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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80)화 (1,180/1,192)

제1180화

사봉봉이 자신의 아우를 모를 리 있겠는가? 묵용청양과 영안의 일에 자극을 받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누구와 혼인하겠니?”

“누구든 상관없어.”

사금언은 목소리를 높였다.

“예쁘면 다 상관없어.”

막 입구로 들어선 묵용린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대꾸했다.

“좋다. 짐이 약속하마. 꼭 예쁜 부인을 찾아 주마.”

사봉봉과 사금언은 서둘러 예를 표했다. 사봉봉 덕분에 묵용린이 사금언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점 따뜻해졌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같은 식구이니,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

사봉봉이 말했다.

“황상, 이 애는 아직 어려서 혼인을 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그렇게 이르지 않소. 일단 정혼부터 하고 정을 키워야…….”

여기까지 말하던 묵용린은 허설령과 정을 키웠던 일이 떠올라 멈칫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여인은 마음씨가 좋아야 하지. 오래 알아보고 혼인하는 것이 좋아, 음. 장가를 들고 나서야 현모양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건 피해야 하오.”

그는 사금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장담했다.

“안심하거라. 이 일은 짐이 마음에 두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짝을 찾아 주마.”

사금언은 갑작스러운 황제의 총애에 얼른 무릎을 꿇고 사은을 표하려 했지만, 묵용린은 얼른 손을 뻗어 제지하며 가볍게 꾸짖었다.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식구들끼리 너무 격식을 차리지 말자고. 앞으로 이런 허례허식은 모두 생략하거라.”

황제가 이곳에 온 건 이미 영안을 만났다는 뜻이리라. 지금쯤 영안과 묵용청양이 함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사금언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황제의 면전에서 실례가 될까 봐 얼른 입을 열었다.

“황상, 소신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그런데 묵용린이 말했다.

“서두르지 말거라. 곧 식사 시간이니 오늘은 봉명궁에서 함께 밥이나 얻어먹는 게 어떠하냐? 황후가 어떤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하는지 보자꾸나.”

사실 묵용린은 사봉봉과 단둘이 있고 싶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혹시라도 말을 잘못해서 사봉봉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이었다. 지금 그는 황후에게서 겨우 얻은 마음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금언이 있으면 일단 그런 곤란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금언은 처음으로 황제와 함께하는 식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사봉봉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평온한 안색을 하고 있어 기분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묵용린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반대로 희색이 만면했다. 그는 황제와 누이의 관계가 좀 이상하다는 걸 예리하게 눈치챘다.

* * *

가소타가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자, 녹하가 물었다.

“왜 그래? 누가 화나게 한 거야?”

“또 누가 있겠어요!”

화가 난 가소타가 말을 쏟아 냈다.

“사금언이 영안 오라버니가 부마로 뽑힌 것에 승복하지 않고 나한테 괜히 화풀이했어요.”

그러자 가동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감히 네게 화풀이했단 말이지? 아비가 혼쭐을 내 주마.”

녹하가 말렸다.

“거참, 누굴 혼쭐내겠단 거야? 금언이는 황상의 처남이라고.”

가동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예전엔 우리 가가와 영가가 황상과 가장 친했는데, 요즘 황상은 오히려 사가와 더 가까이 지내는 것 같군!”

“그건 봉봉이 황후가 되었고, 금언은 황후의 남동생이니까 그렇지. 당신이랑 사장풍이 형제처럼 친하긴 하지만 그자는 이제 국구야.”

“그 애가 천왕이나 노자라고 해도 그저 내 형제일 뿐이야.”

가동이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황상은 날 양부라고도 불렀는걸.”

녹하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직도 그 얘기야? 그런 말이 밖으로 나돌면 좋겠어?”

가동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녹하가 타일렀다.

“두 아이가 겨우 말다툼한 것 가지고 쓸데없이 힘 좀 빼지 마. 금언은 좋은 아이라고. 난 사위로 삼고 싶던데.”

“어림없는 소리!”

가동이 말했다.

“사금언은 영 눈에 안 차.”

“당신이야말로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 금언이야말로 우리 소타가 눈에 차지 않나 보던데.”

가소타는 어이없다는 듯 양친을 바라보았다.

“두 분은 제가 투명 인간이라고 생각하세요?”

* * *

묵용청양과 영안이 나란히 영부에 들어서자 기홍이 마중을 나왔다.

“전하, 오셨어요?”

묵용청양이 말했다.

“고고, 전하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이제 곧 한 가족이 될 거잖아요.”

“…….”

“두 사람의 혼사에 저와 영안 아버지는 이견이 없으니, 태상황과 태후의 뜻을 기다려 봐요. 다들 친분도 있고 또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으니, 중매쟁이의 말은 신경 쓰지 않더라도 부모의 명은 신경 써야죠.”

묵용청양이 웃으며 말했다.

“고고, 마음 놓으셔도 돼요. 제가 원하기만 하면 저의 부모님들은 좋아하실 거예요. 만약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제가 수염을 잡아당기면 돼요, 하하하.”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웃었지만, 기홍은 기겁했다. 감히 태상황의 수염을 잡아당기다니? 하늘 아래 장공주 전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고, 이렇게 손님 대하듯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얼른 가 보세요. 저하고 영안은 영안 방에서 놀게요.”

“…….”

듣자 하니, 저게 아가씨가 할 말이란 말인가? 괜한 오해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아예 집 안으로 숨어들 생각이라니.

