸 방해만 안 해도 목적을 이룰 수 있겠는데.
‘근데 그걸 어떻게 꺼내?’
늘 너튜브를 틀어놓다시피 하고 살았던 나는 다양한 주제의 컨텐츠를 접했더랬다.
그리고 그중에는 Ox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빛나는 K국에서 자살 방지를 위해 어떤 멘트,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에 관한 컨텐츠도 있었다.
그 반대로만 해볼까?
*
나일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누운 상태로 커튼을 살짝 들추자, 하늘 높이 치솟은 태양이 보였다.
정오가 지난 시간까지 푹 잔 듯했지만, 몸 상태는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
어제 여자에게 구조되어 치료를 받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되었더라.
누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 잿빛 연기를 한가득 피워올리고 도망이라도 갔나 보다.
기억을 헤집어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또 살았네.’
또 살아남아 버렸네.
참 질긴 목숨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쓴 입맛을 다셨다.
진창을 구르면서도 살고자 노력했으니 살아남은 것에 기뻐야 하는데 어쩐지 생존했다는 기쁨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일은 여전히 누운 상태로 방을 훑었다.
사용인이 머무는 용도로 만들어진 방에는 하녀가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여자는 나가고 없는 건가.’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려 애썼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방주인은 없는 듯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그는 팔꿈치로 침대를 누르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으.’
더럽게 아프네, 진짜.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도 배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그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려 고통을 참아냈다.
“하아.”
신음 섞인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직 초겨울임에도 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추웠다.
작은 방 역시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근데 왜 춥지 않지?’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온도가 낮은데, 그는 몸이 하나도 춥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살에 닿는 까슬까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응?’
이불을 치운 그는 제 모습을 보고 한동안 멍했다.
상체는 처음 보는 보라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짝이 다른 파란 양말, 분홍 양말이 각각 신겨져 있었다.
‘뭐지 이거.’
알록달록한 컬러 배색에 놀라고 있는데, 스웨터 아래로 삐져나온 붕대 끄트머리가 보였다.
스웨터를 들어 올리자 배에 깨끗한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제야 탁자 위, 피로 범벅이 된 붕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붕대를 간 기억은 없으니 여자가 새로 갈아준 것이리라.
밤에 들어왔다가 아침까지 옆에 있어 준건가.
여자가 방에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설마 신고하러 간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나일은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제 손으로 붕대를 갈고 상처를 꿰매는 경험을 하는 귀족 영애가 얼마나 될까.
험한 일이라곤 겪어보지 못했겠지.
나일은 자신을 치료하던 여자를 떠올렸다.
잔뜩 긴장된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는데, 손을 덜덜 떨면서도, 제법 각오를 다진 얼굴을 하고서 여자는 제 상처를 꿰맸다.
약을 먹이면 꼭 사탕을 잊지 않고 넣어주는 것도 그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러운 것이라며 옆을 지켜주지 않았던가.
그 여자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온 여자일 것이다.
아플 때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지켜주고, 약을 먹으면 혹여 많이 쓸까봐 사탕도 꼭꼭 챙겨주는 그런 환경, 그런 삶.
‘그러니까 그런 사람으로 큰 거겠지.’
나일은 어젯밤, 물수건으로 제 몸을 꼼꼼히 닦아주던 여자를 떠올렸다.
물수건과 함께, 그녀의 손끝이 몸에 닿았을 때, 나일은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물수건이 차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여자는, 그 작은 손으로 물수건을 쥐고 호호 불었다.
- 너무 찬가? 미안해요.
그저 남들과 닿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몸을 뺀 것뿐인데.
여자는 물 온도를 체크하지 못한 제 잘못이라며, 물수건을 호호 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뚜렷이 그의 앞에 그려지듯 떠올랐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숨이 차가운 물수건을 녹이고, 한결 미지근해진 물수건이 제 가슴에 닿았던 순간이.
다시 떠올려 봐도 여전히 기분이 이상했다.
그 여자의 숨은 다른 사람의 숨보다 훨씬 따듯하고 부드럽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나일은 제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픽 실소를 흘렸다.
아프니까 별생각이 다 드는구나.
자신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 그런 여자인 게,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정이 많고 여릴수록 이용해 먹기 쉬우니까.
궁지에 몰린 지금의 그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다시 스웨터를 들어 올려 제 배에 감겨 진 붕대를 보았다.
붕대를 살짝 들추니, 어제 여자가 희고 작은 손으로 꿰맨 봉합 자국이 보였다.
그녀가 꿰매놓은 삐뚤빼뚤한 실밥을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나와, 나일은 낮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허….”
그러나 그는 곧바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웃음에 배에 힘이 들어가자,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진통제….’
일단 진통제부터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여자가 제게 먹이기 위해 가져온 진통제의 양이 꽤 돼 보였는데.
분명 남은 진통제가 있을 것이라 여긴 나일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작은 방을 나가자, 역시 여자는 없었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진통제를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한 그는, 이내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협탁 위에서 진통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방이 너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지나친 듯했다.
정신없이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나니 그제야 옆에 놓인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꾸깃꾸깃 접힌 작은 쪽지였다.
‘뭐지?’
펴보니 그것은 여자가 남긴 메시지였다.
그녀가 제게 남길 말이 뭐가 있지 싶었으나, 쪽지에는 몇 문장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 혹시 신고하러 간 줄 알고 놀란 거 아니죠? 에이 그렇게 새가슴은 아니겠지. 아침 먹고 올게요. 협탁 위에 은으로 된 덮게 보이죠? 그거 열면 아침 식사 있어요. 꼭 밥 먹고 진통제 먹기에요.
아 그리고 진통제가 되게 강력한 진통제 같더라구요. 많이 먹어서 좋을 건 없어 보이니까 내가 아래 써둔 대로 먹어볼래요? 강요는 아닌데, 지키지 않으면 신고하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
쭉 읽어 내려가자, 간단하게 써놓은 몇 줄 아래로 선택사항이 세 가지 있었다.
1. 아프다 - 티스푼으로 반 숟가락
2. 이러다 뒤지는 걸까? -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
3. 난 이미 사망했다 - 원하는 만큼
“풉.”
나일은 아까보다 더 강한 웃음을 터뜨렸다.
뒤질 것 같은 복부의 통증을 느낀 그는 협탁을 잡고 주저앉아 웃음을 참아냈다.
그때.
“저예요. 문 열게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