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파, 아파….”
자신의 몸에 콩알만 한 구멍을 낸 건 자그마한 쇳덩이였지만, 그것이 지나간 몸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끔찍한 고통은 처음이라 설아는 정신없이 산을 내려가며 숨을 헐떡였다.
“아파. 아버지, 아파!”
피가 빠져나갈수록 매끈한 살갗이 갈라지고 비늘이 돋아났다. 불이 번져 타들어 가는 산속에서 타격을 입은 건 설아도 마찬가지였다. 열에 약한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벌겋게 타들어 갔다.
물, 물이 필요했다. 용을 태워 죽일 각오로 불을 지른 짓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리마저 비늘이 돋으며 사라져 버리기 전에 간신히 집에 다다른 설아는 담을 뛰어넘어 가까스로 아버지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 아버지!”
“오, 그래. 우리 설아 왔느냐?”
“아버지…!”
조익환을 보자마자 설아는 안심이 되어 아픈 것도 잊고 왈칵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일은 어찌… 아니!”
반색하며 문을 연 조익환이 곧 대경하며 다 쓰러져 가는 딸을 붙잡았다. 마룻바닥에 설아가 흘리는 피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게 어찌된 것이냐? 심오균을 죽이라 하였는데, 설마 그자가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용을 만났어요.”
“빌어먹을. 어찌 알아차려서는! 역시 어떻게든 먼저 처리했어야 됐는데….”
거의 구렁이로 변해 마룻바닥 위에 기듯이 널브러진 설아를 본 조익환이 냉랭하게 변해 이맛살을 구기며 일어났다.
“여의주는. 여의주는 되찾은 것이냐?”
설아는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태워 죽이려고 했는데… 못 죽였어요. 아버지, 이거… 이것 좀 꺼내 주세요.”
몸속에 이물질이 있는 한 스스로 수복할 수가 없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 걸릴 것이었다. 설아가 간절하게 아버지를 올려다보았지만 조익환은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궁리하기 바빴다.
“그 정도 상처라면 정기를 취하면 나을 수 있는 게 아니냐? 그 용이 네게 총을 쏜 것이냐?”
“아, 아니요. 그건 최도겸이라는 인간이….”
“최도겸? 그놈은 눈도 뵈지 않는 장님인데 어찌… 아니, 화살도 아니고 총을 쏘다니?”
“아버지, 아버지…!”
“겨우 옥에 갇혀 있는 인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놓고 어찌 엄살을 부리는 것이냐!”
설아의 간청에도 아버지는 치맛자락 아래로 다리가 사라지고 생겨난 구렁이의 꼬리를 보며 혀를 찰 뿐이었다. 옷소매에 손을 넣은 조익환이 곧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바닥에 던졌다.
아마도 조설아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지금 엄살 따위나 부릴 때가 아니다! 오늘 밤 안으로 한양을 빠져나가 며칠 몸을 숨기며 행색을 정리해서 돌아오너라. 곧 간택이 있지 않느냐? 다른 이들에게 피접을 갔다, 그리 말해 둘 터이니.”
조익환은 그대로 돌아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흩날리는 도포 자락을 향해 설아가 손을 뻗었지만 그대로 스쳐 가고 말았다.
“아버지….”
홀로 남은 설아는 한참을 찬 마룻바닥에 엎어진 채로 조익환이 사라진 쪽만 보고 있었다.
그 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
“청아!”
불길을 헤치고 나타난 도겸이 청을 덥석 붙들었다.
“어찌 이리 다친 것이냐!”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게, 물을 찾는 것 같았다. 그사이에 이무기도 달아나 버린 탓에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청은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너, 이제 눈이 보이는 거야?”
“그래. 한데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
청은 복부에 박힌 뾰족한 나뭇가지를 스스로 뽑아냈다. 피가 터져 나오기 전에 도겸이 서둘러 손수건으로 상처를 눌러 주었다.
“이리 불길이 커졌으니 피하는 게 우선이다. 곧 금화군이 올 테니 말이다.”
“안 돼. 그사이에 나무들은 다 죽을 거야.”
이무기의 유인에 길이 아닌 곳으로 깊숙하게 들어오지 않았나. 사람들이 물동이를 이고 지고 여기까지 들어와 또 진화하기까지 한참이 걸릴 게 분명했다.
“네 몸에서 흐르는 피는 보이지 않는 것이냐? 겨우 촛불 하나도 뜨겁다며 싫어하면서 어찌!”
엄습하는 불기운에 청이 최대한 불길에 닿지 않게 도겸이 벽처럼 막고 섰다.
“비켜! 아무리 뜨거운 게 싫어도 설마 인간이랑 같겠어?”
늘 그랬듯 인간을 우습게 여겼는데 이번엔 도겸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겨우 나뭇가지에 찔려 그리 피를 흘리면서 다르면 무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이냐?”
그러자 청은 도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손등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너한테서 나던 기분 나쁜 냄새가, 이거였어.”
타박하면서도 탈출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도겸이 멈칫하며 청을 바라보았다.
“뭐?”
도겸이 시력을 되찾은 덕에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게 오랜만이라 제법 반가웠지만, 지금은 도겸과 맞닿고 싶지 않은 청이 질색하며 거리를 두었다.
“이무기를 다치게 한 무기 말이야.”
