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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78)화 (1,178/1,192)

제1178화

밀려오는 슬픔에 한동안 멍하니 있던 사봉봉은 정신을 차리고 사후 처리를 안배했다. 유 귀인과 깊이 사귀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좀 미련했던 탓에 다른 사람의 바둑알 노릇을 했고,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맞이했다.

사봉봉은 황각사 승려에게 죽은 유 귀인의 영혼을 초도超渡하기 위한 법사法事를 부탁했고, 내생에서는 총명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잇달아 두 명의 궁비가 죽었다. 대규모로 장사를 치른 건 아니었지만, 사봉봉은 한동안 바빴다.

묵용린도 허장우 사건에 연루된 관원이 적지 않아서 하나하나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했기에 매우 바빴다.

조정도 인심이 흉흉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연루될까 봐 다들 겁을 집어먹어서 작은 일에도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정하는 바람에, 가동은 너무 귀찮았던 나머지 가소타를 앞에 내세우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가소타는 다리가 거의 나았지만 아직은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았다. 그녀는 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현관에 서서, 물건을 싸 들고 가 대인을 찾아오는 사람만 보면 자초지종도 듣지 않고 무작정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내쫓았다.

며칠 동안 심력을 쏟아 기분이 좋지 않던 사봉봉은 이런 소식을 듣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소타는 정말 호랑이야. 그런 점은 청양 전하와 막상막하지. 온종일 함께 놀면서 컸으니 서로 닮을 수밖에.”

금천아가 웃으며 물었다.

“마마, 이 일을 누가 소인에게 알려 줬는지 아십니까?”

사봉봉은 대답했다.

“넌 이런 소식을 알아보는 게 빠르잖느냐. 네 귀에 전해지지 않는 소식이 어디 있다고.”

“마마, 이번에는 소인을 잘못 보셨습니다. 이건 소인이 알아본 일이 아니라, 사희 공공이 일부러 와서 알려 준 겁니다. 바로 궁전 앞에 있는 길에서 기다렸다가 소인이 지나가는 걸 보고 얼른 달려와서 알려 줬습니다.”

사봉봉은 그녀의 말속에 숨은 뜻이 있음을 알고도 굳이 묻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연, 금천아는 이어서 말했다.

“마마, 소인 생각에는 황상께서 일부러 사희 공공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 같습니다. 황상께서 그동안 마마께서 고생하신 걸 알고, 일부러 이런 소식을 전함으로써 피곤함을 덜어 드리려고 하신 듯싶습니다.”

사봉봉이 물었다.

“황상께 무슨 좋은 걸 받았기에 이렇게 열심히 황상을 위한 말을 전하는 건가?”

“소인 금천아, 살아서도 마마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마마의 귀신이 될 겁니다. 천왕이나 노자도 소인을 부릴 수 없습니다. 소인은 다만 황상께서 너무 바쁘셔서 땅에 발도 못 붙이는 가운데에서도 마마를 생각하시니, 마마께서 시간이 나시면 황상을 뵈러 가시는 게 어떠냐는 거죠.”

부부 두 사람이 각자 일 때문에 바빠서 며칠이나 얼굴도 보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묵용린이 오지 않으면 사봉봉이 주동적으로 찾아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볼 일이 없었다. 황금 절도 사건이 해결되자 환난을 함께 이겨 내던 동질감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고, 모든 것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떤 일들은 괜히 걱정을 사서 하는 꼴이었기 때문에, 사봉봉은 곰곰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화제를 돌렸다.

“장공주 전하께서는 궁중에 계시느냐?”

금천아가 대답하려는데 입구에서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들어오는 이를 확인한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장공주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묵용청양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아랫사람들을 내쫓았다.

“다 나가! 마마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금천아는 묵용청양과 잘 안다고 여겼기에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묵용청양은 그녀에게도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천아, 너도 나가.”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소인도 못 듣게 하시는 겁니까?”

금천아는 투덜거리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사봉봉도 호기심이 샘솟았다.

“아랫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예요?”

묵용청양은 애절한 한숨을 내쉬었다.

“봉봉, 이제야 내가 얌전한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봉봉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알았어요? 이렇게 크는 동안 얌전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그런 얌전한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무슨 뜻이죠?”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저잣거리에서 여인네들이 싸울 때 쓰는 거 말이에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상대방을 욕할 때 하잖아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면서. 그 얌전한 거요.”

“…….”

“누구한테 얌전하지 못한데요?”

“영안요. 자꾸 그와 입을 맞추고 싶어요.”

묵용청양은 고뇌에 빠진 듯했다.

“영안만 없었으면 난 정말 남첩을 키웠을지도 몰라요.”

사봉봉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전하, 순진하시군요. 영안을 좋아하니까 입을 맞추고 싶은 거예요. 남첩이 백 명쯤 있어도 전하께서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묵용청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거예요?”

“물론이죠.”

사봉봉은 대답하면서 문득 묵용린의 따뜻하고 단단한 품이 떠올라서 잠시 넋을 놓았다…….

