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8화
묵용청양의 기도가 통했는지, 가소타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직 대로까지 도망친 건 아니었지만, 구문제독 공춘홍이 금군을 데리고 순찰 중이었다. 그녀는 공춘홍을 알고 있었기에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공 대인, 제독 대인, 살려 주세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시끌벅적한 잡음을 뚫고 공춘홍의 귓가에 전해졌다.
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 대인의 천금, 가소타를 본 그는 곧장 손을 내저어 금군들을 보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괴한들은 암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가소타는 의젓하게 아이를 안고 그대로 몸을 굴려 암기를 피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날아온 암기가 그녀의 다리에 박혔다. 그녀가 주저앉자, 아이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괴한들은 검을 들어 공격을 이어 가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공춘홍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장검을 겨누었고, 금군들이 곧장 그들의 주변을 에워싸고 공격했다.
공춘홍이 서둘러 가소타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가 소저, 괜찮소?”
암기에는 독이 묻어 있었기에 가소타는 서둘러 아이를 가리키며 말을 내뱉었다.
“장씨 가문의 아이예요.”
말을 마친 가소타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공춘홍은 가소타가 무슨 독에 중독된 건지 알지 못했기에 우선은 급한 대로 품에 지니고 있던 해독환을 먹였다. 그 뒤 사병에게 아이를 안으라고 지시하고는 가소타를 등에 업고 말을 몰아 곧장 가부로 달려갔다.
* * *
가동이 이제야 궁에서 돌아온 탓에, 녹하는 그에게 원망을 늘어놓고 있었다.
“자기만 돌아올 줄 알지, 자기만. 소타는? 술에 취해 딸아이를 데려오는 것도 잊은 거야?”
가동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소타는 청양이랑 어디 갔더라고. 오늘은 명절이니까 마음껏 놀게 내버려 두자.”
“거기서 더 놀면 고삐가 다 풀릴 때까지 놀게?”
녹하는 기분이 언짢았다.
“난청이도 왔는데 소타, 얘는 왜 안 보이는 거야. 돌아오면 호되게 혼내 줘야겠어.”
그때, 밖에서 하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부인, 나리! 큰일 났습니다, 아가씨께서… 아가씨께서 다치셨습니다!”
가동은 별안간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뭐? 아… 아니 된다!”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온 그는 하마터면 공춘홍과 부딪힐 뻔했다. 그러나 손발을 축 늘어뜨린 가소타의 모습에 순간 멍해진 그는 곧 목이 터져라 울부짖으며 아이를 받아 들었다.
“소타야, 소타야! 우리 딸……! 녹하야, 부인, 얼른 와 봐……!”
그는 소리를 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품에 안은 딸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녹하 또한 소타의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눈시울을 붉혔지만,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그녀가 가동의 어깨를 내리치며 말했다.
“멍하니 뭐 하는 거야, 어서 침상에 내려 놔!”
가난청은 시끄러운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왔고, 가동을 도와 가소타를 침상에 눕혔다.
공춘홍은 이런 때에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해 봤자 가동에겐 전혀 들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난청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물었다.
“가 대인, 대인은 어찌해야 한다고 보시오?”
가난청은 몸을 숙여 가소타를 바라보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소타가 무슨 독에 중독된 거죠?”
가동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딸아이의 혈맥을 누르고 있었다. 독이 더 퍼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 상태를 보니 잠깐은 견딜 수 있을 것 같구나.”
가난청이 말했다.
“아버지, 어서 궁에 다녀오십시오. 황상께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영약이 있으니 빌려 오세요.
공 대인, 대인은 금군을 파견해서 저희 저택 주변을 에워싸라고 명해 주십시오. 그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영 대인께도 사람을 보내 모셔 와 주십시오. 영 대인께 이곳으로 오실 때 영가군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이들을 몇 명 데려오라고 하셔야 합니다. 저 아이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야 해요. 자칫 잘못하다 이동하는 순간 납치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소타를 다치게 한 괴한들을 반드시 잡아오도록 하십시오.”
공춘홍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역시 가 공자는 황상의 신임을 받을 만한 자였다. 이렇게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나다니. 그는 맡은 임무가 있었기에 서둘러 읍한 뒤 자리를 떠났다.
가동은 약을 구하기 위해 눈시울을 붉히며 궁으로 향했고, 녹하는 침상 앞을 지키며 이따금 가소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가난청은 장씨 가문의 아이를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동은 해독약을 구해 왔다. 그는 따뜻한 물에 약을 갠 뒤 가소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영구는 영가군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이들과 함께 가부를 찾았다. 그는 아이를 옆방에 옮기고 곁에서 지켜 주었다.
