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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74)화 (1,174/1,192)

제1174화

수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황금은 어떻게 합니까?”

안월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

“그 많은 황금을 우리에게 준다고 우리가 다 가져갈 수는 있겠느냐? 영안이라는 인질이 있다면 나중에 다시 황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누주, 장공주를 인질로 잡는 것이 영안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영안은 무공이 상당해서 우리가 잡아 두기 어렵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리 떠드는 것이냐?”

안월이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당초 청이각에서 볼 수 있었던 그녀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만 지껄이고 어서 가!”

* * *

영안과 묵용청양을 맞바꾸겠다는 비화루의 요구에, 묵용린과 사봉봉뿐만 아니라 영구와 가동도 모두 의아하게 여겼다. 그들은 비화루가 분명 묵용청양을 인질로 삼아 황금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들이 원한 건 뜻밖에도 영안이었다.

그 소식에 영안은 깜짝 놀랐지만, 저들의 요구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기에 그는 바로 준비하고 산으로 올라갈 약속 시각만 기다렸다.

비화루가 보내온 서신에는 영안 혼자만 올라오라고 적혀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면 즉시 묵용청양을 죽이겠다고도 했다.

비록 영안의 무공이 뛰어나다지만, 그 혼자 가야 하기에 다들 걱정이 많았다.

특히나 기홍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도 쉴 새 없이 주방에서 영안이 가는 동안 먹을 다과를 만들었다.

묵용린이 가난청에게 물었다.

“비화루가 왜 영안과 청양을 맞바꾸자고 하는 것 같으냐? 이건 오히려 그자들에게 불리한 거래가 아닌가?”

가난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신도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합당한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하나 소신이 알기로 영안과 청이각에 있는 한 기녀가 벗이라는데, 혹시 그 아가씨가 영 부문주와 옛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것 아닐런지요?”

물론 농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요구이기에 다들 영안이 가는 것에 걱정이 가득했다. 혹시 이게 비화루의 함정은 아닐까?

하지만 영안은 오히려 자신의 안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은 채, 혹시라도 묵용청양을 구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할 뿐이었다.

영안이 가려는 곳은 사장풍과 가동, 그리고 영구도 알고 있는 곳으로, 과거 백천범이 우가 형제들에게 끌려간 우두산이었다.

그 당시 백천범은 산에서 우가의 은혜를 입었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중에 묵용감에게 간청하여 그들에게 논밭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우가 일가족은 우두산에서 내려왔기에 산 위의 집은 황폐해진 지 오래였다. 그곳이 지금은 비화루의 근거지가 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장풍 또한 그때 우두산에 가 본 적이 있었기에, 그 산이 도적들의 소굴로 안성맞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기만 하면 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멀리서도 그걸 볼 수 있었다. 몰래 뒤따라가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지형이었기에 영안은 오롯이 자신의 능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묵용린은 영안에게 직접 술을 권하며 진지하게 당부했다.

“짐은 자네가 무사히 청양을 데리고 돌아오기를 바라네.”

영안은 술잔을 받았다.

“예, 황상. 소신이 반드시 황상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장공주 전하를 무사히 돌려보내겠습니다.”

묵용린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청양뿐만 아니라 자네도 마찬가지네. 누구 하나라도 빠지는 건 짐이 원하는 바가 아니네. 자네와 청양, 모두 무사히 돌아와야 하네.”

‘예’ 하고 대답하며 술을 단번에 들이킨 영안은 잔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 * *

묵용청양은 안월이 자신을 점혈하고 홰나무 아래에 서 있게 하는 이유가 어젯밤엔 안월의 수면을 방해하고, 낮에는 산에서 난리를 피워서 벌세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안월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올라오는 산길을 계속 바라보자, 묵용청양은 저들이 거래할 시간이 되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안월은 그녀를 무엇과 맞바꿀까?

* * *

산 중턱에 걸린 석양은 산 하나를 붉게 물들였다.

영안은 그 석양을 향해 걸어가다가 차츰 옅은 붉은 노을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속은 매우 아늑했다. 그는 아주 가볍게 걷다가 이따금 마른 나뭇가지를 밟았다. 우지끈하는 소리에, 나무 위에서 곤히 자던 새는 놀라서 날아가 버렸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아도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만 보일 뿐, 새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안월은 홍색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 큰 바위 옆에 서 있었다.

수하 한 명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안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시선을 똑바로 들고 산 아래를 주시했다. 검은 피풍이 바람에 흩날려 이따금 허리춤에 삐죽 튀어나온 장검이 모습을 드러내니, 자태가 제법 늠름했다.

묵용청양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청이각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예를 팔았으니 안월의 얼굴을 안 본 사람이 없는데 이제 와서 얼굴을 가리다니.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묵용청양은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고 싶었지만, 온몸이 뻣뻣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이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일단 나부터 먼저 풀어 주면 안 되나요?”