묵용청양이 돌아간 뒤, 사봉봉은 장공주 전하의 성격상 뭔가 사고를 쳐서 황실 체면을 깎아 먹기 전에 그녀를 얼른 시집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궁리 끝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황제를 찾아가 이 일에 관해 의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그녀가 낮잠을 자면 정해진 시각에 금천아가 침상 앞으로 와서 깨웠다. 낮잠을 너무 많이 자면 밤에 잠이 안 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홀로 깨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설마 자신이 일찍 깼단 말인가?

방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두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누군가 장막을 걷었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든 사봉봉은 어안이 벙벙했다.

“황상, 어떻게 오셨습니까?”

묵용린은 사봉봉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비볐고 그를 보더니 어리둥절해했다. 매사에 침착하고 듬직한 황후 같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황후가 요 며칠 고생한다고 들었소. 수고가 많았을 것 같아서 짐이 황후를 보러 왔소.”

사봉봉이 말했다.

“황상께서는 신첩을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황상께서 매일 온갖 정사를 돌보느라 고생하시는 것에 비하면 신첩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묵용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렇게 짐이 고생하는 줄 알면, 황후도 짐을 보러 오면 좋지 않소?’

그들의 관계는 뭔가 이상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봉봉은 직접 나서서 그와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일단 바람이 잠잠해지고 상황이 해결되면 그녀는 봉명궁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그녀 혼자만의 삶을 즐겼다.

묵용린은 차라리 두 사람이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갔던 때가 그리웠다. 그는 아직도 청양이 사고를 당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그를 사봉봉이 품에 안고 살며시 등을 두드리며 달래 주었다. 그에게는 엄청난 위로였다. 왜 환난이 닥치면 함께하지만 영화를 누릴 때는 그를 만나 주지 않는 걸까?

사봉봉은 신발을 끌며 급하게 침상에서 내려섰다.

“황상, 마침 신첩이 상의할 일이 있사옵니다.”

“말씀하시오.”

“청양 전하와 영 부문주의 일을 황상께서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황후의 의견은 어떻소?”

“신첩은 청양 전하와 영 부문주가 서로 좋아한다면 일찍 혼인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 부문주에게 맡기면 청양 전하도 마음을 잡고 정착할 겁니다.”

묵용린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뭔가 어색했다. 장공주를 무슨 부잣집 공자가 부인을 맞이하면 마음을 정하고 딴짓을 안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의 누이는 아마 하늘 아래서 가장 장공주 같지 않은 장공주일 것이다. 그녀에게 고상함이나 우아함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저잣거리나 강호인에게서 보이는 습성은 없는 게 없었다. 어쩌면 혼인을 하면 그녀의 본성도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더는 강호를 뒤엎겠다고 떠들어 대지 않을지도 모른다.

“황후의 말이 지극히 옳소. 단지 청양의 혼사를 오라비인 내가 주관하는 건 합당하지 않소. 이렇게 합시다. 짐이 즉시 태상황께 서신을 보내겠소. 만일 태상황과 태후께서 승낙하신다면 짐이 그들의 혼사를 준비하겠소. 공주부는 태상황 때 지어진 곳이니, 깨끗이 청소하고 물건만 좀 더하면 될 것이오.”

사봉봉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황상, 태상황과 태후의 의견만 여쭤보면 됩니까? 영 대인과 기홍 고고의 의견은 여쭙지 않으십니까?”

묵용린은 어리둥절했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당연히 물어봐야지.”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일을 설마 영가에서 동의하지 않겠는가?’

이튿날 아침, 그는 특별히 영구를 남서방으로 불러서 이 일에 관해 말했다.

하지만 영구는 그의 말을 듣고도 태도를 밝히지 않았고, 돌아가서 먼저 영안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대답뿐이었다.

기분이 상한 묵용린은 하마터면 권세로 상대를 억누를 뻔했다. 하지만 영구는 어쨌든 태상황이 남긴 중신이라 체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안과 청양은 청매죽마로 함께 자랐으니 서로 감정은 좋을 것이네. 영 대인이 물어보면 곧 알게 될 일이지.”

영구도 영안과 청양이 사이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청양이 환경문에 들어간 후, 두 사람은 어린 시절처럼 거의 붙어 다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장공주 전하가 거의 사내아이처럼 느껴졌다. 매일 사내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도 영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갑자기 영안을 부마로 삼겠다고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와 기홍은 현숙한 며느리를 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청양이 며느리로 들어오면 왠지 아들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아들은 자신의 아들보다 백 배는 더 개구쟁이일 것이다.

이후로 아들 부부가 매우 소란스러운 삶을 이어 갈 거라는 생각에, 영 대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부로 돌아간 그는 기홍에게 미리 언급하지 않고 영안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가, 밥상에 함께 앉은 뒤 공개적으로 말을 꺼냈다.

영안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제가 황상께 아직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황상께서 먼저 말씀하셨네요.”

그가 이렇게 대답하자, 영구와 기홍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의 뇌리에 두 아이는 말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친한 벗 사이였다. 기분 나쁘면 싸우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함께 술도 마시는 사이로 남녀의 정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쩌다 갑자기 혼인을 언급하게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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