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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91)화 (1,191/1,192)

제1191화

한창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월규가 나왔다. 모두들 곧장 입을 다물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월규가 늘 홀로 머리를 틀어 올렸던 것에 익숙했던 궁녀들은, 별안간 그녀가 규방에서 혼사를 기다리는 규수처럼 머리카락을 풀어 내린 모습에 너무 낯설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소락이었다. 소락은 기쁜 마음에 눈물을 다 글썽거렸다. 머리 모양을 바꾸었다는 건, 그녀가 죽을 때까지 홀로 지내겠다는 마음을 바꿨다는 게 아니겠는가.

월규는 궁녀들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투덜댔다.

“왜, 이 고고를 못 알아보겠느냐?”

“아닙니다, 알아보지요.”

소락이 월규에게 달려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고고,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위 태의께선 솜씨도 정말 좋으시네요.”

위중청은 조금 뜻밖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냐?”

“사희 공공께서 모셔 왔고 또한 고고께서 보시자마자 그런 반응을 보이시기에, 분명 위 태의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월규가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

“눈치는 빨라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위중청에게 말했다.

“다 빗었으니, 어서 가세요.”

위중청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안 갈 것이오. 앞으로 아무 데도 안 갈 것이오.”

월규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사내가 내 방에서 지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어서 가세요, 안 그럼 매질을 해서 쫓아낼 테니까.”

“매질을 당한다고 해도 안 갈 것이오.”

위중청이 말했다.

“당신은 삼품 고고가 아니오? 누가 감히 뒤에서 혀를 놀리겠소? 게다가 궁 안에 우리 두 사람 일을 모르는 이도 없고, 이미 예전부터 당신과 내 평판은 한데 묶여 있지 않소? 간다고 해도 함께 갈 것이고, 궁에 남는다고 해도 함께 남을 것이오.”

월규가 얼굴을 붉히며 그를 나무랐다.

“남원에 다녀오더니 어찌 이리 뻔뻔해졌단 말입니까…….”

방금 방 안에서도 뻔뻔스럽게 굴더니. 그는 그녀가 당해 낼 수도 없게 품에 꼭 안았다. 그녀는 그런 그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지만 서로의 호흡이 한데 뒤섞이는 순간, 여전히 예전의 위중청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흘러간 시간이 돌아왔고, 그는 마침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더는 고집스럽게 굴지 않았다. 그녀의 운명이 정해 준 사람이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인 거지!

* * *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사봉봉은 화들짝 놀라 금천아에게 물었다.

“위 태의가 돌아왔는데 어째서 아무도 본궁에게 알리지 않은 게야?”

“아마 황상께서 소문이 날까 봐 비밀리에 진행하셨겠지요, 월규 고고한테 깜짝 선물을 주려고요.”

금천아가 말했다.

“사희 공공이 위 태의를 월규 고고 처소에 데려다줬는데, 아무런 소개도 안 해 주었답니다. 게다가 월규 고고가 잠든 상태라 진맥만 짚고 처방전을 쓰고 있었는데, 그때 고고가 잠에서 깬 거예요. 소락한테 들으니, 고고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사봉봉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위 태의가 돌아왔으니 고고의 병도 금방 나아지겠구나.”

금천아가 말했다.

“고고께선 금방 다 나으실 텐데, 황상께선…….”

“황상께서 왜?”

“사희 공공이 그러는데 황상께서 오늘 기침이 좀 심하시다고 합니다. 혹 어젯밤에 감기에 드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봉봉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젯밤 그녀가 묵용린을 걷어찼는데, 설마 그때 감기에 걸린 건 아니겠지?

그녀가 금천아에게 분부를 내렸다.

“주방에 가서 배 꿀찜을 만들라고 하거라. 황상께 가져다 드려야겠다.”

“네, 소인이 곧장 가서 전하겠습니다.”

금천아는 기쁜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봉봉은 배 꿀찜을 묵용린에게 직접 가져다주었다. 그녀 나름대로는 사죄의 의미도 담긴 것이었다. 천하에 가장 존귀한 황제를 감히 걷어차 침상에서 떨어뜨리다니, 누군가 알게 되면 그녀는 마땅히 종묘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묵용린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침상으로 올라와 잠을 청했고, 그녀가 깨기도 전에 자리를 비웠다.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일까?

그녀는 남서방으로 들어갔다. 묵용린은 상주서를 읽고 있었는데, 고개도 들지 않는 그의 모습에 사봉봉은 그가 화났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가 쟁반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황상, 오늘 기침이 심하시다 들어 신첩이 특별히 배 꿀찜을 만들었습니다. 목을 촉촉하게 하여 기침을 멎게 하니, 뜨거울 때 드시지요.”

묵용린이 배 꿀찜을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짐은 단 걸 안 먹소.”

사봉봉이 그를 타일렀다.

“그리 달지 않습니다. 패모貝母(기침과 담에 좋은 약재)를 넣었습니다.”

“짐은 쓴 것도 안 먹소.”

“쓰지 않습니다. 꿀을 넣었으니까요.”

“달지도 쓰지도 않은 건 안 먹소.”

“하지만 황상의 옥체는…….”

묵용린이 코웃음을 치더니 비꼬듯 말했다.

“황후가 짐의 옥체에 관심이나 있소?”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황상의 옥체는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법이지요. 재채기만 하셔도 큰일인데, 신첩이 어찌 감히…….”

묵용린이 그녀의 말을 끊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감히 하지 못할 건 또 무엇이란 말이오?”