청의 눈은 도겸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총을 향해 있었다. 청이 얼마나 무기를 꺼리는지 아는지라 바로 내던졌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화약 냄새가 몸에 배어 있으니 말이다.
“죽이려던 거야?”
그러자 도겸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
“다시 장전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어. 단 한 발밖에 기회가 없어 부득이 몸통을 겨눴던 것이다.”
“이무기를 죽이려 했던 거냐고!”
청의 눈에 도겸은 저만치 타오르며 생명을 잡아먹는 불길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부정한 기운이 까맣게 도겸을 좀먹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도겸이 나직이 대꾸했다.
“…죽어도 상관없다, 그리 생각했다.”
“왜 그렇게 쉽게 판단해? 사람이 아니라서?”
“너를 다치게 하지 않았느냐!”
주저 없는 답이었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청이 뒤늦게 무어라 대꾸하려던 차, 도겸이 다급히 청을 붙잡고 이끌었다.
“내게 화를 내든 싸우든 여길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가자.”
“아니.”
도겸의 손을 뿌리친 청이 그 자리에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버티고 섰다. 상처를 누르고 있던 손수건도 떼어 냈다. 피도 더 흐르지 않았다. 도겸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니 된다. 물가에 가기 전까지 좀 더 누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땐 신물이 없었고.”
청은 늘 품고 다니는 신물을 꺼내어 손에 쥐었다.
“지금은 이까짓 상처 따위,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금방 나아.”
피를 좀 흘리긴 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도겸에게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얘기하였으나 청은 신물을 쥐고 처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네가 정말 용의 심장쯤 된다면 힘 좀 더해 달라고.
“무얼 하려는 것이냐?”
“이대로 도망칠 순 없어. 그러면 안 돼.”
“…청아, 제발!”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너 먼저 피해.”
그러자 도겸이 청의 팔목을 쥐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어찌… 너를 두고 가겠느냐?”
무의미한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도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은 두 사람을 향해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하긴, 이 상황에선 너 혼자 보내도 타 버리고 말겠지.”
사람은 제가 했던 것처럼 높고 멀리 뛰어오르는 데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여기저기 메마른 나무들이 타들어 가다 못해 픽픽 쓰러지고 있는지라 확실히 불가능해 보였다.
“…시끄러워.”
안 그래도 뜨거운 열기에 괴로운데 나무까지 타들어 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라 청은 할 수만 있다면 귀를 뜯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 최도겸도 나무들이며 크고 작은 짐승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면 혼자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혹시….”
발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청은 심장이 욱신대는 것을 느꼈다.
“청아!”
청이 말을 다 잇지 못했음에도 무얼 하려는지 눈치 챈 도겸이 청의 어깨를 붙들었다.
“너, 무얼 하려는 것이냐? 아니 된다. 여긴 물가가 없어!”
“그래서 지금 만들고 있잖아.”
“…뭐?”
점점 진동이 커졌다. 꿋꿋하게 곁을 지키던 도겸까지 뭔가를 느꼈는지 눈이 커졌다. 표면에 흐르는 게 없어 깊은 곳에서부터 물을 끌어 올린 청은 도겸에게 단호히 경고했다.
“물러나. 갑자기 하늘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도겸을 밀쳐 내기가 바쁘게 그가 있던 자리의 바닥이 크게 뚫리고 차가운 물이 솟구쳐 올랐다. 사방에서 연쇄적으로 치솟는 물줄기들은 지상에서 승천하는 용의 행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게….”
도통 보지 못한 광경이라 도겸이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청은 주춤대며 물러나 나무에 기대었다.
신물의 힘을 빌었다만, 그럼에도 심장이 쩍쩍 갈라지는 게 느껴졌다. 신물이 아니었다면 이미 심장이 조각나 가루가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불쾌한 불의 열기가 줄어들어 숨을 쉬는 게 편해져 다행이었다.
“…최도겸.”
높이 솟구친 물이 역으로 떨어지며 마치 비가 쏟아지는 모양새가 됐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며 타들어 가던 산을 적시고 맹렬하게 비산하던 불꽃들을 잠재웠다. 그렇게 점차 사위가 어두워졌다.
어수선한 사위에 듣지 못할 법도 했지만, 도겸은 곧장 눈으로 청을 찾았다.
“청아!”
“너… 빨리 말해.”
한달음에 다가온 그가 청을 들어 안았다. 아직도 물을 끌어오고 있던지라 기어이 코피를 쏟기 시작한 청이 다그쳤다.
“소원이 뭐야?”
“…뭐?”
기어이 코뿐만이 아니라 입으로도 핏물이 터져 나왔다. 신물이 있음에도 물을 끌어오는 데 무리가 있다니. 그만큼 메마른 산이었다는 뜻인지라 이무기가 잘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원이… 뭐냐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장 단순한 걸로 말해.”
그즈음 주변을 밝히던 불씨가 모조리 가라앉았다. 마지막 불꽃이 비춘 도겸의 얼굴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금세 그의 얼굴에 음영이 지고 형체만 남았다.
“나, 나는.”
그가 천천히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드디어 듣게 되는 것일까. 청은 온 신경을 다해 그 입술에 집중했다.
“나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다음은 들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극심한 통증을 견뎌 내지 못하고 그만, 의식을 잃은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