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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2)화 (2/134)

2화

‘헙.’

남자의 다리 사이에 있는 귀중품을 터치한 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니, 팔뚝을 조준했는데 어찌하여 그곳에.

곧게 뻗어 있던 남자의 다리가 살짝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원래 저길 맞으면 의식이 없어도 자동반사적으로 다리가 움직이는 건가? 저길 때려본 적이 있어야 알지.

‘아니 근데 왜 안 일어나는 거냐고.’

돌멩이를 더 던져볼까 했지만, 안 그래도 방금 타인의 소중한 소중이를 건드린 탓에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내가 입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하자.

“저기요.”

“….”

“이봐요.”

“….”

“안 일어나면 또 던집니다?”

순가 그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드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 착각인가.

그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이 정도 불렀는데 안 일어나는 거면 이 사람 자는 게 아니라….

‘다쳐서 정신을 잃은 거야.’

병약수의 얼굴을 감상하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상처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옷에 얼룩진 피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복부에서 찢긴 군복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즉시 내 드레스 밑자락을 북 찢어냈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일단 출혈을 막아야 했기에 그에게 다가섰고.

“장난은 거기까지.”

번쩍 눈을 뜬 그가 내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

목이 따가웠다.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고 지나간 내 목 언저리를 손으로 더듬자, 흐에, 피다 피. 손가락 끝에 소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하, 실패네.”

남자가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르겠는 소릴 흘리며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저 작은 칼로 날 위협하려 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이 몸이 날쌨다.

내 목에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몸을 돌려 빼내며 팔꿈치로 남자를 가격했고, 그곳이 다행스럽게도(?) 그가 치명상을 입은 부위였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저 자식의 계획이 실패했단 소리다.

“하.”

처음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나무에 기대 주저앉은 그가 짧게 탄식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짧게 자신의 실패를 비웃고 난 그는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 목에 들이밀었던 단검을 이쪽으로 던지면서.

“희롱하지 말고 그냥 죽여요.”

희롱? 내가 무슨 희롱을? 아, 아까 돌멩이 던진 거 때문에 오해했나 보다. 그나저나 대뜸 죽이라니.

“내 의사는 상관없는 거예요?”

나는 도울 생각이었는데?

“….”

그는 답이 없었다. 하긴, 이곳에서 동제국 병사를 마주친다면 돕겠다는 사람은 흔치 않을 테니까.

나는 땅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들었다. 튤립 모양이 세밀하게 조각된 꽤나 비싸 보이는 단검이었다.

“예쁘네. 이걸로 찔러주면 돼요?”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미친X이네.’ 딱 그거였다. 남자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으면서.

“훼손하기엔 너무 마음에 드는 외모를 가졌는데.”

왜 쉽게 목숨을 포기하려 할까. 남자의 주위를 돌며 저 말을 내뱉자, 어쭈. 이놈 여전히 눈은 감은 채로 피식 웃는다.

너 눈은 달려 있구나? 이런 얼굴이었다.

“목을 찔러서 죽이기엔 목이 너무 희고 예뻐서 상처 내기가 싫고.”

“훗.”

그의 입에서 짧게 공기가 새 나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눈은 감고 있지만 귀로는 다 들린다 이거지.

“뭐 까보진 않았지만, 얼굴이 이 수준인데 몸이라고 별로겠어? 역시 상처 내긴 아까운데 말이지.”

“….”

이번엔 그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잘 참아낸 모양이다. 앙다문 남자의 입꼬리가 우글우글해져 있었다.

“이봐요. 아무리 봐도 상처 내고 싶은 부위가 없는데 꼭 이걸로 죽어야겠어요? 다른 방법은 어때요? 음, 예를 들면 독살 같은 거? 그거 괜찮다.”

남자가 감겨 있던 눈을 뜬 건 그때였다. 남자의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방법도 싫으면 그냥 안 죽는 선택지도 있고.”

“….”

“어쩔래요. 죽을 거예요?”

남자의 대답이 들려온 건, 그가 눈을 느리게 몇 번 더 감았다 뜬 후였다. 생각을 눈으로 하나 보다. 참 느리게도 깜박거린다.

