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1화
영안이 가부에 도착했을 때, 가소타는 상처가 더디게 낫는 것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때리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왜 아직도 걷지 못하는 거야! 정말 짜증 나! 내가 얼른 가서 청양 언니를 구해야 한단 말이야!”
가동이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방금 상처 부위에 약을 갈았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거라.”
녹하는 딸을 힐끗 흘겨보았다.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애초에 전하께서 아이를 안고 도망가고 너는 뒤를 맡았어야 했다. 네가 잡혀가는 것이 청양 전하께서 잡혀가시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가동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나빴다.
“소타는 당신이 낳은 친딸인데, 소타가 잡혀가는 게 걱정도 안 된단 말이야?”
녹하가 말했다.
“황상께서 얼마나 걱정하고 슬퍼하실지 짐작이나 해 봤어? 태후와 태상황께서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우리는 신하 된 자로서 당연히 몸을 던져 주군을 지켜야 해.”
가동은 반박했다.
“내 목숨은 바칠 수 있지만, 내 딸을 잃을 수는 없어.”
가소타는 울상을 지었다.
“평소에 청양 언니의 호위가 되겠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는데, 왜 저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걸 잊어버렸을까요…….”
가난청은 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는 장씨 가문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청양 공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난 황상께 청을 올렸을 거야, 너에게 상을 내려 달라고.”
영안은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가소타는 그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영안 오라버니, 제가 청양 언니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어요…….”
영안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 소타는 그 아이를 보호하느라 대신 다치기까지 했잖아. 아주 용감하구나. 청양이 안다면 크게 칭찬할 거야.”
그는 가동과 가난청에게 자신이 온 이유를 설명했고, 가난청이 대꾸했다.
“지금은 장명기에게서 돌파구를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당분간 전하의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굴어서 오히려 일을 망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영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
그는 장명기를 데리고 건넛방에 가서 그의 아들을 만났다. 그 아이는 막 다과를 즐기는 중이었다. 색깔이 알록달록한 다과가 여러 접시나 있었다. 아이의 입가에는 온통 다과 부스러기 투성이였다.
장명기는 아들이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를 알아본 아이는 들고 있던 다과를 내팽개치고 칭얼거리며 얼른 달려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장명기는 허리를 살짝 굽히고 양팔을 벌렸다.
옆에 있던 영가군이 아이를 막으려다가 영안의 눈빛에 제지당했다.
영안이 이렇게 편의를 봐 주자 장명기도 눈치 있게 행동했다. 그는 아들을 안고 몇 마디 다정한 말을 하더니, 아들에게 입맞춤을 몇 번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다시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는 아이에게 계속 다과를 먹고 있으라고 말한 후, 영안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난청은 그들이 나오자, 조용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장명기가 물었다.
“무엇이 궁금하시오? 물어보시오.”
영안이 바로 물었다.
“비화루는 왜 장공주 전하를 잡아간 거지?”
장명기도 좀 곤혹스러워했다.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이오. 아마 장공주 전하가 우연히 그들의 손에 들어와 잡아간 것 같소.”
“저들이 장공주 전하의 신분을 알고 있나?”
“알고 있소.”
장명기가 말을 이었다.
“영 부문주뿐만 아니라 공주 전하의 신분까지, 그들은 전부 다 알고 있소.”
영안이 가만히 생각해 봐도 그게 당연했다. 그들에겐 허장우가 있으니 청양과 그의 신분을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비화루가 청이각을 제외하고 임안에 다른 은신처를 가지고 있는가?”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소. 가문이 몰살된 후, 우리 세 식구는 줄곧 청이각에 숨어 있었소.”
“당신들이 바꿔치기한 사가 상호의 황금은 어디에 있나?”
“비화루가 가지고 있소. 그들이 어디에 숨겼는지는 나도 모르오.”
“비화루와 허장우는 도대체 무슨 사이지?”
“비화루는 암암리에 허장우의 일을 처리하고, 허장우는 그들에게 돈을 주고 있었소.”
“저들이 장공주를 이용해 허장우를 구하려 할 것 같은가?”
장명기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비화루는 돈만을 위해 일하오. 이번 일만 해도 성공하면 황금 삼분의 이를 비화루에게 주겠다고 허장우가 약속했소.”
“그럼 나머지 삼분의 일은 그가 갖나?”
“그건 아니오.”
장명기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더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갖기로 했소.”
영안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허장우가 탐욕은 부리지 않았다?”
영안이 장명기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까짓 황금 때문에 집안 식구를 십여 명이나 죽인 것인가?”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소.”
이 일을 언급하니 장명기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허장우가 비화루에게 시켜서 벌인 일이오. 그것 때문에 난 그와 한바탕 말싸움을 했소. 하지만 그는 우리 세 식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
“장명기, 당신은 녹봉이 적지도 않고 가문에도 가업이 있는데 어째서 허장우 같은 이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그런 못된 짓에 빠진 것인가?”
