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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85)화 (1,185/1,192)

제1185화

송 부인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우상 대인에게 물었다.

“노야, 우리 딸이 집에 돌아온 지가 언젠데, 어째서 궁에서는 아무 기별도 없는 거죠? 그냥 이대로 넘어가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 없소.”

우상 대인이 말했다.

“황상께서 뱉으신 말은 중천금이오. 어찌 이대로 넘길 수 있겠소.”

그가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교아가 입궁할 땐 줄곧 마마로 지낼 줄 알았는데, 결국 친왕부의 왕비가 되다니.”

송 부인은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저는 오히려 친왕비가 되는 게 더 좋네요. 우리 저택과 친왕부는 거리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으니, 교아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잖아요. 교아가 집에 오고 싶을 때도 금방이니 궁과는 비교가 안 되죠. 궁에 들어가면 일 년에 얼굴도 몇 번 못 보잖아요.

사실 교아가 처음 입궁할 때도 전 싫었어요. 황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지, 지금이 훨씬 낫고말고요. 게다가 성 전하는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우아한 게 분명 여인을 아껴 줄 사람이 틀림없어요. 게다가 부귀한 왕야이니 교아도 성 전하와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거예요.”

하지만 우상 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 전하가 괜찮긴 하지만 너무 괜찮아서 문제지. 쉽게 다른 여인들의 마음을 살지도 모를 일이고. 게다가 늘 진왕야와 함께 다니지 않소. 진왕야의 후원을 좀 보시오. 궁과 별반 다를 게 없소.”

“우리 성 전하는 안 그러실 거예요. 교아를 만나기 전에나 진왕야와 함께 다니셨지, 혼사만 치르면 교아가 곁에 있으니 그럴 리 없어요. 부부끼리 즐겁게 지내기도 바쁜데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어디 있겠어요.”

우상 대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부인 말대로만 된다면 나도 더 바랄 게 없소.”

송 부인이 말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혼사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혼사만 치르면 저도 마음 편히 놓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황상의 뜻을 따라야 할 것 아니오. 장공주 전하가 대혼을 앞두고 있으니, 장유유서라고 응당 우리가 기다려야 하오. 장공주 전하와 성 전하의 대혼에 태상황과 태후께서도 분명 참석하실 것이오. 당신도 마음 놓고 천천히 기다리시구려.”

* * *

후원 수방에 있던 송교는 창문을 넘어 불쑥 들어온 묵용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이곳엔 어, 어찌 오셨습니까?”

무려 친왕이라는 사람이 어찌 좀도둑처럼 창문을 넘는단 말인가…….

묵용성은 젊은 남녀가 후원에서 밀회를 한다는 내용의 화본을 너무 많이 읽어 왔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니, 색다르고 짜릿한 게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가 송교의 손을 잡았다.

“소저, 부디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소생, 소저를 너무 많이 흠모하는 탓에 벽을 타고 창문을 넘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송교도 화본을 적잖이 읽었다. 그가 지금 하는 말이 화본의 대사라는 걸 알아차린 송교는 발그스레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공자께서 정말 저를 흠모하신다면, 혼담을 꺼내시면 되지 어찌 이리 몰래 찾아오시나요…….”

묵용성은 그윽한 눈빛으로 송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소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아침 소생이 양친께 혼사를 정해 달라 청하겠습니다. 하루빨리 소저와 부부가 될 수 있도록요.”

송교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공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령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들의 연극이 다 끝나 갈 무렵,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산통을 깼다.

“전하, 시간이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다른 이들이 알면 우리 아가씨의 평판이 나빠질 것입니다.”

묵용성은 은령이 조금 무서웠기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갈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나거든 또 오마.”

혼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니 그는 가슴이 발톱에 긁히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결국 사흘이 멀다 하고 달려와 송교를 만났다. 처음엔 규율에 맞게 점잖은 방식으로 찾아왔지만, 나중엔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견딜 수 없어 아예 담을 넘고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오히려 그게 더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 * *

사금언이 손을 뻗자, 여종이 그의 외투를 걸쳐 주었다. 고개를 숙여 허리춤을 바라본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은 양지옥패를 걸어야겠어.”

“예, 도련님.”

여종은 청옥을 양지백옥으로 바꿔 주며 물었다.

“도련님, 향낭은 난초향으로 하시겠어요?”

사금언이 잠시 고민하다 대꾸했다.

“황상께서 용연향을 주시지 않았어? 그걸로 하지.”

사앵앵이 그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말했다.

“황상께서 주신 용연향은 잘 가지고 있어야지, 감히 그걸 쓰겠다고? 머리는? 어디서 잃어버리기라도 했어? 얼른 다시 가서 주워 오너라.”

여종이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었다.

사금언이 성을 내며 말했다.

“쓰지도 못할 거면 황상께서 제게 왜 주신 건데요?”

“보라고 주신 거지, 보라고. 세상에 황상 말고 누가 용연향을 쓸 수 있단 말이냐, 목이 잘릴까 봐 두렵지도 않느냐?”

“황상은 제 매형이잖아요. 설마 향 때문에 제 목을 치시겠어요.”

“그거야 모르지. 네 머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차라리 치는 게 나을지도.”