“어차피 이미 죽어가는 중이라.”

그가 왼쪽 복부를 짚고선 허리를 굽혔다. 어지간히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빨리 데려다 치료하지 않으면 이 남자 정말 골로 가겠군.

“죽어서 뭐하게요?”

“죽으면 뭘 안 해도 되니까.”

“아, 안 해도 되니까….”

하긴, 세상엔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긴 하지. 대꾸를 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죽지 말라고 설득할 생각으로 물어본 건데 내가 설득 당하다니.

“좋아요. 그럼 안 말릴 테니까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죽으세요.”

“이 나무 밑이 난 꽤 마음에 드는데.”

아 그건 님 사정이고요.

“여긴 내 집이잖아요. 집 뒷마당에서 시체 나오면 되겠어요? 집값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지금?”

“미안. 그건 생각 못 했네.”

남자는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털어냈다. 눈 뜨면 살려달라는 말부터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는 일에 미련이 없는 놈이었다니.

이제 숨 쉬는 것조차 힘든지, 남자의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들쳐 업고 가지 않으면 곧 숨이 넘어갈 판이었다. 나는 남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봐요. 내일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에요.”

“….”

“그러니까 내일도 세상은 돌아가고, 당신이 죽고 싶으면 꼭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말고 다른 땅에 가서 다른 날에 죽어요.”

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신인지 사신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가네.”

뭐라는 거야. 중2병 걸린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상대방에게 다시 회유 아닌 회유를 하려는데, 그가 말을 덧붙였다.

“내가 죽지 않으면 당신이 곤란해질걸요. 난 동제국 병사니까.”

얘는 살아보겠다고 내 목에 칼을 들이밀 땐 언제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 남 걱정을 하고 있담. 나는 그의 하찮은 염려를 비웃으며 대꾸했다.

“이보세요, 멍청이씨. 내가 당신더러 죽지 말라는 말 속에는 당신을 도와주겠단 말이 포함된 거라고요.”

“….”

“가죠. 걸을 수 있겠어요?”

“있어요.”

다친 그를 부축하기 위해 그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뻘쭘하게 서 있는 그의 팔을 가져다 내 어깨에 두르자, 처음엔 팔이 어깨 위에 그대로 떠 있었다.

“부축 안 해줘도 갈 수 있어요?”

“아뇨.”

그러자 어깨 위에 남자의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의 더운 품 안에서 피 냄새가 훅 올라왔다.

바로 옆에서 본 남자의 상태는 정말 좋지 못했다. 살짝 고개를 틀자, 남자의 옆얼굴은 이미 질릴 대로 질려 새하얘져 있었다.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허세를 부렸단 말인가.

“빨리 가죠. 송장이 따로 없네.”

*

“세숫물을 떠다 줄래?”

“예, 아가씨.”

주황색 머리의 하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에 대야를 들고 방에 돌아왔다. 은으로 된 대야에 따듯한 세숫물이 찰랑거렸다.

“그래, 거기 내려놔.”

“예.”

“그래, 잘했어. 그리고 너 해고.”

“예. 예?”

“못 들었니? 해고당했으니 나가라는 말이야.”

하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나는 귀찮다는 얼굴로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아가씨, 제가 왜… 무슨 잘못이라도….”

“했지, 잘못. 보석함에 보석핀 두 개가 없어졌더라. 일주일 간격으로.”

정확히 일주일 간격이라는 증거까지 제시하자, 하녀는 입을 다물었다.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그녀는 이내 인정한다는 얼굴을 했다.

“짐 싸서 바로 나가겠습니다.”

하녀는 내 방에 딸린 제 방으로 갈 모양이었다. 내 방에는 언제나 쉽게 하녀를 부를 수 있도록 하녀가 머무는 작은 공간이 딸려 있었다.

“그냥 나가. 네 짐 챙기지 말고.”

“하지만.”

“손 잘리고 보석핀 값 물어내고 나갈래, 그냥 지금 나갈래.”

하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방을 뛰쳐나갔다. 빙의 후에 내가 뭘 먼저 했는데, 모를 줄 알았니? 