사봉봉은 그가 여전히 어젯밤 일로 화를 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만 탓할 일이던가. 그저 정말 아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낯이 두껍지 않았기에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참을성을 가지고 한참을 더 타일렀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치밀기 시작한 그녀도 성을 내며 말했다.

“신첩은 좋은 마음에 만들어 온 것인데, 드시기 싫으시면 마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는 화가 난 몰골로 방을 나섰다.

묵용린은 그녀의 모습이 문 뒤로 사라지자, 표정이 몇 번이나 더 바뀌었다.

잠시 뒤, 그가 그릇을 들고 중얼거렸다.

“먹지 말라면 안 먹을 줄 알고? 그럼 더 먹어야지.”

그는 단번에 배 꿀찜을 깨끗이 먹어 치웠다.

사봉봉은 사실 멀리 가지 않고 문 근처에 서 있었다. 묵용린이 먹는 모습을 슬쩍 지켜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는 또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 드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다 드셨습니까?”

묵용린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지만, 눈 속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짐은 그저 목이 말라, 물이라 여기고 마신 것뿐이오.”

“잘하셨습니다.”

그릇을 다시 쟁반에 담던 사봉봉이 묵용린을 바라보았다. 까닭 없이 그녀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 신첩이 주방에 저녁 찬으로 뱅어 요리를 하라 분부하였는데, 황상께서도 오시겠습니까?”

“황후의 초청이니 가겠소.”

묵용린은 그녀의 발그레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 밥만 먹는 것이오?”

사봉봉의 고개는 더 아래로 숙여졌고, 목소리도 더 작아졌다. 그녀는 새하얀 목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천아가 자란 가루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그게 통증을 멎게 할 거라고…….”

순간, 묵용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봉봉.”

그는 사봉봉을 품에 안고 싶었으나, 사봉봉이 빠르게 몸을 틀었다.

“안 됩니다. 쟁반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넘어질지도 모릅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녁에… 다시… 그… 음… 하시지요…….”

그녀는 당혹감에 횡설수설하며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에 남은 묵용린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문지르다 책상에 주먹을 내리치며 헤벌쭉 웃었다.

* * *

장공주 전하의 대혼 날, 임안성의 모든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다들 관도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서서 떠들썩한 혼례 행렬을 구경했기 때문이다. 혼수를 짊어진 말이 끊임없이 궁 문에서 나와 영부로 향했다.

누군가 말이 몇 마리인지 세기 시작했다. 태상황이 장공주 전하를 위해 준비한 혼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에 몇 번이나 계산이 끊겼다.

“저기 좀 보게, 저쪽이 신랑이지? 얼굴도 잘생기고 위풍당당하구먼!”

“저기 장공주 전하의 꽃가마예요. 세상에나, 예뻐라!”

“그러게요. 역시 장공주 전하의 꽃가마네요. 동월에서 유일무이한 꽃가마겠지요.”

“영 대인은 원래도 황상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장공주 전하까지 맞았으니 영씨 가문은 더 빛을 발하겠군. 임안성에서 마음껏 떵떵거려도 되겠어.”

“영 대인은 늘 조용히 지내셨잖아요. 영 공자도 나이는 어리지만, 늘 침착하고요. 황상께서 장공주 전하를 영가에 시집보내시는 것도 어쩌면 그런 모습을 높이 사셨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장공주 전하와 영 공자는 청매죽마가 아니오? 어릴 때부터 감정이 남달랐을 테니 장성해서 부부의 연을 맺는 것 또한 순리를 따르는 것이지.”

누군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리 많은 혼수라니, 십 리도 더 되겠어요.”

“내가 봐도 그렇소. 여기에 서 있는 동안 이미 얼마나 많은 말이 지나갔소? 게다가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잖소!”

“누가 그러던데, 태상황께서 황위에 계실 때부터 준비하신 혼수래요. 태상황께서 장공주 전하를 얼마나 아끼셨는지는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잖아요. 좋은 게 생길 때마다 거기서도 가장 좋은 걸 장공주 전하의 혼수로 따로 골라 두셨대요.

이만한 묘안석도 있고, 사람보다 더 큰 아왜나무도 있고, 대나무보다 더 푸른 비취하며……. 해마다 그렇게 많이 모아 두셨으니 이렇게 많은 게 당연하겠지요.”

“세상에, 제법 그럴싸한 얘기네요. 직접 본 거예요?”

“직접 본 건 아니고 우리 딸애가 예전에 승덕전에서 일했었거든요. 지금은 나이가 차서 궁을 나오긴 했지만,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런, 정말 딴 세상 얘기군요…….”

“예부터 황제의 딸은 시집 걱정 안 한다더니, 역시 그 말이 정말이군. 이 혼수만으로도 부러워 죽겠으니 말일세.”

“…….”

영부 대문에 서 있던 가동은 하인들이 혼수를 차례차례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입맛을 다시던 그가 감탄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구야, 너희 집 완전히 복받았구나. 장공주 전하가 며느리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얻었잖아. 십 대가 써도 다 못쓰겠다.”

늘 무표정이던 영 대인도 오늘만큼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다 태상황과 황상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이지요. 혼수야 그저 물건에 불과하고, 저와 기홍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청양입니다. 청양을 친딸처럼 예뻐할 겁니다.”

가동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친딸처럼 대해도 친딸만큼은 못 하지. 우리 소타 같진 않을 거야. 아무렴 내 딸인데.”

말은 마친 그는 서글픈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어느 놈이 데려갈지 모르겠네.”

영 대인이 입을 열려는데, 그가 손을 내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너처럼 딸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 못 하니까. 태상황께나 하소연하러 가 봐야지.”

“…….”

그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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