사장풍이 모자의 대화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언아, 어머니 말씀이 옳다. 네 누이 덕분에 우린 황상의 인척이 되었지만, 신분만 믿고 분수를 잊어선 안 돼. 황상께서 우릴 더 중시하실수록 우린 더 예법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네 누이도 난처할 일이 없지.

영부와 가부를 좀 보려무나. 품계도 높고 태상황이 아끼는 노신이자 중신들인데, 지금껏 분수에 넘는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잖니. 영안과 난청도 너보다는 더 생각이 깊을 거다.”

사금언은 영안의 이름이 언급되자 짜증이 나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벌컥벌컥 물만 들이켰다.

사앵앵이 그를 꾸짖었다.

“정혼까지 한 녀석이 아직도 이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야. 그럴 거면 아예 가지 말거라. 괜히 채가 규수만 놀라게 하지 말고.”

“…….”

오늘은 채 대인의 저택에서 시가회가 열리는 날이다. 시가회는 각 집안의 공자와 규수가 함께 차를 마시며 시를 읊고 인맥을 쌓는 기회였다.

사금언은 무관이라 시사에는 영 흥미가 없었지만, 채부의 초대를 받아 이참에 채 소저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과연 초상화에서 봤던 것처럼 그렇게 예쁜 모습일까?

자신의 정혼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그도 최대한 치장했다. 어쨌든 채 소저는 도성에 소문난 미인인데, 그 또한 결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황제의 처남인 만큼, 그는 채부에서 매우 떠들썩한 대우를 받았다. 채 대인은 직접 문 앞까지 나와 그를 맞이했고, 저택을 구경시켜 주며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다들 그가 채부의 귀한 사위가 될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거기에 듣기 좋은 아첨까지 늘어놓았다.

이런 대우가 거의 처음이었던 사금언은 자신도 모르게 기세등등해졌다.

채 대인이 호수 가운데의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자, 내 아들놈과 딸아이가 저기 있소. 오늘 온 손님 중에는 호부상서 양 대인의 공자와 소저도 있고, 양 대학사의 천금, 충용후가의 공자, 진왕부의 군주들도…….”

호숫가에는 섬까지 이어진 기다란 둑을 쌓아 두었다. 채 대인은 길을 안내하며 오늘 온 손님들을 알려 주었다.

사금언은 지금껏 묵용청양 무리와 지내는 걸 좋아했기에, 그들을 벗어나 다른 집 자제들과 어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채 대인은 손님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고, 사금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정혼녀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엄청난 미인이었다. 다른 천금들과 한데 모여 있는데도 가장 출중할 만큼 눈에 띄는 외모였다. 그는 그녀가 꽤 만족스러웠다.

채 소저가 부끄러운 듯 부채로 얼굴의 반을 가리더니, 아름다운 두 눈만 살짝 내보인 채 예를 갖췄다.

“안녕하십니까, 사 공자.”

“안녕하십니까, 채 소저.”

사금언도 서둘러 허리를 숙이고 읍하며 인사를 건넸다.

채 대인은 슬쩍 두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서로 뜻이 맞는 듯한 모습에, 그는 마음을 놓고는 몇 마디 인사치레를 건넨 뒤 자리를 떴다.

사금언은 황제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혼사 전에 서로를 잘 알아 두고 감정을 쌓아야 훗날 후회가 없다는 말. 그가 막 자리에 앉아 채 소저와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등 뒤에서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언 형, 형도 왔군요.”

사금언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분이 언짢았다. 몸을 틀어 뒤를 바라보니, 역시나 가소타였다. 그가 싫은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여기가 네가 올 곳이야? 허구한 날 싸움만 할 줄 아는 네가 시를 읊을 수 있다고?”

가소타는 까닭 없이 사금언에게 꾸지람을 듣자 화가 났다. 더구나 사금언 옆에 있는 미인도 자신을 사금언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니 더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볼을 뾰로퉁하게 부풀리며 말했다.

“그러는 형은 시를 지을 수 있고요? 형도 그저 권법 조금 할 줄 아는 것뿐이잖아요. 영안 오라버니한테도 졌으면서.”

사금언은 치솟는 화에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소타를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난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서 온 거야. 너도 초청을 받은 건 아닐 테지?”

“안 받았어요.”

가소타가 손가락을 내밀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우리 오라버니를 따라온 거예요.”

사금언은 고개를 들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가난청이 공자들 무리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채 공자는 그에게 직접 차를 내주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가난청은 동월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재능이 뛰어나고 용모도 훌륭하니, 뭇 여인들의 마음을 쉽게 훔쳐 갈 뿐만 아니라 각 집안 공자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는 어딜 가든 늘 사람들에게 에워싸였고, 다들 그와 친분을 쌓는 걸 영광이라 생각했다. 어느 집이든 시가회를 열 때면 그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가 초청에 응해 찾아 준다면 그야말로 집안의 경사였다.

다만 가부의 소저를 만나 본 이들은 극히 적었다. 가난청이 저렇게 훌륭하니 그의 여동생도 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무척 실망이었다.

밀떡처럼 둥글넓적한 얼굴에 양쪽으로 묶어 올린 머리, 작은 체격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게다가 완곡한 표현은 할 줄도 모르고 목청껏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꼭 시정 백성 가문의 아이들처럼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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