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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57)화 (1,157/1,192)

제1157화

그녀와 묵용성은 시로 감정을 전한 날들이 더 많았고,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주로 은령이 나서서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게 막았다. 어쩌다 가끔 마주쳐도 은령이 흉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마치 사랑하는 그들을 억지로 갈라놓는 격이었다.

송교는 은령이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궁비가 외간 남자를 몰래 만난다는 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묵용성의 재주를 좋아했다. 또한 그의 덕과 교양을 겸비한 외모와 점잖은 말투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묵용성은 흠모하는 여인을 언제나 예의 바르게 대했다.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거리를 두고 서서 그가 예를 갖추며 물었다.

“소저, 이렇게 공교롭게 또 만났군요. 연회에 참석하러 오셨습니까?”

송교도 약간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공자를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묵용성은 위아래로 송교를 훑어보았다.

오늘 밤, 여인들 중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화장을 옅게 하고, 눈에 띄지 않는 차림새였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고아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마침 그의 취향에 딱 맞았다. 정말 속세를 벗어난 사람 같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감탄을 쏟아 냈다. 이렇게 순수하고 품위가 있다니, 감히 월궁에 산다는 선녀 항아와 비견할 만했다.

그날 묵용린과 식사를 한 후, 황제는 그의 금족령을 풀어 주었고 출궁도 허락했다.

그날 밤, 그는 급하게 진왕에게 가서 흥청망청 즐겼다. 그러나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품에 미인을 안고 있는데도 따분하고 불만스러워 다시 환궁했다. 진왕은 그런 그가 이상하기만 했다. 아마 며칠 동안 궁에 갇혀 있던 탓에 성격이 조금 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진짜 신을 만났다. 진짜 신이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누구를 봐도 다 속된 사람일 뿐이었다. 결국 속된 즐거움만 찾는 그의 욕망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만약 그가 인사만 하고 갔다면 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묵용성의 두 눈은 마치 송교에게 꽂혀 버린 듯,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은령은 누군가에게 숙비가 외간 남자와 사적으로 만나는 것이 발각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눈을 부릅뜨고 그를 쫓아 버리려 했다.

“공자! 얼른 가십시오. 남녀가 유별하니, 다른 사람이 보면 좋지 않습니다!”

묵용성은 진작부터 송교의 내력을 묻고 싶었는데, 한 번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소저와 안 지 이렇게 오래되었으니 성명과 어느 집안 사람인지…….”

은령은 그가 뜻밖에도 송교의 이름을 물으려 하자, 화를 내며 낮게 일갈했다.

“무엄하십니다! 이분께서는 숙비 마마십니다!”

그 한마디는 벼락과도 같았다. 묵용성은 불시에 일격을 당한 것처럼 크게 휘청거렸다. 똑바로 설 수 없었다.

그가 송교의 신분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궐의 모든 사람이 깨끗하게 잊어버린 숙비는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그도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사실 송교가 종친의 천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걸 탓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묵용 가문은 자손이 많지 않아서 그의 황형은 종친들에게 언제나 너그럽고 관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인척 관계로 맺어진 종친 자제들도 궁에서 잠시 머물곤 했다. 또 한편으로는 궁에 와서 손님으로 지내는, 어느 궁비의 친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송교의 신분을 분명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움직임이 너무 크면 황형이 알게 돼 꾸지람을 듣게 될까 봐 잠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설마 이 소저의 신분이 숙비일 줄이야.

그녀에게 궁비의 위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수수한 옷차림과 온화한 말투, 그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수줍은 장난기까지. 그녀는 마치 아직 출가하지 않은 여인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혼비백산한 듯 달아났다.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던 송교는 영문을 몰라 은령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 거지?”

은령이 말했다.

“왜긴 왜겠어요? 마마께서 숙비 마마이신 걸 알고 놀랐겠죠.”

송교가 말했다.

“본궁이 봤을 때, 공자도 도량이 비범하고 궁중에 사는 걸로 보아 분명 귀하신 분일 텐데 어찌하여 한낱 궁비에게 놀라시는 거지?”

은령이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아무리 기품이 대단하다고 해도 군신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다. 마마께서는 황상의 사람이니, 공자가 아무리 존귀하더라도 마마를 만나면 예를 갖춰야 합니다. 예법을 무시할 수는 없죠.”

송교는 조금 아쉬웠다.

“이제 본궁의 신분을 알았으니 앞으로 본궁과는 왕래하지 않을 것 같구나.”

은령은 대경실색했다.

“아이고, 마마! 아직도 저 공자와 왕래하기를 바라십니까? 어서 단념하십시오. 큰일이 날 겁니다.”

송교는 고개를 들고 달을 바라봤다.

“적막한 구중궁궐에서 모처럼 시문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려 했을 뿐이다. 본궁은 그저 그를 단순한 벗으로 생각했건만.”

