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은 청이 지나치게 자신의 힘을 맹신하여 오만하게 굴다 더 크게 다칠까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남산댁이 인정할 만큼 착실하게 조선 땅의 법도를 배웠다지만 아직 인간들의 간악함엔 면역이 없지 않나. 그래서 더 간곡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은수저에 반응하지 않고, 또 개별적으로는 독이 아니라 하여도 상성이 맞지 않는 음식이 섞이면 독이 될 수도 있다. 너는 이 땅에 어떤 독이 있고, 또 그것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 않느냐.”
“알아.”
“아무리 안다 한들… 어?”
청이 어떤 대답을 해도 받아칠 의욕으로 가득 차 있던 터라 무심코 말을 잇던 도겸이 덜떨어진 표정이 됐다. 그를 올려다보는 청은 더 단호하게 대꾸했다.
“안다고. 이 땅에 어떤 독이 있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어찌 아느냐?”
오늘따라 청에게 한마디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겸이 자존심 따위를 세우지 않는 유일한 상대가 청인지라 감정이 상하기보단 그저 궁금하기만 했다.
아니, 솔직히는 청이 허를 찌르고 반박할 때마다 저 자그마한 입술에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대되기까지 했다.
“네가 사경을 헤맬 때 나도 너처럼 누워만 있던 게 아니니까.”
그런데 청이 의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모르는 독이라서, 혹은 내겐 독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라 네가 당한 것도 못 알아차린 거잖아.”
“…….”
“그런 일이 두 번 생기지 않게 하려면 내가 미리 알아 두는 수밖에 없지. 그래야 네가 아무거나 안 주워 먹을 거 아니야.”
청은 여전히 도겸을 귀찮고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도겸은 저도 모르게 더러운 손으로 저릿해진 명치를 감싸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따로 익혔단 말이냐?”
그러자 청이 뭔가를 가늠하듯, 혹은 재어 보듯 가늘어진 눈으로 도겸을 올려다보았다.
“…응. 네가 제일 위험해 보이긴 해.”
“그래?”
도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청은 반대로 어두워졌다.
“적어도 순이는 제 발로 뛰어드는 곳이 불구덩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거든. 근데 너는 가끔 보면 일단 뛰어들고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리 자존심이 없다지만 청에게 어린 순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겨지는 건 퍽 서운한 일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찌….”
“내가 이무기를 감싸는 결정적인 이유가 뭔지 알아?”
도겸의 헛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청이 단호하게 말허리를 자르며 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맨날 입버릇처럼 죽인다고 해도 걘 정말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 없어. 죽이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걸 내가 알아.”
“그 이무기에게서는… 부정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여 그러는 것이냐?”
그 물음엔 청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가 날 정도로 많이 묻어 있었어.”
“하면 어찌…!”
“애초에 동물은 스스로 부정한 기운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매섭게 받아치는 청은 더없이 무표정했지만, 그래서 더 차갑게 얼어 가는 것 같았다.
도겸은 이제 청이 화를 낼 때 불같아지는 게 아니라 얼음장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살기 위해 먹잇감을 죽일 때 외엔 사사로이 욕심이란 걸 부릴 줄 몰라. 남을 미워할 줄도 모르고, 복수 같은 부정한 감정 자체를 품질 않으니까!”
언성을 높이는 청의 눈빛은 어쩐지, 처음 도겸을 만났을 때와 같았다.
그러니까 저건….
“그저 그 이무기는, 조설아가 되고 싶은 것뿐이라고.”
온갖 부정을 품고 있는 인간들을 경멸하듯 바라보던 바로 그 눈이 아닌가.
“나는 조익환이 이무기한테 네 숙부를 죽이라 명령했지만 함부로 남을 해치고 싶지 않은 이무기가 불복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어리석은 이무기를 정신 차리게끔 해 주고 싶었고.”
“…….”
도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었던 스스로를 인정해야 했다. 청이 인간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납득하는 동안, 저는 청을 알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알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걔한테 인간 세상을 알려 준 인간이 너였다면 적어도, 그 지경까진 안 됐을 거야.”
그럼에도 청은 도겸이 그나마 나은 인간이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치만 넌 가끔, 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목적을 갖고 볼 때가 있는 것 같아.”
“…목적?”
“네 목적은 복수니까. 그러니 이무기도 네 숙부를 죽이려고 한 존재여야만 하는 거 아니야?”
물론 냉정한 질책도 아끼지 않았다.
“남산댁이 조금만 쉬고 돌아오라고 해서 그만 가 볼게.”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금세 무심한 얼굴로 돌아온 청이 가볍게 돌아섰다. 디딤돌 위에 작은 꽃신을 벗어 두고 올라가는 발길엔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이 남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가만 청이 사라진 자리만 바라보던 도겸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방 안에 들어갔다 한들 청은 제 말을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야 그간의 네 행동들이 전부 이해가 되는구나.”