장명기는 한동안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더는 황금을 호송하고 싶지 않았소. 매년 대부분의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야 하니까. 나도 처자식과 함께 단란한 날을 보내고 싶었소.”
“고작 그것 때문에?”
영안은 두 눈을 부라렸다.
“당신의 단란한 생활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단 말인가? 그 호위들은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해야 하는 당신의 형제이거늘, 어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명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안은 가난청을 힐끔 쳐다봤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영안이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안은 영가군 두 명에게 장명기를 감시하라고 명하고 가난청과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했다.
“난청, 좀 알아낸 거라도 있나?”
가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화루는 청양 전하와 허장우를 맞바꾸지 않을 겁니다. 일이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허장우는 제 몸도 보전하기 어려울 겁니다. 저들 입장에서 허장우는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해. 그 황금은 분명 아직 임안성에 있어.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져서 미처 가지고 나갈 수 없었던 거지. 아마 청양을 잡아간 이유는 그 황금과 맞바꾸기 위함일 거야.”
가난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황금은 저들이 분명 비교적 안전한 곳에 숨겨 뒀을 겁니다. 급히 가져갈 이유가 없으니 청양 전하를 황금과 바꾸지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황금은 어디에 두어도 눈에 띄기에 저들이 행적을 은폐하는 데 오히려 불리하죠. 저들이 청양 전하를 데려간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청양을 인질로 조정을 협박해 임안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허락받겠다?”
가난청은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안성이 이렇게 크고 인구도 많으니 그들을 색출하기란 바다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저들은 강호인이라서 지붕 위를 날고 담을 넘으며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등, 누구 하나 무공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저들 전체가 뿔뿔이 흩어진 뒤 백성들 사이에 뒤섞인 채 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영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조정에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서 한 짓이 아니란 말인가?”
가난청은 먼 곳에 있는 큰 나무를 바라봤다.
“강호인은 원래부터 조정을 멀리해 왔습니다. 비록 저들이 어둠 속에 있고 조정은 빛 속에 있다지만, 막상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저들의 인원수는 조정의 군사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어떤 강호 집단도 일부러 조정을 건드리진 않습니다.”
영안은 조금 초조해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저들은 도대체 청양을 왜 잡아간 거란 말이냐?”
가난청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치대로 따진다면 어제저녁에 그들은 청양 전하를 죽였어야 하는데, 그들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사람을 데리고 도망갔죠. 이건 오히려 도주를 거추장스럽게 하는 짓이 아닙니까?”
여기까지 말한 그는 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게다가 청양 전하의 성격대로라면, 분명 도망가는 도중에 저들을 굉장히 괴롭히셨을 겁니다.”
영안은 묵용청양의 성격을 떠올리곤 미간을 조금 폈지만,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청양의 성격은……. 평소에는 다들 그녀를 봐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나쁜 놈을 만나면 오히려 화를 자초할 거야.”
재촉할 것 없었다. 심문도 일찍 마쳤으니, 이제 청양을 구출하러 갈 것이다.
* * *
어둠 속으로 잠기기 직전, 묵용청양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새하얀 손수건을 들어 올리며 호들갑 떨었다.
“청양 소저…….”
아마 그 얼굴이 그녀에게 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정신을 잃었을 때, 그 사람은 그녀의 꿈에 나타났다. 그녀는 혼자 온 게 아니라 영안을 데리고 왔다.
꿈에서 묵용청양은 자신의 검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그 사람에게 말했다.
“안월, 우리 겨뤄요. 이긴 사람이 영안을 차지하는 거예요.”
안월은 웃으며 손수건을 들어 올리고 대꾸했다.
“좋아요.”
상품이 된 영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무 아래에 서서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바라봤다. 마치 그녀들의 대결 결과를 기다리는 듯했다.
청양은 검을 들어 올리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안월은 검을 뽑지 않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고금을 나무 밑에 놓더니 튕기기 시작했다. 그 음색이 무척 맑고 청아해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도 날아가지 않고 호응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영안의 얼굴에도 조금씩 표정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퍽 부드러운 눈빛으로 안월을 내려다보았다.
묵용청양은 금방이라도 영안이 고금 연주에 맞춰 노래를 읊조릴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공평함에 화가 나 발을 쿵쿵 굴렀다.
“난 검으로 겨루자는 뜻이었어요. 한데 왜 고금을 튕기는 거죠? 난 고금을 연주할 줄 몰라요. 또 고금을 튕기면 내가 두 동강 내 버릴 거예요.”
그녀는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말하더니 정말 안월에게 달려들어 검으로 고금을 내리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금의 줄이 현철사玄鐵絲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더욱더 화가 난 그녀는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두 손으로 검을 꽉 쥐고 힘껏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고금 연주 소리가 여전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그렇게 검으로 고금을 내리치다가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