“마마, 외간 남자와는 벗이 될 수 없습니다.”

송교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닫았다.

혼비백산한 묵용성은 계화림에서 뛰쳐나와 사람이 많은 곳에 이르러서야 달리는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태명호를 향해 돌진한 탓에 그는 마치 호수에 뛰어들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름 아닌 성 전하가 호수로 뛰어들 것 같아 깜짝 놀란 사람들이 슬금슬금 그를 따라갔다.

묵용성은 한달음에 호숫가로 달려갔다. 발밑에는 친수대가 있어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구나. 왜 그가 좋아하는 여인들은 모두 황형의 여인이란 말인가? 한 명은 황후이고, 다른 한 명은 숙비였다.

그는 머리를 쳐들고 깊은 탄식을 쏟아 냈다. 불공평했다. 하늘은 그에게 너무 불공평했다…….

그는 정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낭만적인 감성도 가지고 있어서, 마음속에 울화가 생기면 잘 해소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호숫가인데다 또 콸콸 흐르는 물소리에 가려질 것이라 예상한 그는, 갑자기 달을 향해 무릎을 꿇더니 가슴을 치며 비통함을 쏟아 냈다.

그를 따라오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얼른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너도나도 물었다.

“전하,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전하, 어서 일어나십시오.”

“전하, 무슨 고충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중에는 묵용성과 평소 함께 어울리던 질 나쁜 친우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묵용성의 성격을 잘 아는지 놀리듯 물었다.

“전하, 지금 광한궁廣寒宮(달 속에 있다는, 항아姮娥가 사는 가상의 궁전) 선녀께 속내를 털어놓는 거죠?”

고개를 숙인 묵용성은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겨우 두 마디를 울부짖었을 뿐이고, 미처 본심을 토로하기도 전에 이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다행히 이런 방면에 경험이 있기에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사람들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여러분께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드렸군요. 본 전하는 단지 달에게 기원을 올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먼저 농담을 꺼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랬잖습니까. 전하께서는 풍취를 아는 분이세요. 과연 정말로 광한궁 선녀께 속마음을 호소하고 계셨군요.”

다른 사람들도 그저 웃기만 할 뿐, 굳이 사실 여부를 캐묻지 않았다. 누가 이를 악물고 가슴을 치며 속마음을 호소하겠는가? 분명 달을 끌어다가 한두 입은 물어뜯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묵용성을 둘러싼 채 웃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앞뒤에서 소리를 치며 꽤 많은 아랫사람을 요란하게 대동한 것을 보고, 다들 황제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나둘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다가오는 건 황제가 아니라 몸매가 늘씬한 궁비였다. 그녀는 절색인 용모에 화려한 궁포를 입었지만, 표정은 얼음처럼 싸늘하고 거만했다.

송교는 계화림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은령에게 물었다.

“황후가 도착한 것이냐?”

은령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아뇨, 허 귀비입니다. 정말 대단한 규모네요. 소인도 황후 마마께서 오신 줄 알았습니다.”

중추 연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황제는 은혜를 베풀어 허 귀비의 금족령을 풀어 주었고, 그녀가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어쨌든 좌상도 연회에 참석하니 좌상의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그러나 허 귀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밖에 안 된 금족령을 풀어 주었다는 건 황제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신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황제가 좌상을 매우 중히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뒷배만 든든하게 버텨 주면 또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성대하게 치장하고 연회에 참석했다. 모두에게 허 귀비의 건재함을 보여 주기 위해!

과연, 이렇게 위풍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종친 여인들은 얼른 몰려와 아첨하기에 바빴다.

“귀비 마마께 인사드립니다.”

“귀비 마마, 오늘 참 아름다우십니다. 광한궁 선녀도 비할 바가 아닙니다.”

“맞아요. 귀비 마마께서는 우리 동월 최고의 미인이십니다.”

“…….”

고귀한 머리를 쳐든 허 귀비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두어 마디 응대하려는 순간, 누군가 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황후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아, 황상께서도 오셨습니다.”

“어? 황상께서 왜 황후 마마와 같이 오지 않으셨죠?”

“글쎄요, 게다가 황후 마마께서 앞서시고 황상께서 뒤따라오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허 귀비가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사봉봉이 측근 시녀를 데리고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황후의 옷차림은 그녀가 보기에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비취가 상감된 오봉전五鳳鈿이 머리에 꽂혀 있는 게 유독 눈에 거슬렸다.

예법에 따라 중추 연회에는 황제와 황후가 함께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 이건 함께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앞뒤로 연달아 따로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황후가 황제보다 앞서 걷는 건 예법에도 어긋났다.

사봉봉은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지금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지난번에 묵용린이 그녀를 희롱했을 때도 화가 많이 났었는데, 오늘은 한술 더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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