“영안의 방은 지저분하고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했어요. 차라리 후원을 구경하는 건 어떠신지요? 국화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영안, 어서 청양을 데리고 국화꽃을 구경하러 가거라.”

영안은 묵용청양의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거침없음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평소에 장공주 전하가 오면 언제나 기뻐하던 어머니가 막상 정말 제집에 들여서 식구가 된다고 하니 걱정이 좀 많아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는 묵용청양에게 말했다.

“후원으로 국화꽃을 보러 가자.”

묵용청양은 기홍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래, 난 꽃구경하는 게 제일 좋아.”

영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봉봉이지, 넌 꽃을 짓밟는 것을 좋아했고.’

어린 시절, 묵용성은 사봉봉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이한 꽃을 몇 화분이나 구했다. 그런데 그 화분들은 선물하기도 전에 묵용청양의 독수에 당해 망가졌다. 화가 잔뜩 난 묵용성은 복수하겠다고 그녀를 찾아갔지만, 싸움에서 지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었다.

두 사람은 후원에 도착했다. 기홍은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라서 할 일이 없을 때면 후원에 사계절 꽃을 골고루 심었다. 어느 계절이 와도 후원에서는 쓸쓸함을 느낄 일이 없었다.

갖가지 국화꽃이 경쟁하듯 피어 있었고 향기가 가득해 나비 몇 마리가 날아와 꽃 위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묵용청양은 꽃을 대충 쓱 훑어보더니 대뜸 나비를 쫓아 달려갔다.

영안은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공주는 고사하고 아가씨답지도 않은데, 어쩌다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감정이 너무 순식간에 발전해 버려서 그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항상 기쁘고, 그녀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자꾸 생각날 뿐이었다. 아가씨답지 않으면 아가씨답지 않게 내버려 두지, 뭐. 아무튼 그는 그녀가 좋았다.

묵용청양은 한참 나비를 쫓다가 뛰어와서 말했다.

“영안, 우리 둘이 포고를 겨루자.”

“여기서?”

“응.”

묵용청양이 보송보송한 풀밭을 가리켰다.

“여기 좀 봐. 포고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야.”

영안은 말렸다.

“그냥 하지 말자. 너는 매번 나한테 졌잖아?”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내가 이기면 어쩔 건데?”

“이기면 네가 맘대로 해.”

“좋아!”

묵용청양이 준비 자세를 취했다.

“덤벼!”

영안이 물었다.

“만약 내가 또 이기면?”

“너도 날 마음대로 해.”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영안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그녀를 풀밭에 여러 번 넘어뜨렸고, 결국 깔아뭉갠 채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졌지?”

“아직 아니야!”

묵용청양은 여우처럼 깜찍하게 웃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난데없는 향기와 부드러움에 영안은 심장이 두근거려 순간 손에 힘이 풀렸고, 묵용청양은 단번에 몸을 뒤집어 영안을 깔아뭉갰다.

“하하, 내가 이겼다!”

“…….”

그녀가 이런 수법을 쓸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영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그가 이겼어도 입을 맞출 생각이었으니 이미 그는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면 또 어떤가.

묵용청양이 그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맞지?”

“응, 어떻게 할 건데?”

묵용청양은 고개를 들고 수줍게 속삭였다.

“입 맞추자.”

“…그래.”

* * *

묵용린은 정말 사금언의 혼사에 정성을 쏟았다. 이튿날 그는 몇 장의 초상화를 들고 사봉봉을 찾아갔다.

“적당한 사람이 있는지 한번 골라 보시오. 이 사람들은 가문도 괜찮고 용모도 나쁘지 않소.”

사봉봉이 말했다.

“금언이 한 말은 치기 어린 말에 불과합니다. 어찌 황상께서는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짐은 금구옥언이오. 당연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야지. 게다가 금언은 황후의 친동생이니, 짐의 동생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오? 짐은 그를 성아처럼 아껴 줄 것이오.”

사봉봉이 초상화를 살펴보니 과연 모두 다 미인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미인을 찾아오셨습니까?”

게다가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묵용린은 이것이 모두 진왕야의 공로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애당초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진왕은 도처에서 미인을 색출해 궁으로 들여보낼 계획을 세웠었다. 그는 진왕에게 부탁해서 그중에 권문세가의 천금을 몇 명 고르게 한 후, 사봉봉에게 가져다준 것이었다.

황제께서 사금언의 혼사에 이렇게 신경을 쓰시니, 사봉봉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었기에 탁자에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묵용린은 허리를 굽힌 채 옆에 서서 그녀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였다.

“이 여인은 양 대학사의 막내 손녀요. 문인 가문의 여식으로, 올해 막 시집갈 나이가 되었소. 벌써 성숙한 용모로, 듣자 하니 성격도 좋다고 하오. 이 여인은 호부상서 양 대인의 적장녀요. 용모가 도성에서 손꼽히는 절색이라고 하오. 또 이 여인은 도찰원 어사 채 대인의 천금으로, 단아하고 대범하며…….”

그는 말하면서, 시선은 오히려 사봉봉의 옆모습을 힐끔거렸다. 옥처럼 새하얀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면 귀 언저리에 미세한 솜털과 피부 아래에 옅은 남색의 혈관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녀 몸에서 나는 향기가 그의 코로 파고들어서 그의 심장을 괴롭혔다. 그의 눈길은 그녀의 작은 입술에 고정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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