도겸은 천천히 흙이 묻은 손을 털어 냈다. 그사이에 마른 손에서 흙이 가루처럼 떨어졌다.
“하나 앞으로도 나는 너처럼 적을 세밀하게 살필 자신이 없다.”
안채로부터 돌아선 도겸은 다시 묘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마도 또다시 목적이 우선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무게감을 잃고 멋대로 둥둥 떠오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왜냐면 나는, 나는 이제….”
너를 잃고 싶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연정에 눈이 먼 사내가 되어버렸으니까.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된들 방아쇠를 당기지 않도록 손가락에 제동을 걸어줄 이성이 남아날까. 도겸은 확신할 수 없었다. 맹목적인 연심 앞에 더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나무를 심기 위한 도구들을 챙긴 도겸은 안채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직전까지 청의 입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는 게 놀랍고 좋다고 생각한 게 무색해졌다.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졌다.
***
한양에 돌아오자마자 심오균이 누명을 쓰고 하옥되었음을 알게 되고, 도겸까지 연루되어 금족령을 받은 지도 벌써 수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근데 너 말이야.”
이상한 건 한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을 뿐인데 어쩐지 도겸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음?”
한가로이 책을 보며 틈틈이 청의 글씨 쓰기를 봐주던 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청은 그를 뚱하게 바라보며 멋대로 붓을 내려 두었다.
“세자가 곤경에 처했을 땐 네 일처럼 나서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놓고, 지금은 뭐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뜬금없이 나무를 심질 않나, 눈이 멀어 있던 동안 독서를 하지 못해 입에 가시가 돋쳤다며 틀어박혀 책만 읽질 않나. 며칠 전부터는 순이에게까지 슬슬 꽃놀이를 가려면 부지런히 진도를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채근과 함께 직접 공부를 봐주고 있기도 했다.
“누명까지 써놓고 왜 아무것도 안 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지라 제법 본격적으로 묻게 됐다. 도겸은 그런 청을 보며 저도 그제야 생각해 본다는 듯이 턱을 만지작댔다.
“흠… 글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 말하면 답이 되겠느냐?”
“뭐?”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청을 본 도겸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곤 조금 더 자세히 풀어 말했다.
“숙부님을 한양으로 압송하긴 했지만 도통 전하께서 즉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시지 않느냐? 그렇다면 답은 하나가 아닐까 싶어 말이다.”
“어떤 답?”
“증거가 애매하다는 것이겠지.”
“애매하다면 이럴 때일수록 네가 결백하다는 이유를 들이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청의 눈엔 찜찜한 상황을 마냥 안고 가는 도겸이 이상해 보였다. 그러나 도겸은 느긋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어째서?”
“이번 사건은 숙부님과 나의 평소 행실, 지금껏 품어온 신념, 그리고 도덕성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지.”
그런 건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가? 청은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그 신념과 도덕성이 매일 훼손되고 있는데도 괜찮아? 이 집 앞을 지나는 인간들이 너 뒷돈 챙기는 양반이라고 욕하던데.”
그러나 도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연스레 읽던 책을 도로 펼칠 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자들이 지나가며 떠드는 게 무어 중요하느냐? 나를 알고 신뢰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라면 몰라도.”
“내 말은 굳이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냐는 거야. 간택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시간 끄는 게 널 함정에 빠트린 인간들이 원하는 거 아니었어?”
“말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라고. 이런 문제일수록 내가 나서서 스스로 해명을 하기보다는 이 일을 조사하고 있을 이들이 묘하게 어긋나고 어색한 부분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더 나으니 말이다. 물론 명확한 반증을 찾는다면 제시하는 게 좋겠지만 어쭙잖게 돌아다니며 바깥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옳지 않고.”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이렇게 온갖 고생 다 해 놓고 그 간택이라는 거 못 들어가면 억울할 것 같단 말이야.”
도겸의 소원도 소원이지만 솔직히는 기껏 억지로 인간 세상에 전부 적응해 놓고 이도 저도 안 될까 싶은 생각도 컸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도겸이 청의 손에 다시 붓을 쥐여 주며 웃었다.
“네가 여기 온 이후로 얼마나 큰 노력을 해 주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찌 그 노력을 허투루 여기겠느냐.”
남산댁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행동을 우선 살펴야 한다고 했다. 허황된 말이 먼저인지, 우직한 행동이 먼저인지를 보는 건 그 사람을 믿을지 말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저 노자의 말씀대로 억울하지만 가만히 강가에 앉아 시체가 떠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너무 답답해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