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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89)화 (1,189/1,192)

제1189화

사봉봉은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 봄기운이 살랑이는 눈매, 살짝 부풀어 오른 입술까지……. 한참을 바라보던 그녀는 거울을 닫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와 입을 맞추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다. 그는 아직 병이 다 낫지도 않았으면서 어찌 이리 갑자기…….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아직도 뜨거운 촉감이 남아 있는 듯했다.

조금 전, 묵용린은 병이 도진 듯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를 놓으려 하지 않았고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입을 벌렸다.

그녀도 병이 난 듯 머리가 어질거렸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녀는 그의 숨결에 에워싸여 어쩔 줄 몰랐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숨을 내뱉고 싶었지만, 그에게 온전히 가로막혔다.

그가 입안을 마구 헤집는 통에, 혀에 통증이 느껴진 그녀는 끊임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힘이 얼마나 많이 실렸는지 그대로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그녀는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쯤 되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녀도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저릿하고 떨리는 게, 마치 그를 따라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그가 그녀와 사이를 벌렸다. 그런데 그녀를 놓아 주는 건 아니었다. 눈을 내리뜬 채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빛은 깊고 어두웠지만, 아직도 불씨가 타오르며 놀랄 만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그녀도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가 품속으로 끌어안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 그녀는 빠르고 세차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고삐가 풀린 야생말이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거센 박동이었다.

“황상?”

그녀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묵용린은 그녀를 더더욱 끌어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한참 뒤, 그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봉봉.”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괜찮소?”

“괘, 괜찮습니다.”

그녀가 물었다.

“황상께서도 괜찮으십니까?”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를 꼭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짐은, 아주 좋소.”

* * *

묵용린은 쇠뿔을 단김에 빼고 싶었다.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입을 맞춘 건 제법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사봉봉이 그를 밀어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붉게 물든 얼굴로 자리를 뜰 땐, 그를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 눈빛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 봉명궁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사봉봉은 그가 이런 계획을 세웠을 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남서방에서 별안간 그와 입맞춤을 한 일로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황제가 너무 조급히 앞서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아주 좋다고 하긴 했지만, 온몸이 그렇게 뜨거운 걸 보면 병이 도진 게 틀림없었다. 며칠은 푹 쉬며 몸을 보양해야 할 것이었다.

그녀는 일찌감치 목욕을 하고 침상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데, 희미하게 황상의 도착을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하곤 그대로 누워 있었는데, 장막이 걷히더니 커다란 체격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제야 몸을 흠칫 떨며 잠에서 깼다.

“화… 황상,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에서 자려고 왔소.”

묵용린이 그녀를 침상 안쪽으로 밀며 말했다.

“앞으로 황후는 안쪽에서 주무시오. 짐은 바깥쪽에서 잘 테니. 그래야 황후가 떨어지지 않을 것 아니오.”

사봉봉은 눈을 깜빡이며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라니…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앞으로 늘 이곳에서 자겠다고?’

“무엇 하러 일어나시오. 안 잘 거요?”

사봉봉은 불편한 마음에 목을 내밀어 장막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 누구 있습니까?”

“없소. 짐이 모두 물렸소.”

묵용린이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고 그만 주무시오.”

“…….”

그녀는 더욱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예전에도 묵용린이 이곳에 자러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녀와 다투는 바람에 자리를 박차고 떠났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가 좀더 대담해지기도 했고 그녀에 대한 마음속 응어리도 딱히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 그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두고 누웠다. 장막까지 꼼꼼히 내려져 있어서 좁은 공간이 더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사봉봉은 얌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경직된 상태였다. 누군가와 한 침상에서 자는 일이 극히 드물었기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묵용린은 그녀보다 침착했는데, 눈을 감고 고르게 숨쉬는 걸 보니 정말 잠이 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봉봉은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잠들었다면 호흡이 이렇게나 가벼울까?

물론 묵용린은 잠들지 않았다. 다만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을 비교적 고르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는 촉각을 곤두세워 이불 아래로 사봉봉의 손을 어루만졌다. 처음엔 약지로 슬쩍 스쳤다가 그녀가 피하지 않자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바로 그 순간, 사봉봉은 마른침을 삼켰다. 입 안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살짝 손을 빼내며 말했다.

“황상, 물 좀 마셔야겠습니다.”

