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 맡은 죽음의 냄새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영역 안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기껏 목욕까지 하고 온 게 무안하게도 청은 그저 바로 느낄 수 있다고만 하였으니 후각과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 아닐까.
하긴,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깨우친다면 그것도 말이 되지 않긴 했다. 그래서 도겸은 육감이 열려 있는 청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니 부탁 좀 하자꾸나.”
“이미 죽은 것에 왜 미련을 둬?”
“당연히 억울한 죽음이라면 살인한 자를 벌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니까.”
제가 손수 씌워 놓은 이엄이 어찌나 단단히 가렸는지 청의 얼굴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죽어 멈춘 것을 너무 가까이 하지는 마.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던 청이 무심하게나마 누누이 말하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죽여 버리겠다느니 겁을 주고 세상 무서운 것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정작 죽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무서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야. 그런 건 한 번 묻으면 더러운 걸 계속 불러들이니까.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정말 죽이지는….”
자연스레 대꾸하던 청이 입을 꾹 다물었다. 도겸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키가 훌쩍 큰지라 청이 올려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강하다고 저보다 약한 것들의 목숨은 경시하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면 어린 순이를 아끼고 지키겠다던 약속도 같은 흐름이 아닐까. 청이의 인간적인 면모가 도겸은 퍽 마음에 들고, 또 마음이 놓였다.
“그래. 조심성이 있다니 좋구나.”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한 걸까. 청이 구태여 제 말을 정정해 가며 강조했다.
“‘웬만하면’이라는 거지, 웬만하지 않으면 정말 죽인다고.”
“그건 나도 그렇다. 그런 사정은 마땅히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이고.”
“그럼 너는.”
우뚝 멈춰 선 청이 눈만 들어 도겸에게 물었다.
“네 아버지라 하여도 죽일 수 있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기함하던 차, 둘은 검시소가 있는 포청 뒤쪽에 서 있었다. 도겸은 단순히 청이 강함을 내세우고자 어린아이처럼 허세를 부린다 생각했다.
“행여 그런 말은 꿈에라도 하지 말거라. 생각조차도. 알겠느냐?”
“…….”
“여하튼 일단 우리가 할 일은….”
오늘 있었던 자살 사건의 사체는 내일 중으로 가족에게 인계되어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 했다. 상도를 어기고 관에 들어간 시신을 함부로 열어 볼 수는 없는지라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오늘 밤뿐이었다.
“포청 안 검시소에 들어가 사체를 직접 확인하여야 한다. 그런데 아직 사람도 많을 테고, 무엇보다 내가 따로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다른 관부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월권이고 자칫 들키기라도 했다간….”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시각이라 불안했다. 아무래도 망자들이 자진한 곳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오는 쪽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러니 먼저….”
“그럼 안 들키면 되잖아.”
걱정이 한가득인 도겸과 달리 청은 여유롭기만 했다.
“나는 만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발각됐다간 나뿐만 아니라 낮에 함께 왔던 세자 저하까지 입장이 곤란해지시니 말이다.”
“그러니까 너나 걱정하라고. 난 문제 없으니까.”
포청 뒤쪽 담벼락 아래에 선 청과 도겸은 또다시 옥신각신이었다. 가까이 선 두 남녀의 모습은 아무리 남장을 한들 체격 차로 인하여 마치 밀회라도 하는 모양새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걱정이 되는 거라면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여기 있든가.”
돌아서 즉각 담을 넘으려는 청을 도겸이 재빨리 붙잡았다.
“시신이 한 구만 있는 줄 아느냐?”
“그걸 누가 몰라? 벌써 기분 나쁘니까 빨리 보고 오겠다는 거잖아.”
“어떤 시신인 줄 알고?”
“오늘 죽었다며.”
빨리 확인해 버리고 이 자리를 뜨고 싶었는지 청이 보다 강한 힘으로 도겸을 뿌리쳤다.
“제일 성한 걸로 찾으면 되지. 두 번 오고 싶지 않아. 그냥 지금…!”
“아니 된다.”
그러나 도겸이 재차 청을 제지했다. 무책임하게 청을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앞으로 간택에 올릴 몸이 아닌가.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뒤집어쓰는 게 나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외숙부의 여식으로 올린 것이기도 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청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도겸이 못 미더운 것이다. 저를 이토록 신뢰하지 않는 데다 약한 미물로 보는 이는 눈앞의 여자뿐일 것이다. 그는 청을 두고 먼저 담벼락 너머를 살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인지라 담벼락 뒤는 고요했다. 도겸이 먼저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청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고 올라오너라.”
“…….”
길고 큰 손을 바라본 청이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말없이 쳐다보는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설마 제가 누군지 잊었냐는 뜻이 분명했지만 도겸은 물러서지 않았다.
“능히 할 수 있어도 다른 손을 빌리고 부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남산댁, 아니 신 상궁이 말하지 않더냐?”