드레스, 장신구, 보석.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에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물건들.

빙의하면 꼭 여주들이 보석을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 그것부터 뭐가 있나 살펴봤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저 하녀는 내가 생글생글 웃어주자 점점 선을 넘었다.

뭐 그 정도야 귀엽게 봐줘야지 했는데, 보석핀까지 훔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게는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집이 워낙 부유해서 그냥 놔뒀었는데. 그래도 언젠가 잘라야지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네.

하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벽에 나 있는 작은 방문이 열렸다.

하녀가 들어가서 제 짐을 챙기려 했던 작은 방. 그곳에 그를 숨겨둔 참이었다.

“냉엄한 주인이네요.”

혹, 하녀가 방문을 벌컥 열기라도 할까 잔뜩 긴장했던 건지, 그가 숨을 조용히 몰아쉬며 말했다.

“발각될 뻔한 걸 숨겨줬을 때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요?”

나는 미지근한 물이 든 대야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세숫대야와 수건을 그 옆에 내려놓으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 시선에 눈을 맞췄다.

“적국 병사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죠. 저 아이라면 내 명령을 가뿐하게 어기고 당신을 신고했을 거예요.”

“….”

“그리고 나는 내가 구한 사람이 다시 끌려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어때요. 이만하면 충분히 냉엄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

좀 전까지 잘만 말하더니 왜 대답이 없대.

장난기 어린 말로 받아칠 줄 알았던 그에게서는 들려오는 말이 없었다. 다만, 여전히 나를 관찰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뭐, 그래. 고맙다는 눈빛이지? 알아서 잘 해석할게.

“옷 들어요. 상처 닦아야 하니까.”

그는 여전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가 나가고 둘만 남은 작은 방은 어찌나 조용한지, 나와 그가 내쉬는 숨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봐, 사람을.

침묵이 길어지자 어색함이 올라왔다. 어색한 건 못 참지.

“옷 안 올려요?”

나는 세숫물에 담갔다 꺼낸 수건을 있는 힘껏 비틀어 짰다. 자꾸 대꾸도 안하고 행동도 안하면 너를 이렇게 비틀어 짜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가 인상을 구기며 옷을 올렸다.

“으.”

복부에 가로로 5센치는 되어 보이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엄청 아파 보이는 자상에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처 부위를 잘 닦아낸 후, 이제는 소독을 할 차례였다.

“아플 거예요.”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뭇거리는 것보다 빨리 끝내주는 게 좋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술 진열장에서 꺼내온 위스키를 상처 위로 들이부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소독을 참아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진짜 아플 텐데.’

소독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봉합은 몇 번의 바느질을 해야만 했다.

“정말 내가 해요?”

그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의사를 불러 준다고 해도 한사코 그는 고개를 저었다.

-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하는 남자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긴, 의사든 간호사든 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늘어나서 좋을 것은 없었다.

지금 저택 밖을 빠져나가면 5분에 한 번씩 서제국 병사를 볼 수 있는데, 포상금에 눈이 멀어 신고할지 어찌 아냐고.

‘마취도 안 하고 생으로 꿰매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긴 한숨을 쏟아냈다.

“꿰맬게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입에 깨끗한 수건을 물린 후, 봉합을 시작했다.

참기 힘든지,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생했어요.”

말과 함께 손을 떼자, 온몸에 주고 있던 힘이 순간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남자가 눈을 감으며 팔을 축 늘어트렸다.

눈을 감은 채로 그가 인사를 전해왔다.

“고맙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 앞에 작은 사탕을 내밀었다. 단내가 풍기자 그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뭡니까.”

“잘 참아낸 용감한 아이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그가 싱겁게 웃으며 사탕을 받아먹었다. 내 방에서 시체가 생기는 일은 질색이라 어떻게든 응급처치는 했고. 이제 그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잘 숨겼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면 되겠지.

그때까지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 목숨 하나 구하는 일 쉽네, 어렵지 않네. 그렇게.

“꿰맸으니까 이제 붕대 두를게요.”

붕대를 두르기 위해 다시 머리를 숙였을 때, 그의 허리에 있는 저주의 문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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