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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66)화 (1,166/1,192)

제1166화

“신첩, 황상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사봉봉이 이어서 말했다.

“명절인 오늘, 황상께서 신첩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묵용린은 그녀가 토끼 인형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고마워할 게 뭐 있단 말이오? 어차피 마음에도 들지 않아 다른 이에게 줘 버린 것을.”

사봉봉이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 잘못을 인정했다.

“신첩의 잘못입니다. 신첩이 그 인형을 다른 이에게 주어선 안 되었습니다. 그저 처음으로 만난 숙비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무언가 선물을 주려다 그만 생각 없이 인형을 건네고 말았습니다. 하여 나중에 인형을 견주어 보자고 하셨을 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묵용린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말투도 한껏 누그러졌다.

“되었소. 짐이 황후에게 주었으니 황후 것이오. 황후가 어찌하든 상관없소.”

사봉봉이 말했다.

“신첩이 말씀드린 큰 선물은 토끼 인형이 아닙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뿌옇게 차올랐다.

“신첩의 부친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병력을 파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풍이 임안성으로 돌아왔다는 건 묵용린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봉봉이 이렇게 빨리 그 소식을 접했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하자, 그는 조금 어색했다.

고개를 숙인 채 옷깃을 매만지던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게 뭐라고. 사 장군은 국구 아니오? 국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짐은 당연히 도울 것이오.”

사봉봉은 무릎을 꿇고 그에게 이마를 조아리며 절했다.

화들짝 놀란 묵용린이 서둘러 그녀를 일으켰다. 보드랍고 가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나니 좀처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 또 사봉봉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그는 결국 아쉬운 마음으로 손을 놓았다.

사봉봉이 말했다.

“황상의 은혜에 신첩이 달리 보답할 방법이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황상의 병을 치료하는 데 성심껏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묵용린은 심장이 철렁였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음, 좋소…….”

사봉봉이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우선 그를 포옹하곤 그의 가슴에 볼을 대었다.

“황상, 괴로우시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사봉봉이 자발적으로 그의 품에 안긴 건 묵용린으로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보드라운 그녀를 껴안고 있으니 그는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었다. 마치 가슴 속에 갇혀 있던 어린 짐승이 깨어난 듯 그의 가슴은 자꾸만 무언가에 쿵쿵 부딪혔다.

사봉봉은 혹 그가 견디기 어려울까 봐 가볍게 그의 등을 쓸었다.

“황상, 어떠십니까?”

묵용린은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게 꼭 구름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가 무기력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조금, 괴롭소.”

“조금 느슨하게 할까요?”

사봉봉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의 품을 떠나려 하자, 묵용린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얼마나 지났다고 그의 입에서 잔뜩 가라앉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봉봉은 차마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그를 타일렀다.

“황상, 이 일은 조급하게 구시면 안 됩니다. 천천히 하시지요. 앞으로 신첩이 언제나 도와 드리겠습니다.”

묵용린은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의 머리에 턱을 괸 채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움직이지 말고, 그냥 이대로 계시오.”

사봉봉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기대었다. 그의 병이 그녀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묵용린이 괴로워하니 그녀도 조금 괴로웠다. 호흡도 가빠졌고 머리도 어질거렸고 등에서는 땀이 났다. 너무 가까이 붙은 탓에 심장도 한데 뒤엉켜 뛰는 듯했다. 이렇게 틈 하나 없이 그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니 그녀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잠시 뒤, 그녀가 더는 견딜 수 없어 그에게 물었다.

“황상, 어디가 괴로우십니까?”

묵용린이 그녀의 머리에 턱을 비볐다.

“모든 곳이 다 괴롭소.”

사봉봉이 말했다.

“신첩도 조금 괴롭습니다. 조금 거리를 벌리는 게 어떠신지요?”

묵용린은 마른침을 삼킨 뒤 마침내 손을 풀고 목멘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 황후도 괴롭단 말이오?”

“신첩도 모르겠습니다.”

사봉봉은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크게 한숨 몰아쉬었다. 방금은 꼭 뜨거운 불에 끓여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숨결마저 뜨거운 듯했다.

묵용린은 몸을 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기된 얼굴을 잠시 식힌 뒤 입을 열었다.

“짐이 숙비와 나눈 얘기를 얼마나 들었소?”

사봉봉은 그 당시 화가 난 묵용린이 숙비와 묵용성을 어떻게 할까 봐 걱정됐었다. 하지만 묵용린이 자신과 묵용성 사이를 의심하는 게 더 염려스러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묵용린과 숙비의 대화가 조금씩 들리긴 했지만, 사봉봉은 그 내용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오므리며 말했다.

