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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76)화 (1,176/1,192)

제1176화

말이 쉽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데 어찌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묵용청양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영안의 품으로 몸을 움츠렸다.

귓가에는 바람 소리만 휙휙 스쳐 지나갔고, 이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떨어지는 속도가 좀 느려졌다. 곧이어 온몸이 퉁 하고 튕기더니 완전히 멈추자,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머리 위로 검푸른 하늘이 보였고, 달은 휘영청 밝았으며 온통 은빛으로 반짝였다.

“영안.”

그녀의 가벼운 부름에 그가 신음을 내뱉자, 그녀는 황급히 물었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괜찮아.”

영안이 말했다.

“그저 내 몸을 누르고 있는 네가 좀 무거울 뿐이야.”

묵용청양이 몸을 비키려고 움직이자마자, 두 사람을 받치고 있던 가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깜짝 놀란 영안은 다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움직이지 마! 그냥 그대로 있어.”

묵용청양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너를 누르고 있잖아.”

“농담한 거야. 네가 무거워 봤자 얼마나 무겁다고. 게다가 장공주 전하에게 눌렸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야?”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농담을 해?”

묵용청양은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깜짝 놀라 혼비백산했다. 아래가 어두컴컴한 게,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떨어진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죽을 것이다.

“내려다보지 마.”

영안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어지러울 거야.”

“어.”

묵용청양은 고개를 쳐들고 허공을 바라보다가, 차라리 영안을 바라봤다.

“이제 어쩌지?”

“신호탄을 쐈으니,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올 거야.”

“사람을 데리고 왔어?”

“데리고 왔지. 다들 산기슭에 있어.”

“산이 이렇게 넓은데, 그들이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어.”

“이 나뭇가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설마 그들이 우리를 찾기도 전에 부러지진 않겠지?”

영안이 눈을 흘겼다.

“불길한 말은 좀 안 하면 안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뚝 하는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영안은 목을 쭉 빼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애당초 나뭇가지 하나로 두 사람의 몸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나뭇가지는 중간에 갈라져 있었는데, 아직 완전히 부러지진 않은 상태였다.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것 봐 봐. 꼭 불길한 것만 들어맞잖아. 이 방정맞은 주둥이 같으니!”

묵용청양은 정말 그럴까 봐 겁이 나서 감히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녀가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영안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녀를 놀렸다.

“난 네가 안월에게 당부한 뒤에 곧바로 갈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공격했어?”

“그건 눈속임이었지. 네가 그녀와 가는 게 달갑지 않다고 했잖아. 난 네가 가지 않아도 될 방법을 생각한 거야.”

여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만약 안월이 독약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달갑게 그녀를 따라갔을 거야?”

영안이 반문했다.

“내가 왜 안월을 따라가야 하는데?”

“안월을 좋아하잖아…….”

“누가 그래, 내가 안월을 좋아한다고?”

“너 안월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판등이랑 애들이 다들 그러던데…….”

영안은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다니……. 네가 언제 나한테 물어보기라도 했어?”

“그런 걸 어떻게 물어봐!”

묵용청양은 입을 삐죽거렸다.

“게다가 안월을 좋아한 게 아니라면 왜 청이각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내가 거기 간 건 차를 마시며 고금을 즐기기 위해서였어. 나와 안월은 그냥 평범한 벗이었고.”

“안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

묵용청양은 질투심이 잔뜩 섞인 말투로 말했다.

“너를 데려가려고 엄청 애쓰던데 뭘.”

영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왜 꼭 날 원망하는 것처럼 들리지?”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난 위풍당당한 동월의 장공주고 넌 기껏해야 환경문 부문주인데, 감히 너랑 나를 맞바꾸다니! 이건 대량목을 서까래로 쓰는 격이잖아!”

그녀가 노발대발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나뭇가지에서 또 뚝 하는 소리가 났다. 영안이 보니 나무껍질만 조금 붙어 있을 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정말 부러질 것 같았다.

묵용청양은 비록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게 곧 부러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영안의 옷깃을 꼭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구조될 때까지 버티지 못할 거야.”

영안은 말없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묵용청양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됐어. 팔자가 이런 걸 어떻게 해.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네가 곁에 있으니 좋네. 영안, 우리 곧 죽을 텐데 죽기 전에 아쉬움은 없어?”

영안은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있어.”

“뭔데?”

“이렇게 크는 동안 아직도 아가씨와 입맞춤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어.”

“…….”

영안이 죽기 전에 미련을 가질 만한 게 설마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멍하니 되물었다.

“그게 죽기 전에 아쉬운 점이야?”