안월은 아주 빠르게 고개를 돌려 묵용청양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엔 한기가 가득 차 있었다.

묵용청양은 그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월이 기다리던 사람이 곧 도착할 거라는 걸 직감했기에 그녀도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붉은 해가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 사람은 천천히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듯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과 볼록한 이마, 한 쌍의 칼날 같은 눈썹. 차가운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얇은 입술 그리고 의연한 턱선. 그의 얼굴 전체가 눈에 들어왔을 때, 묵용청양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월이 그녀와 맞바꾸고 싶은 게 영안이었구나. 그녀로서는 뜻밖이었지만 그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안이 걸어오더니, 얼른 묵용청양을 힐끗 훑어봤다. 자신은 괜찮다는 표시로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녀가 입가를 끌어 올리기도 전에 영안은 이미 안월에게 걸어갔다.

묵용청양은 약간 무안했지만, 그가 움직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는 돌릴 수 없었기에 시선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눈꼬리 쪽으로 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묵용청양은 조금 아쉬웠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연인 한 쌍의 오열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해 보자면, 안월은 아마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말할 것이다.

‘영 공자, 날 탓하지 말아요.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영안은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것이다.

‘안월, 왜 그랬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내게 다 말했어야지.’

‘당신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었어요.’

‘그게 무슨 어리석은 말이야! 내가 어떻게든 도와줬어야 했는데…….’

이내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손을 꼭 맞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것이다.

‘안월!’

‘영안!’

이쪽에서는 묵용청양이 한참 동안 억측을 이어 갔지만, 저쪽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녀가 눈동자를 아무리 돌려 봐도 영안의 몸 반쪽 정도만 보일 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월은 오히려 얼굴이 반쯤 보였는데, 홍색 면사에 가려진 상태였다.

묵용청양은 속으로 영안에게 투덜거렸다.

‘멍청한 놈!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서야 한다는 것도 모르다니! 그래야 무슨 상황이 생기더라도 내가 눈치를 줄 수 있잖아!’

영안과 안월은 한참 동안이나 서로 시선을 마주쳤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안월, 너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안월은 가볍게 웃으며 면사를 벗었다.

“영 공자, 또 만났네요.”

면사를 벗기 전, 영안의 눈에 비친 안월은 여전히 옛날의 온유하고 수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면사가 벗겨지는 그 찰나, 영안은 문득 앞에 서 있는 여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정말 자신의 본모습을 잘 숨겼다.

“네가 바로 비화루의 주인인가?”

“어떻게 알았죠?”

“직감으로.”

안월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묵인한다는 뜻이었다.

영안에겐 그녀와 나눌 옛정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내가 왔으니 장공주 전하를 돌려보내라.”

안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신용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은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군요. 어쨌든 영 부문주는 무공이 세고 담력과 식견 또한 대단한 사람이니까요. 홀로 적진까지 걸어 들어왔으니 만반의 준비를 했겠죠? 만약 제가 장공주를 풀어 줬는데 당신이 저를 흔적도 없이 제거하면 어떻게 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안월이 소매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새까만 환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나무 상자를 영안 앞에 내밀었다.

“이걸 먹으면 당신을 믿겠어요.”

묵용청양이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소리쳤다.

“영안, 먹지 마! 아무것도 먹지 마…….”

묵용청양의 외침을 들으며 영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환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입 안에 넣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 단번에 삼켰다.

안월은 살짝 의외라는 듯 물었다.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고 먹네요? 혹시 독약이면 어쩌려고 그래요?”

영안은 냉소를 지었다.

“갖은 애를 써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게 설마 이렇게 독살하기 위해서라고?”

안월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다소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요.”

“허튼소리 그만해!”

영안이 말했다.

“약은 삼켰으니 빨리 장공주 전하를 풀어 줘.”

“아주 시원시원하네요.”

안월은 영안의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멈춰 서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공자가 먹은 건 독약이 맞아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묵용청양은 화가 치솟아서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영안! 이 멍청한 놈아! 내가 먹지 말라고 했잖아! 독약을 먹고 죽으면 어떻게 해! 네가 얼마나 무거운데, 내가 어떻게 널 업고 돌아가? 넌 정말 닭대가리야. 이 닭대가리야!”

영안에게 욕을 퍼붓고 난 그녀는 이번엔 안월을 욕하기 시작했다.

“안월! 당신 미쳤어? 영안에게 왜 독약을 먹여? 영안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영안이 죽으면 슬프고 힘들지도 않냐고! 당신이 어디 가서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겠어……. 역시 하늘 아래 제일 독한 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 안월, 만약 영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반드시 당신을 잘게 다져 물고기 밥으로 만들 거야……!”

“아우, 시끄러워!”

안월은 묵용청양을 지키던 형제에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녀의 입을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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