“신첩, 정확히 듣진 못했습니다.”

“그렇소?”

묵용린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아와 숙비가 마음이 통하였다는군. 짐이 그 둘을 이어 줄 생각인데, 황후의 생각은 어떻소?”

사봉봉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믿기지 않던 얘기를 황제가 제 입으로 직접 말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상께서 다른 이를 도우시겠다면, 신첩도 다른 의견은 없습니다.”

“성아가 황후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짐도 아오. 이제 그 애가 숙비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그 애에게 보상을 해 주고 싶었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윽한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후를 위해서 그리하기로 했소.”

사봉봉은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어찌 신첩을 위하여 그리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신첩은 그런…….”

묵용린은 그간 태연스레 행동해 왔지만, 막상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려니 입 밖에 내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그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황후도 나중엔 알게 될 것이오.”

사봉봉은 이만 돌아가고 싶었다.

“황상, 밤이 깊었습니다. 신첩은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묵용린이 말했다.

“짐이 바래다주겠소.”

“아닙니다. 몇 걸음만 가면 되는 것을요.”

사봉봉은 이미 문 앞까지 다가갔다. 그래도 묵용린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날이 어두우니 짐이 바래다주겠소. 혹여 부주의로 넘어질 수도 있으니.”

마치 그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사봉봉이 넘어질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천아도 있는걸요.”

밖을 지키고 있던 금천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별안간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다리를 문질렀다.

“마마, 황상께 바래다 달라고 하십시오. 소인은 갑자기 다리가 저려 오는 게, 잠시 주물러야 걸을 수 있을 듯합니다.”

사봉봉이 금천아의 생각을 어찌 읽지 못할까. 사봉봉은 금천아에게 눈을 부릅뜨며 나무랐다.

“괜한 짓을 하는구나.”

하지만 묵용린은 소매 밑으로 슬쩍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갑시다, 황후.”

사봉봉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따라갔다.

묵용린은 고개를 돌려 칭찬이 담긴 눈빛으로 금천아를 바라보았다.

금천아는 다리를 몇 차례 주무르다가, 두 사람이 멀어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들을 따라 걸어갔다.

사봉봉을 봉명궁에 데려다준 묵용린은 서둘러 돌아가기는커녕, 아무렇지 않게 침전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지난번에 선물한 조각 그림 맞추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봉봉이 침상에 앉아 물었다.

“황상, 돌아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묵용린은 두 눈을 내리깐 채 조각 맞추기만 바라보았다.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는구려.”

“어째서입니까?”

묵용린은 미소를 짓더니 뜸을 들이며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황후도 알게 될 것이오.”

사봉봉은 정말 너무나도 졸렸다. 그가 말을 해 주지 않으니 그녀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자꾸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절대 편히 잠들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묵용린이 옆에 있어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 * *

자시가 넘었는데도 청이각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묵용청양은 차와 다과를 먹으며 영안을 기다렸다. 가소타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위층과 아래층을 끊임없이 오갔다. 명절이라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지 아이를 데리고 온 어리석은 아비들도 있었다.

몇몇 아이가 아래층을 마구 비집고 다니다가 술과 음식을 나르던 점원과 부딪칠 뻔했다. 점원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것들이, 어느 집 자식들이야? 부모님은? 넘어져도 책임 안 진다!”

그의 목소리는 무대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신나게 뛰어다녔다.

가소타가 숨을 헐떡이며 문발을 걷고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차갑게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내 묵용청양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청양 언니,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대충 알겠어요.”

묵용청양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뭐 하는 곳인데?”

그녀가 가소타를 데리고 이곳에 온 이유는 아래층 손님들이 정도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춤과 연주를 구경하기만 할 뿐이었다. 남몰래 하는 짓들은 전부 위층 별실에서 이루어졌는데, 발을 내리면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가소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방금 방을 잘못 알아서 다른 곳에 갔었는데, 어떤 남자가 아가씨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어요.”

묵용청양은 자신을 강호의 자식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별로 꺼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소타에게 당부하는 건 잊지 않았다.

“나한테 얘기하는 건 괜찮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입 조심해야 해. 녹하 고고한테 작대기로 맞을지도 모르니까.”

가소타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저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묵용청양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러다 또 방을 잘못 들어가면 거기 있는 자한테도 맞기 십상이니까.”

그런데 가소타는 얌전히 앉아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바깥에 서 있기만 하다 들어올게요.”

묵용청양은 신경도 쓰지 않고 씁쓸한 차를 들이켜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영안은 대체 온단 말인가. 이대로 오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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