딸아이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있으니 가동은 심장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온통 눈물범벅이 된 그는 딸아이의 손을 잡은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어서 약효가 나타나 아이가 깨어나기만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녹하는 그런 가동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가 가동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했으니 가서 따뜻한 차라도 마셔. 이제 막 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금방 깨어나겠어, 응?”
가동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암기에 찔린 가소타의 다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이미 암기를 뽑아내어 독이 닿은 피를 빼낸 뒤, 검은색 약 가루를 뿌려 놓은 상태였다. 처참한 그 모습에 가동의 가슴은 또다시 찢어졌다.
그는 눈물을 닦았다.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분노가 치밀었다.
“내 소타를 이렇게 만든 자들이 잡히거든, 기필코 그들의 가죽을 벗겨 버릴 것이다!”
옆방에서 영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가난청은 침상 옆에 앉아 여동생의 이마와 손을 쓰다듬었다. 그 역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어릴 때부터 그가 얼마나 아끼던 누이인데. 평소 가소타가 어디 부딪히기만 해도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나 크게 다치다니,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대신 다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온 식구가 가소타의 곁을 지켰다.
향이 한 개쯤 다 타들어 갔을 무렵, 과연 가소타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작게 무어라 소리를 내더니 머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가동이 황급히 고개를 가까이 가져갔다.
“소타야, 좀 어떠하냐. 어디가 아픈 거야, 아버지한테 말 좀 해 보련.”
가소타는 천천히 눈을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오라버니와 어머니를 순서대로 쳐다보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이는요?”
“아이는 무사해.”
가난청이 말했다.
“옆방에서 영 대인이 직접 지켜 주고 계셔.”
가소타는 마음을 놓으며 씨익 웃었다.
“어쨌든 청양 언니의 부탁을 잘 들어준 셈…….”
그녀가 말을 멈추더니 별안간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청양 언니는요? 사람을 보내… 구해 왔어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가난청은 서둘러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가동은 놀랐는지 멍한 얼굴이었고, 녹하는 소리를 꽥 질렀다.
“세상에나, 부처님!”
* * *
영구가 청이각 뒷골목으로 사람을 보냈을 땐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횃불을 들고 샅샅이 살펴보니 곳곳에 싸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찢어진 천 조각과 흩어진 암기들, 여기에 핏자국까지. 그 너저분한 모습을 바라보던 영구의 가슴은 찬 바람이 불어닥친 듯 서늘하게 식었다.
금군이 에워쌌던 괴한 두 명 중 한 사람은 도망쳤고, 한 사람은 붙잡혔지만 잠깐의 빈틈을 타 스스로 독을 먹어 자살했다. 그 소식에 공춘홍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마구 욕을 퍼부었다.
금군들은 청이각 주변을 에워싸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런데 내부는 구경꾼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들 표정이 얼떨떨한 게 제법 당황한 듯 보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공연 중 별안간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무대에서 공연하던 이들이며 무대 아래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던 점원들이 들고 있던 물건을 내던지고는 황급히 도망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청이각 사람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깜짝 놀라긴 했지만 모든 상황이 오늘 밤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부러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 연출된 상황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기다렸다. 그런데 깜짝 행사가 아니라 정말 놀라 자지러질 만한 상황이 이어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관병들이 들이닥치자 담이 작은 이들은 놀라 몸을 벌벌 떨 정도였다.
공춘홍은 모든 이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그 뒤 각 골목의 이장을 불러와서 거기 있던 자들의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만약 낯선 얼굴에 이유도 불충분할 경우, 모두 붙잡아 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조사해 보니 전부 임안성에 거주하는 이들이 분명했고, 외지에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물어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공춘홍과 영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구가 먼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난 궁에 좀 다녀오겠소.”
장공주 전하가 납치된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일이기에 영구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대신, 서둘러 황제에게 보고하고자 궁으로 향했다.
가동이 해독약을 구하러 궁을 찾았을 때, 묵용린은 아직 봉명궁에 있었다. 가소타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보아 온 묵용린은 그녀를 자신의 누이처럼 아꼈다. 가소타가 중독되었단 말에 근심에 싸인 그는 두말하지 않고 곧장 사희에게 가동을 데리고 가서 약을 건네주라고 분부했다.
가동이 궁을 오가며 적잖이 소란을 피웠기에 사봉봉도 놀라 잠에서 깼다. 금천아를 통해 가소타가 다쳤단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는 걱정에 잠을 더 이루지 못하고 아예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안에서 나오자, 묵용린이 말했다.
“소란을 피워 잠을 깨웠군.”
사봉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소타는 어떻답니까? 많이 심각하답니까?”
묵용린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소타는 아무 문제없을 거요. 짐에겐 남원 황궁의 해독 영약이 있소. 그 영약으로 천하의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으니 약을 먹고 조금 지나면 금방 깨어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