달구경도 지붕 위에 드러누워 하는 여인이니 야트막한 담벼락 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겠다만, 청은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었다.
“…도무지 이 땅은 이해가 안 돼.”
도겸의 손을 잡고 담벼락 위로 오른 청이 작게 중얼거렸다. 반대편으로 내려갈 때도 도겸이 먼저 내려가 청을 받아 내려 주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힘을 내는 몸이라곤 믿을 수 없게 가벼웠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정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는 도겸에게 청이 물었다.
“나는 자신 있는데, 너는 들키면 어떻게 할 거야?”
“청이 네가 자신 있듯, 또한 나도 들킬 것 같진 않으니.”
건물 그림자 속에 바짝 붙어선 도겸이 청을 제 쪽으로 당겨 세우며 나직이 덧붙였다.
“그 부분은 사전에 협의할 필요가 없겠구나.”
바야흐로 좌포청 뒤편으로 두 남녀의 인영이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
“나리, 어떤 서책을 찾으십니까?”
인정 전에 문을 닫아야 하는 세책점 주인이 아까부터 느긋하게 서가 이곳저곳을 기웃대던 언에게 굽실거렸다. 함부로 내쫓기엔 갖춘 복색이나 화려한 갓끈 하며 범상치 않은 신분이 예상되는 바라 어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사서삼경’이라면 저쪽을 보시면 됩니다만.”
사내가 염정 소설이 가득 쌓인 서가 앞에 서 있는 게 이상한지 주인은 다른 쪽 서가를 가리켰다.
“흠… 아니야. 그런 것은 되었고 그저 요즘은 어떤 세책이 잘 나가나 궁금하여 내 이곳저곳을 좀 둘러보던 참일세.”
“그럼 제가 몇 가지 추천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요즘 아주 불티나게 나가는 이야기들이 있습죠.”
“그런가? 어디, 좀 보게.”
말하기가 바쁘게 주인이 몰래 숨겨 두었던 세책들을 몇 권 가지고 왔다.
“아무리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이라 하여도 이 남녀상열지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밤잠 설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언은 낯 뜨거운 제목들 하며 사람의 손까지 타 너덜너덜해지기까지 한 책들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망자의 유서는 가난한 사정에 비해 과히 좋은 종이에 먹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보통 세책방을 통해 여러 번 읽히는 세책들이 책방에서 파는 책보다 품질이 좋지요. 망자가 세책방의 필사 일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참일 겁니다.”
“보아하니 여러 책에 쓰인 필체가 일정하니 마치 이 많은 책을 한 사람이 쓴 듯한데.”
언이 이리 밖으로 나와 세책방을 찾은 이유는 낮에 함께 사건을 돌아보던 도겸이 남긴 말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세책점부터 다시 가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죽은 이가 필사한 책을 본 이라면 필체를 아는 이가 매우 많지 않습니까? 필체를 따라 쓰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거기까지 확인해 보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정황이 자결한 것이라 보이더라도 모든 의심을 하나씩 소거하여 사인이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그저 망자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 진실로 두어야 하지 않나.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과 도겸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 필체를 가진 이는 아직도 일하는가?”
오늘 있던 사건 때문이라면 세책점 주인이 혹 무언가를 알더라도 감출 가망이 있다. 언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렇다면 소개해 줄 수 있겠나?”
“예?”
예상대로 필사하는 이를 빼돌릴 것이라 생각했는지 신나게 책을 소개하던 세책점 주인이 정색하며 경계했다.
“설마 다른 세책방을 하려 염탐을 온 겁니까?”
“그건 아니고, 긴히 쓸 곳이 있어 말이네.”
어찌 되었든 세책방에 도움이 될 손님은 아니라 판단했는지 주인의 태도가 퍽 건성이 되었다.
“크흠! 그렇다 하여도 어렵겠습니다. 가뜩이나 이 필체를 가진 이는 얼마 전부터 아프다고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오늘 아침에 기어이 유명을 달리했으니까요.”
“아프다 하였다고?”
“일을 그렇게 해 돈을 벌고도 끼니를 챙기기 어려웠는지 손이 떨려 도저히 글씨를 쓸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어젯밤에 목을 맸다던데, 나 참….”
“그런가.”
하기야 사체의 상태가 많이 마르고 초췌하긴 했었다. 언이 다른 생각을 하는 틈에 책을 빌릴 사람이 아니라 판단한 주인이 그의 손에서 책을 슬쩍 빼앗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무어, 그이의 깔끔한 필체로 쓰인 책을 원하는 이가 많다 보니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그네의 필체를 따라 쓰는 필사자들도 많기야 합니다만 안타까울 따름이지 않겠습니까.”
“…뭐?”
중얼대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반응한 언을 보고는 뜨끔했는지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그, 그렇다 하여도 필사하는 이를 소개할 순 없으니 그만 가 주십시오!”
주인은 언을 쫓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침내 세책점의 문을 닫아걸 기세였다.
“잠시, 잠깐만 기다리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