영안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게 아쉽네.”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둘 다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잠시 후, 묵용청양이 말했다.

“그건 아쉽긴 하네. 저기… 우리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큰 사이니까, 난 네가 아쉬움을 가진 채 세상을 뜨게 두고 싶지 않아. 차라리… 나한테 입맞춤해 봐.”

그녀는 아주 담담한 척 말했다.

영안은 입가가 살짝 올라갔지만, 헛기침을 하더니 태연한 척 물었다.

“그럼, 한번 해 봐?”

“응, 해 봐.”

묵용청양은 제 얼굴이 이미 빨갛게 달아올랐다는 걸 알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모두 가려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안이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는데, 달빛 아래로 묵용청양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누, 눈 좀 감아 봐.”

“아.”

묵용청양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얼른 눈을 감았다. 모든 신경이 입술에 쏠리니 그녀의 심장은 더 미친 듯이 뛰었다.

그다음 순간, 그녀의 입술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린 것만 같았다.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가슴속에 뭔가 있는데 그게 넘칠 정도로 가득 차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처음 느낀 영안의 입술은 따뜻했지만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그녀까지 불타오르게 했다.

그녀는 호흡이 가빠졌고, 그의 입술을 서툴게 따라가기 바빴다…….

그 순간, 갑자기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자 그녀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다가 입이 막혀 버렸다.

우수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치던 그들은 또다시 다른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 버렸다. 두 사람의 몸은 여전히 밀착된 상태였고, 이번엔 얼굴까지 같이 붙어 있었다.

묵용청양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더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들을 받치고 있는 나뭇가지는 단단하고 굵은 게, 금방 부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영안을 바라보았고, 영안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글거렸고 목소리도 약간 쉰 듯했다.

“청양. 나, 아직 제대로 못 했는데.”

“그, 그래?”

그녀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다시 해 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영안은 지그시 그녀를 눌렀다. 그의 입술은 아주 뜨거웠고,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심장 깊은 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오는 걸 똑똑히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입맞춤하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그건 환희였고, 기쁨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묵용청양은 누군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영 대인, 장공주 전하! 영 대인!”

그녀가 들었으니, 영안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여전히 입맞춤에 집중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밀쳤다.

“누군가 우리를 찾고 있어.”

그녀가 말하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저기 큰 나무가 있어. 저 나무 위에 떨어지신 것 아니야?”

“누군가 위에 있는 것 같군. 영 대인, 장공주 전하!”

영안은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더 입을 맞추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는 불규칙하게 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여기! 여기 있네!”

* * *

비록 그날 밤은 정말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도 큰 위험 없이 지나갔다. 영안과 묵용청양은 산 밑에 있던 영가군에게 구조되어 궁으로 후송되었다.

영안이 물었다.

“산 위에 있던 놈들은 다 붙잡은 것인가?”

“아닙니다.”

영십구가 대답했다.

“몇 명은 절벽 아래로 투신해서 생사를 알 수 없고, 나머지는 다 잡았습니다.”

묵용청양이 끼어들었다.

“안월은? 안월은 잡았나?”

영십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잡았습니다.”

묵용청양은 한숨을 내쉬며 근심 어린 눈으로 영안을 바라봤다.

“네 해독약이 없어졌어.”

영안은 웃으며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

“급할 것 없어. 이제 막 보름이 지났잖아. 초하루까지는 아직 멀었으니 괜찮아.”

성내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들은 안월이 정말로 사람을 보내서 황금을 빼앗으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시내 두 곳에 불을 질러서 혼란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난청이 선견지명을 발휘해 단단히 준비한 덕분에, 비화루 사람들이 황금을 빼앗아 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묵용청양은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안월은 정말 영안을 유인한 거였구나. 그럼 영안을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었을까?’

묵용청양을 구출했다는 소식은 궁에도 이미 전해졌다. 묵용린과 사봉봉, 그리고 묵용성까지 모두 궁 전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그때, 묵용청양이 영안을 끌고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아랫사람들에게 명했다.

“빨리! 어서 태의를 불러오너라. 노 의정을 데려와, 빨리!”

마중 나와 있던 묵용린은 깜짝 놀라서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어딜 다쳤느냐?”

묵용청양은 영안을 가리켰다.

“제가 아니라 영안이요.”

다들 고개를 돌려 영안을 보았지만 팔뚝에 핏자국만 조금 있을 뿐, 멀쩡해 보였다. 그리 위중해 보이지 않는데 왜 저렇게 태의를 불러오라고 난리를 치는 거지?

모두의 궁금증을 간파한 묵용청양은 매우 애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안이 중독되었어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영안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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