묵용린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알겠소, 짐이 물을 떠 주겠소.”

그가 침상에서 내려가고 나서야 사봉봉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금천아나 경화, 경옥을 부르면 되거늘 어째서 황제에게 말했단 말인가? 게다가 방금 그 말투는 황제가 아닌, 부군에게 하는 말 같았다.

‘잠깐, 그가 내 부군이었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묵용린이 물을 떠 오더니 그녀를 불렀다.

“물을 가져왔소.”

사봉봉은 바깥쪽으로 몸을 움직여 찻잔을 받아 들려고 했다. 묵용린이 그녀의 손을 피하더니 찻잔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

결국 그렇게 몇 모금 들이켠 뒤 사봉봉은 다시 침상에 몸을 뉘었다.

묵용린은 찻잔을 내려 두고 금방 돌아와서는, 이불을 젖히고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춥진 않소?”

어찌 추울 수 있겠는가. 이불 밑에서 손을 잡고 있느라 그녀는 온몸에서 열이 날 지경이었다.

묵용린이 물었다.

“어찌 이리 차갑단 말이오?”

“…….”

그는 몸을 눕히더니 자연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짐이 따뜻하게 해 주겠소.”

“…….”

여기서 더 따뜻해지면 불이 붙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며 더더욱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턱을 밀착했다. 두 사람의 숨결은 점점 뜨거워지며 서로 섞여 들어갔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더는 참지 못한 사봉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상. 신첩, 너무 덥습니다.”

“덥소?”

묵용린이 그녀를 놓아 주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단추를 풀어 주었다.

“더우면 벗으시오.”

“…….”

그녀는 심장이 팽팽히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밤, 마침내 두 사람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묵용린의 손을 누르며 더듬더듬 말했다.

“신첩, 이제… 덥지 않습니다.”

묵용린은 알겠다고 대꾸한 뒤, 더는 강제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짐이 덥구려.”

사봉봉은 그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지만, 사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옷을 벗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긴 했으나 그렇다고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몰랐다.

곁눈으로 보니 그는 옷을 침상 끄트머리에 내던지고는, 다리를 들어 바지까지 벗고 있었다.

그녀는 별안간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더웠다. 너무 더워서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묵용린은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거의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는데도 줄곧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어찌 이리 땀을 흘리는 것이오?”

“…….”

“벗는 게 좋겠소. 벗으면 시원할 거요.”

묵용린이 말했다.

“중추도 지났는데, 어찌 이리 더운 것인지. 아무래도 늦더위가 오는가 보구려.”

그는 말을 뱉으며 그녀의 단추를 풀었다.

이번엔 사봉봉도 그를 막지 않았다. 묵용린의 모든 행동이 철저히 계획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춥고 더운 것부터 옷을 벗기는 것까지.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는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올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오게 될 터. 피할 방법도 없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후궁을 비워 주는데, 그녀가 무얼 따질 수 있겠는가?

사실 묵용린은 전부 계산대로 행동했다. 그는 더 이상 늦추고 싶지 않았다. 큰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건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사봉봉을 가져야 했다. 이 여인이 몸과 마음을 전부 그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녀는 내 것이니, 그녀를 정복하고 말 것이다.’

이 생각은 늘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고 그 어떤 마음보다 강렬했다.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눈, 코끝과 입술, 턱과 목에 이어 쇄골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 모습은 마치 어여쁜 한 송이 꽃처럼 가엽고, 유약하고, 심지어는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상, 살살 좀…….”

묵용린이 목멘 소리로 대꾸했다.

“살살하겠소. 살살…….”

잠시 뒤, 사봉봉이 또다시 물었다.

“황상, 하…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순간 묵용린의 투지가 한껏 더 불타올랐다. 그가 이를 갈다시피 힘주어 대답했다.

“짐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려 주겠소.”

사실 묵용린은 그녀의 말뜻을 오해했다. 그녀는 그가 병 때문에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물은 것이었는데, 묵용린은 그녀가 자신의 남자다운 위용을 무시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다른 이도 아니고 진왕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기에 병이 있을지언정,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을지언정 이론과 지식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가 몸에 힘을 싣고 그녀를 누르자, 사봉봉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픕니다!”

묵용린은 그녀의 비명에 차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사봉봉은 극심한 두려움에,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그만 그를 침상 아래로 걷어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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